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나 혼자 10만 대군 172화
52장 개판(3)
“진심이야?”
“왜? 안 될 거라도 있어?”
앉아 있는 남자의 말에 그림자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봐, 지금 그 녀석을 티 안 나게 3지구로 옮기려면 얼마나 많은 신력이 소모되는지는 알고 하는 말이지?”
“당연히 알지.”
“근데 그렇게 하겠다고? 굳이?”
그림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남자에게 말하자, 그는 그림자를 한 번 바라보고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
“뭐, 우리가 지금에 와서 신력을 지키고 뭐고 할 것도 없잖아?”
“아니, 그래도.”
그림자가 무엇을 말하려 했지만 남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기억해 둬. 어차피 김우현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면 우리는 차원이 멸망할 때까지 이 낡은 신전 속에서 갇혀 있어야 한다니까?”
“…….”
“너도 그러기는 싫잖아?”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었다.
“뭐, 솔직히 조금 과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투자라고 생각하자고. 어차피 그 녀석이 뒤지면 우리 계획이 다 망하는 판이야. 이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의 말에 그림자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다음 날.
“준비는 전부 끝났다.”
씨커 길드의 길드 사무소 지하에 위치한 훈련실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훈련실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던 기본적인 운동기구는 전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훈련실 전체를 사용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보기에도 그냥 그리기에는 끔찍할 정도로 어렵다 싶은 마법진.
그 마법진의 꼭짓점에는 처음 보는 물건들이 허공에 부유하고 있었고, 그런 거대한 마법진의 옆에서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발동하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래, 지금부터 술식에 따라 마력을 집어넣으면 마법진이 발동하고, 2지구에 있는 리스크가 3지구 쪽으로 옮겨가게 된다.”
“뭔가 생각보다 간단한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아니, 그냥 한번 말해본 거야…….”
찌릿한 시선이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급하게 말을 바꿨다.
한동안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자.”
내 말과 함께 로우레테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에서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훈련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법진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로우레테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점점 푸르게 빛나기 시작하던 마법진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엄청난 빛을 흩뿌리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마법진 사이사이에 떠 있던 물건들이 마법진 안으로 녹아들 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아아아아아!!
마법진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마치 엔진이 돌아가는 것 같은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
그렇게 마법진이 밝게 공명한 지 얼마쯤 지났을까.
“끝이다.”
무엇인가 주문을 외우고 있던 로우레테가 입을 열자 그와 함께 어느 순간 마법진의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마법진의 빛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끝이야?”
“그래, 아이템을 전부 소모했지만 우리가 목표했던 대로 절반가량의 리스크를 3지구 쪽으로 보내놨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것으로 이계화의 횟수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고, 헌터계에도 어느 정도 부담이 줄어들 것 같았다.
뭐 그렇다고 해도 강한 괴신이 나온다면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인 상황이지만.
“그럼 이제부터는 대충 상황을 봐서 움직일 수 있는 건가?”
내 말에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뭐 당장 2지구에서 나타나는 괴신은 네가 살고 있는 곳을 지켜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싸움이 불가피하지만 3지구의 경우는 다르지.”
그녀는 자신의 목을 가다듬고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원래 우리의 목적대로 3지구에서는 네가 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니 아마 성장하기가 훨씬 용이할 거다.”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을 끝마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좀 쉬어야겠다. 좀 피곤하군.”
정말로 피곤한 듯 자신의 눈가를 주무르는 로우레테.
“그래, 좀 쉬는 게 낫겠다.”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 * *
이번 분기 설악산 안쪽에 생긴 던전 중 하나인 S급 개방형 던전 ‘투기장’에 들어간 김서윤은 조금 전까지 자신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던 보스 사이클롭스를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김서윤은 머리가 터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사이클롭스의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그녀의 각성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붉은 보석은 보이지 않았다.
까드드득
‘……여기가 맞는데? 혹시 보스 몬스터한테 있는 게 아닌가?’
사이클롭스에게서 나온 마정석을 씹어 먹으며 생각을 이어나가던 김서윤은 주변을 돌아보았고, 한 번 더 마정석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보이는 것은 동굴.
‘투기장’이라는 던전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던전의 내부는 초입부터 사이클롭스가 있는 끝까지 계속해서 동굴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으음…….”
까드드드득!
이윽고 사이클롭스에게서 나왔던 마정석을 전부 먹어치운 김서윤은 슬쩍 짜증이 난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거대한 공동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줬을 리는 없고. 역시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던전 내부의 다른 곳에 숨겨져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던전의 내부를 돈 지 얼마나 되었을까.
“……아니, 진짜 없는 거 아니야?”
김서윤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나 싶어 보스가 있는 곳 말고도 던전의 초입까지 전부 조사해 봤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각성 아이템이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동굴의 벽뿐.
“……그냥 전부 부숴볼까?”
던전의 초입에서 던전의 안쪽을 바라보던 김서윤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만약 벽에 가려져 있는 거라 보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동굴의 벽을 있는 대로 부수고 다니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누가 본다면 정말 무식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의 김서윤에게는 던전의 벽을 마구잡이로 부수는 것보다 편하게 각성 아이템을 찾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꽝!!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빨랐다.
