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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178화 (178/202)

# 178

나 혼자 10만 대군 178화

54장 괴신 사냥(3)

용암이 사방에 뿌려지고 있는 영계.

그 용암이 뿌려지는 절벽 끝에는 붉은 외성 하나가 고고하게 서 있었고, 성안에는 조용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거대한 왕좌에 앉은 사탄의 아래에는 지금까지 1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움직이던 단탈리안과 그를 도우러 갔던 아몬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1지구는 확실하게 처리했나?”

사탄의 물음에 단탈리안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1지구의 영혼들은 현재 영계의 지하에 가둬놨습니다.”

단탈리안의 말에 만족스럽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사탄.

그는 그 둘을 보며 잠시 생각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더니 말했다.

“5지구로 가라.”

“5지구…… 말씀이십니까?”

사탄의 말에 순간 슬쩍 고개를 든 단탈리안.

“벨리알과 파이몬이 죽었다.”

“……!”

“그러니까 너희가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사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단탈리안과 마몬은 곧바로 출발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사탄은 그들이 나간 곳을 보다가 팔걸이에 몸을 기울였다.

“쯧.”

그리고 곧 그는 속으로나마 짧게 혀를 찼다.

‘잡일을 시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머저리들.’

원래 계획대로라면 1지구부터 5지구까지는 적어도 3개월 전에 완전히 처리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마음에 들지 않아.’

사탄은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지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자신은 지금 당장 밖으로 나돌아다니지 못하니까.

‘……그래도 이번에 저 머저리들이 5지구의 영혼을 절반이라도 보낸다면 이렇게 답답하게 지내는 것도 끝이다.’

사탄은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시선을 돌려 내성 바로 아래에 있는 백색의 영혼들을 바라보았다.

내성의 지하 공간을 거의 가득 채울 정도로 하얀빛을 내뿜고 있는 영혼들.

‘영혼들을 조금만 더 모은다면, 영계에 구속된 내 육체도 풀려난다……!’

사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성 아래에 보이는 영혼들을 보며 눈을 감았다.

* * *

상당히 늦은 시간, 씨커 길드의 지하 훈련실에는 이은별이 자신의 지팡이를 잡은 체 서 있었다.

‘달빛의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 이라.’

그녀는 얼마 전 자신의 외신, 크루아 크루아흐에게 들은 내용을 떠올렸다.

내 능력은 그저 운석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달빛의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던 외신의 말.

“…….”

이은별은 조용히 능력을 끌어올렸다.

능력을 끌어올리자마자 그녀의 주변으로 보랏빛 오오라가 떠올랐다.

전날 아냐와 자신의 실수로 인해 만들어진 훈련장 천장의 구멍에서 보라색 달빛이 쏟아져 내린다.

그리고 이은별은 그렇게 보라색 달이 뜬 상태에서 다시 한번 그의 말을 되뇌었다.

‘달빛이 비치는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

솔직히 지금까지 이은별이 능력을 써왔던 방식은 그가 말한 방식과는 접근법이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이은별은 그저 자신의 능력이 운석을 떨어뜨리는 능력이라고만 믿고 사용해 왔다.

각성 아이템을 얻고 나서도 운석들의 크기나 떨어져 내리는 운석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저번에 각성 아이템에서 얻은 달빛 내에 존재하는 상대의 마력을 강제적으로 흩어놓는 것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이은별이 사용하는 게 아니라,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붙어나오는 버프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능력에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역시 안 돼…….”

이은별은 자신의 능력을 다시 거두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그때 크루아 크루아흐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그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푸른 달빛이 사방으로 비추고, 그 주변으로 수천, 수만 개의 마법이 만들어지는 장관.

그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은별은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감조차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

이은별은 훈련실 바닥에 앉아 머리가 아프다는 듯 흔들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2주 동안 그 외신이 보여준 것을 어떻게든 따라 해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리 해도 그 외신처럼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능력의 단초를 잡은 것도.’

어제 아냐가 각성 아이템을 얻고 자신의 능력인 얼음을 사용해 이런저런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을 때, 이은별은 아냐의 얼음 능력을 폭주시켰었다.

아니, 그걸 폭주라고 하는 게 맞을까?

어떻게든 외신이 보여준 능력을 따라 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달빛에 닿은 얼음 기둥이 갑자기 커지기 시작하더니 길드 사무실을 전부 관통해 버렸다.

‘……그게 지금 내 능력과 관련이 있었을까?’

아냐는 분명 자신이 더 이상 얼음 기둥을 만지지 않았다고 했다.

“역시…… 하나도 모르겠어.”

어제 일에 대해 생각하던 이은별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답답하네.’

그 능력을 눈앞에서 직접 봤는데도 자신이 그 장면의 절반의 절반조차도 따라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이은별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지만,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

‘다시, 다시 한번 해보자.’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한번 능력을 사용했다.

* * *

“이거 좀 위험한데?”

“왜?”

낡은 신전.

여기저기에는 이가 빠진 대리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고, 석상들이 있어야 할 공간에는 부러진 다리와 함께 뿌연 먼지만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석상 뒤를 차지하고 있는 한눈에 보기에도 고풍스러워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시간에 바래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흑의를 입은 남자와 그 옆에 있는 그림자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니, 우리 전 세계보다 나쁜 상황은 아니긴 한데 아무튼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야.”

