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나 혼자 10만 대군 145화
44장 전조(2)
슬라임처럼 뚝뚝 떨어지는 불안정한 형체를 가졌는데도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몬스터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
몬스터를 마주 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행동하기 전에는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 형태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몬스터.
저것이 바로 이 각성 던전 그림자 협곡에 나오는 최종 보스였다.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내 주변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자마자 나와 똑같이 어두운 무엇인가로 이루어진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보스 몬스터.
“쯧.”
나는 보스 몬스터의 뒤에 나타난 그림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림자 협곡의 최종 보스는 제대로 된 형체가 정해지지 않아 정확한 명칭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헌터들 사이에서는 커퍼마이즈라고 불렸다.
커퍼마이즈, 한국어로 번역하면 따라쟁이.
저 녀석은 그 어떤 헌터의 기술이라도 말 그대로 똑같이 따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굉장히 성가신 능력.
차라리 신격 각성을 사용해 빠르게 눕힐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녀석이 신격 각성까지 따라 한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만약 신격 각성까지 따라 할 수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나였으니까.
……물론 사용하지 않는다면 녀석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무래도 신격 각성을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기 때문에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 나는 곧바로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동화를 사용해도 능력을 똑같이 따라 쓰고, 각성을 사용해도 능력을 그대로 복사한다.
차이가 나는 건 전체적인 피지컬과 순간적인 판단 능력 정도.
그것마저도 무척이나 사소한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초조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꽝!
이미 완전히 형체를 바꾼 검은 무언가가 내가 주먹을 부딪쳤다.
그와 함께 들리는 폭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른손에 쥐고 있던 핸디드를 휘둘렀다.
카가가가가가각!
핸디드와 검은 검이 부딪칠 때마다 쇳소리가 섞여 나오고, 공격을 이어나갈 때마다 몸이 검은 형체의 몸이 크게 일렁인다.
주변은 이미 내가 만들어낸 그림자와 내 능력을 따라 한 커퍼마이즈의 그림자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병장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녀석은 아직도 멀쩡하게 서 있었다.
어차피 나는 이 녀석을 회귀 전에 이겨본 기억이 있으니까.
나는 다시 한번 달려나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 * *
“……우선 얻기는 얻었는데. 진짜 이거 맞나?”
프랑스에 있는 S급 개방 던전 욕구의 카니발에서 김서윤은 욕구의 카니발의 보스인 붉은 악마를 죽이고 녀석이 쥐고 있던 거대한 삼지창에서 붉은 보석을 빼 들었다.
“분명히 아저씨한테 들었던 말로는 이 붉은 보석이 확실하다고 했는데…….”
김우현은 어제, 아니, 불과 10시간 전 갑작스레 횃불 안에서 튀어나와 자신을 비롯한 길드원들을 불러냈다.
그러고는 길드원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며 다음 각성 아이템의 위치를 알아왔다고 말했다.
‘도대체 아저씨는 그 횃불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예전부터 몇 번이고 횃불 안에서 뭘 하냐고 물어봤지만, 그저 피식 웃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길래 묘하게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횃불 안에서 이렇게 각성 아이템의 위치를 알아 나올 줄이야.
‘……더 궁금해.’
김서윤은 김우현이 도대체 그 횃불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더욱 궁금해졌지만, 이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붉은 보석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나가자.’
김서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던전의 밖으로 향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촤아아아악!
“……!?”
김서윤은 자신의 손에 있던 붉은 보석이 액체로 변해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붉은 보석에서 손을 빼버렸다.
하지만 붉은 보석은 김서윤이 손에서 떨어진 뒤에도 김서윤에게 다가왔고, 곧 그녀는 붉은 보석에서 만들어진 붉은 액체에 갇혔다.
“무, 뭐야!?”
김서윤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주변을 구 형태로 감싼 붉은 액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탐식을 끌어올려 곧바로 주먹을 들었지만.
[그만, 그만, 그거 터뜨리면 너 각성 못 한다?]
“……!?”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김서윤은 뒤를 돌아봤다.
[안녕, 내 파편, 아니, 이제 예비 계승자로 불러줘도 되려나?]
그리고 그 붉은색의 공간으로 이뤄져 있는 그곳에서 김서윤은 온몸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오른쪽 이마에는 거대한 뿔을 기점으로 작은 잔 뿔들이 일렬로 주르륵 나 있었고, 마치 옛날 사람들이 입는 것 같은 호피 무늬의 가죽을 허리에 두른 남자는 느긋하게 땅바닥에 앉아서 웃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죠?”
김서윤은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온몸을 긴장시켰지만, 그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글쎄,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댈 수 있는 이름이 또 많아서 말이야.]
“뭐라구요?”
[그중 하나만 이야기해 줄까? 아니면 내가 있는 이름 전부? 음, 내 이름을 하나만 말하면 못 알아들을 수도 있고, 그러자고 전부 말하기에는 너무 많네.]
붉은 피부를 가지고 있는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이내 뭔가를 고민하듯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더니 이내 무엇인가를 만족한 듯 입을 열었다.
[뭐, 전부 소개하기는 너무 시간이 걸리니 그냥 간단하게 몇 개 정도로 축약해서 말해주지.]
