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나 혼자 10만 대군 157화
47장 SSS급 헌터 아냐(2)
내가 한 말로 인해 순식간에 무거워지는 분위기.
리디야는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도 마찬가지로 인상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슬쩍 내 시선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시선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제가 말씀드린 건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딱히 그런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내 귀에는 분명히 그렇게 들렸는데?”
“만약 그렇게 들렸다면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리디야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어째서 김우현 헌터, 당신이 아냐의 망명 문제에 끼어드는 거죠?”
“뭐?”
“당신도 알다시피 아냐는 한국에 망명신청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 아냐의 망명신청을 받은 한국 지부의 강형찬 이사님과 이야기 중이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책상 앞에 놓아둔 자신의 스마트폰을 쥐고는 말했다.
“하지만 김우현 헌터는 이 일의 관계자도 아니고, 아냐의 망명과 아무런 상관도 없지 않습니까?”
리디야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제 말이 틀렸나요?”
“아니, 맞아. 애초에 내가 헌터 협회에 소속된 헌터도 아니고,”
그래, 리디야의 말이 맞기는 했다.
아냐가 분명 망명 사유서에 씨커 길드에 입단하기 위해서라고 써놨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유서일 뿐이니까.
사실 리디야의 말대로 나는 아냐의 망명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그래, 그럴 권리는 없지.
“근데?”
“네?”
“그래서, 뭐?”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리디야를 보며 나는 물었다.
“어쩌라고?”
“아니, 그…… 그러니까, 제 말은 어째서 관계자도 아닌 당신이 굳이 아냐의 망명신청 건을 가지고 참견하냐는…….”
“내 마음인데?”
그렇게 말하자 순간적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리디야.
나는 그녀가 이 말도 안 되는 억지에 딴지를 걸기 전에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러시아 쪽도, 그렇게 아냐의 망명을 취소시키고 싶었으면 그냥 러시아 외교부 시켜서 공인 방송 때리면 되잖아? 왜 그렇게 안 하고,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찾아와서 이러고 있는데?”
“만약 저희 측에서 곧바로 공영 방송을 때렸다면 한국과 러시아의 관…….”
“지랄하고 있네,”
“…….”
나는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는 리디야에게 씩 웃으며 말했다.
“너희도 켕기는 게 있으니까, 일을 키우기 싫어서 이렇게 몰래몰래 찾아와서 협박하는 거 아니야? 응?”
내 말에 리디야는 인상을 찌푸리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나는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
“너희 참 대단하더라? SSS급 헌터한테 목줄이나 채워서 자기들 좋을 대로 사용하고 말이야.”
“……!!”
“왜? 내가 너희 그러는 거 모를 줄 알았어?”
나는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어쩌나? 나는 이미 아냐를 만나서 우리나라로 망명하려는 이유까지 전부 들었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며 리디야를 바라보자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이내 이를 악물고는 대답했다.
“그건 아냐 헌터가 합법적인 망명 사유를 만들기 위해……!”
“개소리하지 마시구요. 아냐가 증거도 다 들고 있던데?”
“뭐…… 라구요?”
“증거 다 들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자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는 리디야를 구경하며 피식 웃은 나는 양손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물론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전부 거짓말이었다.
아냐에게 러시아에서 망명한 이유를 들은 것도 거짓말이고, 아냐가 그 증거를 들고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나는 강형찬 부장이 아냐가 씨커 길드에 입단하고 싶다며 망명을 신청했다는 소리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들었다.
당연하게도 바로 이곳으로 온 터라, 정작 한국에 있다는 아냐는 만날 수도 없었다.
나는 안 그래도 하얀 피부가 더욱더 새하얗게 질려가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자, 이쯤 되면 네가 어떤 처지인지는 스스로가 잘 알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나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서 책상을 툭툭 건드리며 그녀에게 선택지를 제시했다.
“그냥 조용히 덮고 러시아로 돌아갈래? 아니면…….”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대로 후진 없이 앞으로 달려서 아냐의 증언이랑 모아놓은 증거 다 뿌려지고 전 국가에 있는 헌터에게 욕 처먹을래?”
툭- 툭- 툭-
그렇게 말하며 나는 책상을 치고 있던 팔을 회수에 팔짱을 꼈고, 리디야는 혼란스러운 듯 시선을 이리저리로 굴리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사실 지금 그녀가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아냐가 한국에 망명하기 이전에 들고 있던 증거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 모습에도 그녀는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으려는 듯 시선을 돌리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건 지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볼코프 세르게이가……!”
어떻게든 변명하려고 입을 연 리디야는 말하다 말고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닫았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웃었다.
변명해 보려고 입을 열었는데, 그게 오히려 자신의 무덤을 팠다는 것을 깨달은 리디야는 눈을 질끈 감았고, 나는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과연 다른 헌터들이 그런 걸 신경 쓸까?”
마지막 말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그녀를 보며 나는 조용히 승리를 자축했다.
* * *
헌터 협회 한국 지부 한쪽에 있는 휴게실.
그 이후 리디야는 자신의 패배를 시인하듯 조용히 물러나 헌터 협회를 빠져나갔다.
