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나 혼자 10만 대군 180화
54장 괴신 사냥(5)
고풍스러운 도서관 안.
고풍스러운 샹들리에 아래에 있는 테이블 앞에 앉아 잠자코 로만의 이야기를 듣던 로우레테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악마들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거야?”
로우레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로만은 걱정이라는 듯 말했다.
“그래, 원래라면 네 계약자가 악마를 죽인 뒤에 1지구가 어느 정도 버텨줬어야 하는데 1지구가 너무 빨리 멸망해 버려서.”
“1지구에 있던 악마들이 5지구에 왔다, 이건가?”
“맞아.”
로우레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로만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한 번만 더 도와줄 수는 없어?”
로만의 물음에 로우레테는 고깔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생각은 어떤가?”
“나?”
로우레테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나는 말했다.
“뭐, 내 입장에서는 그림자 영체로 사용할 수 있는 그림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좋지.”
괴신들은 마정석을 떨구지 않고 소멸해서 그림자 영체로 만들 수 없다.
반면에, 악마들은 마정석을 뽑아낼 수 있으니까 내게 있어 악마를 사냥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며 로우레테를 보자 그녀가 로만에게 물었다.
“그래서, 만약 도와준다면 악마들은 어떻게 다시 3지구로 끌어올 생각이지? 그때 구슬을 전부 사용했지 않나?”
로우레테의 물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구슬은 내가 무리하면 하나 정도는 더 만들 수 있으니까……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하겠지만.”
로만은 벌써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한결 걱정을 던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도와주는 거로 알아도 될까?”
“그래, 하지만 이번에는 일정을 맞춰야 한다. 이쪽도 하는 일이 있으니까.”
로우레테의 말에 로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 구슬을 만들면 곧바로 연락해 줄게.”
그렇게 말한 로만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능력을 사용해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로만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로우레테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엔 어땠지?”
“괴신 말이야?”
“그것 말고 달리 다른 게 있겠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어, 분명 신격 각성은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게 확실한데 너무 벅차단 말이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로우레테가 말했다.
“이제 슬슬 그 녀석이 나올 거다.”
“그 녀석?”
“그래, 네가 1달 전에 말했던 그 녀석 있지 않나.”
그녀의 말에 나는 곧 로우레테가 누구를 말하는지 깨달았다.
“아틀락 나챠?”
“그래, 이제 곧 있으면 그 녀석이 강림할 거다.”
내 표정은 자연스럽게 굳었고,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고깔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렸다.
“지금 정도면 그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확실하게 단언하지는 못하겠군. 하지만 아마 지금 네 정도라면 그 녀석과 비등비등한 수준은 될 거다.”
“그래?”
내 되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로우레테.
“너는 1달 전부터 확실히 버거운 상대랑 계속해서 전투를 치러왔고, 그 녀석들을 하나같이 먹어 치우면서 성장했다. 오히려 괴신을 그 정도로 먹어치웠는데 강해지지 않는 게 이상하지.”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하며 초콜렛 파이를 입에 물고서는 오물거렸다.
확실히 지난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거의 100단위에 가까울 괴신을 먹어치웠다.
인간형처럼 생긴 괴신들부터 시작해서 처음 보는 기괴한 형태를 가진 괴신들까지.
3지구에 괴신이 강림하는 족족 전부 죽였으니, 힘이 늘어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그녀는 어느새 쥐고 있던 초콜렛 파이를 전부 먹어치우고 후식으로 커피 우유를 마시며 말했다.
“아무튼, 너도 가서 쉬어두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래야지.”
사실 처음 괴신 사냥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리 강한 녀석들이 나오지 않았던 터라, 오히려 쉬기보다는 조금 더 많은 괴신을 잡고 싶었는데…….
“후…….”
지금에 와서는 괴신과 전투를 끝내고 나면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쉰 뒤 횃불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비정상적인 공간.
어디가 하늘인지 땅인지조차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다.
군데군데 나 있는 심연과도 같은 검은 구멍과 마치 차원이 찢어진 듯한 균열들은 지금 이 공간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아틀락 나챠의 여덟 번째 거미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한 인영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네 녀석이 바로 목소리였나.”
“이거, 너무 놀라게 해버렸나?”
아틀락 나챠가 금방이라도 자신의 이빨을 깨부술 듯 이를 꽉 깨물며 입을 열자 건너편에서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다리부터 시작해서 머리까지.
그 어느 한 부분에도 빛이 들어온 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 그저 심연으로 자신의 존재를 이루어내고 있는 그림자는 아틀락 나챠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 녀석도 멍청한 건 여전하구나, 아틀락 나챠의 거미.”
“도대체 네 녀석이 어떻게 살아 있지? 네 녀석은 분명 내 본신과 함께 소멸했을 텐데……!”
아틀락 나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노려봤지만, 그림자는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다 방법이 있지.”
“네 녀석……!”
