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나 혼자 10만 대군 132화
39장 일식의 경계(2)
잿빛 세계에 있는 묵빛의 고성.
그 고성의 끝에 있는 뼈로 만들어진 왕좌에 앉아 있던 엘리고르는 앞에 나타난 알리오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마정석은 준비했어?”
엘리고르의 물음에 알리오스는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아직 엘리고르 님께서 말씀하신 정도의 마정석을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마정석을 모으는 데 걸리는 시간은?”
“우선 정확한 시간을 점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대략 예상해 보면 3주 정도가 걸릴 것 같습니다. 그 뒤에 마정석을 다시 가공에 엘리고르 님이 말씀하신 대로 2지구에 가져가려고 한다면…….”
“한다면?”
엘리고르의 되물음에 알리오스는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대충 1달에서 1달 반 정도가 걸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1달에서 1달 반…… 더 빨리할 수는 없어?”
엘리고르의 물음에 알리오스는 입을 열었다.
“1군단장부터 10군단장까지의 휘하 몬스터를 마정석 자원으로 활용하면 아마 지금 예상하는 시간에서 절반 정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알리오스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진 엘리고르는 한동안 자신의 볼을 툭툭 치며 고민하다 자신의 다리를 꼬았다.
“그럼 그렇게 해서 3주 안으로 준비를 끝마쳐 봐.”
“알겠습니다.”
엘리고르는 빠르게 답하는 알리오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물어보는 건 됐고, 보고나 한번 해봐.”
“알겠습니다.”
엘리고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하기 시작했다.
“현재 1군단장부터 60군단장은 제3지구의 아틀라트 대륙이라고 불렸던 곳에 넓게 퍼져 테라포밍하는 ‘척’ 중이며, 7군단장은 마정석을 생산을, 34군단장은 마정석의 정제를 은연중에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 특이사항은?”
그녀의 물음에 알리오스는 대답했다.
“현재 56군단장부터 60군단장에게서까지 제대로 된 보고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보고?”
일순 엘리고르의 눈이 가늘게 뜨였고, 알리오스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예, 엘리고르 님이 테라포밍에 대한 전권을 저에게 위임해 주셔서 제가 임의로 72시간을 기준으로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만, 56군단장부터 60군단장까지, 연결 박쥐를 붙여놨는데도 연락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알리오스의 말에 엘리고르는 물었다.
“60군단장이 누구였지?”
“자투르입니다.”
“……아, 그 슬라임?”
“맞습니다.”
엘리고르의 물음에 긍정하는 알리오스.
“59군단장은?”
“아티안입니다.”
“58군단장.”
“헌트리스입니다.”
“…….”
“알리오스.”
“예.”
“그 녀석들 대부분 하급 마물들이 상급 마물까지 올라와서 군단장의 자리에 앉혀줬던 녀석들이지?”
“맞습니다.”
“연결 박쥐를 먹어버린 거 아니야?”
엘리고르의 물음에 알리오스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혹시 몰라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가 있는 곳은 대륙의 끝이기에 아무래도 시간이 걸려서…….”
알리오스는 그렇게 말하며 말을 줄였고, 엘리고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럼 다른 녀석들에게 확인시키면 되잖아?”
“……그들과 제일 가까이에 있는 군단장이 지금 마정석을 만들고 있는 7군단장이라…….”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어.”
엘리고르는 설명을 시작하려는 알리오스의 입을 막으며 쯧 하며 혀를 차고는 이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인간들이……?”
“아마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연락이 없는 56군단장부터 60군단장이 있던 거리와 인간들이 머무는 동굴과의 거리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성녀가 있다고 해도 그들이 수천이나 되는 몬스터를 뚫고 군단장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는……죄송하지만 생각되지 않습니다.”
알리오스는 그렇게 말했고, 엘리고르는 그런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고작 인류의 찌꺼기가 군단장을 이길 수는 없겠지.”
그렇게 수긍한 엘리고르는 이내 뼈로 만들어진 왕좌에서 일어났다.
“그럼 준비 잘해둬.”
“알겠습니다.”
알리오스는 엘리고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엘리고르는 고개를 숙인 알리오스의 모습을 보며 마력을 이용해 사라졌다.
알리오스는 말없이 엘리고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는 곧 걸음을 옮겼다.
* * *
여기저기 풍화되어서 망가진 신전의 막다른 길에 있는 남자는 핸디드를 들어 올리는 내 모습을 보며 두 손을 올리며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너무 급한 거 아니야?”
“내가 좀 급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거든.”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 그리고, 어차피 네가 원하는 건 나를 죽이는 게 아니라, 이거 아니야?”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고, 나는 그의 손안에 있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검은 돌……!”
“네가 원하는 건 이거잖아? 맞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이내 검은 돌을 자신의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은 뒤 입을 열었다.
“어차피 너랑 나랑 싸울 이유는 없어. 어차피 나는 이걸 네게 그냥 줄 생각이거든.”
“뭐라고?”
