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0만 대군-140화 (140/202)

# 140

나 혼자 10만 대군 140화

41장 악마 가두기(2)

어두운 공간.

사방에는 여기저기 할 것 없이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모니터만이 빛을 뿌리고 있는 곳.

“도대체 이 많은 양을 어디서?”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재료는 알아서 구해오겠다고.”

알리샤가 공간 한쪽에 가득 채워져 있는 마정석을 보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뒤에 서 있던 엘리고르가 그렇게 답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하나하나가 최소 S급…….”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엘리고르의 물음에 알리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 이 정도면 충분해. 오히려 남을 정도야.”

“그렇다면 됐어. 마법진의 준비는?”

“그것도 마찬가지로 조금만 있으면 전부 그릴 수 있어. 시간상으로는 대충 3일 정도만 더 있으면…….”

알리샤의 말에 엘리고르는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더럽게 느리네. 고작 소환 마법진 하나 그리는 데에…….’

엘리고르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색하지는 않고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뭐, 그 정도라면야…….”

알리샤는 다시 땅바닥에 복잡하게 그려진 마법진 사이로 움직이려다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

“저번에도 물어봤던 거지만, 영국 쪽에는 마법진을 그리지 않아도 되는 거야?”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엘리고르가 입을 열었다.

“그건 저번에 이야기해 주지 않았나? 네가 여기서 마법진을 그리고 세부 좌표만 기록하면 이쪽의 마법진이 그대로 복사돼서 그쪽으로 옮겨 갈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걸음을 옮겨 한쪽에 가득 쌓인 마정석을 하나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즈음 다시 한번 악마들을 내보내서 그 마법진을 지키기만 하면 돼.”

엘리고르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쥔 마정석을 알리샤에게 던지고는, 알리샤가 마정석을 받아드는 모습을 보며 몸을 돌렸다.

“그럼 3일 뒤에 다시 찾아올게.”

그 모습과 함께 보라색 마력을 흩뿌리며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엘리고르.

그 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본 알리샤는 다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외성으로 이동한 엘리고르는 자신이 왕좌에 앉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알리오스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소환석의 준비는?”

“거의 끝났습니다.”

“얼마 정도?”

“앞으로 하루, 아니, 20시간 정도면 준비가 끝납니다.”

그녀는 알리오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특별히 다른 특이 사항은 있어?”

엘리고르의 느긋한 물음에 알리오스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아무래도 하위 군단장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뭐? 왜?”

“저번에 최하위 군단장들이 연락이 끊겼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의로 재통신 시간을 72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였는데 분명 하루 전까지만 해도 꾸준히 보고해 오던 군단장들이 어제부터 보고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제야 느긋한 미소를 지우고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간 엘리고르.

“계속 말해봐.”

“그래서 연락이 끊긴 44군단장의 부대 바로 옆에 주둔 중이던 32군단장에게 빠른 확인을 요청했는데…….”

“했는데?”

알리오스는 엘리고르 쪽으로 시선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44군단장이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이끄는 몬스터와 함께.”

“……뭐라고?”

엘리고르의 표정이 굳었지만 알리오스는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급하게 44군단장의 아래 서열의 군단장들 주둔지를 파악해 확인한 결과…….”

“전부 다, 죽어 있었다고?”

무섭도록 가라앉은 엘리고르의 목소리에 알리오스는 순간 숨을 멈췄지만, 곧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부?”

“예, 그렇습니다.”

그 대답과 함께 조용해진 묵빛의 외성.

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고르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 군단장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녀석들은 누구인데?”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아는 게 뭐야!?”

순간 엘리고르의 목소리가 공명해 묵빛 외성에 울려 퍼졌지만 알리오스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엘리고르가 숨을 고르자 알리오스가 말했다.

“그, 군단장들을 죽인 녀석이 누구인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가 다음에 나타날 곳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해봐.”

듣기만 해도 짜증이 서려 있는 목소리.

“그 녀석은 제일 서열이 낮은 군단장들부터 격파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아마 다음 녀석이 출현할 곳은 아마 42군단장이 주둔한 곳일 확률이 높습니다.”

“어떻게 녀석이 차례대로 군단장들을 박살 내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

“만약 군단장을 공격하는 녀석이 그저 군단장들 닥치는 대로 학살하려 했다면, 60군단장 근처에 있는 32군단장과 27군단장을 먼저 공격했어야 합니다.”

알리오스는 계속 이야기했다.

“그 이외에도 58군단과 57군단은 대륙의 거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57군단과 56군단도 상당히 멀리 있고, 45군단과 43군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녀석이 60군단부터 차례대로 깨부수고 있다고?”

엘리고르의 말에 알리오스는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시 갔다 올 거야.”

“알겠습니다.”

보랏빛 마력을 흩뿌리며 사리지는 엘리고르.

알리오스는 엘리고르가 떠날 때까지 그 고개를 들지 않았다.

* * *

잿빛의 대지.

“쯧.”

나는 짧게 혀를 차며 42군단장의 몸을 걷어찼다.

“신격각성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한 방에 죽어버릴 줄이야…….”

군단장 사냥을 시작한 지 3일째,

나는 앞에 쓰러져 있는 왜소한 몸집의 좀비를 툭툭 건드렸다.

