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나 혼자 10만 대군 160화
48장 이계화(3)
A급 던전의 입구가 깨져 나감과 함께 군산 앞바다에 거대한 물보라가 치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 물보라 안에서 나타난 형체를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끄루윽!?]
“더럽게 큰 물고기네…….”
물보라를 일으키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엄청난 크기의 어인이었다.
크기를 따지자면 대형 빌라 정도의 크기일까?
이제 막 바닷속에서 모습을 드러내 해변가로 올라오고 있는 모습은 평범한 헌터가 봤다면 가히 압도적인 모습으로 비쳤을 것 같았다.
거대한 덩치로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 대신 거대한 파문이 일어나고, 상반신만 봐도 거대했던 어인의 크기는 해변으로 올라오면 올라올수록 그 크기가 거대해졌다.
끄에에!
꾸르엑!
그리고 그 거대한 어인이 육지에 발을 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육지로 올라오는 작은 어인들을 보며 나는 망설임 없이 능력을 사용했다.
“신격 각성.”
내가 입을 열자 조금 전까지 해가 뜨고 있던 하늘은 마치 먹구름이 드리워진 듯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분명 저 멀리 떠 있었던 태양은 검은색의 무언가에 가려진 채 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그와 함께 내 영역 속에서 빠져나온 그림자들이 인간의 형태를 벗어나 변이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선가 한번 봤던 형태부터 시작해서 처음부터 완전히 처음 보는 형태까지.
그림자들은 원래의 형태를 떠나 변하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새 해변을 넘어 육지까지 그 발을 드리운 거대한 어인을 바라보았다.
전체적인 형태는 사람의 신체와 비슷했지만, 그 얼굴은 물고기의 얼굴과 흡사했고, 사람의 귀가 달려 있어야 할 그곳에는 물고기의 아가미가 달려 있었다.
발을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같이 움직이는 손에는 일반적인 사람의 손과는 다르게 마치 개구리나 다른 양서류처럼 물갈퀴가 있었고, 그것은 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어인을 향해 몸을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검게 퍼져 있던 아지랑이들은 이미 내 발에 모여들어 그 힘을 더하고 있었고, 내 주변에 만들어진 그림자는 내 의지에 따라 거대 어인의 주변에 있던 그림자들을 죽이기 위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나는 망설임 없이 다리를 박찼다.
쿠우우웅!
발을 떼자마자 내 아래에 있던 지반이 터져 나가며 콘크리트 조각들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나는 순식간에 민가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던 어인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검은 동공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어인의 눈을 보며 나는 곧바로 들고 있던 핸디드를…….
“……?!”
꽈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순식간의 시야가 바뀌어 나간다.
어인의 얼굴을 보고 있던 시야가 한순간 어두운 하늘을 보고 있고, 이내 등 뒤에서 들리는 엄청난 폭음에 나는 어인에게 공격당해 날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가까스로 등 뒤에 그림자를 만들어 멈추는 데 성공했다.
“미친?”
내 몸을 멈추자마자 보이는 것은 자신의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내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어인의 모습.
[끄루욱!]
거대한 체구와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속도로 내 몸을 향해 손을 내리치는 어인.
그 손을 피해낸 나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아니, 저렇게 빨랐으면 왜 조금 전에 육지로 넘어왔을 때는 느린 척을 했던 거야?”
어처구니없이 중얼거린 나는 곧바로 다시 한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거대 어인을 보며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히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냥 굼뜨고 덩치만 커 보여서 저게 정말 괴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생각은 아무래도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영체 합일.”
나는 몸을 서서히 몸을 일으켜 다가오기 시작하는 어인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중얼거렸고, 곧 영체 합일 대상을 골라달라는 말에 입을 열었다.
“엘리고르.”
[영체 합일 대상이 선택되었습니다 ‘악마 엘리고르’]
입을 염과 동시에 나는 내 몸이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눈 밑으로는 내려오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나고, 언뜻언뜻 보이던 머리카락이 백발로 물들어 간다.
