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나 혼자 10만 대군 144화
43장 전조(1)
[너는 대…… 체……!]
어둠으로 물든 대지 위, 엘리고르의 제4군단장이자,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수인 이르쉬는 내 앞에 그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온통 근육으로 뒤덮인 몸에서는 붉은색의 피가 아직까지도 터져 나오고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크기의 도끼와 그 도끼를 들고 있던 오른팔은 저만치 떨어져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같이 있던 6군단장과 8군단장은 차가운 주검이 되어 대지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절대로 너희에게 유일한 싸움이 아니라고.”
나는 손에 쥔 핸디드를 고쳐 잡고는 말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다섯 군단장이 전부 당하다니……!]
현실 부정하는 이리쉬.
나는 그 이상 듣지 않고, 핸디드를 고쳐 쥐고는 그대로 이리쉬의 머리를 사선으로 베어버렸다.
사방으로 피를 튀기며 그 거체가 뒤로 넘어간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주변을 둘러봤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묵빛의 대지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많은 몬스터의 사체뿐.
사방에 널린 사체들을 한곳에 모으면 정말 산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자신들의 주인과 함께 묵빛의 대지 위를 뒹굴고 있었다.
“후…….”
확실히 모여 있는 군단장들을 상대하는 건 제한 시간이 있는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한 시간이 아쉽네”
묵빛의 세상이 다시 잿빛으로 돌아오고, 그와 함께 두통이 몰려왔다.
군단장들을 죽일수록 신격 각성의 제한 시간은 분명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지난 2일간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을 반복했다.
신격 각성을 해서 군단장들의 힘을 빼놓거나 죽이고, 제한 시간이 다 될 것 같으면 그대로 도망쳤다가 다시 신격 각성의 쿨타임을 채워서 돌아와 싸움을 이어나간다.
그 덕분에 나는 모여 있던 다섯 군단장을 전부 죽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줄어드는 몬스터 군단에 비해 나는 마정석으로 그림자를 무한히 수급할 수 있었고, 심지어 위험할 때는 곧바로 전투에서 이탈할 수 있었으니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은 내가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쯧.”
다만 안타깝게도 이 전법은 어디까지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나 사용 가능한 전법이었다.
뭐, 그래도 목표한 바는 절반 정도 달성했으니까.
이리쉬의 사체를 툭툭 찼다.
힘없이 뒤집히는 육체.
원래 목표했던 대로 1번대 군단장들의 대다수를 죽일 수 있었다.
그 이외에도 1번대 군단장들의 주변에 끼어 있었던 10번대 군단장들도 죽일 수 있었고, 지금에 와서 남은 군단장은 1군단장과 2군단장, 그리고 3군단장뿐이었다.
“…….”
우선 돌아가자.
나는 망설임 없이 파란 주머니 안에 있는 파란 구슬을 쥐었고, 그와 함께 내 앞에 생성된 푸른 균열을 향해 몸을 옮겼다.
“이번에도 금방 돌아왔군.”
균열을 넘어 도서관으로 돌아오자마자 들리는 목소리.
“말했잖아, 신격 각성이 끝나면 저기에 있어봤자 별 의미가 없어.”
우물우물-
그녀는 씹고 있던 가나다 파이를 전부 삼키고, 내가 덤으로 사 온 바나나 우유까지 한 번 홀짝이고는 말했다.
“그래서 이제 남은 군단장은 1번대의 맨 앞줄인 그 3명밖에 없는 건가?”
“그렇지. 아직 10번대는 남아 있지만.”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딱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너는 악마가 나올 때까지 10번대 군단장들을 처리해라.”
“응? 왜? 이제부터 그 남은 세 명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너 혼자서는 그 세 명을 감당하지 못할 거다.”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고?”
“그래, 네가 지금 그 녀석들이 있는 곳에 가면 너는 지금까지 네가 해왔던 유리한 전투를 할 수 없을 테니까.”
“……차원 이동이 막힌다는 소리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3군단장의 능력을 생각해 보면 아마 그럴 것이다. 물론 신격 각성을 한다면 네 무력이 그 녀석들보다는 우위에 서겠지만…… 뭐 이 정도까지 말했으면 대충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의 말이 맞기는 했다.
다섯 군단장을 죽일 때도 나는 유리한 상황을 끌고 나가 결국 군단장들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유리한 상황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면?
게다가 거기에 덤으로 로우레테에게 전에 간략하게 설명을 들은 바로는 1군단장부터 3군단장까지는 지금까지 상대한 군단장들보다도 강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군단장들을 그냥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그건 맞는 말이지. 하지만 지금 네가 그 녀석들을 확실하게 이길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 않나?”
“뭐, 그렇기는 한데.”
그녀의 말에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우레테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 녀석들을 이기는 건 힘들지도 모른다.
만약 녀석들이 떨어져 있다면 신격 각성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어차피 군단장들이 모여 있다고 했으니, 그 가정은 의미 없는 가정일 뿐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자 로우레테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
“너는 조금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가나다 파이 박스 아래에 있던 종이를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설마 하며 물었다.
“이건?”
“네 각성 던전의 좌표다.”
