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나 혼자 10만 대군 171화
52장 개판(2)
“내가 준 건 전부 전해주고 왔나?”
초콜렛 파이를 우물거리며 묻는 로우레테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하고 자리에 앉은 뒤 말했다.
“그나저나 언제 또 그렇게 찾아놓은 거야?”
“언제 찾아놓았다기보다는 이번에 2지구에 리스크가 가해지며 파편들이 죄다 활성화돼 버린 것뿐이다.”
찾아놓았던 거야 애초에 예전에 전부 찾아놨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이 쥐고 있던 초콜렛 파이를 입에 넣었다.
“그 각성 아이템을 찾으면 내 길드원들도 외신을 상대하는 게 가능해 지려나?”
“글쎄,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군. 물론 네 길드원들이 이번 각성 아이템을 찾고 나서 계승자가 되면 가능할 것도 같긴 한데…….”
“……한데?”
“과연 그 녀석들이 너희 길드원들을 순순히 계승자로 인정해 줄까? 하는 문제지.”
“……근데 내 길드원들이 벌써 계승자가 될 수 있어?”
“전부 다는 아니야. 하지만 김서윤과 이은별 그리고 하리남은 내가 알려준 다음 파편을 먹어치우면 계승자로 각성할 수도 있지.”
로우레테의 말에 묘한 가시감을 느낀 나는 곧 말했다.
“잠깐, 각성할 ‘수’도 있다는 말은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다. 각성할 수도 있고, 반대로 못 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각성이라는 건 파편만 모아서 능력을 얻는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럼 또 필요한 게 있어?”
내 물음에 그녀는 곧바로 답했다.
“신뢰.”
“……신뢰?”
내 되물음에 로우레테는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파편을 다 모으고 그 신의 능력을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다고 해서 계승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파편은 신의 신뢰가 있어야만 계승자가 될 수 있다.”
“……조금 애매한데?”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냥 간단하게 신의 마음에 들면 되는 거지. 여러 가지 부분에서 말이야.”
……그렇게 들으니 그게 신뢰를 얻는 게 쉬운 것인지, 어려운 건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그 여러 가지 부분이라는 게 뭔데?”
“말 그대로 여러 가지, 그 녀석의 가치관이나 전체적인 무력부터 시작해서 세세하게 따져보자면 정말 사소한 것까지, 너무 다양해서 짚기가 어렵지.”
“……참 제멋대로구먼.”
“뭐, 자기의 힘을 그대로 계승할 이를 찾는 건데 다들 그 정도는 하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무튼, 길드원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이제부터는 괴신에 관한 이야기야. 내가 저번에 네게 설명해 줬지?”
“괴신을 이미 멸망해 버린 3지구로 옮긴다는 거?”
내가 대답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이론뿐이라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봤을 때, 2지구가 가지고 있는 리스크를 3지구로 옮기는 것은 가능했다. 다만…….”
“다만?”
“전부 옮기지는 못한다.”
“……전부 옮기지 못한다는 소리는?”
내 물음에 로우레테는 자신의 고깔모자를 만지작거리더니 말했다.
“말 그대로다 소리다. 지금 2지구에 있는 리스크를 절반 정도는 옮길 수 있지만 3지구에 있는 리스크를 전부 다 옮길 수는 없다는 소리다.”
“전부 다 옮기는 방법은 없는 거야?”
“아마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5개의 지구 중 하나 정도만 멸망한 상태에서 리스크가 왔다면 그 리스크를 다른 지구에게 넘기는 게 가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파편의 숫자가 너무 많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리스크를 전부 옮기기에는 파편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라는 거지?”
“맞다.”
“그럼 그 파편 중에서 괴신들이 있는 파편만 모아서 3지구로 넘길 수는 없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파편이 수십만 개라고 해도 괴신이 있는 파편은 한정적이니까, 그렇게 하면 우리 생각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일일이 고르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얼마나?”
“……아무리 작게 잡아도 우선 1차 분류를 끝내는 데 20년 정도는 걸릴 거다.”
로우레테의 말을 듣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결국 방법은 딱 절반으로 나눠서 보낸 다음에 하늘에게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거야?”
뭐, 사실 지금 나타나는 괴신 중 절반 정도가 사라진다고 해도 당장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당장 최근 괴신들을 3지구로 보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느라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지만, 현재 세계 정세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 세계에서 이계화가 수시로 일어나고, 그 와중에 괴신들까지 나와 같이 깽판을 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다른 곳에는 강한 괴신이 나타나지 않아 SSS급 헌터들이 어떻게든 몰려가서 괴신을 때려잡고 있기는 했다.
하나 만약 재수 없게 내가 상대했던 아틀락나챠 같은 녀석이 나온다면…….
“…….”
그야말로 재앙.
그런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야 확실히 좋은 이야기는 맞았다.
……물론,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는 게 솔직히 좀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그럼 리스크를 옮기는 건 언제 할 수 있어?”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아마 하루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가능하다.”
로우레테의 말을 들으며 나는 대답했다.
“그럼 당장 시작해 줘.”
* * *
[바르거, 너는 언제 강림할 생각이야?]
온몸이 투명한 액체로 되어 있는 슬라임의 말에 그는 입을 열었다.
[글쎄, 이제 슬슬 강림해야지. 이번에는 다른 녀석의 몸을 빌리는 게 아니라 순전히 내 몸을 이용해서 말이야. 스펙티아, 너는?]
