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나 혼자 10만 대군 166화
50장 악마 사냥(2)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이계화 사태. 대책은 도대체 어디에?]
[시민들의 불안감 고조, 한국뿐만이 아냐……]
[이계화 사태 초기 대처 실패 시? 도시 완전히 박살 나.]
[난세 속의 영웅? SSS급 헌터의 숫자 전년도 대비 2배 이상 증가……]
노트북에 떠 있는 뉴스의 헤드라인을 본 나는 이내 눈을 감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후…….”
저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슬쩍 시선을 돌려 어둑해진 밖과 그 옆에 달린 시계를 보니 시계의 시침은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슬쩍 손을 움직여 내 오른쪽 허리춤을 만지작거렸지만, 그곳에 항상 있어야 할 핸디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뭐, 꽤 오래 쓰기도 했다.
변이체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악마를 죽일 때까지, 나는 딱히 무기를 바꾸는 것 없이 핸디드만을 쭉 사용해 왔다.
슬슬 나타나는 괴신들에게 핸디드가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슬슬 다른 무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뭔가 좀 아쉽네.”
나는 핸디드가 있던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곤,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 뒤 마우스를 내리기 시작했다.
마우스를 내리기 시작하자 눈앞에 떠 있던 뉴스의 헤드라인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계화 사태’ SSS급 헌터들도 힘들다? 스타 폴, 이은별의 공격 제대로 먹히지 않아.]
[탐식 김서윤의 전투 한 번에 삼척시 휘청……]
“둘 다 이기지 못했다고 했었지……?”
내가 월터의 연락을 받고 러시아로 떠난 뒤, 한국에서는 곧바로 4건의 이계화 사태가 일어났고, 길드원들은 이계화 사태를 막기 위해 움직였다.
하리남과 이로하는 일어난 이계화 사태를 잘 막아낸 듯했지만, 김서윤과 이은별은 일어난 이계화 사태에서 마주친 괴신을 이기지 못한 것 같았다.
“…….”
횃불에서 빠져나온 뒤에 김서윤과 이은별에게 이야기를 들었고, 길드원들이 떠나가고 나서 김서윤과 이은별의 전투 영상을 찾아봤다.
물론 김서윤이나 이은별이나 전부 전투가 담긴 영상들은 하나같이 카메라가 제대로 잡지 못하는 속도로 움직이다 보니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은별과 김서윤은 아직 괴신을 상대할 실력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건 아마 이로하나 하리남도 마찬가지일 테고.
“쯧…….”
나는 괜히 머리가 복잡해져서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사실 길드원들은 지금도 전혀 약하지 않다.
이제 막 들어온 아냐와 능력 자체가 이동에 특화된 에단을 제외한 나머지 길드원들은 다른 SSS급 헌터들을 손쉽게 이길 수준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문제인 것은 적들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것뿐.
한동안 고민하던 나는 켜져 있는 노트북을 닫았다.
……우선 로우레테의 말에 따라 잠깐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았다.
* * *
기묘한 공간.
어디인가는 마치 거울이 반사된 것처럼 구부러져 있고, 또 어딘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블랙홀처럼 뻥 뚫려 있었다.
그러자면 또 어디는 아무것도 없는 하얀색으로 칠해진 것도 있고, 또 어느 곳에서는 깨어진 유리 조각이 뭉쳐 있는 듯 사방으로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기묘한 공간’이라는 묘사가 잘 어울리는 그곳에 하나의 인영이 들어섰다.
하체는 거미의 몸통이고, 상체는 인간의 형상을 남자.
아틀락나챠의 여덟 번째 거미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불쾌하군.]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이며 중얼거렸고, 이내 그의 옆에서 다른 두 개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한 명은 오우거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형체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수시로 변형에 변형을 거듭하는 슬라임이었다.
[오, 살아 있는 것을 보니 다르간처럼 소멸하지는 않은 모양이군.]
[그러게.]
오우거와 슬라임의 말에 거미는 시선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 멍청한 인어 대가리처럼 소멸할 거라 생각하나?]
[뭐, 그건 아니지만 어딘가 ‘목소리’에게서 들리는 소문으로는, ‘몸’ 때문이 아니라 인간한테 속아서 역소환 당했다는 소리를 들어서 말이야.]
슬라임의 은근슬쩍 비아냥대는 목소리에 아틀락나챠는 슬라임을 째려보았고, 그는 액체의 형태인데도 불구하고 놀라는 표현을 보여주었다.
[거참,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더럽게 까칠하네.]
[그보다, 이번 첫 강림은 어땠지?]
그린 스킨 중에서도 최강의 종족이라는 칭호를 가진 오우거의 신 다르거는 여전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여덟 거미에게 물었고, 그는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았다. ‘몸’이 너무 약해서 오랜 시간 유지할 수는 없을 것 같았지만.]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래간만에 재미있어 보이는 녀석하고 놀던 중에 몸이 서서히 붕괴하더군. 나름대로 선별한 오우거의 몸이었는데도 말이야.]
다르거의 말에 옆에 있던 슬라임도 마찬가지로 입을 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외부의 피해에는 전혀 손상이 안 가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곧바로 몸이 붕괴하던데?]