나는 곧 강형찬 이사에게 길을 안내받아 SSS급 헌터 아냐와 그런 아냐의 누나인 나탈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냐와 나탈라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과, 어째서 그녀가 한국의 씨커 길드로 올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내게 고개를 숙이는 나탈라에게 나는 슬쩍 손사래를 치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나탈라 씨의 능력으로 제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는 거죠?”
“네…….”
눈치를 보며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휴게실에 와서 나탈라와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아냐가 사유서에 씨커 길드에 입단하고 싶다고 쓴 것은 나탈라의 능력 때문이었다.
스테이터스를 보는 능력.
물론 실질적인 전투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는 능력이었지만 능력이 밝혀지지 않는 능력자들을 조사하기에는 굉장히 좋은 능력이었다.
뭐, 애초에 지금 시점에 와서는 딱히 저 스테이터스를 보는 능력이 그리 활용도가 높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탈라의 능력은 개화한 뒤에도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지금 당장 능력을 사용해도 보이는 것은 이름과 나이 정도뿐, 능력은 아직 제대로 보이지 않는 듯했다.
정보전에도 미묘한 성능.
나는 슬슬 눈치를 보는 나탈라에게서 시선을 돌려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냐를 보았다.
하얀색 단발머리가 이리저리 뻗친 모습.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내가 나탈라를 풀어준 날부터 러시아 정부와 헌터 협회 러시아 지부는 고삐가 풀린 아냐를 붙잡기 위해 이런저런 제안을 한 듯했다.
하나 아냐가 그런 협회와 러시아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자, 그들은 은근히 아냐의 언니인 나탈라를 이용해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다.
무척이나 당연하게도 아냐는 그들의 공격을 모두 파훼하고 북한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와 망명신청을 했다.
심플한 이야기였다.
“근데, 망명신청을 하는 건 그렇다 치고 어째서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겁니까?”
아냐에게 묻자 그녀는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말했다.
“내가, 그 말해 버리면…… 교섭할 여지도 없이 러시아가 달려들 테니까…… 그러면 망명을 하기에도 힘들 것 같고…….”
“대충 알 것 같네.”
확실히, 아냐가 한국에 돌아와서 언론에 이런 사실을 뿌렸다면 러시아는 처음부터 물불 안 가리고 아냐를 데려가겠다며 언론전을 펼칠 수도 있었다.
뭐,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언론전을 펼치다가 결국 러시아는 다른 국가에게 공격당한 다음에 한국에 아냐를 빼앗기겠지만, 아냐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한국이 러시아와의 관계 때문에 망명을 거부해 버리면 일이 골치 아파지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 나니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아냐 씨는 씨커 길드에 들어오고 싶은 겁니까?”
“맞아.”
그렇게 대충 상황을 이해한 뒤 그녀에게 묻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냐는 나를 보곤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만약 네가 언니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분명히 나는 계속 그 녀석에게 잡혀 있었을 거야. 근데 네가 구해줘서 결국 나랑 언니는 자유를 얻었으니까. 이왕이면 네 길드에 들어가서 은혜를 갚고 싶어.”
조곤조곤 조용히 입을 여는 아냐.
하나 그녀의 눈빛은 무척이나 또렷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네 길드에 강한 헌터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아마 내가 거기에 들어가도 딱히 꿀리지는 않을 거야.”
자신 있게 말하는 아냐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뭐, 아냐 처지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등급상으로는 전부 같은 SSS급 헌터니까.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정식 계약서는 길드에 있으니까 오늘은 늦었고…… 내일 중으로 저희 길드 사무소에 와서 계약하는 거로 하고, 당장 잘 곳은 있습니까?”
내 말에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냐.
조금 전까지 또렷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던 표정과는 달리 그녀는 뭔가 묘한 혼란을 담은 표정으로 나를 봤다.
“……나, 길드에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우선 내일 계약서만 쓰면 씨커 길드 소속이 되는 거죠? 왜요?”
“아니, 그…… 뭔가 분명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서.”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하는 아냐.
아, 그러니까 조금 전에는 살짝 허세를 부려봤다 이건가?
……뭐, 사실 아냐를 지금의 씨커 길드에 넣기에는 조금 손색이 있기는 했다.
이미 아냐를 제외한 다른 길드원들은 전부 각성을 마친 상태니까.
……굳이 조금 비교를 해보자면 아냐의 전투력은 에단의 바로 위 정도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동수?
뭐, 아직 에단은 SSS급 헌터가 되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각성하기 시작하며 그 능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와중이니까, 살짝 비교하기가 애매했다.
……뭐, 그래도 한 가지 중요한 건 아냐 정도로 이미 완성된 헌터가 길드 내로 들어오는 건 절대 손해가 아니란 거지.
“그래서, 잘 곳은 있습니까?”
“망명신청 상태라 던전을 못 들어가서 아직 잘 곳은…….”
내 물음에 대답하며 다시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는 아냐.
나는 미소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럼 길드 사무소로 가실래요? 우리 사무소에 좀 방이 남거든요. 아, 이참에 바로 가서 계약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어때요?”
내가 그렇게 돌아보며 묻자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아냐와 그 옆에 있던 나탈라.
나는 그렇게 그 둘을 끌고 헌터 협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