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나 혼자 10만 대군 154화
46장 어그로(1)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제 헌터 협회 본부의 2층.
“흠…….”
꽤 넓고 엔틱하게 꾸며져 있는 방 안에서 T. 월터는 고민에 빠진 눈으로 눈앞의 서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 잡힌 펜으로 몇 번이고 사인할까 말까 고민하며 펜을 돌리고 있던 도중, 월터의 맞은편에 있던 문이 열리며 정갈한 차림을 한 여성이 들어왔다.
“일찍 도착했군.”
“예, 어차피 이번 피해 복구 서류는 저희 헌터 협회 쪽이 아니라 미 정부 쪽에서 처리하기로 했으니까요.”
“그럼 이걸로 우선 전체적인 피해 복구에 대한 비용 문제는 전부 해결된 건가?”
월터의 물음에 에밀리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우선 워싱턴 쪽의 복구 비용은 미 정부 쪽에서 전부 지불하는 걸로 해결을 봤고 현재 이탈리아와 일본, 한국 등에서도 딱히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에밀리의 보고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월터.
“그래서, 저번에 알아보라고 했던 건 알아봤어?”
월터의 물음에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에 있던 파일을 월터에게 가져다주었고, 그는 곧바로 파일을 펼쳐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허, 확실히…… 점점 많아지고 있군.”
“예, 아마 지금 추세로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아마 1년 뒤, SSS급 헌터의 숫자가 100명도 넘을 수 있습니다.”
에밀리의 말에 월터는 허 하고 웃으며 그녀가 가져다준 서류를 훑어보았다.
‘세상이 변하면 변할수록 영웅이 나타난다더니.’
5달 전부터 이런저런 대형 사건에 휘말려 죽어 나가느라, 10명도 채 남지 않았던 SSS급 헌터의 숫자가 다시 불어나기 시작했다.
“불과 5개월 만에 25명이라…….”
15명.
전체 인구에서 고작 15명이라는 숫자는 그리 많은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SSS급 헌터가 생겨난 숫자라면 무시할 숫자가 아니었다.
처음 던전이 생겨나고, 헌터가 생겨난 뒤에도 SSS급 헌터의 숫자는 25명을 넘지 못했다.
SSS급 헌터가 제일 많았던 때가 24명.
그리고 평균적으로 유지되던 SSS급 헌터의 숫자가 20명이었다.
한데 SSS급 헌터가 9명 정도까지 추락하고 난 뒤 고작 5개월 만에 SSS급 헌터의 숫자가 25명 이상으로 늘어난 적은 처음이었다.
“아, 그래서 이번에 SSS급으로 올라간 헌터는 영입에 성공했나?”
“우선 당장 영입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저희 제안을 꽤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습니다.”
“그렇군.”
월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점점 혼란해질수록 SSS급 헌터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비록 SSS급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헌터들의 질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찾아보기도 힘들었던 S급 이상의 헌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 증거였다.
“그럼 그 녀석은?”
“……그 녀석이라면?”
“있잖아, 그 녀석. 3개월 전에 SSS급 헌터가 되었던.”
T. 월터의 말에 그녀는 아, 하며 탄성을 흘렸지만 이내 슬쩍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음, 드레이스를 말하시는 거라면 아직 그에게는 제의를 넣지 않았습니다.”
“……? 왜? 분명 그때 조건은 후하게 쳐주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월터의 말에 에밀리는 슬쩍 머리를 만지작거리곤 말했다.
“그게, 아무래도 그를 지금 받는 것은 좀…….”
“무슨 말이지? 오히려 그 녀석이 지금 헌터 협회에 있어 주면 확실히 힘이 되어 줄 텐데…… 게다가 능력도 증명이 됐고 말이야. 게다가 드레이스는 이번에 추진하는 헌터 모임에도 올 거야.”
월터는 그렇게 말하며 이상하다는 듯 에밀리를 바라봤고, 에밀리는 곧 그의 앞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무엇인가를 조작하는 듯하더니 이내 월터에게 내밀었다.
“이건?”
“드레이스가 사용하는 트위X입니다.”
월터는 에밀리의 말을 들으며 스마트폰을 넘겨받았다.
스마트폰 내에 켜져 있는 화면에는 상체에 온통 오토마틱 문신을 한 드레이스가 폼을 잡고 있는 메인 페이지가 보였고, 그는 스마트폰의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스크롤을 내리자 보이는 것은 드레이스의 사생활들.
‘뭐,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
월터는 그저 손가락을 몇 번 내리는 것만으로 드레이스의 사생활이 그리 깨끗하지 못한 편임을 깨달았다.
여자와 나뒹구는 사진은 기본이고 약을 하는 듯한 느낌의 사진도 몇 장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정도는.”
하나 월터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헌터 중에서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녀석들은 꽤 있었다.
“좀 더 아래를 내려보면 아실 겁니다.”
하나 그런 월터의 말에도 에밀리는 말했고, 월터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페이지를 계속해서 내렸다.
그리고 그는 어느 한 글을 발견했다.
“이건?”
“한번 읽어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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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스 님이 ‘김서윤 vs 언데드’ 영상을 공유했습니다!
[영상]
ㅋㅋㅋ 김서윤 싸우는 거 존나 부실하네. 그냥 속도만 빠른 거지, 나랑 싸우면 김서윤 떡실신 시킬 자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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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월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이 글이 올라온 시간을 바라봤고, 그는 이 글이 고작 하루 전에 올라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려보시면 더 있습니다.”
