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나 혼자 10만 대군 164화
49장 괴신 강림(3)
이제는 어느 정도 제 기능을 찾기 북한과의 접경은 무척이나 처참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여기저기 처져 있던 철책은 완전히 먼지로 변해 버려 제대로 된 형체도 찾기 어려웠고, 미사일이라도 떨어졌는지 평평하게 다져놓았던 평지에는 여기저기 크고 작은 크레이터가 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푸른색의 색을 가진 수백의 슬라임들이,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옮기고 있었다.
“큿……!”
이은별은 눈앞에 진득이 넘쳐 흐르는 슬라임들을 향해 한 번 더 능력을 개방했다.
요사하게 빛나는 보랏빛 달에서 눈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유성우가 나타나서는 그대로 떨어져 내린다.
꽝! 꽈강! 삐────
곧 보름달에서부터 떨어진 유성우가 슬라임들이 있는 곳을 직격하며 그 사태를 지켜보던 헌터들의 눈과 귀를 먹게 했다.
그야말로 수십 개의 미사일을 한 곳에 떨어뜨리는 것 같은 굉장한 광경에 헌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몸을 떨었다.
하지만 정작 보라색 오오라를 내뿜고 있는 이은별은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유성우가 떨어져 내린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성이 떨어진 곳에서 기어 나오는 푸른색 슬라임들.
그 숫자는 푸른 유성우가 떨어지기 전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우성을 떨어뜨리면 떨어뜨릴수록 많아지는 슬라임의 숫자에 이은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한순간, 철저하게 방책을 쌓아 슬라임이 오는 것에 대비하던 곳까지 다가온 슬라임들은 그 자리에서 멈춰서 왠지 꾸물거리더니, 자기 주변에 있던 슬라임을 마구잡이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뭐야?”
“지금 저게 뭐 하는 거야?”
누가 보더라도 잡아먹는다고 표현할 만큼 서로 뒤엉켜 동족을 먹어치우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이은별과 헌터들은 곧 서로를 먹어치우던 슬라임들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헌터들은 뒤늦게 슬라임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게 아니라 합체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해 자신의 능력을 쏟아부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어느 능력으로도 슬라임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일정 크기 이상으로 거대해진 슬라임에게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
마치 물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크게 울리는 목소리에 헌터들은 공격을 멈췄고, 슬라임은 헌터가 공격을 멈춤과 함께 이윽고 자신의 몸을 전부 합체시켜 나갔다.
이은별은 뒤늦게 다시 한번 유성우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슬라임은 보라색 오오라를 내뿜으며 능력을 사용하려는 이은별에게 말했다.
[그만,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뭐, 좀 뜨거워서 아프기는 했지만.]
“……!”
슬라임은 마치 이죽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이제는 거대해진 몸통에 푸른색의 입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서는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 나는 또 다르간이 죽었다고 해서, 몸 사리려고 몸까지 분할해서 강림했는데…… 이제 보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잖아?]
끄룩끄룩 하는 물소리를 내며 웃는 듯 입가를 움직이는 슬라임은 하늘에 떠 있는 이은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네가 그나마 여기에서 조금 위험한 것 같은데, 너 ‘축룡’의 파편 맞지?]
“……뭐라구요?”
슬라임의 물음에 이은별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응? 뭐야? 파편 아니야? 계승자? ……아니, 계승자라기에는 너무 비실비실 한데……? 뭐, 사실 내 입장에선 네가 파편이건 계승자건 관계없지.]
슬라임은 그렇게 말하더니 불현듯 자신의 몸에서 무엇인가를 쏘아냈고, 이은별은 본능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돌아 자신에게 날아오는 무언가를 피해냈다.
그리고.
콰드드득!
자신을 향해 날아온 무엇인가가 뒤에 있던 벽을 마구잡이로 갉아먹는 것을 보며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차피 너는 여기서 죽을 테니까.]
슬라임의 입가가 기묘하게 움직였다.
* * *
태양을 가린 달.
신격 각성으로 인해 하늘에는 일식 현상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지상에는 어둠이 내리앉았다.
그곳에서 내 그림자들은 평소보다 몇 배는 높은 전투력을 가질 수 있었다.
“미친…….”
그리고 나는 평소보다 몇 배는 강해진 그림자들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땅에 만들어진 녹색의 액체에 녹아내리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뭘 하는 기색도 없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그림자.
그리고 그렇게 녹아내리고 있는 그림자들의 한가운데에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거미가 있었다.
자신을 아틀락나챠의 여덟 번째 거미라고 소개한 그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굉장히 특이한 기술이군. 신격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 신좌에 앉아야만 가질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힘의 차이가 나서야 이것도 별 의미는 없지.]
거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그림자들에게 손짓했다.
그림자들은 거미의 손짓을 받는 것만으로도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망설임 없이 주변에 몰려 있던 그림자들을 다시 영역 안쪽으로 돌려보냈다.
[이제야 무의미한 소비를 끝내는 건가?]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짓는 거미를 보며 나는 핸디드를 꾹 쥐었다.