슬라임의 말에 다르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이번은 어쩔 수 없었지. 애초에 우리가 남의 몸을 빌려서 강림한 이유는 다르간이 소멸했으니, 우리에게 위협이 될 만한 녀석이 있는지 보러 간 거니까.]
다르거의 말에 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우리 정도를 헤칠 녀석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남의 몸을 빌려서 강림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런데, 제대로 파악하기는 한 거야? 너 도중에…… 아니, 이건 놀리려고 말하는 게 아니니까, 인상 좀 찌푸리지 말지?]
슬라임에 말에 인상을 찌푸리던 거미는 짜증이 난다는 듯 머리를 털었고, 그 모습을 본 슬라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너는 결국 ‘핵’이 깨져서 역소환된 거잖아? 그러니까 네가 제시간에 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본 거야.]
슬라임의 말에 거미는 묘한 표정으로 말랑해 보이는 슬라임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럴 일은 없다. 애초에 강림하기 위한 준비를 할 때부터 ‘능력’으로 탐지를 했었으니까.]
[아무튼, 그럼 결과는 다르간 정도면 몰라도 우리 정도를 없앨 수 있는 녀석은 없다, 이거지?]
슬라임의 말에 거미는 조용히 거미를 끄덕이다가, 조금 전 자신을 역소환시킨 인간을 떠올렸다.
그가 아는 괴물과 무척이나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던 인간.
그 자리에서 죽이려고 했지만, 오히려 허를 찔려 역소환당하고 말았다.
‘오늘은 어처구니없이 역소환당해 버렸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확실히 숨을 끊어주지.’
만약 그 인간이 정말 자신이 아는 그 괴물의 계승자라고 해도 그가 죽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차피 그 녀석은 그 괴물의 힘을 전부 계승하지 못할 테니까.’
거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그 인간을 지워 버렸고, 곧 그들이 있던 공간에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다녀왔어?]
고운 미성이 들려오자, 다르거가 입을 열었다.
[너는 강림하지 않았나?]
그의 물음에 목소리는 피식 웃는 듯한 느낌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말했잖아? 나는 그저 우리가 소멸하지 않고 안전하게 나가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라니까?]
그녀의 목소리에 순간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던 다르거는 어깨를 으쓱였고, 여성의 목소리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다음 방법을 알려줄게.]
* * *
고풍스러운 도서관의 풍경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도서관의 중앙, 로우레테의 맞은편에는 짧은 은발을 산발한 로만이 앉아 있었다.
“……그래서, 현 상황이 상당히 위험하다는 소리네.”
로우레테의 말에 로만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도 알다시피, 지금 5지구는 그나마 있는 내 계승자 덕분에 숨만 헐떡이는 상황이었거든.”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악마가 한 마리 더 추가되니까 걷잡을 수 없이 밀리고 있다, 이 말이지?”
로우레테의 말에 로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솔직히 조금만 더 있으면 기존에 있던 악마는 잡을 뻔했는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녀석 때문에 5지구는 완전히 박살 직전이야. 최후의 전선이 깨지는 날에는 나도 다른 녀석처럼 파편이…….”
로만은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고, 이내 그녀는 로우레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좀 도와줄 수는 없을까?”
“어떻게?”
“그, 네 계승자를 어떻게 5지구에 잠시만 빌려주면…….”
“…….”
로만의 말에 로우레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원래라면 절대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 로우레테는 2지구에서 일어나는 괴신 사태 덕분에 로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조금 힘을 써주는 것으로는 안 되고, 꽤 힘을 써주어야만 하는 일이.
‘……2지구에 보냈던 악마들이, 2지구에 가해지고 있는 리스크 때문에 지구에 들어갈 수 없게 되니, 다른 지구로 넘어간 건가.’
게다가 당장 악마의 침공을 잘 막고 있던 로만이 이렇게 밀리고 있는 것도 2지구가 이렇게 된 탓이 컸다.
뭐, 그래 봤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로우레테는 슬쩍 로만을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간절할 표정으로 로우레테를 바라보는 로만.
로우레테는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갸웃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5지구에 악마가 두 명이나 있어서 감당하기 힘드니까, 잠깐 원조를 보내달라는 이야기지?”
“맞아.”
“그렇다면 나도 조건이 있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될 수 있는 한 전부 들어줄게.”
로만의 말에 로우레테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지금 2지구가 상호 보완의 리스크를 전부 떠맡고 있다는 것 정도는.”
“그것까지는 알고 있어.”
“사실 그 정도라면 지금 2지구에 있는 능력자 몇 명으로도 충분히 컨트롤이 되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리스크를 떠맡으면서 괴신들도 넘어오는 바람에 솔직히 좀 난감한 상태야.”
“……그래서 내가 뭘 도와줘야 하는데?”
로만의 말에 로우레테는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5지구에 있는 악마 중 한 명을 처리해 줄게. 그 대신 너는…….”
로우레테는 로만에게 자신이 구상 중인 일을 본격적으로 풀어놓기 시작했고, 그는 로우테레의 말을 전부 들은 뒤 혀를 내두르며 입을 열었다.
“너, 진심이야……? 아니, 그게 가능해?”
“물론, 아직 해보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해.”
“아니, 그렇게 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차원이 박살 날 텐데……?”
“어차피 이렇게 있어도 괴신들한테 박살 날 것 같은데?”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하며 로만을 바라봤고, 그녀는 좀 고민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