입고 있던 검은 코트는 변색되지 않았지만, 대신 그 위로는 엘리고르가 입고 있던 회백색의 갑옷이 마치 덧씌워지듯 입혀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손에 쥐어진, 검은색의 그림자로 이루어진 창.
나는 창이 생기자마자 앞으로 다가와 양손을 쳐올리고 있는 어인에게 창을 쏘아 보냈지만 어인은 창을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내게 손을 휘둘렀다.
푸화악!
[끄륵!?]
하나 어인이 휘두르려고 했던 손은 더 이상 어인의 어깨에 붙어 있지 않았다.
쿠구구구궁!
지반이 울릴 정도로 거친 진동을 내뱉으며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어인의 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푸른색의 피가 솟아나고 있는 자신의 어깻죽지를 보는 어인의 얼굴로 다가가 그림자로 만든 거대한 주먹을 꽂아 넣었다.
꾸구구구구궁!!
주먹을 꽂아 넣자 거대한 파육음과 함께 몸이 뒤로 넘어가며 도로에 만들어졌던 콘크리트를 박살 내며 자빠지는 어인.
하나 어인은 곧 재빠른 속도로 몸을 일으켜 자신의 손을 휘둘렀고, 나는 어느새 별 상처도 남지 않은 채 깨끗하게 복원되어 있는 어인의 팔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게 요즘 만나는 새끼들은 죄다 재생 능력은 기본으로 갖춘 것 같지?
후웅!
재생된 어인의 손이 무거운 중압감과 함께 휘둘러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다시 한번 어인의 품 안에 들어가 내 손에 재생성되어 있는 창을 내던졌다.
마치 두부가 갈라지듯 간단히 찢어 발겨지는 어인의 몸뚱이.
뭐, 어차피 재생 능력이 있는 녀석들을 상대하는 법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재생 못 할 때까지 몸을 박살 내주지.”
나는 이어서 어인의 머리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림자 영체!”
[그림자 영체가 소환됩니다! ‘수인 아리쉬’]
[그림자 영체가 소환됩니다! ‘어인 아틀라’]
[그림자 영체가 소환됩니다! ‘나이트 모후무’]
…….
…….
[그림자 영체가 소환됩니다! ‘악마 크세즈베트’]
다시 한번 나가떨어지는 거대 어인의 주변으로 내가 만들어낸 영체들이 만들어진다.
물론 지금 거대 어인의 전투력을 생각해 봤을 때, 어인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한 그림자 영체는 크세즈베트뿐이었지만, 크세즈베트에게는 능력이 있었다.
끊임없는 마력을 기반으로 자신의 동료에게 말도 안 될 정도의 강화 버프를 걸어주는 능력이.
그림자 영체로서 소환된 크세즈베트의 손이 꾹 쥐어졌다가 펴지고, 그와 함께 생긴 검은 마력들이 마치 조각처럼 퍼져 크세즈베트의 주변에 있는 그림자 영체들에게 그리고 저 멀리에서 어인들과 싸우고 있는 녀석들에게 퍼져 나간다.
그리고 거대 어인은 누워 있던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한 채 구타를 당하기 시작했다.
* * *
영상 속에는 거대한 인어 괴물이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어인은 어떻게든 자신의 손을 휘두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어인의 위에서 거대한 그림자 손이 나타나 어인의 얼굴을 마구잡이로 난타했다.
어인의 상체에는 거대한 마력구들이 연신 떨어져 내리며 어인의 몸을 박살 내고 있었고, 어인의 하체 쪽은 살과 피부가 재생되는 족족 무엇인가에 잘려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그림자 왕과 그의 영체들에 의해 구타를 당하던 어인은 검은 태양 아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운석에 의해 완전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영상은 종료되었다.
-아이리스: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또 뭐임? 근데 그나저나 요즘 내가 항상 느끼는 건데, 도대체 그림자 왕 싸울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영상이 자주 올라오냐? 그림자 왕, 따로 카메라맨이라도 대동하고 다님?
