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나 혼자 10만 대군 141화
42장 빈집 털이(1)
아무것도 없는 어둠.
어디가 위인지도, 혹은 아래인지도 모를 그곳에서 엘리고르는 자신의 마력을 사방으로 뿌려대고 있었다.
꿍! 꿍! 꿍!
하나 엘리고르가 자신의 마력을 가감 없이 뿌려 주변 공간을 깨부수거나 혹은 빠져나가려고 해도 이 공간에 애초에 ‘전이’를 거부하는 듯 엘리고르의 마력을 흩어놓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진짜!!!”
쿠구구구구궁!!
엘리고르의 마력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인위적인 폭음을 만들어냈지만, 그럼에도 그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터져 나왔던 엘리고르의 마력을 무효화시킬 뿐.
결국 그녀는 더 이상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 무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고 마력을 거둬들였다.
“그림자 왕…… 이 개새끼……!”
그리고 곧 엘리고르는 몸 안에 들끓는 분노를 자신을 이곳으로 가둬 버린 그림자 왕에게로 돌렸다.
‘도대체 나를 이곳으로 가둔 그 구슬은 뭐지? 그보다 고작 파편 따위가 어떻게 나와 비슷하게 움직일 정도의 힘을 얻은 거지?’
하나부터 열까지 의문투성이인 상황에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엘리고르는 이를 악물며 이 검은 공간을 둘러보았다.
마력을 흩뿌리면 그 마력을 곧바로 흩어버리는 공간.
“쯧.”
무척이나 희미하지만 엘리고르는 자신의 마력을 흩어버리는 능력이 희미하게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이 공간의 효과가 여기서 더 약해지면…….’
그때는 아마 마력을 이용해 이 공간에서 억지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까드드득!
‘여기서 나가면……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엘리고르는 이를 악물며 다시 한번 그림자 왕을 생각했다.
그렇게 엘리고르가 아무것도 없는 공간 안에서 개고생을 하고 있을 때, 이미 멸망해 버린 제3지구에서 엘리고르의 명에 따라 적당히 고곳에 주둔했던, 제9군단장이자 멸망하기 이전의 세계에서는 죽음 가시라는 이명으로 불렸던 이블리스는…….
[도대체 저건…… 뭐냔 말이다!]
끝없이 밀고 들어오는 그림자들을 보며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잿빛의 대지에 붉은빛의 가시가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끼에에에에에엑!
전방으로 튀어 나간 가시들이 피아를 가리지 않고 꿰뚫으며 그림자의 수를 줄이는 것 같았지만…….
[왜 줄지 않는 거지!?]
줄지 않는다.
그냥 줄지 않았다.
분명 20분 전부터 시작된 싸움으로 온몸에 가시가 박혀 있는 그의 부하들은 그림자들에게 당해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깨지고, 찢어지고, 베이고, 눌리고.
부하들의 시체는 이미 너무나도 많았다.
하나 그에 비해 그림자는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점점 늘어난다.
분명 처음에는 부하들의 반도 안 되던 녀석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아졌다.
마치 끝없이 분열하는 슬라임처럼.
꽝!
그러던 중 이블리스는 눈 깜짝할 새 자신의 앞으로 날아드는 주먹을 막아냈다.
그러나 팔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슬슬 버티네?”
이블리스는 묵빛의 코트를 입은 남자를 마주했다.
[네 녀석은 누구냐……!]
“너희는 어째 하는 말이 다 똑같냐?”
쌍검을 들고 전투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제9군단장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엘리고르를 가두고 난 뒤, 나는 곧바로 그녀의 손발이라고 할 수 있는 군단장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군단장은 내 예상보다도 쉽게 죽음을 맞이했다.
신격 각성을 쓰고 달려드니, 제대로 대응조차 해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확실히 신격 각성은 리스크가 있지만 이런 면에서는 확실하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어차피 싸울 타이밍을 일방적으로 고를 수 있는 지금은 신격 각성의 리스크는 그리 큰 게 아니니까.
……뭐, 굳이 말하자면 내 두통 정도가 리스크의 전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까지지지지직!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도 잠시, 나는 발아래서 튀어나온 붉은 가시를 피했다.
피한 자리에 다시 한번 솟아나는 가시, 이블리스는 허공에 뜬 내 몸을 보고 기회를 잡았다는 듯 땅속에서 가시를 뽑아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블리스의 가시는 그림자에 막혀 더 이상 내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로우레테의 말로는 이 근처에 7군단장과 8군단장이 함께 있다고 해서 신격 각성을 사용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지 않는 것 같으니까……!
그 생각과 함께 잿빛 대지가 어둡게 물들었다.
[이건 또 무슨…… 커억!?]
그리고 대지가 완전히 어둠에 물든 순간, 나는 이블리스의 눈앞으로 다가가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이블리스.
콰지지지지지지직!
이블리스의 몸이 잿빛 대지를 갈며 미끄러져 날아간다.
나는 그림자를 이용해 저 멀리 날아가는 그의 발을 붙잡아 그대로 들어 올려 땅바닥에 찍어댔다.
꽝! 꽝! 꽝! 꽝!
사방으로 움직이며 이블리스의 몸을 몇 번이고 찍어 내린다.
변변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내 그림자에게 발을 잡혀 이리저리 처박히며 지반을 부수는 이블리스.
아마 신격 각성을 하기 전이라면 이 녀석을 이렇게 다루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머리 위에 일식이 유지되는 동안은 이렇게 엄청난 출력을 내는 것이 가능했다.
[끄어어어어……!]
