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나 혼자 10만 대군 133화
39장 일식의 경계(3)
자그마한 방 안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장식품은 하나도 없어, 벽은 무척이나 밋밋했고, 전등이나 창문, 그렇다고 해서 어딘가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방이라는 말보다는 공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어두운 그곳에서 나는 앞에 서 있는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너는 뭐지?”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 네가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내 말에 대한 대답을 물음으로 돌려준 그림자는 잠시의 침묵 뒤 입을 열었다.
“그래, 너에게는 이렇게 설명하는 게 좋겠군.”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과장되게 자신의 손을 양쪽으로 펼치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각성 아이템’이라고 부르는 ‘파편 조각’ 중 하나다. 어때, 이렇게 말하면 좀 편하게 이해할 수 있겠나?”
“그러니까…… 네가 각성 아이템 이라는 말이야?”
“맞다, 내가 각성 아이템이라는 소리지. 더 정확히 말하면 네가 이 능력을 얻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시험 교관 같은 역할도 겸해서 말이야.”
“시험 교관이라고?”
“그래, 시험 교관.”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자신의 발을 들어 어두운 바닥을 내리찍었다.
작기만 했던, 어두운 방이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불과 3평에서 4평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작은 공간이 마치 제약 따위는 없다는 듯 넓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축구장을 두세 개는 합쳐 놓은 것 같은 거대한 풍경을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다고 했지?”
“그래,”
“그럼 지금부터 이 시험을 치르는 동안, 시간은 걱정하지 마.”
“뭐라고?”
“어차피 네가 이 검은 돌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외부의 시간은 멈춰 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림자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힘껏 내리찍을 뿐이었다.
스으으으으.
그와 함께 눈앞에 그림자들이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상을 한 그림자들.
하지만 소환된 그림자들은 내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어떤 그림자는 다른 그림자들보다 무척이나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고, 또다른 그림자는 통상적인 그림자보다도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무기를 들고 있기도 했고, 팔과 다리가 없는 것들도 있었다.
하나하나 다들 제각각의 형상을 가진 그림자들 사이에서 조금 전과는 다르게 어두운 오오라를 내뿜는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말해주지. 네가 여기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외부의 시간은 멈췄다. 아니, 정확히 말해 엄~ 청 느리게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겠지.”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곤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하지. 시험 내용은 딱 봐도 알겠지? 원래는 이렇게 막무가내인 시험이 아니지만 네가 시간이 없다고 하고, 또 ‘없는 자’에게 듣기도 했으니까 심플하게 가도록 하지.”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몸을 그림자의 뒤로 숨겼다.
[시험에서 통과하는 방법은 하나, 지금 이곳에 소환된 그림자를 모조리 없애고, 나를 찾아 죽이면 된다. 아주 심플하지?]
그림자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그럼, 시작한다.]
그림자의 말을 마지막으로 멍하니 있던 그림자들의 눈가에 보라색 안광이 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했다가 차츰 그 빛을 찾아가는 보라색 안광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물고 능력을 사용했다.
검은 공간에 어둠이 한 번 더 덧칠되기 시작했다.
* * *
고풍스러운 도서관.
“로만.”
로우레테는 도서관에 들어온 손님의 이름을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로만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입을 열었다.
“응? 이건 뭐야?”
탁!
로만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로우레테의 앞에 있는 가나다 파이의 상자로 손을 움직였지만, 그 순간 로우레테의 손이 파이 상자로 다가오는 로만의 손을 쳐 냈다.
로만은 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야? 갑자기.”
“먹지 마. 내 거니까.”
그렇게 말하며 가나다 파이를 자신의 품에 안는 로우레테의 모습에 로만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곧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그러니까 더 먹어보고 싶은데?”
“만약 네가 이걸 내게서 뺏는다면 2지구에 있는 악마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5지구에 넘겨주지.”
“그건 좀 무서운데…….”
로우레테의 말에 로만은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었고, 그녀는 들고 있던 가나다 파이의 상자를 슬쩍 내려놓은 뒤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기는, 알려줄 일이 있어서 온 거지.”
“알려줄 일?”
로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길래?”
“4지구가 멸망했어.”
“뭐? 벌써?”
“그래, 벌써.”
“……그쪽의 외신들은 뭘 하고 있었는데 4지구가 그렇게 빨리 멸망한 거지?”
로우레테의 말에 로만은 어깨를 으쓱거리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분명 5지구에 있는 외신 중에 알고 있던 녀석들이 있기는 했는데, 이미 4지구가 멸망하는 통해 외신이고 뭐고 전부 파편화돼 버려서 말이야.”
“그렇다는 건…….”
“우리 부담이 늘어났다, 이 소리지.”
“…….”
로만의 말에 로우레테는 침묵했고, 로만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아마 이제 조만간일 것 같아. 4지구에 있던 파편들이 지금 버티고 있는 1지구, 2지구, 5지구에 퍼져서 아마 부담이 더 가중되겠지.”
“시스템은?”
