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나 혼자 10만 대군 163화
49장 괴신 강림(2)
강원도 삼척시.
꽝!
건물을 향해 거대한 몽둥이를 휘두르던 오우거의 상반신이 탐식으로 변한 김서윤의 일격에 그대로 터져나간다.
곧바로 다른 오우거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지만, 김서윤은 간단히 주먹을 몇 번 휘두르는 것으로 오우거들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뒤,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씨커 길드장 김우현이 국제 헌터 협회의 부탁을 받고 러시아로 넘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 내에서 발생한 3개의 이계화 사태.
그 덕분에 현재 씨커 길드는 이계화 사태를 해결하기 인원을 나눈 상태였다
“어느새 여기까지…….”
김서윤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주변에 자라나기 시작한 검은색의 침엽식물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아까 다른 헌터들을 도와 오우거를 정리할 때만 해도 삼척시청 근처까지 밖에 침식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시청과 한참 떨어져 있는 이곳까지 이계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크에에에엑!”
저 멀리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오우거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 김서윤은 이내 오우거의 앞으로 달려들어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다.
꽈아앙!
다른 특별한 능력도 없이 그저 주먹을 휘두른다는 단순한 동작 하나로 오우거의 머리를 터뜨려 버린 그녀는 쓰러지는 오우거의 몸을 타고 넘어 이 이계화가 발생한 근원지 쪽으로 도약했다.
꿍!
오우거의 몸을 디딤발 삼아 도약하자마자 그녀가 밟고 있던 오우거의 어깨가 터져 나갔지만, 김서윤은 그런 걸 신경 쓸 시간도 없이 이 사태가 일어난 쪽에 몰려 있는 오우거를 죽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꽝! 꽝!
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마리씩.
처음 이계화 침식이 시작되고 있던 시청을 지나 이내 이 이계화 사태의 시작점인 A급 던전 오우거의 안식처 입구 근처의 빌라 옥상에 도착한 김서윤은 그 근처에 몰려 있는 오우거들의 숫자를 보며 투덜거렸다.
“뭐 이렇게 많아?”
실제로 던전의 입구 근처에 세워진 거대한 목제 동상 주변에 있는 오우거들의 숫자는 눈으로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냥 삼척시 한 곳을 온통 오우거로 도배한 것 같은 풍경.
하나 김서윤은 자신의 몸을 풀며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몰려 있는 게 상대하기는 더 편할지도 모르겠네.”
다른 평범한 헌터가 들었다면 경악할 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린 김서윤은 슬쩍 손목을 풀고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저건 너무 크고, 저건 또 너무 작네. 그렇다고 빌라를 부숴서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김서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곧바로 몸을 움직여 오우거들이 몰려 있는 입구 사이로 뛰어내렸다.
쿠우우우웅!
“크엑!?”
묵직한 파공음과 함께 떨어져 내린 곳에 있던 오우거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오우거는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우선 변변치 않지만 역시 손으로 한 놈, 한 놈 죽이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기도 하니까.”
김서윤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머리가 터져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오우거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그저 손가락을 잡았을 뿐인데도 두 팔을 이용해 둘러 잡아야만 제대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오우거의 손가락에 불편하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김서윤은 곧바로 오우거의 몸을 붙잡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김서윤은 몰려 있는 오우거들이 하나같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느껴지는 적대적인 시선에 그녀는 웃음을 지은 뒤 들고 있던 오우거의 육체를 무기 삼아 내려찍었다.
꽈르르릉! 구구구구궁!
오우거의 육체를 거의 내던지듯 아래로 내리찍자마자 울려 퍼지는 굉음, 공격에 맞은 오우거의 몸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튀어오르고, 소백의 오우거들을 받치고 있던 지반이 무너져 내리며 오우거들이 비틀거린다.
김서윤은 그 상태에서 멈추지 않고 하늘에 떠오른 다른 오우거의 몸을 붙잡아 마치 포탄처럼 아래로 찍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
김서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앞에 나타난 거대한 주먹에 오우거의 신체를 잡다 말고 주먹을 휘둘렀고.
“끅!?”
김서윤은 거대한 주먹을 받아치지 못하고 총알처럼 고층 빌라 한쪽으로 날아갔다.
꽝! 꽈가가가강! 꽝! 꽈지지직!
삼척시에 있는 건물들을 모조리 부수며 날아간 김서윤은 자신이 날아간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부서진 건물에 발을 박아 넣어 자세를 잡았다.
[호오, 버티다니 대단하군.]
자신의 귓가에 들려온 웅웅거리는 목소리에 그녀는 돌려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너는……?”
그곳에는 오우거가 있었다.
다른 오우거보다도 훨씬 더 짙은 초록색의 피부를 가진, 다른 오우거들보다 머리 한 개는 더 커 보이는 덩치의 오우거.
그가, 고층 빌라의 옥상에 매달려 벽에 박혀 있는 김서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하군. 오우거보다도 약소한 종족이 진심은 아니지만 내 주먹을 받아내고도 저리 멀쩡해 보인다니……. 아니, 뭐 그 모습을 보아하니 평범한 인간은 아닌 것 같다만.]
“네가 보스 몬스터냐?”
[……? 아, 그렇군. 내가 이 집단의 우두머리임을 묻는 거라면 맞다. 내가 바로 그린 스킨의 최정점에 서 있는 종족 신. 바르거다.]