그림자의 말에 남자는 슬쩍 인상을 쓰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뭐가 좋은 상황이 아니냐고, 너는 꼭 주어를 빼먹고 말하더라? 그렇게 말하면 도대체 뭐가 안 좋은지 어떻게 알아?”

남자의 채근에 그림자는 몸짓으로 자신이 슬쩍 인상을 쓰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며 말했다.

“사탄이 영혼을 거의 다 모았어.”

“……? 영혼을 거의 다 모았다고? 아니 뭐 대충 이 시기쯤 되면 보통 전부 모으는 시기 아니었던가?”

“그렇기는 한데 문제는 사탄의 태도야.”

“……태도?”

남자가 되묻자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저 녀석 이번에는 그냥 영혼 다 모이자마자 강림할 것 같은데?”

“……뭐?”

“강림할 것 같다고.”

그림자의 심각한 어투에 남자는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더니 성질을 내며 말했다.

“아니, 그 미친 또라이 새끼는 뭐 때문에 또 갑자기 강림하겠다고 지랄이야?”

“아무래도 악마들이 죽은 게 큰 모양인데? 우리 때랑은 다르게 지금은 사탄 쪽에 남아 있는 악마가 2명밖에 없어서 아무래도 자기가 행동하려는 것 같은데.”

“미친.”

그림자의 말에 남자는 짧은 욕설 내뱉으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보다 그 새끼 지금 강림하면 신계에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

“5지구 영혼들 다 끌어다가 우선 강림한 다음에 괴신들 잡아먹고 신계로 가면 된다고 생각하나 보지.”

“세상에…… 미친 새끼.”

남자는 그림자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짓더니 중얼거렸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다는 게 더 소름이 돋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뭐를?”

“아니, 내 말 안 듣고 있었어?”

그림자는 역정을 내듯 말했다.

“지금 이 상태로 두면 사탄이 강림해서 5지구고 2지구고 다 박살 낼 거라니까? 아직 김우현은 덜 성장했다고.”

그림자의 말에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들기며 고민하고는 말했다.

“김우현이 3지구로 넘어간 괴신들 싹 처리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아무리 못해도 2개월은 걸리지.”

“그럼 사탄이 강림해서 5지구 때려 부수고 2지구로 넘어올 때까지 시간은?”

“……글쎄, 어차피 언제 강림하는 거야 사탄 마음이니까 제대로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예상하기로는 무조건 김우현이 괴신들을 처리하는 시간보다는 빠를 거야.”

그림자의 말에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말했다.

“어쩔 수 없네.”

“어쩌려고?”

“어쩌기는 뭘 어째, 이제부터 조금 빡셀지도 모르지만 강한 놈들만 딱딱 내보내는 수밖에.”

“강한 놈들만……?”

“그래, 어중이떠중이들은 관리하지 말고, 이제부터 김우현을 확실히 레벨업 시켜줄 수 있는 녀석들만 내보내야지.”

“그러다 김우현이 괴신을 못 잡고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어차피 어중이떠중이 챙겨주면서 시간 질질 끌다간 사탄한테 맞아 죽을걸?”

남자의 말에 그림자는 확실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 듯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남자는 그런 그림자를 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아스트락 파편부터 내보내.”

“……갑자기? 그 녀석은 아틀락 나챠랑 비슷한 레벨인데?”

그림자의 물음에 남자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 녀석이 아우터 파편 중에서는 가장 약하니까, 그 녀석부터 내보내. 어차피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입을 닫았다.

그림자는 남자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닫았고는 몸을 돌려 신전 옆에 있는 석상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그림자가 들어간 것을 확인한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곤 중얼거렸다.

“제발, 버텨라.”

* * *

이동 장치를 이용해 3지구에 강림하기 시작하던 괴신들을 관측하던 로우레테는 이상함을 느꼈다.

‘김우현의 힘에 벅찬 괴신들만 강림하기 시작한 지 3일째.’

물론 괴신들이 강림하는 게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 보면 정말 순수한 우연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런데도 로우레테는 일어나는 이 현상에 굉장한 의구심을 느꼈다.

‘자세히 보면 강림하고 있는 괴신들은 하나같이 김우현에게 벅찬 상대뿐이다. 첫날에 강림한 괴신은 그나마 김우현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다음 날은 첫날에 강림했던 괴신보다 조금 더 강한 괴신이 나왔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마다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처럼 괴신들이 강림하다니.’

그곳에서 로우레테는 굉장한 위화감을 느꼈다.

‘고작 3일 가지고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로우레테는 한숨을 내쉬었다.

첫날, 김우현에게 벅찬 상대가 나왔으니 하루 정도는 휴식하라고 돌려보냈고, 그것은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오늘까지도 김우현이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괴신은 강림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강한 괴신들이 강림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할까?’

로우레테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더 기다려 봤자, 첫날 나왔던 괴신보다 약한 상대가 나오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쯤.

-화륵!

김우현이 도서관 안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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