“너도 알다시피 당연히 약화되고 있지. 안 그래도 처음 만들 때부터 위태위태했는데, 3지구랑 4지구가 차례대로 박살 나면서 시스템의 힘 중에 5분의 2가 날아갔잖아?”
말 그대로 버티는 게 한계야.
로만은 그렇게 말하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는 고개를 절레거렸다.
“아무튼, 그래서 전해주러 온 거야. 너도 알다시피 지금 네가 있는 2지구에는 소속 외신이 없고, 죄다 외부에서 날아온 외신들의 파편만 존재하니까 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마디로…… 어떻게든 최대한 버텨보라는 소리를 하려고 온 거지, 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벌써 가는 거야?”
“왜, 내가 계속 여기에 있었으면 해?”
“그건 아니지만.”
“그래, 나도 지금부터는 필요 이상으로 자리를 비워둘 수 없는 입장이니까. 빨리 돌아가 봐야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은빛 마력을 운용하며 말했다.
“아무튼 조심해.”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그녀 홀로 남게 된 적막한 도서관에서 로우레테는 짧게 침음을 흘렸다.
* * *
꽝! 콰직! 까직!
보라색 안광을 가진 그림자와 붉은 안광을 가진 그림자들이 격돌한다.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운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그리고 그 사이에서.
스으으으!
조금 전까지 검을 들고 집요하게 약점을 노리던 그림자를 처리한 나는 바로 몸을 돌려 달려오는 작은 체구의 그림자를 향해 핸디드를 내뻗었다.
치지지직!
검은 오라를 일렁이며 저 멀리 터져 나간 그림자 칼날이 삽시간에 있던 그림자를 정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이런 씨발……!”
죽여도 죽여도 그림자는 계속해서 재생되었다.
어디선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그림자들.
콰직! 콰직!
이 공간에서는 분명 전투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들리는 것은 철이 부딪히는 소리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절규 어린 비명도.
혹은 기합성도.
그리고 그런 무음의 전쟁터 속에서 나는 그림자들을 정리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하다.
어차피 이 그림자들은 처리하고 또 처리해도 계속해서 흘러나올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엄청나 그림자의 숫자에 둘러싸여 도대체 어디에서 그림자들이 소환되는지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한 번에, 여기에 있는 그림자 전부를 없애면……!”
어떻게든 답이 나올 것 같았다.
콰직!
달려오는 그림자의 목을 베어내며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깨비 방망이?
아니, 휘두를 수 있을 만한 환경이 되지 않았다.
거인?
그것도 마찬가지.
이 공간은 무척이나 넓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천장은 그리 높지 않았다.
딱 봐도 대충 5~6m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천장.
이곳에서는 아무리 거인을 크게 만들어봤자 쓸 데가 없었다.
어차피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그림자에게 죽을 테니까.
그렇게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나는 곧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달려오던 보라색 그림자를 핸디드로 쳐 낸 나는 곧 몸을 슬쩍 뒤로 빼며 이 공간의 중간 지점을 가늠해 그대로 뛰어올랐다.
거의 천장이 머리에 닿을 정도로 뛰어오른 나는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핸디드의 모형을 변형시켰다.
그저 일정한 검의 모양에서 마치 가시가 튀어나온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든 나는 곧바로 중앙에 뛰어내려 넓어진 축구장을 내 영역으로 뒤덮기 시작했고.
“흡!”
내가 가시처럼 뾰족한 핸디드를 크게 휘두름과 동시에 내 영역 속에서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은 핸디드가 어둠 속을 뚫고 솟아 나왔다.
어두운 공간 안에 마치 꽃처럼 솟아오른 핸디드의 칼날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싸움을 벌이고 있던 보라색 안광을 가진 그림자들은 갑작스레 땅속에서 솟아나온 핸디드의 칼날에 반응하지 못하고 꼬챙이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는 핸디드의 외형을 점점 바꾸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가시였던 핸디드의 가시가 일순 넓게 퍼져 나가며 공간 전체를 칼날로 가득 채워가기 시작했다.
차캉! 캉! 카카카카카가가각!
여기저기서 들리는 철 부딪히는 소리.
“진짜 이렇게 할 줄은 몰랐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검까지 빼앗을 걸 그랬나?”
그와 함께 눈앞에 나타난 그림자의 모습에 나는 곧바로 손에 쥐고 있는 핸디드를 놓고 녀석에게로 달려갔지만 그림자는 말했다.
“진정해. 시험은 끝이니까.”
“뭐라고?”
“못 알아들었어?”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내게 던졌고, 나는 곧 내게 날아온 것을 잡아채 확인했다.
“검은 돌…….”
검은 돌이 이전과 같이 내 몸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을 확인하며 나는 그림자를 바라봤고 그림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말했잖아. 시험 끝났다고.”
“……분명히 널 죽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응? 몰랐어? 너 벌써 나 죽였어.”
“……?”
“정말 몰랐어?”
그림자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잠시, 그림자는 이내 흠흠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했다.
“아무튼, 내가 네게 내준 시험은 이걸로 끝. 내가 너에게 준 능력은 나가서 보라고, 주…….”
나는 그림자의 말을 미처 다 듣기도 전에 그 공간에서 튕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