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나 혼자 10만 대군 174화
53장 계승자(2)
“시험……?”
푸르게 떠 있는 달 안에서, 그리고 그 푸른 달의 광채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푸른 용을 바라보며 이은별은 중얼거렸다.
[그래, 시험이다. 네가 내 ‘계승자’로 적합한지 알아보는 시험.]
드래곤은 그렇게 말하더니 애니 그 푸른 광채가 서린 눈으로 이은별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라면 내가 직접 네 상대를 했을 테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지금 시험을 치르기에 딱 적당한 존재가 있군.]
“……뭐라구요?”
이은별이 물었지만 푸른 용은 대답하지 않고, 그 상태에서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그그그긍.
그저 마력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바짝 설 만큼 엄청난 크기의 마력이 움직이고, 유형화된 마력이 푸른 용의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푸른색 마력이 뭉치기 시작한 그곳에 검은색의 구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새하얀 종이에 구멍을 뚫어낸 듯, 점점 커지기 시작한 검은색의 구멍은 곧 푸른 용의 머리가 들어갈 정도로 거대해졌고.
[뭐야!?]
이윽고 그 검은 통로 안에서 괴상한 비명과 함께 빠져나온 괴물을 보며 이은별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건……!”
슬라임.
푸른 용이 만들어낸 검은 공간에서 빠져나온 것은 바로 푸른빛을 띠는 슬라임이였다.
[이게 대체 무슨!? 분명히 나는 정상적으로 강림했을 텐데……!]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하며 몸을 떨던 슬라임은 푸들거리는 몸을 경직시키더니 입을 열었다.
[이건…… 너……!]
[쯧, 누군가 했더니 미물이었군.]
[크…… 크루아 크루아흐……!]
푸른 용이 짧게 혀를 차자 슬라임은 저도 모르게 경악성을 내뱉으며 푸른 용의 이름을 내뱉었다.
하지만 푸른 용은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슬라임을 보고 있는 이은별에게 말했다.
[고작 ‘저딴’ 미물을 시험 대상으로 삼기는 조금 미묘하지만 내가 상대하기는 귀찮고 저 녀석에게도 ‘신력’은 있는 듯하니 저것으로 하도록 하지.]
“……뭐라고요?”
[저 녀석을 죽여라.]
이은별의 물음에 푸른 용은 망설임 없이 이야기했다.
“무슨…….”
[그게 시험이다. 저 녀석을 죽이는 것, 저따위 미물도 죽이지 못해서야 이 ‘크루아 크루아흐’의 계승자를 물려줄 수는 없다.]
[누, 누구 마음대로 나를 죽이라 마라 하는 거야!?]
‘저 슬라임을 죽이라고?’
이은별은 저 슬라임을 알고 있었다.
‘저번에 만났던, 그 녀석이야.’
아무리 유성우를 쏟아부어도 마치 아무런 피해도 없다는 듯 공격해 오다가 갑작스레 시간이 다 되었다면서 사라졌던 그 슬라임.
‘이길 수 있나……?’
이은별의 눈빛 속에 순간 회의감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 전에 만났을 때, 이은별은 슬라임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유성우 이외의 다른 공격들도 마찬가지로 슬라임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이은별이 주춤거리고 있자, 푸른 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은별을 바라봤다.
“만약, 저 슬라임을 잡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너는 죽는다. 만약 죽지 않고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네가 ‘나’의 능력을 사용하게 되는 일은 없을 거다.]
깔끔한 대답.
마치 이미 머릿속에 생각해 놓았다는 듯 나오는 대답을 듣고 이은별은 이를 악물었다.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이 이은별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곧 능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은별의 주변으로 푸른색의 오오라가 퍼졌다가 서서히 보라색으로 바뀌어가고, 하늘에는 푸른 달 이외에도 하나의 달이 더 떠오랐다.
요사스러운 색을 가진 보라색 달.
[내가 그렇게 쉽게 죽어줄 것 같아!!]
슬라임, 스펙티아는 크루아 크루아흐를 바라보며 소리친 뒤, 자신의 몸을 분열했고, 하늘에서 보랏빛의 유성우가 떨어져 내렸다.
* * *
강원도 삼척시.
삼척시는 이미 예전의 그 모습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나마 세워져 있던 고층건물들은 이미 전부 무너져 밀림 속의 나무들에게 먹혓고, 콘크리트 바닥은 자라나는 수풀에 의해 모조리 가려졌다.
애초에 인류의 손을 한 번도 타지 않은 것처럼 완벽하게 밀림으로 바뀐 삼척시의 모습.
그런 삼척시의 가운데에는 그린스킨 종족의 최강자이자 오우거의 신이라고 불리는 바르거가 녹색의 밀림에 가장 거대한 나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왔군.”
바르거의 거친 목소리와 함께 밀림만이 있던 그곳에 하나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쾅!!
엄청난 소리를 내며 착지한 인간.
“안 그래도 네가 올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은 틀리지를 않는군.”
바르거는 씩 웃으며 눈앞의 여자, 김서윤을 쳐다보았다.
말없이 바르거를 바라보고 있는 김서윤의 모습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붉었던 피부는 그대로였지만 그녀의 모습은 이전보다 ‘인간’의 형태에 가까워져 있었다.
원래 ‘탐식’을 사용할 때면 변했었던 손과 발은 지금에 와서는 그저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이 생겼을 뿐, 일반적인 인간의 발과 비슷했고.
상어 이빨처럼 날카로운 이빨은 양 송곳니만이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양 이마 위에 있던 뿔들은 마치 그녀의 외신인 아귀신과 비슷하게 바뀌어 있었다.
