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나 혼자 10만 대군 134화
39장 일식의 경계(4)
“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어두운 방에서 튕겨 나가자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내게 처음 검은 돌을 넘겨줬던 묵의를 입은 사내가 있었다.
무척이나 느긋한 표정으로 반갑다는 듯 손까지 흔드는 그를 슬쩍 보고 난 뒤 나는 곧바로 넣어두었던 아날로그 시계를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이제 30분 정도.
나는 곧바로 시스템 창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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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우현 칭호:---
성별: 남
나이: 27
능력: 그림자(shadow) [30,000] [2/4]
[능력치]
[종합 평가 수준: 측정 불가(새롭게 측정 중)]
[평가 잠재력: 새롭게 측정 중 / 새롭게 측정 중]
[스킬]
군집체
완전 동화(3/4)
영역(3/4)
집약(2/4)
그림자 영체(2/4)
영체 합일(1/4)
각성(0/10,000)
????
[그림자 영체 3/8]
-사령술사 리치
-SS급 몬스터 드래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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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템 창이 변했나?
분명 마지막에 봤던 그림자가 내게 던져주었던 그 검은 돌은 분명 각성 아이템이 맞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제야 보이는 시스템 창의 스킬란에 생겨 있는 ‘????’를 발견한 나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뭐야?”
스킬창 마지막에 만들어진 ‘????라는 글자.
그 이외에 시스템에서는 딱히 달라진 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슬슬 남지 않은 시간을 확인한 뒤 고개를 돌렸다.
아직 느긋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내가 받은 능력은 대체 뭐지?”
“응? 너 시험 통과한 거 아니야?”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고, 그는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알아야 하는데? 안에 있는 녀석에게 들은 건 없어?”
“그림자를 말하는 거라면, 그 녀석에게는 밖으로 나가서 능력을 확인해 보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시스템에도 그냥 ‘????’라는 글자만 떠 있을 뿐이고.”
내 말에 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쯧, 알려주려면 멀쩡하게 전부 알려줘야지, 뭐 이런 식으로 알려준 거야?”
그렇게 혼자 투덜거린 남자.
“우선 너도 시간이 없을 테니 간단히 설명하자면 네가 보고 있는 시스템창에서 새로 생긴 능력이 ‘????’로 보인다고 했지?”
“그래.”
“그건 별로 이상한 게 아니야 ‘우리’가 알려준 건 시스템이 잴 수는 없는 힘이거든.”
“잴 수 없는 힘이라고?”
“그래, 사실 제대로 설명해 주고 싶기는 한데, 유감스럽지만 더 설명했다가는 네가 밖으로 빠져나갈 시간이 빠듯해지니까 그만두도록 하고…….”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고개를 한 반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너한테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딱 한 번밖에 알려줄 수 없으니까 말이야.”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입을 열었다.
* * *
“후…….”
슬쩍 손을 들어 아날로그 시계를 이용해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15분.”
남은 시간은 15분.
크에에에엑! 키에에에엑!
내 앞에는 분명 신전으로 왔을 때 전부 죽였던 다크스킨을 비롯한 괴물들이 나를 바라보며 위협적인 음성이나 자신의 병장기를 빼 들고 있었다.
넓은 신전 안을 가득 채워 완전히 빽빽해질 정도로 몰려 있는 몬스터.
그런 몬스터의 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 전 내게 검은 돌을 주고, 또 내가 얻은 ‘????’의 능력을 알려준 남자의 말을 간략하게 떠올렸다.
분명 남자가 해준 말은 많았지만 결국 결론은 이것이었다.
‘일식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상상해라.’
그래, 그것뿐이었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딱히 능력이 어떻게 발동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았고, 이 능력이 어떤 것에 관련되어 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 남자에게 들었던 것은 어떻게 해야 ‘일식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좀 더 세세하게 상상할 수 있는지 밖에 없었다.
“참…….”
그래놓고 해준 말이라곤 ‘만약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었다면 여기서 얻은 능력을 발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뿐이었다.
신전 안을 가득 채운 몬스터 떼가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영역을 이용해 그림자들을 만들어냈다.
내 주변에 만들어진 그림자들이 달려 나감과 동시에 몬스터들이 달려들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사실 이대로 쭉 밀고 나가기만 하더라도 분명 제시간 안에 열려 있는 ‘균열’에는 닿을 수 있었다.
그래, 확실하게 닿을 수 있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내게 일식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자세하게 설명해 준 남자가 한 말 때문이었다.
“쯧.”
이곳에서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면 밖으로 나가서도 자신에게 배운 능력은 쓰지 못한다는 남자의 말.
“나름대로 고생했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우선은 시도한다.
그리고 정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몬스터를 뚫고 균열로 달려가면 되는 일이다.
적어도 지금 내게 그 정도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끝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그림자와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를 몬스터의 싸움이 신전 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햇다.
다크 오우거가 울부짖으며 몽둥이를 휘두르고, 그림자가 다크 엘프의 몸을 찢는 모습을 보며 나는 눈을 감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밝은 대지 위에 떠 있는 태양.
그 태양의 위에 검은 무엇인가가 덧씌워진다.
서서히.
또 서서히…….
마치 태양을 좀먹듯 침식되는 태양.
밝게 빛나던 대지는 그림자가 드리우고, 태양이 점점 그 빛을 잃어감에 따라 대지에는 그림자가 아닌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검은 무엇인가가 태양을 좀먹고.