“물론, 그전에 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내 이야기를 조금 들어줘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건 딱히 네게 나쁜 조건은 아니다?”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어떻게 할래?’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금 저 녀석이 한 말이 진짜일까?
눈앞에 있는 남자를 의심스럽게 보고 있으려니 그는 고개를 슬쩍 돌리며 말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만약 나를 죽이고 검은 돌을 빼앗으려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건 무리라고 말해줄게. 내가 가지고 있는 ‘파편’은 내가 꺼내지 않는 이상 네가 절대 가질 수 없거든.”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고, 한동안 그를 바라보던 나는 결국 핸디드를 쥔 손에 힘을 풀며 시계를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1시간 하고 10분.
“오, 좋아. 잘 생각했어. 내심 미친놈처럼 덤비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이것 참 이야기하기가 편해서 좋네.”
“내게 남은 시간은 1시간이다.”
“걱정하지 마. 내 이야기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끝날 테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앞으로 다가와 앉으며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치 무엇을 먼저 말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민하던 남자는 곧 제 생각을 정리한 듯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선 지금부터 내 소개를 간단히 하도록 할게.”
라는 말과 함께 입을 열었다.
“나는 너와 같은 ‘형체가 없는 자’의 파편이자 세계의 멸망을 막지 못해 지금 이 세계와 같이 던전의 일부가 되어 버린 망자야.”
“……뭐라고?”
남자의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분명 남자의 입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훨씬 많았다.
‘형체가 없는 자’.
던전의 일부가 되어버린 망자.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눈앞에 있는 남자가 ‘너와 같은’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이었다.
“응? 설마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형체가 없는 자는 뭐지? 그리고 던전의 일부가 되어 버린 망자라는 건 또 무슨 소리고.”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같은 파편’이라는 건 또 무슨 소리야?”
물음에 물음으로 답한 나를 보며 그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고는 입을 열었다.
“음,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면 오히려 내가 천천히 설명해 주기가 힘든데.”
“뭐?”
그는 내 물음에 답하지도 않은 채 그는 무언가 중얼중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감스럽지만 네가 알고 있는 정보가 얼마 없어서 대부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진실’에 대해서는 잠깐 접어두자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너도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까.”
“아니,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거야?”
나는 전혀 이야기의 맥락을 잡지 못하고 있는데도 자기 멋대로 이야기를 붙였다 끊는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궁금해하지 마.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는 여전히 평상심을 유지하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더니, 자신이 입은 묵의 안에서 조금 전에 집어넣었던 검은 돌을 꺼내 들고는 입을 열었다.
“이번에 일어나는 던전 침식에서 너는 회귀 전에는 보지 못했던 ‘괴신(怪神)’을 보게 될 거야.”
“괴신?”
“그래, 괴신. 회귀 전에 보지 못했던 녀석들이 나오는 이유까지도 설명해 주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시간이 없어서 불가능할 것 같으니 넘겨두고, 너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만 기억하면 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검은 돌을 내게로 던져주었고, 나는 순간 날아오고 있는 검은 돌을 잡아챘다.
“첫 번째로, 던전 침식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네 세계에 있는 악마를 죽이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내가 받았던 검은 돌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 내 각성 아이템인 검은 돌은 손바닥 위에 올리면, 그대로 몸속으로 스며들어 간 뒤 내 능력과 관련된 스킬을 추가해 주었다.
마치 봉인을 푸는 것처럼…….
하지만 지금은?
“이런 미친……!”
검은 돌이 마치 액체처럼 변하는 것까지는 똑같았다.
다만 문제라면 그 검은 액체가 내 몸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오히려 그 몸집를 불리며 내 몸을 서서히 덮어가고 있다는 것.
“이게 대체 뭐야……!”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치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무척이나 평온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두 번째로, 던전 침식이 일어나고 난 뒤에 나오는 괴신들을 모조리 죽여서 그 파편을 모아라.”
“아니, 이거 대체 뭐냐고!”
“명심해라, 김우현. 네가 내 능력을 온전하게 소화하지 못한다면 너는 멸망을 막을 수 없을 거야.”
몇 번이고 소리쳤음에도 돌아오는 것은 그저 자기의 할 말을 하는 남자의 목소리뿐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검은 액체는 서서히 온몸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뒤늦게 그림자를 움직여 보려 했지만, 소환되어 있던 그림자는 내 명령에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 얼굴까지 검은 액체가 올라왔을 때, 나는 남자의 입 모양을 보았다.
네가 만약 그 시험을 헤치고 나온다면 꽤…….
남자의 입 모양을 보는 것을 끝으로, 검은 돌을 통해 올라왔던 검은 액체는 내 시야를 완전히 덮어버렸고.
“어?”
분명 검은 액체에 덮였던 내 몸은 마치 다른 곳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낡은 신전에서 어느 어두운 방 안에 있었다.
딱히 별다른 장식물도 없는, 무척이나 밋밋한 검은 색의 독방.
그리고 그 검은 색의 독방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이제야 왔군.”
그림자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