# 184
나 혼자 10만 대군 184화
56장 샤넬리오스(1)
땅거미가 내려앉은 저녁 시간.
북한에 일어난 이계화 사태를 성공적으로 막은 씨커 길드원들은 오후 5시쯤이 돼서야 길드 사무소로 복귀 할 수 있었다.
[나를 만지지 마라, 인간!]
“와! 언니, 이거 대체 뭐에요!?”
“……내 외신님?”
[만지지 말라고 했다!]
“와, 이거 진짜 신기하다. 뭐지?”
씨커 길드의 휴게실은 현재 굉장히 떠들썩한 상태였다.
그 이유는 바로 이계화 사태를 해결한 뒤 나타나, 현재 이은별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한 마리의 작은 용 때문이었다.
그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푸른색의 오오라를 흩뿌리고 다니는 작은 용.
그 용은 자신을 만지려 손을 올리는 김서윤과 이로하를 보며 성질을 냈지만, 이은별의 어깨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를 가지고 있는 터라 그것이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서윤과 이로하가 용을 만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파직!
“읏!?”
김서윤과 이로하의 손이 일정 이상 가까이 다가오자 파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척이나 강한 전류가 튀어 올랐다.
[난 분명 경고했다, 만지지 말라고.]
푸른 전류가 터지자, 으르렁거리던 용을 바라본 김서윤과 이로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용을 만지는 것을 포기하고는 자리에 앉으며 이야기했다.
“그보다 신기하네…… 언니, 그 용 외신이라고 했죠?”
[용이 아니다! 크루아 크루아흐다!]
“응, 맞아.”
성질을 내는 용의 말을 넘기며 대답하는 이은별.
“근데 어떻게 그렇게 나와 있는 거예요? 내 외신은 내가 계승자가 된 뒤로는 아예 코빼기도 안 보이던데.”
김서윤이 묻자 이은별이 무언가 대답하려 했지만, 김서윤의 말에 대답한 것은 이은별이 아니었다.
[나는 계승자의 능력 계발을 돕고 있다.]
“……음, 뭐 그 말대로야.”
그 뒤로 곧 길드원들은 이은별에게 옆에 있는 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곧 상황을 파악한 에단은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들은 내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은별이 누나의 능력은 알고 보니까 상상력을 기반한 거였고, 지금은 상시 능력을 사용하며 상상력을 이용해 용의 몸을 만들고 있다…… 대충 이런 이야기죠?”
“맞아.”
‘사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저 상상력 수련을 하는 거라면 크루아 크루아흐가 이렇게 작은 용의 모습으로 현신해 있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이은별의 능력 계발을 도와준다는 핑계로 이렇게 밖에 나와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의 조언을 듣는다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능력을 계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은별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길드원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리남이 울리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고는 말했다.
“뉴스 떴다.”
“무슨 뉴스요?”
“이번에 북한에 일어났던 이계화 사태 뉴스.”
“응? 근데 왜 뉴스가 뜨는데 알림이 와요?”
에단의 물음에 하리남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뭐, 나는 씨커라는 글자가 뉴스에 나오면 알림에 뜨도록 설정해 놨거든.”
“응? 왜요?”
“……그야, 그냥? 우리 길드가 뉴스에 뜨니까 뭔지 확인하려고 알림설정해 놓은 거지. 그보다 이거 봐봐.”
하리남은 이로하의 말에 대답하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주었고, 길드원들은 다 함께 하리남의 스마트폰에서 보여지는 뉴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북한에서 일어난 초대형 이계화 사태, 이번에도 해결사는 ‘씨커 길드’]
현지 시각 기준, 오전 9시에 북한 평양 부근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이계화 사태는 순식간에 북한 및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한과 중국,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각 나라를 공격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 이계화 사태에서 나타난 골렘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예외적으로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고 한국 헌터 협회에서 발표했다.
……(중략)……
그렇게 해서 사태는 현지 시각 오후 3시 30분경 씨커 길드원 ‘김서윤’, ‘이은별’, ‘에단’, ‘이로하’가 이계화 사태의 원흉인 거대 골렘을 쓰러뜨리면서 이번 이계화 사태는 끝을 맺었다.
기사 아래에는 하리남과 아냐가 끝없이 몰려오는 거대 골렘을 막아내는 장면들이 사진으로 찍혀 있었다.
분명 전투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검은색의 오오라를 흩뿌리며 골렘을 막는 하리남과 골렘들을 얼리거나 가둔 후 부숴 버리는 아냐의 모습은 무척이나 선명하게 사진 안에 담겨져 있었다.
“근데 진짜 이런 거 보면 기자들이랑 그 유튜브에서 영상 올리는 사람들은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응? 뜬금없이?”
하리남이 이로하를 바라보자 김서윤은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이런 걸, 도대체 어떻게 찍나 하고 생각하는 거죠, 언니?”
“응, 맞아. 매번 저런 건 아니지만 우리가 몬스터나 괴수를 사냥할 때 정말 몬스터가 잔뜩 몰려 있는 곳도 있잖아?”
