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나 혼자 10만 대군 159화
48장 이계화(2)
“그 말에 대해서도 이해가 간다고?”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사실 네게 그 말을 들었을때만 해도 어떻게 괴신이 그렇게 많이 등장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봐도 딱히 답을 찾지는 못했는데 지금 상황이라면 네게 괴신에 대해 말해줬던 녀석의 말도 조금 이해가 되는군.”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로우레테에게 물었다.
“도대체 괴신이랑 이게 뭔 차이인데?”
내물음에 로우레테는 곧바로 말했다.
“내가 전에 괴신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 적이 있지? 괴신은 신격의 자리를 얻었지만, 어느 모종의 이유를 통해 그 신좌를 빼앗긴 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내 물음에 로우레테는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너는 어떻게 신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나?”
……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냐고?
“글세……? 그냥 대충 생각나는 걸 말해보면 뭔가 업적을 쌓아서?”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도 맞지만 신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정말로 다양하다. 생전에 엄청난 업적을 세운 사람이 신이 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어느 한 분야에 통달한 달인이 될 수도 있지. 하지만 신이 되려면 공통으로 필요한 게 한가지 있다.”
“필요한 것?”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필요한 것, 그건 바로 신앙이다.”
신앙?
“기본적으로 신은 혼자의 힘으로는 될 수 없다. 신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업적을 남기고 그 업적이 세상에 남아 다른 이들의 신앙을 받았을 때, 그들은 비로써 신격을 얻을 수 있고 신좌를 얻을 수 있다.”
그녀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이외에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수련에만 몰두해 정말 예외적으로 신이 된 일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희귀한 경우고 그들의 경우 신이라기보다는 선이라는 말이 맞으니 넘어가도록 하지.”
“……그래서, 그 신이 만들어지는 방법이랑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어떻게 연관되는데?”
“항상 말하는 거지만 너는 너무 급하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에 놔두었던 바나나 우유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보통 신좌를 잃은 신격들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괴신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괴신이 되어버린 신격들은 자신의 업적이 있는 곳에 살아간다…… 편하게 설명하면 바로 신전 같은 곳이 되는거지.”
“신전?”
“그래, 신전. 아무리 괴신이라도 이전에는 신좌를 가졌던 몸이니 괴신들은 자신의 신전을 거처로 삼는다.”
“…….”
“사실 거기까지는 상관이 없다. 괴신들이 자신이 살고 있던 신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미 그 신전은 신들에 의해 시간도 흐르지 않는 파편이 되어 있으니까.”
“응? 잠깐, 파편이라고? 네가 아까 파편은 악마들이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들도 파편을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신들은 괴신들이 힘을 쓰게 하지 못하기 위해 세계에 상호보완이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파편을 만들었다.”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고깔모자를 다시 한번 뒤로 눌러쓰고는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네 세계에 파편이 많이 있어도 괴신들을 본 적은 없을 거다. 괴신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 있더라도 파편인 이상 괴신은 힘을 사용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녀는 숨을 삼켰다가 말했다.
“만약 괴신의 파편들이 겹쳐짐 현상을 통해 밖으로 나오게 된다면…….”
“괴신이 움직일 수 있다, 이거네?”
“그것까지는 설명해 주지 않아도 돼서 편하군.”
로우레테의 말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샹들리에를 멍하니 바라봤다.
생각보다 복잡한 이야기.
……뭐, 그렇다고 해도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뀌지 않는다.
괴신들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그 녀석이 말한 대로 신격 각성으로 먹어치운 다음에 힘을 키워 사탄을 조진다.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짧게 생각을 마친 나는 로우레테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았고, 그 괴신이 있는 파편들이 언제 겹쳐지는지까지는 알 수 있어?”
“괴신이 잠들어 있는 파편은 알고 있지만, 실제로 괴신이 언제 강림하는 것까지는 예측할 수 없다. 애초에 파편이 랜덤으로 겹치는 거니까. 하지만…….”
그녀는 슬쩍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대강 정도로 예측해 보는 거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
* * *
용암지대 한 가운데에 있는 붉은 외성.
분명 성 밖에는 뜨거운 용암이 끓어올라 무척이나 뜨거운데도 불구하고 그 외성 안쪽은 마치 겨울이 온 것처럼 서늘한 공기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외성의 끝에는 지루한 듯 자신의 팔을 괴고 있는 사탄이 눈앞에 부복해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사탄의 왼쪽에 부복해 있는 그것은 왕좌에 앉아 있는 그보다도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생물의 뼈로 만들어진 듯한 갑옷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그가 뒤집어쓰고 있는 양어깨의 갑옷에서는 소름 끼치게 생긴 녹색의 눈알들이 박혀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것의 옆에 같이 부복해 있는 남자는 온몸에 심연과도 같은 어둠을 간직하고 있는 늑대 수인이었다.
두 눈에는 마력으로 형상화된 붉은 안광이 넘실거리고 있었고, 검은 털의 끝에는 뱀처럼 움직이는 꼬리가 그 검은 형상들과 함께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던 사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벨리알, 아몬.”