“정말?”
“그럼 거짓말일 것 같나? 설마 네가 군단장들을 사냥하는 동안 내가 가만히 놀고만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솔직히 매번 균열 넘어올 때마다 내가 사다 준 파이만 먹고 있길래 느긋하게 놀고 있는 줄 알았지만…….
나는 그것을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절대 아니지!”
“…….”
순간 침묵이 흘렀지만, 로우레테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뭐, 넘어가도록 하지.”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로브 안쪽에서 또다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이건?”
“그건 네 동료들이 찾아야 할 각성 던전이다. 그쪽 세계에서의 이름을 몰라서 따로 계산한 좌표를 적어놨으니까, 네 동료들에게는 거기를 찾아보라고 해라.”
로우레테의 말을 들으며 종이를 펼쳐보니, 그곳에는 길드원들의 이름과 무척이나 긴 좌표가 적혀 있었다.
“그럼 각성 던전은 언제 가는데?”
내 물음에 그녀는 말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네가 각성 던전에 들어가는 건 엘리고르가 깨어나고 난 뒤니까.”
“뭐? 그러면 군단장들을 죽일 수가…….”
“내가 왜 네 동료들의 각성 던전까지 찾았다고 생각하나?”
그녀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고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네가 다음 각성 아이템을 얻고 얼마나 강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딱히 무리할 상황은 아니다. 네가 모아놓은 동료들이 있으니까.”
엘리고르는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작동되고 있는 균열의 장치를 끄고는 말했다.
“네 동료들이 각성 아이템을 얻고 더 강해진다면, 네가 균열을 넘어서 그 녀석들을 잡는 것보다 아마 엘리고르와 군단장들이 넘어왔을 때 네 동료들과 협공하여 군단장들을 잡는 게 훨씬 편할 것이다. 위험부담도 덜 될 거고.”
……확실히 그렇기는 했다.
그렇게 수긍하고 있으려니, 그녀가 슬쩍 나를 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은 뒤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는 10번대 애들을 최대한 정리하도록 하자.”
* * *
검은 외성.
대충 70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그 공간에서 내뿜던 고유의 능력이 서서히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엘리고르는 그 틈을 타, 큰 마력의 소모를 감수하고 그 짜증 나는 공간 속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공간을 빠져나온 뒤, 자신의 거처라고도 할 수 있는 검은 외성에서 들은 말은 엘리고르의 기분을 나락으로 처박아 버렸다.
“다시 한번 말해봐. 뭐라고?”
엘리고르의 입에서 씹힌 음성이 튀어나온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한 엘리고르의 모습.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알리오스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총 60개 군단 중 51개 군단이 전멸했습니다. 현재 살아남은 군단장은 1군단장, 2군단장, 3군단장 이외의 10번대 군단장 여섯이며, 다른 군단장들은 모두 차원을 넘어온 그림자 왕에 의해 전부 죽었습니다.”
꽈드드드드드득!!!
알리오스의 무감정한 보고에 엘리고르가 쥐고 있던, 뼈로 된 옥좌의 손잡이가 부서져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엘리고르의 주변에 있던 검은 대리석과 옥좌가 그녀가 방출하는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 나갔다.
그녀는 마력의 폭주를 제어하지 않고, 고성 여기저기에 자신의 마력을 방출했다.
고성이 힘을 버티지 못하고 깨져 나간다.
엘리고르가 화풀이로 자신의 성을 반파시켰을 만들었을 때쯤, 엘리고르는 방출하던 마력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알리오스.”
“네.”
“지금 여기에 있는 군단장들이 누구지?”
“저를 포함해 2군단장인 ‘락샤’ 랑 3군단장인 ‘스파시’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다른 군단장들을 전부 이곳으로 모아.”
“언제까지 모으면 되겠습니까?”
“사흘, 아니, 이틀이야. 이틀 안으로 군단장들을 다 이곳에 모아놔.”
엘리고르의 말에 무언가 말하려던 알리오스는 보라색 안광을 흩뿌리는 엘리고르의 모습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리오스가 고개 숙여 답하자, 엘리고르는 시선을 돌려 제 3군단장이자 ‘공간’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스파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이틀 내로 대형 차원진을 만들어. 알았어? 정확히 이틀이야.”
“……알겠습니다.”
대형 차원진을 만드는 것은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10일 정도는 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스파시는 그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엘리고르의 말을 받들었다.
그녀는 2군단장을 한 번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시작해. 정확히 이틀 뒤에 내가 말한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면, 너희도…… 알지?”
그 말을 남긴 엘리고르는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검은 외성에서 워프했다.
곧 그녀는 자신이 마정석을 가져다 놓은 어두운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온 거야?”
알리샤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엘리고르를 보고는 궁금함을 담아 물었지만, 엘리고르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질문했다.
“마법진은 완성했어?”
“우선 그리는 것만이라면 전부 완성했다.”
알리샤는 평소처럼 느긋한 웃음이 아니라, 잔뜩 굳어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않았다.
엘리고르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바로 크세즈베트를 소환할 거야.”
“……뭐? 지금 바로?”
“그래,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