저 거미와 싸운 지는 불과 5분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저 앞에 서 있는 거미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강하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
솔직히 처음 내게 신격 각성을 준 그가 말했을 때도 그랬고, 로우레테가 괴신에 대해 말해주었을 때도 그리 큰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 어인인 다르간을 죽였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나 지금은?
녀석의 손짓 한 번에 소환되어 있던 그림자들이 무더기로 녹는다.
“너는 대체……!”
[흠, 그러고 보면 그녀에게 듣기로는 분명 네가 다르간을 소멸시켰다고 들었었지. 설마 이 내가 그런 인어 대가리와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건가?]
“…….”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손에서 독액을 뿜어내며 입을 열었다.
[물론 네가 소멸시킨 다르간도 괴신 중에서는 꽤 강한 편에 속한 녀석이었다. 좀 머리가 나쁘기는 했지만, 그 녀석은 다곤의 파편 중 하나거든, 하지만 네가 착각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내게 독액을 던지는 거미, 나는 몸을 뒤틀어 독액을 피해냈고.
쿵! 구그그그그! 까지지직!
“……!?”
나는 독액에 맞은 대형 건물이 순식간에 독액으로 뒤덮여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건물 일부가 녹아내리는 게 아니라, 독액에 맞은 그 순간 건물 전체로 퍼진 독액은 파편이 떨어져 내리기도 전에 건물 전체를 녹여 버렸다.
소름 돋을 정도로 강한 능력.
[우리 중에서 다르간보다 약한 녀석이 많기는 하지만, 반대로 강한 녀석도 있거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발을 딛고 있던 콘크리트를 박차고 내게 뛰어왔다.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난 거미, 얼마 전 상대했던 엘리고르보다 빠른 움직임에, 나는 혀를 차며 곧바로 핸디드를 휘둘렀다.
하지만 거미는 휘둘러진 핸디드를 그대로 손으로 잡고서는 내 몸을 후려쳤다.
“큽!?”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
꽈가강!
나는 손에서 핸디드를 놓치고는 땅에 처박혔지만, 곧바로 자세를 잡고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내가 서 있던 빌라의 옥상에서 날 바라보던 그는 자신의 손에 쥐여진 핸디드를 그대로 녹여 버렸다.
그러더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녹색으로 변해 버린 그의 팔 하나. 그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슬슬 끝내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 올렸지만,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낀 듯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녹색 독액에 감싸인 거미의 오른팔.
[……뭐지?]
분명 거미의 능력으로 인해 독액에 뒤덮였을 오른팔이 점점 그 형태를 잃어가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처음 신격 각성을 이용해 녀석을 공격했을 때,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그림자 영체에 남아 있는 악마 중 하나인 크세즈베트를 꺼내 그를 이 이계화 사태가 일어난 던전의 입구로 보냈다.
만약 녀석을 조금이라도 상대하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던전 내에 있는 핵을 뽑기 위해.
[그렇군. 핵을 뽑아낸 건가.]
“이제 알았어?”
이제야 깨달은 듯, 녹아내리는 자신의 몸을 본 거미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우레테의 설명으로, 괴신은 이계화가 일어나야만 현실에 강림할 수 있고, 이계화 사태가 끝나면 현세에서 사라진다고 했다.
-그리고, 이계화 사태를 끝내는 방법은 보스 몬스터를 죽이거나, 던전 입구에 있는 던전의 핵을 뽑아내는 것이다.
[역시 그 녀석의 파편답게 꼭 뒤에서 일을 꾸미는군.]
“칭찬이라고 생각해 두지.”
내 말에 거미는 피식 웃더니, 완전히 녹아내리기 시작한 자신의 몸뚱이를 한 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
[다음번에도 이렇게 가볍게 끝날 거라고 생각지 마라. 나는 다르간처럼 소멸하는 게 아니라, 다시 시간의 저편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는 것뿐이니까.]
자신의 몸이 녹아내림에도 불구하고 거미는 무척이나 담담한 느낌으로 제 할 말을 다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한가운데에서 몇 번이고 그 거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한숨을 내쉬었다.
* * *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도서관 안에서 내 이야기를 듣던 로우레테는 무척이나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상대를 잘못 만났다.”
“……그 녀석이 그 정도로 강해?”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던 로우레테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강한 게 아니라, 괴신 중에서 그 녀석을 이길 수 있는 녀석은 아마 셋도 채 되지 않을 거다.”
“그 정도야?”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곤란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는, 고깔모자를 눌러쓴 뒤 입을 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 녀석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다시 그 녀석과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진 녀석이 등장하면 아마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힘들 거다.”
“…….”
확실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녀석이 보여준 능력은 분명 규격 외라고 생각될 정도로 강했으니까.
신격 각성의 효과를 받은 그림자들이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 그 녀석이 만들어놓은 영역에 닿아 녹아버렸고, 모든 능력을 끌어다 써도 그 녀석의 신체 능력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확실히 그 녀석은 크세즈베트나 엘리고르보다도 훨씬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로우레테가 내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