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0만 대군-153화 (153/202)

# 153

나 혼자 10만 대군 153화

45장 불편한 진실(3)

모든 것이 붉은빛으로 물든 세계.

하늘은 마치 시꺼먼 물감을 부어놓은 듯 어두침침했지만, 그럼 어둠과 대비되게 지상은 붉은 용암으로 끓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 사방으로 불똥을 튀기는 용암, 그리고 그사이에 이리저리 얽혀 있는 날카롭고 뾰족한 돌.

그리고 그런 용암이 들끓어 오르는 곳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땅의 지반과 같이 붉은빛이 감돌고 있는 거대한 성.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거대한 홀 끝의 왕좌에서는 한 남자가 거대한 옥좌에 홀로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리 위에 나 있는 거대한 뿔과 붉은 머리칼, 혈색이 제대로 돌지 않는 듯한 푸른색의 피부.

그리고 곧 곧 그의 눈이 떠지기 시작했을 때 흰자위 대신 보이는 흑자위와 검 붉은색의 홍채는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들어와라.”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음에도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고, 그와 함께 검은 문이 열리며 온몸을 푸른 갑옷으로 덮은 남자가 나타났다.

고풍스러운 문양을 담고 있어 언뜻 보면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갑옷을 두른 남자는 이내 오연하게 앉아 있는 남자의 앞에 부복했다.

“사탄 님을 뵙습니다.”

남자의 말에 사탄이라 불린 그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고, 갑옷을 입은 남자는 이내 보고하기 시작했다.

“현재 단탈리안 님이 관리하고 있는 제1지구에서 수확한 영혼은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영계로 내려올 예정입니다.”

“수확을 끝냈나?”

“아직 전부 끝나지는 않았지만 1달 내로 전부 끝낼 것 같다고 합니다.”

푸른 갑옷을 입은 남자의 말에 사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끝으로 성내에 느껴지는 잠시간의 침묵.

사탄의 붉은 홍채가 부복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고, 이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그 갑옷을 껴입고 있을 생각이지?”

“네? 그게 무슨…….”

“혹시 지금 발뺌할 생각인가? ‘헤르메스’?”

사탄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하고 미소를 지었고, 그와 함께 고개를 들어 사탄과 눈을 마주친 듯 보이는 남자는 곧바로 부복 자세를 풀고 몸을 뒤로 튕겨냈지만.

깡! 콰드드득!

“큭!”

마치 인력을 무시하듯 사탄의 앞으로 끌려온 갑옷을 입고 있던 남자, 헤르메스는 이내 인상을 찌푸렸고, 사탄은 그런 헤르메스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은 뒤 말했다.

“그렇게 단탈리안의 수족으로 변해 있으면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도대체 어떻게……? 내 동화 능력은 완벽했을 텐데……!”

헤르메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가 가진 동화의 능력은 자신이 죽인 상대를 완벽하게 카피하는 능력이었다.

외형부터 시작해 신체 구조, 마력, 말투, 기억까지.

그 무엇하나 다른 것 없이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헤르메스가 가지고 있는 동화의 능력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헤르메스는 이 영계를 훔쳐보기 위해 자신의 원래의 신격까지도 다른 신에게 맡긴 채 단탈리안의 아래로 들어가 영계를 염탐하고 있었다.

그렇게 복잡한 얼굴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중 그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사탄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영 쓸모없는 능력인 줄 알았는데…… 헤스티아에게서 빼앗은 진실의 눈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군.”

씩 웃으며 냉소적으로 말하는 사탄의 모습에 헤르메스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네 녀석 설마 헤스티아를……!”

헤르메스는 뒤늦게 자신의 능력을 풀어헤쳤지만, 영계에 오기 위해 신격을 놓고 온 헤르메스는 사탄에게 저항하지 못했고, 사탄은 자신의 마력에 구속되어 몸을 이리저리 뒤틀고 있는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신들은 하나같이 불완전한 것들뿐이군.”

까딱까딱.

“그 잘난 신격을 가지고는 중간계와 영계에 제대로 간섭할 수도 없고, 신격을 내려놓으면 그냥 강한 인간 정도 수준밖에는 안 되고…….”

꾸욱-

“끄으윽!”

손가락을 까딱거리던 사탄이 구속되어 있는 헤르메스의 머리를 짓밟았다.

“근데 또 내가 영혼을 수확해서 자기들만큼 강해지면 내가 신계까지 올라와서 깽판을 칠까 봐 어떻게든 중간계서 막으려고 발악하지. 병신 머저리에 이기적인 새끼들.”

가볍게 조소한 그는 밟고 있던 헤르메스의 머리통을 그대로 강하게 차버렸고, 그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 성벽 한구석에 처박힌 헤르메스는 끅끅거리는 신음을 흘렸다.

그런 헤르메스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사탄은 이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네 능력은 수확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로군.”

“큭…… 끄윽.”

“그러니 특별히 살려주마. 그 대신 너는 그 잘난 신계에 가서 내 말을 똑똑히 전해라.”

사탄은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헤르메스에게 다가왔고, 이내 그의 머리채를 잡아채곤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중간계를 정리하고 나면 그쪽으로 갈 테니까, 목 씻고 기다리라고 말이다.”

* * *

고풍스러운 도서관의 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로우레테가 들어간 책상 사이를 바라봤다.

괴신에 대해 무언가를 설명하려다 이내 잠깐 기다려 보라는 말과 함께 책장 안으로 들어간 로우레테는 체감상 30분 정도가 지난 것 같은데도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괴신에 관한 내용이라도 찾고 있나?

