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나 혼자 10만 대군 162화
49장 괴신 강림(1)
워싱턴에 있는 국제 헌터 협회 지하에 있는 대회의실.
거대한 일자형 책상에 앞에 빼곡히 앉아 있는 참석자들을 한 번 둘러본 T. 월터는 정면의 대형 프로젝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곧바로 상황 브리핑 시작하지.”
월터의 말에 앞에 선 남자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 통칭 이계화 사태에 대한 2차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프로젝터 안에 그려놓은 타임라인을 따라 설명했다.
“우선 첫 이계화가 일어난 곳은 바로 샌디에이고 주의 A급 던전 죽음의 영지였습니다. 우선 당시 영상을 보면 던전의 입구가 깨져 나가더니 그 안으로부터 죽음의 영지에 있던 몬스터들이 기존보다 훨씬 강화된 상태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했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태였지만, 근처에 SSS급 헌터 한 명과 SS급 헌터 두 명이 있었기에 그렇게 큰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었고, SSS급 헌터인 브루스가 입구 근처에 있는 검은색 핵을 파괴하는 것으로 이계화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다음 타임라인을 보며 설명했다.
“그다음에는 이탈리아 쪽에서 일어난 이계화입니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인명 피해가 심하게 났지만 결국 막아냈고, 그다음 날 한국에서도 이계화가 일어났지만…… 인명 피해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림자 왕 덕분에요.”
브리핑하던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프로젝터를 넘기며 말했다.
“그리고 한국 원주에서 일어난 이계화 사태 이후로도 미국을 포함한 전역에서 꾸준히 발생하는 중입니다.”
“첫 이계화 사태가 일어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확히 몇 차례의 이계화가 발생했지?”
월터의 물음에 남자는 말했다.
“3주 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발생한 이계화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총 142차례의 이계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인명 피해 없이 이계화를 막아낸 국가는 있나?”
“있습니다.”
“어디?”
“한국입니다.”
“……뭐, 거기에는 그림자 왕이 있으니 그럴 만하지.”
남자의 말에 월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본제로 넘어가지.”
“알겠습니다.”
월터의 말에 곧바로 대답한 남자는 프로젝터를 몇 장 넘겼다.
“우선 이계화 사태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구비된 서류를 살펴보시면 될 것 같고, 월터 상위의원님 말씀대로 곧바로 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는 프로젝터에 떠 있는 벙커를 보여주었다.
완전히 반파되어 불길이 치솟고 있는 벙커.
하지만 분명 현대 문물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벙커의 주변에는 몬스터가 있었다.
“저건…… 타란튤인가?”
회의실 한 편에 앉아 있던 여성이 입을 열자가 브리핑하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지금 올라와 있는 이 사진은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쪽에서 찍힌 사진입니다.”
“……이게 러시아라고?”
“그렇습니다.”
회의실에 참석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무척이나 이상하다는 듯 사진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가 러시아라고 했던 벙커의 주변 풍경은 전혀 러시아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방은 음습하고 축축해 보이는 늪지로 가득 차 있었고, 분명 벙커 주변에 찍혀 있는 다른 건물에는 사방으로 나무줄기가 타고 올라가 있어 굉장히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계화 사태인가?”
“맞습니다. 그런데 현재 러시아는 그 사태가 조금 심각합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프로젝터를 넘겨 러시아의 모스크바만을 확대한 지도를 보여주었다.
지도의 오른쪽 위쪽에는 검은 반점이 찍혀 있었고, 그 반점을 주변으로 붉은색의 테두리가 쳐 있었다.
“저건 뭐지?”
“지금 쳐놓은 붉은 반점까지 침식당했습니다.”
“뭐?”
남자의 말에 회의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놀란 듯 웅성거렸다.
“침식이 저 정도까지 진행될 수 있다고?”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이계화 사태는 거의 대부분 헌터들의 재빠른 대처로 막아낼 수 있었지만, 러시아의 경우는 아무래도 초기 진압에 실패한 듯싶습니다.”
“러시아 헌터들은 놀고만 있던 건가?”
“……이건 제 추측이지만 헌터 협회 러시아 지부 측의 보고로는 현재 러시아 내부 측 국방장관의 직위해제 등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초기 진압에 실패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쯧, 한마디로 자기들 정치 싸움을 하다 상황을 저렇게 개판으로 만들어 놨다 이거군.”
“아마 그럴 겁니다. 이번에 이계화가 진행된 던전은 A+급 던전이었다고 해도 아마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헌터들이면 SSS급 헌터인 아냐가 없더라도 충분히 초기 진압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남자의 말에 월터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몇 번이고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뭐, 이미 지나간 일은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 현재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지?”
“우선 러시아 지부 측에서는 당장 국제 헌터 협회를 포함한 다른 지부에 연락을 돌린 상태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현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러시아로 지원을 보낼 생각은 없는 듯합니다.”
‘확실히…… 어디서 이계화 사태가 터질지 모르는데 자국의 헌터를 타국으로 보내는 짓은 그 누구라도 하지 않겠지.’
남자의 말에 월터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한 뒤 말했다.
“우선 국제 헌터 협회 쪽에 대기하고 있는 SSS급 헌터 중 한 명을 러시아로 보내도록 하지.”
“……상위위원님? 저희 미국도 언제 어디서 이계화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남자의 말에 월터는 곧바로 반박했다.