└앙기모티: 아니? 그림자 왕은 애초에 자기 길드원들도 안 데리고 다니는데 카메라맨은 무슨 ㅋㅋㅋㅋㅋㅋ 내가 볼 때는 그냥 그림자 왕 싸우는 스케일이 괴물 같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A급만이라도: 내가 볼 때도 그렇긴 하다. 그림자 왕은 이제 헌터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냐? 무슨 저런 괴물이랑 저렇게 싸우는 걸 보면 내가 볼 때 저건 헌터가 아니라 히어로임, 히어로. 그냥 영화랑 싸우는 게 비슷한 듯.
-영화마니아: 액션 씬 잘 봤다. 꺼어어어억!!!
└이거리얼: ㅇㅈㅇㅈ ㅋㅋㅋㅋㅋ
킹리적갓심: 자,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생각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뭘 생각하냐구요? 그림자 왕의 이중성에 대해서입니다. 그림자 왕은 어떻게 저렇게 기가 막히게 영상을 찍힐까요? 그것도 자기가 이기는 부분만요? 또, 그림자 왕은 어떻게 저곳에 미리 가서 싸우고 있을까요? 그림자 왕의 길드는 서울에 있는데요.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 병신을 보면 짖는 개: 에이, X발 새끼야, 이제 짖기도 힘들다. 그만해라! 어떻게 이런 글이 이렇게 많냐??
└ 그림장인: 와 ㅋㅋㅋㅋ 이 컨셉러 컨셉 포기한 거 처음이네
└ 병신을보면지적이는새: 나도 마찬가지다…….
“와…… 도대체 이 아저씨는 뭘 하고 다니는 거야?”
김서윤은 휴게실 소파에 앉아 유튜브 댓글을 읽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저번에도 그러시지 않았나? 그 원주 터미널에서 일어난 사태…… 그 이계화였나? 그게 일어나자마자 귀신같이 달려가서 막더니…….”
“그러게요. 우현이 형은 이번에도 곧바로 가서 막아버렸네요.”
그리고 그 중얼거림을 들은 이은별과 에단이 이어서 말하자 김서윤은 이내 스마트폰을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말했다.
“아저씨는 도대체 뭘까요?”
“……?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뭐, 별 의미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닌데, 그냥 아저씨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서요, 언니.”
“……아, 그 기분 알지.”
“나도 알 것 같아.”
김서윤의 말에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은별과 하리남, 에단도 맞장구를 치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슉슉 해버린다고 해야 하나.”
“그것도 그렇지만, 뭔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막 길드원이 늘어난다거나……?”
“아, 그것도 그렇네요.”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돌려 휴게실 소파 한쪽에 이로하와 같이 앉아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아냐를 바라보았다.
불과 3주 전, 갑작스레 씨커 길드로 들어오게 된 러시아의 SSS급 헌터 아냐.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이로하와 저렇게 구석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애니메이션을 보는 모습이 퍽이나 어울리게 되었다.
“……아냐도 처음 볼 때는 굉장히 어색했는데.”
“그치……? 표정이 거의 안 드러나고 무뚝뚝하게 대답만 했으니까.”
“솔직히 저는 아냐 누나가 이로하 누나랑 죽이 잘 맞을지는 몰랐어요, 거기에 덤으로 애니를 저렇게 좋아할 거라고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에단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김서윤.
처음에는 굉장히 길드원들을 어색하던 아냐는 이로하와 함께 붙어 애니를 보면서부터 그 어색함을 풀어나갔다.
“……아니, 그보다 우리 왜 이런 이야기 하고 있었지?”
“우현이 형 이야기하다가 그런 거 아니에요?‘
“아, 그랬었지…… 그보다 아저씨는 어디에 있어?”
“형님은 또 아까 저기에 있는 횃불에 들어가던데…….”
“또 저기 들어갔어요……?”
김서윤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김우현의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횃불을 보았고 이내 소파의 등받이에 기대서 중얼거렸다.
“아저씨는 도대체 저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거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