“…….”
김서윤이 전혀 대답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이야기를 진행 시킨 남자는 이내 입을 열었다.
[나는 용을 먹어치운 자.]
[마왕의 머리를 먹어치운 자.]
[신을 먹어치운 자.]
“……그건 이름이 아니지 않아요?”
김서윤이 떨떠름하다는 투로 그의 말을 들으며 대답하자 남자는 피식하며 웃더니 말했다.
[유감이지만 내게는 이게 이름이다. 내가 행한 것들은 모두 나를 부르는 말이 되었고, 그것은 곧 이름이 되었으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뭐 하지만 이렇게 부르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이제부터 내 파편인 너는 나를 이렇게 부르면 된다.]
“…….”
붉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입가를 비틀며 입을 열었다.
[아귀신]
“아귀…… 신?”
[그래. 사실 이렇게 너와 대면할 수 있을 때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당장은 그럴 시간이 안 되는 것 같군.]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김서윤의 물음에 자신을 아귀신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다. 원래라면 네가 이 파편을 발견한 뒤에는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려고 했지. 네가 가지고 있는 힘의 근원부터 시작해서 네가 각성할 다음 능력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까지 말이야. 그런데…….]
아귀신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리고는 말했다.
[네가 타이밍이 안 좋았어.]
“……제가요?”
[그래, 어떻게 하필이면 딱 악마가 넘어올 때 파편을 얻은 거야?]
“악마요?”
[그래, 악마.]
“……그게 뭔데요?”
김서윤이 슬쩍 인상을 찌푸리면서 묻자 그는 난감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것도 모르고 있던 거야? 뭐, 본격적으로 세계가 멸망하기 전에야 당연히 ‘악마’를 알 도리가 없긴 한데…….]
“네? 세계 멸망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아니, 그 표정은 뭐예요?”
아귀신의 묘한 표정에 김서윤은 저도 모르게 발끈하며 물었지만 그는 아귀신은 그런 김서윤의 모습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우선 네게 설명해야 하는 게 산더미지만 내가 조금 전에 말했듯이 지금 당장은 타이밍이 안 좋아서 네게 설명해 줄 시간이 없어. 그건 대충 이해했지?]
“아니, 대충 시간이 없다는 건 이해를 했는데.”
[그러면 됐으니까 지금부터 바로 시험으로 넘어가자.]
“네? 시험이요?”
[그래, 시험.]
김서윤은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아니, 지금 시간 없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 상황에서 시험을……?”
[……어쩔 수 없어. 이 시험은 네 탐식의 다음 능력을 얻으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니까.]
아귀왕의 말에 김서윤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남자를 봤다.
붉은 보석에서 뿜어나온 액체에서 나온 그는 나온 당시부터 지금까지 당최 알 수 없는 소리만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앞에 있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대충 알아들었다.
‘……은별 언니랑 리남이 오빠 그리고 이로하 언니까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어.’
언젠 한번 길드원들과 처음 각성했을 때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녀는 길드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각성할 때 만났던 신 비슷한 사람들이 자신은 제대로 알아먹지도 못하는 소리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한동안의 침묵.
그리고 곧 아귀신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 찰나에 김서윤이 말했다.
“지금 바로 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 지금 당장 하면 된다.]
‘그래, 사실이 뭐든 간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그녀가 동의하자마자 아귀신이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려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김서윤은 생각을 이어나갔다.
‘중요한 건 내가 이 시험이라는 걸 통과하면 더 강해진다는 것뿐이니까……!’
* * *
어두운 공간.
투, 투툭, 툭.
환하게 밝혀져 있는 마법진의 옆에서 알리샤는 자신의 배에 튀어나와 있는 보라색의 창을 보며 말했다.
“엘리고, 르…… 끄윽!”
촤아악!
알리샤의 중얼거림과 함께 창이 빠져나가고 그녀는 그 상태로 쓰러져 관통한 배를 부여잡았지만 이미 배 뚫린 배에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끄, 으윽!”
알리샤의 신음에 그녀의 뒤에서 피가 묻은 자신의 애창을 짧게 턴 엘리고르는 이내 주변에 펼쳐져 있는 마법진과 그 옆에 있는 마법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놀랐어. 내가 이렇게 할 걸 예상하고 따로 도주 루트까지 만들어놓을 줄은 몰랐거든.”
“크, 읍…… 끅.”
엘리고르의 칭찬에도 알리샤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알리샤를 보며 말했다.
“아무튼, 고작 인간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좀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맙다고는 해둘게. 네가 한 일은 그 말을 들을 가치가 있는 것들이니까.”
키득키득.
그녀는 그렇게 웃더니 환하게 발하고 있는 마법진을 확인했다.
“네 덕분에 모든 일을 편하게 처리했어. 저쪽 세계에 있을 내 부하들을 이곳으로 불러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크세즈베트를 강제 소환하는 일까지 전부 말이야.”
“내, 가 이렇게 그냥 죽…… 을 것 같아?”
엘리고르가 비아냥거림과 동시에 알리샤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
“고작 네가 어떻게 하려고? 이미 어떻게 손 써보려고 해도 이미 모든 일은 시작됐어.”
엘리고르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