이로하의 말에 하리남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사진을 확인한 뒤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확실히 그때 국경선 상황도 장난 아니었는데. 다들 긴장해 가지고 골렘들 보이면 능력 난사하고 그랬으니까.”
“진짜 이런 거 찍는 사람들은 목숨이 한 10개라도 되나……?”
혹시나 싶어 스크롤을 내려 기자와 사진 제공자를 확인해 보니 기자와 사진 제공자 모두 기사를 올린 본인이었다.
“정말 대단하구만.”
그걸 보고 짧게 중얼거린 하리남은 뉴스의 스크롤을 이리저리 올리고, 내리며 보더니 스마트폰을 꺼버리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형님은 이 시간이 됐는데도 안 나오시네.”
“그러게……. 길드장님은 또 저 횃불 안에 있는 거지?”
이은별이 슬쩍 횃불을 보며 중얼거리자 김서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 도대체 아저씨는 저 횃불에서 뭐 하는 거야? 우리는 조금 전까지 북한에 있는 이계화 사태 막느라 힘 싹 빠진 상태인데. 막 놀고 있는 거 아니야?”
김서윤의 불만 어린 투정과 의심에 에단은 슬쩍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뭔가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뭘 하고 있는데?”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현이 형이 희희낙락 노는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그건,”
에단의 말에 아냐를 제외한 길드원들의 머릿속에는 순간적으로 느긋하게 놀고 있는 김우현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렇긴 하지.”
“확실히 길드장님이 느긋하게 노는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를 않네.”
김서윤이 말하자, 그 옆에 있던 이은별도 어깨를 으쓱이며 동의했고, 맞은편에 있던 이로하도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저 횃불이 있기 전에도 김우현은 1층 집무실에 있을 때나, 2층 휴게실에 있을 때나, 항상 일하고 있었으니까.
“뭐, 확실히 형님이 저 안에 들어가서 가지고 나오는 것만 생각해 봐도…… 형님이 놀고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안 들지.”
“그러네요.”
“그러게.”
하리남의 말에 에단과 김서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납득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아냐는 자문자답하며 김우현을 평가하는 길드원들을 보며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낡은 신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형상이 남아 있지 않은 그곳에서, 나는 언젠가 만났던 남자와 마주 보고 있었다.
흑의를 입고 있는 남자.
그는 낡은 의자에 앉아 나를 마주 보며 유쾌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나는 그를 보며 엉겁결에 건너편에 있던 석상 조각에 걸터앉았다.
그는 내가 걸터앉는 것을 확인하고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 우물거리다 고개를 슬쩍 젓고는 말했다.
“우선 말해줘야 할 이야기는 많은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네가 궁금해하는 것부터 이야기해 줄게. 뭐가 궁금해?”
그의 물음에 나는 답했다.
“분명 나는 3지구에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기절한 너를 내가 여기까지 데리고 왔거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니라 내 그림자가 데리고 온 거지만. 이 정도면 답이 되었으려나?”
남자의 대답에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럼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는?”
“아까 말했잖아? 내가 네게 해줄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 거지. 사실 해줄 이야기가 없었으면 이곳이 아니라 로우레테가 있는 곳으로 넘겨줬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대답을 들으며 짧게 무언가 생각하려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말했다.
“그 해줘야 할 말이라는 것은?”
“음,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얼굴에 미소를 짓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하나의 키워드를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남자는 그저 뭉뚱그려서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뭉뚱그려서 말하지 말고, 키워드 같은 건 없습니까?”
“키워드……? 키워드라…….”
내 물음에 다시 고민에 빠진 남자.
그는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더니, 곧 머릿속이 정리된 듯 원래의 유쾌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그럼 대충 몇 가지 정도 말해줄 수 있겠군.”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손을 앞으로 손가락을 세 개 펴고는, 먼저 약지를 접으며 말했다.
“첫 번째로, 내 정체가 누구냐 같은 거라던가.”
이번에는 중지.
“두 번째로는, 이제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것도 있군. 그것도 아니라면…….”
그는 마지막으로 펴져 있는 검지를 접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크세즈베트에게 죽은 뒤, 회귀한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줄 수도 있지.”
“……!!!”
남자의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레 뜨며 생각했다.
조금 전 저 남자가 뭐라고 말한 거지?
자신의 귀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내게 ‘회귀’라는 말을 했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지우지 않고 남자를 바라보자, 그는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말했다.
“그렇게 놀랍나?”
“어떻게 내가 회귀한 사실을……?”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여러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지만, 나는 그 가설들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내 표정을 보았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나? 너무 급하게 들으려 생각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너와 이야기할 시간이 무척이나 많거든.”
그렇게 말힌 남자는 자신의 턱을 만지작대면서 말을 이었다.
“뭐, 우선 네가 회귀에 대한 사실을 제일 먼저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그걸 제일 먼저 말해주도록 하지. 네가 회귀한 사실을 내가 알고 있는 건 정말 간단해. 그야…….”
그는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움직여 나를 가리키고는…….
“너를 5년 전으로 회귀시킨 게 바로 나니까.”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