그렇게 녀석의 몸을 바닥에 패대기친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 전만 해도 멀쩡하게 입을 열던 이블리스의 몸이 마치 걸레짝처럼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몸에 핸디드를 찔러 넣었다.
크게 몸을 떤 이블리스는 이내 그대로 몸을 늘어뜨리며 죽음을 맞이했다.
제3지구를 멸망시키는 데 일조한 녀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죽음.
군단장이 죽자마자 그림자와 싸우던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미 주변은 그림자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까직! 꾸드드득! 꽈직!
한마디로 도망칠 곳은 없었다.
9군단장 휘하의 몬스터들이 외형이 변경된 그림자에게 죽어 나간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그림자들 속에서 마치 이블리스의 부하와 같은 외형의 그림자를 발견했고…….
까지직!
“윽!”
태양을 가리던 그림자가 깨짐과 동시에 나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부여잡았다.
머릿속에 느껴지는 두통.
‘신격 각성’이 그 안에서 군단장들을 잡을 때마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느껴졌다.
능력의 지속시간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버프 효과까지 다양하게 그 능력이 성장하고 있었지만, 정작 능력을 사용하고 나면 두통이 느껴지는 건 변하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보면 두통이 조금 줄어든 것도 같지만 그래도 머리가 아픈 것은 변함이 없었다.
어두운 세계가 반전하듯 뒤바뀐다.
조금 전까지 하늘에 떠 있던 어두운 태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곳에는 잿빛의 하늘이, 어두운 대지 대신에는 회색빛의 지반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꽝!
“……!?”
나는 본능적으로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무언가를 피하기 위해 몸을 틀었고.
[정말이군. 그 하늘에 떠 있는 이상한 것만 사라지면 약해진다는 사실이.]
그와 함께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나를 바라보며 서 있는 3명의 인간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인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형상을 한 무언가라는 게 더 적절해 보였다.
나는 내 오른쪽에 박힌 거대한 창을 바라보고는 그림자들을 끌어 올렸다.
내 의지에 따라 다시 땅속에서 빠져나오는 그림자들.
“어디서 숨어 있다가 이렇게 단체로 왔어?”
내 이죽거림에 한가운데에 서 있던 온몸에 칠흙의 갑옷을 두른, 마치 기사와도 같은 느낌의 녀석이 입을 열었다.
[나는 제6군단장 호령하는 ‘모무후’다.]
[제7군단장 유령군단 ‘이레이스’]
[8군단장이다.]
“이것 참,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자기소개까지 해주고, 친절하네? 근데 나 말고 네 친구한테도 좀 도움을 베풀어보지 그랬어?”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이블리스의 시체를 툭툭 치며 말했다.
“너희가 구경만 하고 있는 통에 이 친구는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버렸잖아?”
그렇게 말하며 씩 웃자 자신을 모무후라고 소개했던 6군단장은 심기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흘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그 녀석을 도와야 할 의무는 없다.]
“아,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못 끼어든 건 아니고?”
[미개한 인간 주제에 건방지군…….]
그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7군단장이 나를 보며 중얼거렸고, 나는 시선을 7군단장에게로 돌렸다.
“그 미개한 인간한테 쫄아서 덤비지도 못한 너희들은?”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군. 우리가 너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피해를 최소화하며 너를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적의 힘이 제일 약해졌을 때 공격한다. 전투의 기본 아닌가?]
오히려 떳떳하다는 듯 밝히는 6군단장.
확실히 9군단장을 상대하면서도 이상하다 했다.
로우레테에게 들은 바로는 10군단장부터는 박쥐가 아니라 마력으로 연결된 통신 기능을 쓴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앞에 오연하게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봤다.
한 명은 검은 갑옷에 묵직한 대검을, 또 다른 녀석은 검푸른 로브와 보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그로테스크한 뼈 지팡이를, 마지막 녀석은 내 옆에 꽂힌 거대한 창을 쓰는 듯했다.
쿠르르르르르…….
얼마 지나지 않아 대지가 울리며, 대지 끝에서부터 검은 기사들이 달려 오기 시작했다.
온몸을 검은 플레이트 아마로 가리고, 몸이 불투명한 유령 군마를 탄 검은 기사들.
다른 한쪽에서는 리자드맨과 비슷해 보이는 생김새를 한 이들이 달려오고 있었고, 또 이레이스의 뒤에서는 망자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에 선 엄청난 수의 병력.
한순간에 이 넓은 잿빛의 대지가 녀석들의 병력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모후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10군단장을 희생시켜서 알아본 결과 네가 또 그 이상한 것을 소환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듯하더군.]
“이야, 내가 10군단장을 죽일 때부터 지켜보고 있던 거야?”
하나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그러니 그 전에, 너를 죽이도록 하겠다.]
검은 기사의 검이 높게 들리는 것을 보며 피식 웃은 나는 그림자들을 없앴다.
한순간 연기처럼 사라지는 그림자를 보며, 8군단장이 이죽거렸다.
[큭큭큭, 제집처럼 날뛰더니…… 벌써 포기해 버린 거냐?]
“지랄하고 있네. 근데 진짜 너네도 대단하다? 자기 친구들이 나한테 맞아 뒤지고 있는데 어떻게 능력 한번 알아보겠다고 구경이나 하고 있고,”
나는 모후무를 보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네 말대로 내 능력은 한번 사용하고 나면 다시 사용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려. 확실히 지금 내가 너희랑 싸우면 질지도 몰라. 그런데…….”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붉은 구슬을 꾹 쥐었다.
“그건 내가 너희랑 싸웠을 때의 이야기지.”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등 뒤로 푸른색의 균열이 열렸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박차는 군단장들.
“병신들아.”
나는 그 말을 남기고 푸른 균열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