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나 혼자 10만 대군 158화
48장 이계화(1)
원주에 있는 A급 던전 ‘숲속의 늪지대’는 여러 등급의 헌터들에게 굉장히 좋은 사냥터로 추천받는 지역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A급 던전이 일자형의 방식을 띄고 있는 다른 던전들과는 다르게 숲속의 늪지대는 A급 던전인데도 일자형 던전이 아닌 넓은 ‘ZONE’ 형식의 던전이었다.
거기에 덤으로 몸을 숨길 수 있는 잡풀이나 나무가 많은 데에 비해 나오는 몬스터는 오크나 리자드맨 같은 종류이기에 헌터들에게 숲속의 늪지대는 굉장히 편한 던전 중 하나였다.
그래, 조금 전까지는.
“미친! 저게 뭐야……!”
중형 길드에 속해 있는 A급 헌터 정재진은 원주 터미널을 빼곡하게 뒤덮은 거대한 숲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분명 밥을 먹으러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원주 터미널의 모습은 마치 100년 동안 전혀 관리를 안 한 것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터미널의 창문과 구멍 사이사이로 식물의 줄기가 자라나고, 터미널 상층에는 딱 봐도 엄청난 크기의 나무가 세워져 있었다.
터미널 벽 외부는 10년 정도는 청소하지 않은 것 같이 낡고, 이끼가 슬어 있었고, 터미널 내에 정차되어 있던 버스들도 마치 50년은 방치해 놓은 것처럼 낡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터미널의 주변으로 점점 넓게 퍼지기 시작하는 풀밭을 보며 정재진이 인상을 찌푸릴 때쯤.
“끄아아악!”
“사, 살려줘! 살려주세요!”
“미친! 오크!? 오크가 왜 여기에 나와 있어!?”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정재진은 몸을 움직여 비명이 들린 곳으로 뛰어갔고, 그는 곧 거기에서 무척이나 익숙한 몬스터를 볼 수 있었다.
“……오크랑 리자드맨?”
정재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오크와 리자드맨이 사방으로 뛰어나가는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무기를 쥐었다.
‘저 녀석들은 분명 숲속의 늪지대에 나오는 몬스터일 텐데, 어떻게 된 거지?’
정재진은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달려나가며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굴렸지만 이내 일반인을 향해 도끼를 내리치는 오크 쪽으로 다가간 그는 생각을 지웠다.
‘우선 사람들부터 구하고 보자!’
쾅!
“으아아아악!!”
“야! 비명 지르지 말고 빨리 도망가!”
그는 비명을 지르는 여자에게 소리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이내 훤히 비어 있는 오크의 몸에 칼을 쑤셔 넣은 그는 옆에서 들어오는 공격에 곧바로 몸을 오크의 몸에서 칼을 빼 도끼를 막아냈다.
“……!!”
‘뭐지? 분명 외형이랑 들고 있는 무기를 보면, 숲속의 늪지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맞는데, 그 녀석들이 이렇게 강할 리가 없는데……?’
분명 내리치는 도끼를 한 번 막았을 뿐인데도 손이 덜덜 떨려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인상을 찌푸렸고, 이내 몸을 뒤로 빼며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여기저기에서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꽤 많은 헌터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나 그런 와중에도 터미널을 중심으로 점점 넓어지는 늪지는 이미 4차선 도로를 넘어 그다음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재진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달려드는 오크와 싸움을 계속했다.
챵! 카지지직! 창!
리자드맨의 창을 피하고 오크의 도끼를 막아내며 싸우기를 얼마나 되었을까.
그는 리자드맨이 휘두른 창에 자신의 팔을 찔렸고, 그는 곧바로 검을 휘둘러 리자드맨의 목을 쳐 낸 뒤, 몸을 뒤로 뺐다.
‘숫자가 너무 많다.’
이미 터미널의 주변에 일반인들은 없었다. 이미 전부 죽었거나, 다들 도망간 상태.