왼쪽에 위치한 거대한 뿔, 그리고 그 아래로 작은 잔 뿔들이 이리저리 나 있는 모습.
그리고 그런 잔뿔 바로 아래에 있는 그녀의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금안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바르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번의 빚, 갚아줄게.”
담담하게 읊조리는 김서윤.
그 말을 들은 바르거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려 했지만…….
꽝!!
[큭!?]
그는 한 순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난 김서윤 덕분에 말을 끊고 몸을 움직였다.
김서윤의 주먹을 막은 그는 곧바로 반격했다.
쾅!!
“흡!”
내질러지는 주먹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한 김서윤이 바르거의 얼굴에 카운터를 먹였지만, 바르거는 되레 미소를 지으며 김서윤의 주먹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오른 주먹을 올려쳤다.
꽈가가강!
김서윤의 주먹이 닿음과 동시에 바르거의 오른 주먹이 김서윤의 오른쪽을 후려쳤고 순간 저 멀리 날아가는 둘.
[놀랍군! 도대체 언제 그 정도의 힘을 얻었지!?]
바르거는 유쾌하다는 듯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달려드는 김서윤에게 주먹을 내질렀고, 그녀는 바르거의 주먹을 피하고는 말했다.
“이 정도로 놀라기는 이를 텐데?”
김서윤은 그렇게 말하며 바르거가 서 있는 지축 쪽으로 발을 굴러 지반을 무너뜨린 뒤, 자세가 무너진 바르거의 몸을 후려쳤다.
꾸웅! 콰가가가가각!
귀가 먹먹해질 것 같은 소음이 울려 퍼지고 그와 함께 충격파가 터져 나간다.
김서윤의 주먹을 이기지 못한 바르거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나고, 그 뒤를 따라간 김서윤의 주먹이 다시 한번 바르거의 턱을 후려쳤다.
크게 붕 뜨는 바르거의 신체.
그렇게 떠오른 바르거의 신체를 김서윤은 그대로 후려 찼다.
꽈가가가강!
바르거의 신체가 밀림의 나무들을 박살 내며 날아가 처박히고-
[크흐흐흐……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온몸에 흙먼지를 묻힌 채 주변의 나무들을 쳐 내며 자리에서 일어난 바르거는 오연하게 서 있는 김서윤의 모습을 보며 광소했다.
[대단하군! 대단해! 하등한 인간이 신의 계승자가 돼서 이 정도의 힘을 얻었다니 그야말로 깜짝 놀랄 정도군! 그러니까 나도 이제부터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바르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김서윤은 그의 육체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녹색의 마력이 바르거의 주변으로 몰려든다.
이지를 가지고 있었던 눈동자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고, 녹색이었던 오우거의 피부가 검게 변색된다.
그와 동시에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하는 몸.
“…….”
그럼에도 김서윤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바르거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흐흐흐…… 고작 하등 종족에게 내 신격을 보여줄 줄은 몰랐지만, 네게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인간.]
조금 전보다도 심후하고 깊은 목소리가 밀림 속에 울려 퍼지고, 김서윤은 흉측하게 변한 바르거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마지막 유언 정도는 들어주지.]
바르거의 말에 김서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기, 설마 내가 고작 이 정도 강해져서 다시 너를 잡으러 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뭐라고?]
바르거의 표정이 순간 흐려지고, 김서윤은 씩 웃으며 말했다.
“네가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이제 내가 보여줄 차례네?”
그 말과 함께 김서윤이 주변으로 붉은 마력이 폭사하기 시작했다.
바르거는 그녀의 주변에서 폭사된 마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긴장했다.
곧 그녀의 주변으로 폭사되었던 붉은 마력이 모여들고…….
[……!?]
그녀의 주변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밟고 있는 땅이 붉은색으로 물들고 그 주변의 밀림이 그 본연의 색을 빼앗긴 듯 붉은색으로 물들어간다.
그리고…….
끄에에에엑!
끄윽! 끄윽!
끼에에에에에엑!
바르거는 붉은빛으로 물든 세상 속에서 들리는 끔찍한 비명들을 들으며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걸렸다.
[어떻게…… 인간이 신좌를?]
바르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바라봤다.
분명 이 공간은 협소하기는 했지만, 신격을 가진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좌’의 권능이었다.
자신의 힘이 본질이 되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그렇게 굳어버린 바르거의 앞에 서 있는 김서윤은 씩 미소 지으며 바르거를 향해 땅을 박찼다.
* * *
“후욱…… 후욱”
이은별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숲의 모습은 더 이상 이 던전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메마른 황토와 그 황토를 비추고 있는 보라색의 달빛. 그리고…….
[…….]
말없이 꾸물꾸물 움직여 자신의 몸을 만들어내고 있는 슬라임이었다.
팡!
몸을 만들어내는 슬라임의 몸에서 액체가 튀어나와 이은별을 노렸고.
그녀는 순간 날아온 액체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지만, 가까스로 몸을 휘청해 그녀의 머리 쪽으로 날아오는 액체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재생하는 슬라임을 보며 이은별은 이를 악물었다.
‘저번과 마찬가지야……!’
그 어떤 공격을 한다고 해도 슬라임은 멀쩡하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런 공격도 맞지 않은 것처럼 원래의 형태로 돌아오고 있는 슬라임.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은별이 조용히 이를 악물었을 때, 푸른 용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뭐라고요……?”
[도대체 너는, 내 힘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푸른 용의 물음에 이은별은 순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푸른 용을 바라봤고, 용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째서 너는 내 힘을 고작 저딴 ‘운석’을 떨어뜨리는 것으로만 사용하고 있느냐, 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