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
나 혼자 10만 대군 169화
51장 방법(3)
서울 강남역.
변이체에 의해 한 번 더 반파되었던 강남역은 최근에 와서는 예전의 그 모습을 되찾았다.
오히려 하이브 사태와 변이체 사태가 연달아 일어난 덕분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을 다시 지어야 했던 강남역은,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에 와서는 굉장히 신도시적인 느낌이 나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런 강남의 고층빌라의 중앙에 위치한 고구려 길드의 길드 38층의 연회장에서는 이번에 고구려 길드에서 처음으로 SSS급을 달성한 이연화를 축하하는 연회가 이뤄지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나온 5번째 SSS급 헌터인 이연화 덕분에 그동안 다른 길드에 알게 모르게 눌려 있었던 고구려 길드는 다시 한번 어깨를 펼 수 있었고.
위태롭게 들고 있던 대형길드라는 간판을 다시 명확하게 집어 들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실질적인 5번째 SSS급 헌터는 바로 고구려 길드 소속의 이연화!]
[이연화의 성장으로 인해 고구려 길드, 위태하던 발판 다시 공고히……]
[씨커 길드 따라잡는다? 한국의 대형길드 패기 있는 발걸음]
[씨커 길드의 독주를 따라잡나? 고구려 길드가 나가신다!]
그렇게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는 SSS급 헌터이자 이제는 ‘홍염’이라는 이명이 붙은 이연화는 자신의 옆에 다가온 지연희를 바라보았다.
“저기서 놀고먹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서 궁색을 떨고 있어?”
지연희의 말에 이연화는 멋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요. 뭔가 좀 어색해서요.”
“뭐가 그렇게 어색해?”
“아니, 뭐…… 기사들도 좀 그렇고 해서요.”
“……기사들?”
지연희는 이연화의 스마트폰을 받아 그녀가 보고 있던 기사들을 보았고, 이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기자들이 이런 자극적인 기사 내는 걸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면서 왜 그래?”
그녀의 느긋한 말에 이연화는 뭔가 대답하기 어려운 듯 괜스레 자신의 볼을 긁었고 지연희는 그런 이연화를 보며 웃고는 말했다.
“부담 되서 그래?”
“솔직히 좀……그렇죠? 솔직히 제가 노력해서 이렇게 된 것 같지는 않아서…….”
처음 S급이 되었을 때만 해도 이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그녀는 스스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말 뭐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SS급에 올라갔을 때는 묘한 이상함을 느꼈고.
분명 SS급에서 별 바뀐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시스템 창에 SSS급이 찍혔을 때, 이연화는 굉장히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확실하게 능력의 출력은 SSS급으로 올랐잖아?”
“그렇기는 하죠…….”
너무나도 손쉽게 SSS급이 된 터라 이연화는 혹시 그냥 시스템의 등급만 올라간 게 아닐까 하고 실험도 해보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이연화의 능력은 분명히 SSS급으로 올라가 있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더더욱 이상함을 느꼈다.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SSS급이 고작 이 정도의 노력으로 올라올 수 있는 것이었나?’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한차례 헤집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묘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고민을 하고 있는듯한 그녀를 보며 지연희는 한숨을 내쉰 채 말했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지금 SSS급이잖아?”
“네?”
“내 말은 그렇게 의심 가질 필요는 없다 이거야. 떳떳해지라는 소리지.”
지연희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한 뒤 말했다.
“자, 가자. 안 그래도 이광천 길드장님이 네가 이번에 한마디 기념사라도 하라고 하시더라.”
그녀의 말에 이연화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고.
-투, 트득…… 특.
무엇인가가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 *
“……전부 죽였다고?”
“그런데요……?”
“이럴 수가, 계승자도 아니고 파편인데도 그냥 그렇게 죽인 거야? 이게 말이 돼?”
3지구로 끌려온 파이몬과 벨리알을 처리한 뒤, 로우레테가 있는 도서관으로 돌아온 나는 그곳에서 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뭐라고 부르면 되죠?”
“……그냥 로만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어차피 로우레테하고도 반말을 하는 것 같으니.”
그녀의 말에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아무튼, 그 악마들을 죽이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할 일은 없는 거죠?”
내 물음에 자신을 로만이라 소개한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더 이상 할 일은 없지. 애초에 로우레테를 도와주기로 약속한 것도 악마 한 마리를 죽여주는 것을 조건으로 시작한 거였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나를 유심이 바라보았다.
선명하게 빛나는 은안이 내 여기저기를 살핀다.
……뭐지?
그렇게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는 내게서 시선을 떼고는 감탄하듯 입을 열었다.
“와, 진짜 어떻게 이럴 수 있지?”
“……?”
“로우레테, 얘 진짜 파편 맞아?”
그녀의 물음에 그 옆에 앉아 있던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했잖아?”
“정말?”
“그래.”
로우레테가 짧게 대답하자 그녀는 나를 무척이나 대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니, 뭡니까?”
나를 빤히 바라보고 나서 이어지는 뜬금없는 감탄해 당황해 떨떠름하게 물어보자, 그녀는 자신의 단발을 한번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굉장히 놀라워서.”
“……?”