“예.”
한쪽에서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다른 한쪽에서는 끓는 듯한 짐승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사탄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분명 나는 엘리고르와 크세즈베트가 전부 소멸한 것을 확인하고 너희들을 2지구로 보낸 것 같은데, 왜 돌아온 거지?”
사탄의 말.
무척이나 느긋하고, 또 늘어지는 듯한 사탄의 목소리는 벨리알과 아몬의 목소리에 비하면 무척이나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였지만, 그런 사탄의 말 안에는 진득한 무엇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사탄 님,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잠시의 침묵 끝에 들린 아몬의 끓는 목소리에 사탄은 간단히 목을 휘적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그 모습을 본 아몬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선 저와 벨리알은 사탄 님께 명령을 받은 직후 곧바로 2지구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현재 2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2지구에 진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예, 이전처럼 신들이 차원 이동을 마력으로 봉해놓은 것이라면 그 마력을 억지로 찢고서라도 들어갈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2지구의 좌표가 수시로 불안정해서 도저히 안쪽으로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아몬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고, 사탄은 고개를 숙인 아몬을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좌표가 불안정했다는 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 2지구의 좌표가 수시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려 했었지만……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마몬을 보며 사탄은 괴고 있던 손을 움직여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빠져들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사탄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알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너희들은 각각 둘로 나뉘어서 1지구와 5지구를 지원해라.”
““알겠습니다.””
사탄의 말에 별 이견도 달지 않고 고개를 숙이는 벨리알과 아몬.
그는 간단한 턱짓으로 그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고는 슬쩍 어깨를 으쓱이며 생각했다.
‘쯧, 아무래도 이 시기에 2지구에 리스크가 가해진 것 같군.’
사탄은 그저 아몬에게 2지구의 상황을 듣는 것만으로 현재 2지구가 무슨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아챘다.
‘리스크’
악마들이 세계를 파괴함으로써 생긴 수천, 수만 개의 파편 덕분에 아무래도 2지구는 그 파편들이 만들어진 것에 대한 리스크를 감당하고 있는 것을 깨달은 사탄은 슥 하고 웃음을 지었다.
수만 개의 파편에 대한 리스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뭐, 어떻게 생각하면 크세즈베트와 엘리고르를 소멸시킨 놈이 어떻게든 리스크를 막아내려고 발악을 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리스크가 가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리스크가 아니었다.
진짜로 걱정해야 할 것은 그 병신 같은 신계 놈들이 자기들끼리 정치질을 해 파편에 가두어 버린 괴신들.
‘뭐, 이렇게 된 상태라면 2지구는 딱히 신경 쓸 필요도 없겠군.’
사탄은 그렇게 생각하며 옥좌에 몸을 늘어뜨리곤 슬쩍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얼마 남지 않았다.”
* * *
군산 바다 일대.
“……로우레테의 예상대로라면 이제 슬슬 이계화가 일어나야 할 텐데.”
나는 이제 막 동이 트기 시작하는 해를 보며 모래사장 근처에 앉아 저 멀리 열려 있는 던전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A급 던전 해상 속 어인 던전 자체가 다른 일반 던전들과는 다르게 우선 던전 안에 들어가면 바다 한가운데의 배 안에서 전투를 치러야 하기에 다른 헌터는 입장하기를 굉장히 꺼리는 던전이었다.
한마디로 해상 속 어인은 던전 할당제에 들어가야만 들어가는 던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일 전 로우레테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계화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이어서 이계화가 일어나는 곳을 대충 특정할 수 있냐고 물었었다.
내 말에 한참이나 도서관 안에 있던 책장을 뒤진 로우레테는 내게 지금 이 시간대에 이곳으로 가보라고 했기에 왔건만…….
“……평화롭네.”
지금 이곳은 평화로웠다.
아직 4월 초라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은 했다.
그렇게 20분 뒤,
“역시 괴신이 있는 던전이 이계화까지 되는 것을 특정하는 건 힘든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앉아 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분명 로우레테가 내게 이 장소를 알려주면서 특정하지 못할 확률이 높으니까 자신이 말한 시간에서 2~30분 정도를 더 기다려 보고 나서도 이계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망설임 없이 돌아오라는 소리를 듣기는 했다.
……뭔가 아쉬운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선을 돌렸지만 던전의 입구인 해상 속 어인은 별 변화가 없었고, 나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우- 우우웅!
“……!!”
몸을 돌리자마자 들리는 거대한 공명음에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던전의 입구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던전은 거대한 공명음을 내뿜고 있었다.
웅! 웅! 웅!!
내가 쳐다보는 그 순간부터 공명음은 어느 순간부터 그 주기를 빠르게 올리기 시작했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쩍- 쩌저저적! 쩌억!
던전의 입구가 마치 유리에 금이 간 것처럼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망설임 없이 능력을 전개했고, 그사이에 한번 금이 가기 시작한 던전의 입구는 와장창거리는 소리와 함께 깨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아!
그리고 군산 앞바다에 거대한 물보라가 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