에밀리의 말에 그는 스크롤을 내려 그가 작성해 놓은 글들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나도 탐식 정도는 할 수 있다.
-탐식 엉덩이 탐스러운 거 봐라 ㅋ
-아무리 탐식 능력이 개사기라고 해도 나한테 걸리면 답도 없음 ㅋㅋㅋ 무조건 이길 수 있다.
“미쳤군.”
그리고 월터는 중얼거리며 에밀리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었고, 에밀리는 스마트폰을 받으며 중얼거렸다.
“이것 외에도 SSS급 헌터가 된 이후에 다른 헌터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글들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타깃이 김서윤이 된 거고요.”
“……왜 저러는 거지?”
월터는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고 에밀리는 입을 열었다.
“조사해 본 결과 그는 SSS급 헌터가 되기 이전에도 상당히 폭력적이고 오만하다는 평가를 많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아마 이번에 SSS급 헌터가 되면서…….”
“한마디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고 있다 이건가?”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월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만약 드레이스가 정말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아마 이번 모임에서 개박살이 날지도 모르겠군.”
* * *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 안.
“으…….”
나는 신음을 흘리며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다.
슬쩍 시선을 돌려 눈앞에 떠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니, 그곳에는 현재시각과 함께 도착 예정 시각이 나와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도착 시각.
원래라면 딱히 올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저도 모르게 생각하며 찌뿌둥한 몸에 기지개를 켰다.
로우레테에게 괴신에 관해 물어본 지도 1주일 정도가 지난 시점에 걸려온 월터의 전화.
그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짧은 안부 인사를 하고는 이번에 열리는 헌터 모임회에 참가해 주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이제 이계화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자리를 지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거절하려 했다.
하나 길드원들이 은근히 미국에 가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월터도 되도록 시간이 되면 참석해 달라고 부탁하는 통에, 결국 사흘 뒤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뭐 사실 이계화가 조금 빨리 일어난다고 해도 이제 내 옆에는 각성한 에단이 있기 때문에 여차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에단의 능력을 이용해서 가고 싶었지만…….
“…….”
슬쩍 시선을 돌려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자고 있는 길드원들을 보았다.
……에단 혼자서 길드원들을 전부 데리고 올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냥 비행기를 탔다.
뭐, 사실 편하게 오가는 거라면 에단의 뒤에 매달려서 가는 것보다 비행기가 훨씬 편하기도 하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야지.
“게다가…….”
어차피 이 헌터 모임이 끝나고 나면 다시 바빠질 예정이니, 마지막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잡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 * *
국제 헌터 협회로 이동하는 차 안.
“흠~”
그 차량의 뒤쪽에는 한 명의 남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정갈한 양복을 입었음에도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그의 손에는 가릴 수 없는 화려한 오토마틱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곧 운전하고 있던 남자가 백미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드레이스.”
“왜?”
“왜 이런 데를 가는 거야?”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물음.
그 물음에 드레이스라고 불린 남자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브루스, 너도 잘 알잖아? 내가 왜 가겠어?”
“……아니, 너 정말로 탐식한테 싸움을 걸 생각이야?”
브루스가 슬쩍 인상을 찌푸리자 드레이스는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고 스마트폰을 하며 대답했다.
“뭐, 싸움 정도는 아니고…… 그냥 말이나 몇 마디 거는 거지.”
키득키득.
드레이스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고, 그런 모습을 백미러로 바라본 브루스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드레이스, 말했지만 네 몸값을 올리고 싶어서 그렇게 다른 SSS급 헌터들에게 시비를 거는 건 상관없어. 오히려 네 매니저인 나도 그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근데 지금 네가 건드리는 녀석은 좀…….”
브루스가 껄끄럽다는 듯 이야기하자 드레이크는 스마트폰을 떼고 브루스를 보며 말했다.
“설마 브루스,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해?”
“탐식 영상 못 봤어?”
“당연히 봤지.”
후…….
브루스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스마트폰을 보는 드레이스를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그가 S급 헌터로 떠오를 때부터 그와 친하게 지내던 브루스는 그의 매니저로 일하며 같이 생활했다.
그렇기에 드레이스의 오만한 성격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선을 모르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브루스는 선글라스를 낀 눈으로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그를 바라봤다.
사실 SS급이 됐을 때만 해도 드레이스는 여전히 오만했지만, 계획된 오만함이었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어그로는 끌지 않았다.
계획적으로, 자신과 비슷하지만 비교해 보았을 때 약한 헌터를 타깃으로 잡아 어그로를 끌어 그 헌터를 찍어 누르고 자신의 몸값을 올렸다.
하나 SSS급 헌터가 되고 나서는 그런 선이 사라지더니 지금에 와서는 씨커 길드가 무서운 줄 모르고 거기에 소속된 탐식에게 싸움을 걸고 있었다.
‘……그 녀석들은 이미 SSS급 헌터를 넘어 섰어.’
브루스는 교차로에 들어서며 저번에 봤던 씨커 영상들을 생각했다.
SSS급 헌터도 제대로 벌이지 못할 법한 일들을 씨커 길드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고 있었다.
브루스는 스마트폰을 보며 피식 웃고 있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쉰 뒤 계속 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