온몸이 핸디드에 걸레짝이 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군단장.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분명 ‘독’을 사용하기 때문에 몸이 약하다는 건 들었는데,”

나는 42군단장을 잡으러 오기 전에 로우레테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42군단장은 다른 군단장들에 비해 신체 능력을 비롯한 다른 능력들이 비정상적으로 떨어지지만,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독은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다.

우선 닿기만 하면 모든 걸 녹여 버릴 정도라고 했으니까.

그렇기에 신격 각성을 사용하기 전에 간이라도 보려고 몰려오는 좀비 군단에 핸디드의 능력을 잠깐 사용한 것밖에 없었다.

“……진짜 죽었네.”

42군단장, 이름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 녀석의 몸을 툭툭 치던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뭐, 이 녀석 같은 경우는 그냥 극상성을 만난 것뿐이었다.

애초에 그림자한테 ‘독’은 통하지 않으니까.

“……이대로 곧바로 41군단장을 죽이러 가볼까.”

슬쩍 구슬을 쥐며 중얼거릴 때.

우우우웅!

대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

42군단장이 있던 자리에서 갑자기 요동치는 대기를 느낀 나는 곧바로 몸을 뒤로 빼며 자세를 잡았다.

곧 요동치던 대기에서 보랏빛의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나는 누가 나타날지 깨달았다.

“엘리고르……!”

‘분명 날아가는 박쥐들은 전부 잡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 늦게 나타났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실제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어이없이 죽어버린 42군단장 덕분에 나는 ‘신격 각성’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이윽고 보랏빛 마력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생긴 균열 안에서 엘리고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서 네가 여기에?”

엘리고르는 눈앞에 나타나자마자 나를 발견하고는 놀란 듯 물었고, 나는 그런 엘리고르에게 말했다.

“너도 내 세계에 열심히 놀러 오는 것 같던데…… 나라고 이곳에 못 오라는 법은 없잖아?”

퍽!

그렇게 말하며 나는 조금 전 죽인 42군단장의 몸을 발로 차 엘리고르에게 날려 보냈다.

그녀는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굳은 표정으로 날아오던 42군단장을 옆으로 치워 버렸다.

“부하를 너무 심하게 다루는 거 아니야?”

“하!”

노골적인 비아냥에 엘리고르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지금까지 네가 한 거야?”

“뭘?”

“내 휘하에 있는 군단장들을 차례차례 깨부수고 다니던 녀석이 너였냐고 물었어.”

그 말과 동시에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보라빛 마력을 본 나는 신격 각성을 준비하며 이죽거렸다.

“그럼 누구일 것 같은데?”

“역시 너구나?”

“글쎄? 누굴까?”

나는 노골적으로 비아냥댔다.

지난번과는 완전히 뒤바뀐 상황.

이은별의 두 번째 각성 아이템을 찾으러 가서 엘리고르를 만났을 때와는 반대의 상황이었다.

엘리고르가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너,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지금 여기는 네가 있는 원래 세계인 2지구가 아니라 3지구인 거 알지?”

“당연히 알지.”

“그렇다면 너도 잘 알 텐데? 내가…….”

순간 엘리고르의 모습이 사라졌다.

“전혀 힘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곧 눈앞에 나타났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치고 들어오는 엘리고르의 주먹.

하나 엘리고르의 주먹이 내 몸에 닿기 직전에 나는 ‘신격 각성’을 사용했다.

한순간 잿빛 세계가 어두워진다.

잿빛 하늘에 의해 가려져 있던 태양이 보이고, 그 태양을 검은 무언가가 가리고 있다.

그와 함께 주변에 있던 그림자들이 변이를 일으켰고, 나는 엘리고르의 공격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그거야 당연히…….”

“……!!”

꽝!!!

“알고 있지!!”

전력을 다해서 주먹을 휘두른 덕분에 자세가 흐트러진 엘리고르의 얼굴에 그대로 카운터 펀치를 먹인 나는 이어서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엘리고르는 곧바로 자신의 마력을 둘러 내 팔을 막아내며 당황한 듯 소리쳤다.

“어디서 그런 힘을!?”

“그건 네가 알 것 없고!”

나는 곧바로 오른손에 들고 있던 푸른 구슬을 그녀의 몸에 밀어 넣었다.

파아아앗!

그 순간 어두운 대지가 환하게 빛나고.

“이! 이게 뭐야!!”

엘리고르의 몸이 푸른색의 사슬에 묶이기 시작했다.

마음만 같아서는 조금 더 싸우면서 지금 내 수준이 어디쯤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원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그녀의 몸이 점점 푸른 사슬로 묶여간다.

엘리고르는 그제야 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 새끼……!!!”

“편하게 쉬다 오라고.”

“네 녀석! 죽여 버리겠어!”

“그래그래, 네가 그곳에서 나오면 상대해 줄게.”

“이 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

온몸에 사슬이 묶인 그녀는 욕설이 섞인 비명과 함께 사슬이 튀어나왔던 푸른색의 구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내 그녀를 빨아들인 푸른 구슬을 지직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깨져 나갔다.

그리고.

“자, 이제 진짜 시작해 볼까?”

진짜 빈집털이를 시작할 때가 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