곧바로 고민을 끝마친 김서윤은 곧바로 던전의 벽을 있는 대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콰자자작!
김서윤이 한번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던전의 벽이 마구잡이로 부서지며 파편이 튀었고, 김서윤은 던전 내부를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양쪽 벽부터 시작해서 천장 그리고 바닥까지, 김서윤이 생각하기에 각성 아이템이 있을 것 같은 곳에는 전부 주먹이 지나갔고, 그녀의 주먹이 지나간 곳에는 돌 파편이 날아다녔다.
그렇게 김서윤이 얼마나 던전을 부수고 다녔을까.
“찾았다……!”
결국, 처음부터 사이클롭스가 있던 보스방까지 던전의 벽을 마구잡이로 부순 그녀는 보스방 근처에서 각성 아이템을 찾을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요사스러운 붉은빛을 내는 보석이 무척이나 고풍스러워 보이는 철로 만들어진 잔 안에 담겨 있었다.
김서윤은 망설임 없이 벽 안으로 걸어 들어가 철잔 안에 담긴 붉은 보석을 손에 쥐었고.
“……!”
김서윤이 붉은 보석을 잡음과 동시에 보석이 녹아내리며 주변에 붉은 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하나 이 상황을 처음 겪어본 것이 아닌 김서윤은 들어 올렸던 주먹을 내려놓았고, 곧 그녀의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냈는데?]
김서윤이 시선을 돌린 그곳에서 그녀는 일전에 한 번 봤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이 능력을 사용했을 때와 비슷하게 온몸이 붉게 물든 남자.
오른쪽 이마에는 거대한 뿔을 기점으로 작은 뿔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복장 마치 옛사람들이 입고 있을 것 같은 천 바지와 함께 호피 무늬의 가죽옷을 허리에 두른 남자, ‘아귀신’은 김서윤을 보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예비 계승자…… 아니, 이제 내 파편을 모두 찾아냈으니까 정식으로 계승자라고 불러도 되려나?]
유쾌한 미소를 지어 보인 아귀신, 하지만 그의 유쾌한 말투와는 다르게 그는 자세를 잡고 있었다.
“……이번 시험도 싸우는 건가요?”
김서윤이 자세를 잡으며 묻자 아귀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유쾌한 웃음을 잃지 않으며 말했다.
[맞아. 너도 저번에 시험을 치렀다면 알고 있지? 나는 다른 신들하고 좀 본질적으로 달라서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완벽하게 자세를 잡았다.
양발은 언제라도 달려나갈 수 있게 벌려져 있고 양어깨는 비스듬히 돌려 언제든 주먹이 나갈 수 있는 자세를 만든다.
[나는 그 어떤 사상이나 명예를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 이외에도 인격부터 시작해, 이것저것 자잘한 것까지,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어. 내 계승자가 되려면 중요한 건 단 하나야.]
아귀신의 유쾌한 웃음이 점차 사납게 변해간다.
[힘, 힘만 있다면 그 무엇도 상관없다. 그러니까…….]
꽝!
소리와 함께 아귀신의 모습이 사라진다.
그 찰나의 순간 김서윤은 기적적으로 자신의 몸을 방어했고, 그녀의 예상대로 김서윤의 앞에 나타난 괴신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를 증명해 봐……!]
아귀신의 주먹이 김서윤을 후려쳤다.
* * *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바르거는 인상을 찌푸리며 슬라임, 스펙티아를 바라봤고, 슬라임은 자신의 몸을 푸들거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파편들이 죄다 3지구 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어..!]
[도대체 이게 무슨……??]
스펙티아의 말에 바르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풍경은 언제나 그랬듯이 똑같았다.
흰색과 검은색이 어지럽게 섞여 있고, 그 사이사이로 공간이 단절되거나 찢어진 균열들이 보인다.
하지만 거기에서 달라진 점이라면.
“……왜 갑자기 구멍이 난 거지?”
거대한 균열들 사이에 보이는 거대한 구멍.
저 구멍이 지금 3지구에 있는 파편들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으…… 나는 그냥 지금 강림해야겠어!]
[분명 저번에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타이밍을 봐서 강림한다고 하지 않았나?]
바르거의 말에 스펙티아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원래라면 그럴 생각이었지만 이대로 있다가 저기에 빨려 들어가면 신력도 모을 수 없는 3지구에서 강림해야 하는데……! 이미 멸망해 버린 세계에서 강림해봤자 별 의미가 없잖아]
그렇게 말한 스펙티아는 곧바로 강림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고, 곧 스펙티아는 바르거는 스펙티아의 뒤에 있는 구멍을 바라봤다.
파편들을 일시에 빨아들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구멍.
자신과 스펙티아 정도 되는 괴신은 이미 한번 강림했던 상태라 어느 정도 버티고 있었지만, 파편 상태였던 괴신들은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균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쯧.”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의 몸도 서서히 끌려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은 바르거는 하는 수 없이 강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