아틀락 나챠는 금방이라도 그림자에게 자신의 손에 흐르는 독액을 쏘아 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마치 무언가에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그림자는 그런 그를 여유롭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힘 빼는 거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어차피 곧바로 아래에 내려가서 파편과 싸워야 할 텐데 말이야.”
“그렇군…… 네 녀석 처음부터 이 판을 만들었던 거냐……!”
“그걸 이제 알았어?”
그림자는 씨익 웃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녀석들이 진짜로 내 말을 따를까 했는데, 자기 목숨은 소중한지 다들 내 이야기를 잘 따르더군.”
“네 녀석……!!”
“그러니까 너희가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괴신을 죽일 정도의 힘을 가진 인간이 있으면 다 같이 강림해서 빨리 죽여 버려야지, 서로에게 좀 죽여보라고 떠넘기니까 이렇게 된 거라고. 뭐…….”
씨익.
“이 3지구에 넘어와서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너희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지만 말이야.”
“이 빌어먹을 자식……!”
아틀락 나챠가 금방이라도 그림자를 향해 도약할 듯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려 할 때마다 오히려 그 아래에 있는 검은 구멍으로 조금씩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틀락 나챠는 자신의 바로 뒤에 난 구멍을 한 번 바라본 뒤 그림자에게 말했다.
“내가 네 녀석들의 파편에게 쉽게 죽어줄 거라고 생각하나? 이 아틀락 나챠가?”
“지랄하고 있네.”
그의 말에 피식 웃은 남자는, 옴짝달싹 못 하고 구멍으로 끌려 들어가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가 혼자 남은 파편이라서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너는 ‘아틀락 나챠’가 아니라 그 녀석의 파편 중 하나일 뿐이잖아?”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주먹으로 아틀락 나챠의 얼굴을 후려쳤다.
빡!
“끄악!?”
비명만 지를 뿐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한순간에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아틀락 나챠를 본 그림자는 엄지와 검지로 피로한 눈가 주변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건 파편이 저 녀석을 잘 처리하는 건데.”
‘그렇게 잘될까?’
그림자는 문득 자신의 동료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라…….”
확실히 그 말이 맞기는 했다.
지금 상황에서 파편을 차근차근 키우다가는 오히려 사탄에게 파편이 죽어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과연 잘되려나.’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민하던 그림자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내가 고민해 봤자 달라질 것도 없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심연과도 같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여의도에 있는 헌터 협회 한국 지부의 지하.
불과 몇 달 전, 월터의 비호를 얻어 협회장의 자리에 올라온 강형찬은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 상황은 어떤가?
전화기 너머에서 현 상황을 묻는 ‘T. 월터’의 물음에 강형찬은 대답했다.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군대가 동원되어 북한의 국경선을 막고 있고, 헌터들이 추가로 지원하고 있지만, 이번 이계화 사태는…….”
강형찬이 말을 줄이자 월터가 물었다.
-씨커 길드의 헌터들은 합류하지 않았나?
“아뇨, 이계화 사태가 어느 정도 커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합류해서 상황이 나아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골렘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고작 5명으로는 완벽하게 수성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강형찬의 말에 월터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그 뒤로 대화가 오가고, 강형찬은 월터에게 SSS급 헌터의 지원을 받아내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의 한숨은 멈추지 않았다.
‘위험해…….’
강형찬은 인상을 찌푸리며 현재 북한의 국경선이 실시간으로 보여지고 있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에서는 돌로 이루어진 거대한 골렘이 자신의 거체를 과시하며 국경선으로 몸을 옮기고 있었다.
반대편에서는 헌터와 군인들이 골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국경선에 닿기도 전에 완전히 박살 나버리는 골렘.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화면만으로는 정말 손쉽게 방어해 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문제는 골렘의 강함이 아니라 골렘의 숫자였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숫자라니.’
인공위성으로 찍어서 확인한 골렘의 숫자만 하더라도 13만 개체.
웃기는 것은 분명 러시아와 중국으로 넘어가는 골렘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는데도 숫자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조금씩이지만 더 늘어나고 있었다.
‘씨커 길드원들이 아직 핵을 파괴하지 못한 걸까.’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화면을 보며 생각했다.
처음 골렘들이 국경선 쪽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씨커 길드원들이 전선에 합류해 우위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씨커 길드원들이 이계화 사태의 핵을 파괴한다며 북한 쪽으로 뛰어들었을 때부터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슬쩍 시선을 돌려 국경선을 다른 각도로 찍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곳에 보이는 거대한 검은 벽.
‘하리남 헌터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는 확실히 수비에 특화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골렘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의 칼질 한 번에 수십의 거대한 대형 골렘들이 산산이 분해되어 쓰러졌다.
그렇게 그는 선방하고 있었지만, 그가 있는 곳 외에 다른 구역은 골렘들의 물량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슬슬 위태로운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제발, 헌터들이 전부 지치기 전에 핵을 파괴할 수 있기를……!’
그런 상황을 파악한 강형찬은 조용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