또 좀먹고…….
마침내 태양을 완전히 가렸을 때.
나는 그의 말대로 눈을 떴다.
그리고.
“뭐…… 야?”
나는 눈앞에 벌어진 풍경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낡고 풍화된 신전 안에 있었던 나는 일식으로 인해 어둠이 드리워진 대지 아래에 서 있었다.
‘환각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앞에서 들리는 소리에 의해 사라졌다.
끼에에에엑!
몬스터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바뀐 그림자들에 의해서.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동화와 영체 합일을 사용하지 않아 몬스터들과 대등하게 싸움을 이루고 있던 그림자들은 그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그 어떤 그림자는 마치 괴수처럼 기괴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그림자는 짐승의 그림자를 따온 것 같은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제각각의 형태로 변한 그림자들은 앞을 막고 있는 끝도 없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학살극을 벌이고 있었다.
오우거의 몸이 자신보다 두어 배는 큰 괴수 그림자의 칼날에 꿰뚫려 반으로 잘려 나간다.
창과 칼로 무장한 다크엘프가 그 사이를 파고 들어가는 짐승 그림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목이 뜯겨나간다.
그 이외에도 내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제각각의 무기를 가진 그림자가 각자의 무기를 사용해 키메라를 죽인다.
나는 어렵지 않게 지금 이 상황이 ‘일식’,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새로 얻은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림자들은 내가 추가로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엄청난 속도로 몬스터를 줄여 나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전투의 묘사는 불필요했다.
그건 전투가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그저 학살이었다.
다크엘프의 팔다리가 사방으로 날아다니고, 오우거의 몸뚱이가 반으로 잘려 나간다.
오크는 찌부러지고, 어떤 형체로 변하기 위해 준비하던 그림자는 별다른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소멸한다.
“허.”
그리고 그렇게 몬스터를 쓸어버리며 나는 균열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몇 분이나 걸렸지?
10분?
아니, 그 이하.
그 이하였다.
“윽!?”
그리고 눈앞의 푸른 균열을 본 순간, 내 머리 위에서 줄곧 유지되고 있던 일식 현상이…….
지직…… 지지직!!
깨져 나갔다.
태양을 가리던 검은 무엇인가가 깨져 나가고 밟은 빛이 비추자마자 제각각의 형태를 띠고 있던 그림자의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어두운 대지였던 풍경이 낡고 풍화된 신전으로 돌아온다.
나는 저도 모르게 욱신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내가 풍화된 신전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곧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균열의 앞에서 어깨를 으쓱인 남자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어때?”
“이건 대체 무슨 능력이지?”
욱신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입을 열자 그는 씩 웃고는 입을 열었다.
“네 ‘파편’의 원래 힘을 끌어오는 능력.”
“뭐?”
“말 그대로야, 지금 네가 사용 한 건 네 능력의 본질을 잠깐이나마 끌어와서 사용하는 능력이야. 능력명은 따로 없지. 하지만 굳이 붙여보자면 뭐…….”
남자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신격 각성’ 정도가 어울리는 말 같은데?”
* * *
낡고 풍화된 던전, 제대로 된 조형물이라고는 존재하지도 않고 대리석마저도 완전히 부식되어 버린 그곳에서, 남자는 푸른색의 균열이 사라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일은 잘 끝났어?”
그렇게 푸른 균열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을 때쯤, 그의 뒤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전체적인 외견으로는 인간의 형태를 띠고는 있지만 마치 그림자처럼 어두워 그 생김새를 제대로 확인하기 힘든 그림자.
남자는 그런 그림자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잘 끝났지. 누구 덕분에.”
“그래? 그거참 다행이네.”
“야, 내가 분명히 말했지? 능력 사용법까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나서 내보내라고 말이야.”
남자의 말에 그림자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마치 딴청을 부리듯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뭐 나는 그러려고 했는데 애초에 내가 알려주는 것보다는 네가 알려주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아서 말 안 했지. 게다가…….”
그림자는 이미 풍화되어 다리밖에 남지 않은 조각상의 옆에 기대며 말했다.
“너도 보고 싶었잖아? 저 녀석이 지금 어느 정도인지를.”
그림자의 말에 무엇인가 반박할 말을 찾는 것 같은 남자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한번 보고 싶기는 했지.”
“그래서, 직접 봤을 때는 어땠어? 느껴보니까 ‘신격 각성’도 제대로 사용한 것 같던데.”
그림자의 물음.
“뭐, 솔직히 처음 신격을 각성한 것치고는 그리 나쁘지는 않았어. 다만 이제 그 녀석이 얼마나 그 각성치를 높게 끌어 올릴지…… 앞으로가 중요한 거지.”
“하기는, 능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말이야.”
그림자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김우현이 평범하게 ‘신격 각성’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걸로는 부족하지. 그 녀석은 지금보다도 훨씬 강해져야 해. 악마를 먹어치우고 괴신을 먹어치워서 자신의 격을 높여야지. 그러고 나면…….”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마 분명히 사탄도 잡을 수 있겠지.”
“꿈이 너무 큰 거 아니야?”
“아니, 그 정도는 충분히 해줘야 하지 않겠어?”
남자의 능청스러운 말에 그림자는 그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하긴, 그도 그럴 게 그 녀석은 결국…….”
그림자의 말을 듣고, 남자는 입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