나는 로우레테에게 사다 주었던 초콜릿 파이를 한입 베어 물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시기상으로 봤을 때 던전 침식, 그러니까 이계화가 일어나기까지는 이제 2달 정도.

하나 그마저도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생각해 보면 빨리 일어날 확률이 있었고, 그 녀석은 분명 이계화 이후에 괴신(怪神)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회귀 전에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름.

“…….”

물론 크세즈베트가 나와 함께 회귀한 이후부터 이 세계가 회귀 전처럼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깨닫고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 뒤틀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음, 너무 기다리게 했…… 아앗!”

“……?”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로우레테가 아까 들어갔던 책장 사이를 빠져나오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왜 그래?”

“그거…… 내, 초콜릿 파이…….”

“아, 응. 하나 먹었는데?”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그렇게 말하며 책장 사이를 빠져나오다 말고 눈에 띄게 풀이 죽어버리는 로우레테를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꺼냈던 상자를 확인했고, 그곳에는 분명 몇 개 정도 남아 있을 줄 알았던 초콜릿 파이가 하나도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게 마지막.

“바나나 우유 중에 하나는 초콜릿 파이랑 같이 먹으려 했는데…….”

“……우선 이야기 듣고 나가서 다시 사다 줄게.”

“……바나나 우유도.”

“알았어.”

내가 그리 말하자 곧바로 시무룩한 표정을 지우는 로우레테.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의 위엄을 보이려는 태도를 몇 번이고 본 것 같은데 최근에 보이는 모습은 그저 어린애와 같은 모습이었다.

특히 파이류 과자와 얽혔을 때는 더더욱 어린애가 된다.

……뭐, 내 입장에서는 딱 외견에 어울리는 행동 패턴이라 저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자신의 손에 책 하나를 끼고 책상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은 뒤에 입을 열었다.

“우선 그럼 지금부터 설명해 주도록 하지.”

“…….”

“우선 네가 물어본 괴신이라는 녀석들은 설명하기 복잡미묘한 녀석들이기는 하지만 그냥 간단하게 묶어 말하면 반신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반신이라고?”

내 되물음에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고, 한동안 로우레테의 설명을 듣고 있던 나는 이내 이해한 것들에 대해서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괴신’이라는 것들은 신좌에서 추방당한 이들을 가리키는 거야?”

“……뭐, 사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괴신이 된 녀석들이 있지만, 보통은 신좌에 머무르다가 추방된 녀석들이 제일 많다.”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떠오른 의문에 말했다.

“근데 신들은 왜 추방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지금까지 신들이 추방되는 대표적인 이유를 몇 개 꼽아보자면…….”

그녀는 그렇게 말을 줄이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했고, 곧 생각을 정리한 듯 말했다.

“뭐, 기본적으로는 같은 신을 죽이는 신살자들이 대부분이긴 하지.”

“……신살자?”

“그 이외에도 중간계에 내려가 완전히 중간계를 박살 내 개판을 치는 녀석들도 있고…… 뭐,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보통은 신들이 추방되는 이유로서는 ‘신살’이 대부분이군.”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목을 가다듬듯 흠흠거렸고 나는 곧 로우레테게 다시 물었다.

“그럼 이제 괴신이 뭔지는 알겠는데, 네가 아까 그랬잖아? 괴신이 나오면 우리한테는 좋겠지만 2지구를 지키고 있는 나한테는 안 좋을 거라고. 그건 무슨 소리야?”

내 물음에 로우레테는 바로 답했다.

“뭐, 말 그대로의 이야기다.”

“말 그대로의 이야기?”

“생각해 봐라, 같은 신을 살해하고 신좌에서 추방된 싸이코가 네 세계에 나타난다면 어떻겠나.”

“……아.”

확실히…….

“게다가 그 녀석들은 네 세계에 현재도 나타나고 있는 몬스터처럼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녀석들도 아니다. 오히려 지성을 가지고 있어서 상대하기가 더 어렵다고 봐야지.”

“……좋아, 그것까지는 단점이고 ‘우리’에게 좋은 점은 뭔데?”

“그건 바로 네가 그 괴신들을 잡으면 신격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

“……신격을 얻을 수 있다고?”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괴신들은 신좌에서 추방되며 그 힘을 잃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신격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솔직히 네가 살고 있는 곳에 괴신들이 얼마나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괴신들을 처리하면 할수록 사탄을 이길 확률은 올라가지.”

“…….”

그 이후로 로우레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곧 괴신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로우레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초콜릿 파이를 사러 밖으로 나갔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모여 앉아 있는 길드원들을 보았다.

그런데…….

“……너희 좀 이상해 보인다?”

흠칫.

내가 말하자마자 눈에 띌 정도로 몸이 경직되는 길드원들을 보며 나는 묘한 느낌을 받았고, 이내 제일 끝에 앉아 있는 에단에게 시선을 주었다.

절레절레.

하나 에단은 자신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고, 나는 서로 묘하게 시선을 피하고 있는 그들을 바라봤다.

김서윤은 왠지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가 힘든 건지 스마트폰에 자신의 얼굴을 박고 있었고, 이은별은 평소에 쓰던 수첩은 어디 갔는지 빈손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리남은 켜둔 개그 프로를 켜둔 TV로 시선이 가 있었는데 웃긴 장면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 반응이 없었다.

완벽할 정도의 무반응.

그리고 분명 1주일 전까지만 해도 활발했던 이로하는 묵묵히 입을 닫고 있었다.

……?

휴가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나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있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는 로우레테에게 사줄 초콜릿 파이를 사기 위해 몸을 움직였고.

“아, 그러고 보니까, 형!”

그러던 도중 들린 에단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