바르거의 물음에 그 옆에 있던 슬라임 스펙티아는 꿀렁이며 대답했다.
[나도 이제 곧 나갈 생각이야, 그냥 적절한 타이밍을 보고 있는 거지.]
[무슨 타이밍?]
[지금 대화도 안 통하는 괴신들이 먼저 나가서 열심히 소멸당하고 있잖아?]
[……뭐, 그거야 제대로 된 이성도 존재하지 않는 하급 신이나 그렇게 소멸당하는 거지. 우리가 나간다고 소멸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는 걸 생각하는 거지.]
스펙티아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몸을 크게 출렁거리며 이야기했다.
[어차피 ‘리스크’는 한번 등장한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잖아? 그러니까 느긋하게 기다리는 거지. 조금의 위협이라도 될 만한 녀석들이 전부 죽을 때까지 말이야.]
[그러다가 다른 괴신한테 영토를 빼앗기려면 어쩌려고?]
[뭐, 그러니까 말 그대로 적절한 타이밍을 보고 나간다, 이 말이지. 어차피 강림하는 괴신들이 누구고, 소멸하는 괴신들이 누구인지는 다 알 수 있으니까.]
적당히 세다가, 슬슬 괴신이 소멸되는 게 느려지기 시작하면, 응?
그렇게 말하며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리는 스펙티아를 한동안 바라본 바르거는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근데 그거 결국 그 녀석이 말해준 대로 움직이는 거잖아?]
[뭐, 그렇긴 하지. 근데 내가 생각해도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더라고.]
바르거의 말에 쿨하게 인정하는 스펙티아를 보며, 그는 이전 다른 이의 육체를 매개체로 해 현세에 강림한 뒤에 목소리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다른 하급 괴신들이 죽어 나갈 때까지는 나가지 말라…… 라]
뭐, 딱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에는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확실히 미리 위험한 문제들을 미리 쳐내고 가는 것이 훨씬 도움되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뭔가…… 뭔가가 이상하다는 말이야.’
분명 목소리가 말한 것은 전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목소리의 말은 뭔가가 어그러져 있었다.
[쯧.]
한참이나 목소리에 대해 생각하던 바르거는 이내 혀를 차며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애초에 자신은 생각하는 것에 맞지 않았으니까.
그는 고개를 돌려 앞에 있는 아틀락나챠의 여덟 번째 거미를 보며 물었다.
[거미, 너는 언제 움직일 거지?]
[파편이 재생되는 대로 다시 움직일 거다.]
[너는 목소리의 말을 듣지 않을 거냐?]
[흥, 어차피 지금 내려간다고 해도 나를 죽일 수 있는 녀석들이 없다는 게 확인되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겠군.]
거미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고, 그와 동시에 목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내가 하는 말을 굳이 들을 필요는 없죠. 저는 그저 방법을 제시하는 거고, 선택은 당신들이 하는 거니까요.]
고운 미성의 목소리.
[도대체 너는 언제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거야?]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스펙티아는 질문했고, 목소리는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제 안전이 확실해졌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딱히 움직일 생각은 없네요.]
[그 만약의 사태를 말하는 건가?]
[저는 확실한 게 좋거든요.]
공간 안에 웅웅거리며 울려 퍼진 목소리를 들으며 거미는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 * *
낡아버린 신전 끝.
그곳에서 흑의를 입은 남자는 무척이나 지루하다는 의자 손걸이에 턱을 괸 체 낡은 신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럽게 지루하네?”
아무도 없는 신전에서 남자가 중얼거린 한마디.
그와 함께 남자의 뒤에서 그림자가 나타났다.
“더럽게 지루해?”
“응, 그냥 지루한 것도 아니고 더럽게 지루해.”
남자의 말에 그림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자세를 잡고 남자를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괴신들 좀 움직여 봐.”
“왜?”
“이 짓 하기 짜증 난다고! 애초에 왜 내가 저번 회차에서 먹어치웠던 녀석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 해서 괴신들을 움직이고 있는 거야!?”
그림자의 짜증에 남자는 피식 웃더니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야, 좀만 참아 네가 잘해줘야 김우현이 어떻게 잘 받아먹을 거 아니냐.”
남자의 말에 그림자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자신의 혀를 찼지만 별 할 말이 없는지 자리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를 보던 남자는 말했다.
“그래서, 괴신들은 잘 따라오고 있어?”
“우선 어떻게 말로 잘 구슬려 놓기는 했지.”
“어떻게?”
“뭘 어떻게야. 당장 내려갔다가 혹시라도 당할 수 있으니까, 당장 이성이 갖춰지지 않은 괴신들이 내려가서 적당히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고 했지.”
그림자의 말에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래서 말은 잘 듣디?”
“뭐, 괴신 녀석들은 알다시피 강림했다가 소멸하면 자기들도 끝인 걸 아니까 그나마 사리는 것 같은데, 한 놈이 김우현한테 어그로가 끌려서.”
“누가?”
“아틀락나챠의 여덟 번째 거미.”
그림자의 말에 순간 남자의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곧 무엇인가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딱 이 시기가 그거지? 리스크 옮길 때.”
“맞아.”
그림자의 답변을 들은 남자는 씩 웃은 뒤에 말했다.
“그럼 그 녀석도 같이 3지구로 옮겨 버리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