오우거는 그렇게 말하며 고층 빌라에서 떨어져 내렸다.
꽈르르릉!
오우거가 몸을 떨구자마자 지반이 떨려오는 것을 느낀 김서윤은 조금 전 자신을 날려 버린 주먹을 생각하며 얼굴을 굳혔다.
자신을 바르거라고 소개한 괴신은 입가에 진득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 그럼 한번 덤벼봐라. 하등 종족.]
그 소리와 함께 김서윤의 몸이 튀어 나갔다.
* * *
“네 녀석은……!”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 볼코프 세르게이를,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볼코프 세르게이였던 것을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상체는 분명 이전에 봤던 볼코프 세르게이가 맞았지만, 하체는 인간이 아닌 거미였다.
……도대체 어쩌다가 저렇게 된 거지?
원래 처음 러시아가 이계화 사태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가지 않으려 했었다.
그 이후 시간이 지나도 러시아가 이계화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월터에게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가 반쯤 망해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로우레테에게 러시아 쪽에 괴신이 출현했다는 소리를 들어버렸기에 우선 괴신을 처리하기 위해 오기는 왔는데…….
아무리 주변을 찾아봐도 괴신으로 보이는 녀석은 없었고, 그나마 찾은 거라고는 기괴하게 변해 있는 볼코프 세르게이였다.
콰직!
“끄아아악!”
핸디드를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온몸에 검은 칼날이 박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볼코프.
분명 오면서 봤던 다른 몬스터에 비해 특이하기는 했지만, 저 녀석이 괴신이라는 가정하기에는 녀석이 너무나도 약했다.
거미 인간이 된 볼코프 세르게이가 비명을 지르자마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그동안 보이지도 않던 거미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왔지만, 그것은 딱히 내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내 주변으로 이제는 완전히 활성화된 검은 색의 영역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그와 함께 그림자들이 흘러나온다.
동화를 사용할 필요도 없고, 각성할 필요도 없었다.
심연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 점점 형태를 잡아간 그림자들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퍼져 사방의 건물과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거미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있었다.
그림자에 의해 거미들이 찢겨 나가고 터져 나간다.
끝없이 사방에서 나타나는 거미들과 마찬가지로, 그림자들은 그 심연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숫자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끅…… 끄윽.”
그렇게 거미들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장면을 본 나는 시선을 돌려 그림자 칼날에 온몸이 꼬챙이처럼 꽂혀 있는 볼코프 세르게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지?”
“내가 그걸 말할 것 같…… 끄아아아아아아악!”
볼코프가 입을 열자마자 내 손에 쥐어져 있던 핸디드가 반응해 그림자 칼날의 굵기를 늘렸고, 그와 함께 볼코프의 붉은 피가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목…… 목소리!”
“……목소리?”
“그래, 목소리다……! 목소리가 내게 이런 힘을 주었다……! 나를 배신한 녀석들을 심판할 수 있는 힘을 내려주셨다……!”
목소리가 힘을 내려줬다고?
나는 볼코프의 몸을 다시 바라봤다.
온몸에 그림자 칼날이 박혀 피가 주륵주륵 흘러나오는 장면은 굉장히 그로테스크했지만, 인간의 상체와 거미의 하체가 붙어 있는 모습은 그 이상으로 혐오감을 부추겼다.
“…….”
로우레테가 괴신이 있는 곳을 잘못 말하지는 않았을 테니, 종합해 보면 볼코프를 이 꼴로 만든 그 ‘목소리’라는 녀석이 괴신인 것 같은데…….
이계화 사태가 일어난 던전 근처라도 가봐야 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 슬슬 그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한 거미들을 바라보았다.
곧 몸을 움직이려 할 때쯤, 그림자 칼날에 박혀 있던 볼코프 세르게이의 입이 열렸다.
[나를 찾고 있는 거야?]
“……?”
조금 전까지 들렸던 고통스러워하던 볼코프의 목소리와는 완전히 상반된 목소리에 나는 시선을 돌렸다.
“……넌.”
그리고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 칼날이 온몸에 박혀 고통스러워하던 볼코프 세르게이가 아닌, 소름 끼칠 정도의 무표정으로 고개만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가 있었다.
치이이이익……!
“……!”
그와 함께 볼코프의 몸을 꿰뚫고 있던 그림자 칼날이 마치 무엇인가에 녹는 것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묘한 위기감에 몸을 슬쩍 뒤로 뺐다.
몸을 뒤로 빼자마자 그를 속박하고 있던 그림자 칼날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녹아내렸고, 조금 전까지 피가 흘러나오던 볼코프의 몸은 마치 처음부터 상처를 입지 않은 것처럼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본능적으로 지금 앞에 있는 그가, 조금 전까지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 ‘볼코프 세르게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괴신.
나는 본능적으로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존재가 괴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를 앞에 두고 주변 풍경을 한두 차례 둘러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역시 너는 내가 아는 이와 굉장히 흡사한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흡사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똑같네.]
“……뭐?”
괴신의 말에 나는 반문했지만, 내게는 질문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듯 그는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정말 유감스럽게도 아직 ‘계승자’까지는 가지 못했으니, 지금 상태에서 너를 죽이는 건 정말로 쉽겠어.]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몸에서 기묘한 녹색의 액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이내 내게 달려들며 말했다.
[나는 아틀락나챠의 여덟 번째 거미. 너를 죽이도록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