“뭐, 너야 악마들을 쓰러뜨린 당사자니까 모르겠지만 원래 악마를 죽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게다가 계승자도 아닌 그냥 파편이 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굉장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로우레테에게 물었다.
“얘, 진짜로 파편 맞지?”
“……몇 번이나 말했잖아?”
파편과 계승자.
예전에 로우레테에게 언뜻 듣기는 했지만 분명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자세히 듣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슬슬 이참에 물어볼까?
“그런데 전에 대충 설명을 들어서 알고 있기는 한데 ‘파편’과 ‘계승자’의 차이는 뭐야?”
“……? 몰라?”
로만의 물음.
“로우레테가 전에 설명해 주기는 했는데 뭐 자세하게 설명해 준 것도 아니고 지나가듯 설명해 준 게 전부라서 자세하게 알고 있지는 않지.”
“……헐”
내 말에 로만은 로우레테를 돌아봤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딱히 설명이 필요 없었으니까 간소하게 해준 것뿐이다.”
“음…… 뭐, 사실 파편인데도 이 정도 힘을 가질 수 있다면 계승자든 아니든 나도 별로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말에 동감하는 듯하며 나를 바라보는 로만.
“파편과 계승자의 차이가 뭔데?”
나는 그런 로만을 바라본 뒤 이내 로우레테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고,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던 초콜렛 파이를 마저 입에 집어넣은 채 말했다.
“음…… 쉽게 말해서 계승자는 이미 신의 힘을 온전하게 자신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거고, 파편은 아직 신의 힘을 받아들이고 있는 단계라고 보면 되겠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자신의 고깔모자를 한 번 만지작거리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충 여기서 짐작이 가겠지만 보통 파편들은 그 신의 힘을 아직 온전히 모으지 못했기 때문에 약할 수밖에 없다. 반면 계승자는 신의 힘을 다 모았으니까 당연히 파편보다 강하지.”
“그것뿐이야?”
그 정도라면 전에 로우레테가 내게 지나치듯 설명해 주었던 것이랑 별로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뭐, 종합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지. 너도 파편, 그러니까 각성 아이템을 찾아다니잖아?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걸 계속해서 찾다가 어느 순간 파편들을 전부 수집하게 되면…… 파편에서 계승자가 되는 거지.”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상자 속에서 초콜렛 파이를 꺼내 들었다.
“뭐, 그래도 확실히 계승자가 되면 좋은 점이 있기는 하다.”
“뭔데?”
“만약 파편에 불과한 녀석이 다른 파편을 다 모아 계승자가 된다면, 그 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거든.”
“……?”
그게 좋은 건가?
“설마 ‘그게 좋은 거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내 생각을 읽은 듯 곧바로 말하는 로우레테.
그녀는 내 표정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기본적으로 계승자가 되어 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면 그 신의 모든 힘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게 돼. 능력에 대한 이해도나 지식, 노하우가 월등히 높으니까.”
로우레테의 말에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이외에도 자신의 신격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는 하지만 어차피 지금 너한테는 신격 각성이 있으니까 딱히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초콜렛 파이의 포장지를 찢었다.
“그리고 로만, 너도 이제 슬슬 일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응? 아, 걱정 마 악마 1명도 아니고 골치 아픈 녀석을 깡그리 처치해 줬는데 그 정도도 못 해주지는 않지. 물론 1지구가 박살 나면 또 그 녀석들이 5지구로 오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럼 우선 기다리고 있어 준비물은 다 가져다줄 테니까.”
로만의 말에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자신의 마력을 흩뿌리며 사라져 버렸다.
* * *
영계에 있는 용암산.
그리고 그 용암산의 한편에 걸쳐 있는 거대한 붉은 외성 속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있는 괴물을 바라봤다.
덩치는 오우거와 비슷하지만, 무릎을 꿇고 있는 그의 몸에는 붉은 화염이 지속적으로 타오르고 있었고, 흉포한 얼굴 위의 이마에는 거대한 두 개의 뿔이 나 있었다.
악마보다는 그 등급이 낮지만, 영계에서는 나름대로 최고위 마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발록.
“말해봐라.”
끄는 사탄의 말에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파이몬 님과 벨리알 님이 소멸하셨습니다.”
발록의 말에 사탄은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이몬과 벨리알이 소멸했다고?”
“그, 그렇습니다.”
사탄의 말투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 발록의 말투.
“누구에게 당했지?”
사탄의 물음에 발록은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5지구의 생명을 쓸어버리던 도중, 그쪽에 소속되어 있는 ‘계승자’가 벨리알 님과 파이몬 님을 3지구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고 그 직후, 벨리알 님과 파이몬 님이 소멸하셨습니다.”
“3지구는 엘리고르가 이미 멸망시키지 않았나?”
“맞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발록이 말을 줄이자 사탄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파삭!
조금 전까지 무릎을 꿇고 있던 발록을 머리가 터져나갔다.
순식간에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붉은 피.
“쯧.”
무릎을 꿇고 있던 발록은 몸은 힘없이 쓰러졌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사탄은 짧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하나 없군.”
사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이내 손가락을 까닥했다.
그가 손가락을 까닥하자마자 쓰러진 발록의 시체가 한 지점에 빨려 들어가는 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탄은 앉아 있던 왕좌에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