주변에서 여기저기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슬슬 병장기 소리보다 비명이 늘어가고 있는 것을 봐서는 확인하지 않아도 헌터들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후…….”
정재진은 눈앞에 있는 몬스터들을 보며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거의 터미널 일대를 가득 채웠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몬스터들, 던전 안에서 단체로 몰이 사냥을 했을 때도 이 정도의 숫자는 보지 못했다.
게다가 숫자라도 많으면 능력이라도 던전 내의 몬스터와 비슷하면 모르겠는데, 지금 터미널에 있는 몬스터들은 분명 외견은 비슷하지만 그 능력이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과는 달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몬스터 웨이브? 아니, 몬스터 웨이브일 리가…….’
후웅! 콱!
정재진은 생각을 이어나가면서도 눈 앞에 떨어져 내리는 도끼를 피했고, 곧 자신의 뒤가 터미널의 외벽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상을 굳혔다.
‘좆 됐다.’
그는 점점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을 찔끈 감았다.
‘시발, 왜 괜히 시민들 구해주겠다고 달려와 가지고는 그냥 도망가지…… 병신……!’
후욱!
정재진은 다시 한번 도끼가 올라가는 소리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고개를 떨어뜨렸고.
콰직!
“……어?”
그가 눈을 떴을 때, 도끼를 들고 있던 오크의 머리는 어딘가로 사라져 있었다.
“어, 어어?”
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고, 그는 곧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 아니,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의 형체를 취하고 있는 그림자는 그 붉은 안광을 일렁이며 정재진을 바라보고 있었고, 곧 머리가 사라져 쓰러지는 오크의 시체를 붙잡아 저 멀리 던져 버린 뒤, 그 붉은 안광을 오크와 리자드맨에게 돌렸다.
순간 흠칫하는 모습을 보인 오크와 리자드맨.
푸화아아아악!
그리고 흠칫하는 오크와 리자드맨들은 땅바닥에서 튀어나온 묵빛의 검에 의해 꼬챙이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오크와 리자드맨의 시체를 저 멀리 던져 버리며 땅속에서 빠져나오는 그림자를 보며 정재진은 저도 모르게 중얼 걸렸다.
“그림자 왕?”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심연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 올라오고 있는 그림자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고.
“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터미널의 근처에서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은색의 코트를 입고 그 몸에는 묵빛의 아지랑이를 두른 채 자신의 그림자들로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몬스터들을 무참히 박살 내며 앞으로 걸어나가는 남자.
그림자 왕 김우현.
“와…….”
그는 김우현이 느긋하게 걸어 나감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몬스터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작살 나는 것을 보며 방금 전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체 감탄을 토해냈고.
김우현은 끊임 없이 몬스터가 흘러나오는 원주 터미널 속으로 느긋하게 걸어들어 갔다.
그리고-
쿵!
“……!!”
쿠쿠쿠쿠쿵!
“미…….”
콰지지직! 콰아아아아아앙!
“미친!”
정재진은 뒤 늦게 지반이 흔들리며 원주 터미널이 무너지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자신의 다리를 놀리려 했다.
하나 그의 옆에 서 있던 그림자는 몸을 움직이려는 그를 잡아챈 뒤 순식간에 이동해 그를 아직 늪지가 침식하지 않는 곳에 옮겨주었다.
그것을 끝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는 원주 터미널을 보며 정재진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 * *
고풍스러운 도서관.
“지금 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파편의 합일화 현상이다.”
“파편의 합일화 현상?”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나나 우유를 마시는 로우레테를 보며 피곤한 한숨을 흘렸다.
악마들이 사라져서 그런지 던전 침식, 그러니까 이계화는 내가 예상했던 시간대에 일어났다.
첫 이계화는 바로 미국에 있는 센디에이고 주에서 시작되었고, 그 뒤에는 이탈리아, 그다음에는 바로 한국의 원주였다.