“어차피 지금 자국 내에는 SSS급 헌터가 세 명이나 있지. 한 명을 보낸다고 해도 남는 인원은 두 명이야.”
“……그렇다고 해도.”
“물론 우리 협회 쪽 SSS급 헌터만을 보내겠다는 건 아니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검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미 한 번 거절했겠지만, 혹시 모르니 한번 그에게도 도움을 구해봐야지.”
* * *
모스크바의 대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깨끗했던 도로 곳곳에는 식물들이 자라 도로를 가득히 잠식한 상태였고, 거대한 건물들도 마찬가지로 나무 넝쿨과 습한 이끼에 잠식되어 세기말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대로의 한가운데에는, 엄청난 양의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똑같은 복장을 한 시체들.
그 누군가는 양 팔이 없었고, 또 누군가는 머리가 없었다.
다른 시체는 몸 한가운데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죽은 자들도 있었고, 또 하반신이 어디로 갔는지 완전히 사라진 시체도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로테스트한 풍경의 한 남자는 괴물에게 목이 붙잡혀 있었다.
“끄, 끄으으!”
괴물의 생김새는 무척이나 기괴했다.
하반신은 분명 거미의 그것과 같았다. 따그락거리는 8개의 다리와 그 다리 사이에 달린 거대한 몸체는 분명 거미의 몸이 맞았지만, 놀랍게도 그런 거미의 몸 위에는 인간의 상반신이 달려 있었다.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거미.
딱 보기만 해도 무척이나 기괴한 조합을 가진 그 괴물이 한 남자의 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볼…… 코프…… 세르게이……!!”
목이 붙잡혀 있던 남자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손을 붙잡은 채 이야기했고, 남자의 목을 잡고 있던 남자, ‘볼코프 세르게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그러지? 죽었던 내가 다시 살아나니 그렇게 놀랍던가?”
“이…… 괴물 자식……! 끄학!”
“그렇게 입을 함부로 놀리면 안 되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응!?”
볼코프 세르게이가 남자의 목을 세게 부여잡으며 말했다가, 이내 그의 목을 다시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살려…… 줘……!”
남자가 말하자 볼코프는 자신의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을 소장 자리까지 올려준 게 누군데, 내가 위험에 빠지자마자 바로 라인을 갈아타고 공당파에 붙어?”
“끄으윽!”
“게다가 나중에는 솔선수범해서 나를 고문한 뒤에 늪지까지 데려다 놓은 녀석이…… 지금 와서 당장 죽을 것 같으니까 살려달라고? 응?”
“끄에에에엑!”
뚜둑 하는 소리와 함께 발광하는 남자.
볼코프 세르게이는 그의 목을 틀어쥐고 있던 손을 그대로 놓고는, 땅바닥에서 힘겹게 켁켁 거리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너한테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끅! 켁! 케엑!”
“만약 네가 나를 그곳에 버려두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나를 총으로 쏴 죽였으면 내가 이런 힘을 가지게 될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지?”
볼코프 세르게이는 그렇게 말한 뒤 남자가 별말 없이 그저 켁켁 거리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처음 어느 목소리 덕분에 이 몸을 얻은 직후에는 정말 끔찍했어, 자괴감이 들다 못해 끔찍할 정도였지,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몸에서 느껴지는 힘 덕분에 그런 자괴감은 눈 녹듯 사라지더군.”
꽝!
볼코프는 그 말과 함께 남자의 옆에 있는 콘크리트에 주먹을 내려쳤다.
순식간에 터져 나가는 콘크리트,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나가고 조금 전까지 콘크리트로 칠해져 있던 바닥은 그 아래의 배관이 보일 정도로 깊은 크레이터가 파여 있었다.
“어때? 엄청나지? 헌터도 뭣도 아닌 내가 이런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놀랍더군!”
볼코프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 양손을 펼치며 마치 연설을 하듯 말했고, 그 아래에서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채 볼코프 세르게이를 올려다보던 남자의 눈에는 공포심이 어렸다.
여기서 죽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남자를 껴안을 때쯤, 불현듯 볼코프 세르게이는 말했다.
“살려주지.”
“뭐?”
어리둥절하게 괴물이 된 볼코프를 바라보는 남자.
그는 다시 한번 말했다.
“못 들었나? 다시 한번 말해줄까?”
“무……슨…….”
“나는 결국 네 덕분에 이런 힘을 얻게 된 거지. 이런 인외의 힘을 말이야. 그러니까 그 보답이다. 나는 누구처럼 보은을 무시하는 쓰레기가 아니라서 말이지.”
볼코프 세르게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입가를 비틀어 올렸고,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 괴물이 된 그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남자가 점점 멀어짐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볼코프 세르게이를 보며, 그는 저도 모르게 살았다고 생각하며 서서히 뛰기 시작했고.
푸확!
“끄아아아아아악!”
곧 자신의 옆구리에 이빨을 박아 넣은 타란튤의 하위 몬스터인 헤드 스파이더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아파! 아파! 살려준다며! 살려준다며!!!”
남자는 헤드 스파이더에게 자신의 옆구리를 물리는 와중에도 비명을 내질렀고, 멀리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볼코프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살려준다니까?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있잖아? 응?”
“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제야 남자는 볼코프 세르게이에게 속은 것을 깨닫고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비명은 사라져 버렸다.
볼코프 세르게이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직도 안 뒤졌네?”
잊을 수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