나는 원주에서 이계화가 일어나자마자 에단과 함께 원주로 가서 내가 원래 알고 있던 방법인 이계화의 핵을 파괴해 원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계화를 막을 수 있었다.
“음, 이건 정말로 설명하기가 모호하군.”
“……왜?”
내 물음에 그녀는 자신의 챙모자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걸 설명하려면 네가 모르는 지식까지 하나하나 전부 알려줘야 하니까. 너는 알지 모르겠지만, 지금 네 세계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내가 말했던 다른 세계도 연관이 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 회귀 전에도 이계화를 겪어보기는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도대체 이 이계화가 어째서 일어나게 된 건지 그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대충 악마가 어떻게 했거니 하고 말았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로우레테를 바라보자 그녀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듯 자신의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더니 이내 말했다.
“우선 전부 설명해 줄 수는 없으니 간단하게 설명해 주도록 하지.”
“알았어.”
내가 동의하자 그녀는 자신의 고깔모자를 뒤로 넘겨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지금 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파편의 합일화 현상이다. 한마디로, 세계가 잠시 겹쳐지는 거지.”
“……세계가 겹친다고?”
“그래, 너희 세상에서 파편, 그러니까 너희들은 던전이라고 부르는 것들 있지? 그건 던전 같은 게 아니라 다른 세계의 파편이다.”
“다른 세계의 파편?”
내가 되묻자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 하더니 말했다.
“그래, 지금 너희 세계에 던전이랍시고 있는 것들은 원래 실제로 다른 세계에 있었던 공간 중 하나다. 그 파편이 생긴 이유는 설명하려면 길어지니까, 단순히 악마 때문이라고 알고 넘어가면 된다. 결국 악마가 세계를 파괴함으로 인해서 생겨난 게 파편이니까.”
내가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몇 번 끄덕이자 그녀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저번에 설명해 줘서 알고 있겠지만, 지금 악마가 침략하고 있는 세계는 이곳 하나뿐만이 아니다.”
“그건 알고 있어.”
실제로 엘리고르도 이미 멸망해 버린 제3지구에서 온 녀석이었는데 다른 지구가 없으리란 법은 없었다.
“사실 지금 네 세계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설명하면 악마들이 파괴한 세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소리다.”
“다른 세계가 파괴되는 게 이쪽에도 영향이 있다는 소리야?”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가락을 쫙 펼쳤다.
“지금 네 세계와 연관된 세계는 총 5개가 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엄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를 접고서 말했다.
“그리고 지금 네 세계과 연과되어 있는 5개의 세계 중 3개는 이미 악마에 의해 멸망당했지.”
“……그래서?”
내가 묻자 그녀는 이걸 어떻게 말해줄까 고민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그냥 한다미로 말해서, 지금 너희 세계는 1지구와 3지구, 그리고 4지구의 찌꺼기들이 사라지지 않고 달라붙어서 지금 이 사태가 생겨나고 있다는 소리지.”
그녀는 거기에 이어서 무엇인가를 더 말하려는 듯 말을 우물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말했다.
“사실 이 현상을 설명하려면 5개 지구가 어떻게 서로에게 상호보완을 해줘야 하는지도 알 필요가 있지만 그렇게 되면 네가 이해하지도 못할 것 같고 나도 설명하기 피곤하니 넘기도록 하지.”
“……그러니까 네 말은, 원래는 5개의 세계가 상호보완을 해야 하는데, 그중 3개 지구가 악마에 의해 멸망해서 내가 살고 있는 2지구가 그 리스크를 다 감당하고 있다……대충 그런 이야기야?”
“그 말이 맞다.”
그녀의 말에 나는 묘한 피로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그리고 덤으로, 지금 이 상황이라면 네가 말해줬던 그 녀석이 했던 말도 이해가 되기는 하는 것 같다.”
“그 녀석?”
“그래, 그 녀석…… 네게 괴신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던 녀석을 말하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