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나 혼자 10만 대군 128화
38장 SS급 대형괴수가 놓고 간 것(3)
함경북도 칠보산 근처에 있는 민가.
하이브 사태 이후로 줄곧 비어 있던 민가를 헌터 본부로 개조해 쓰고 있는 러시아 헌터 본부의 막사 안에는 두 개의 인영이 서 있었다.
한 명은 방한 점퍼를 입은 헌터 협회 러시아 지부의 이사 라디야였고, 그 앞에서 러시아 국군 제복을 입고 있는 여성은 러시아에 존재하는 유일한 SSS급 헌터이자 ‘블리자드’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아냐였다.
160㎝ 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듯 사방으로 뻗친 아냐의 단발머리를 보며 라디야는 입을 열었다.
“내가 한 말을 잊지 않았죠? 아냐 씨.”
“……꼭 해야만 하는 거야?”
“네, 우선 어떻게든 SS급 괴수의 부산물이라도 얻으려면 어쩔 수 없는걸요?”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부산물을 얻을 필요가 있어?”
아냐가 하기 싫은 티를 내며 묻자 라디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얻을 필요가 있죠. 이건 모두 우리 모국의 국익을 위한 겁니다.”
“그래도 내키지 않는데…….”
아냐는 그렇게 말하며 라디야의 눈치를 봤다.
SSS급 헌터가 능력도 갖추지 않은 헌터 협회 이사의 눈치를 보는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 막사 안에 그려지고 있었지만, 리디야는 그런 아냐의 모습이 무척이나 익숙한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냐, 계속 그렇게 장관님에 뜻에 따르지 않는다면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
한순간 아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저도 이런 말 하기 싫어요. 그러니까 우리 편하게 가자구요. 아냐, 당신은 그저 저희랑 비즈니스적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 주기만 하면 돼요.”
‘뭐가 비즈니스적 관계야…….’
아냐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아냐는 결국 그 말을 하지 못하고 라디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 았어.”
“그래요, 그렇다고 해도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어차피 국익을 위해서이고…… 게다가 중국 쪽도 움직일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라디야는 슬슬 준비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막사 밖으로 나갔다.
아냐는 그런 라디야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막사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웨에에엥-
헌터 본부에서 설치해 놓은 요란한 사이렌 함경북도에 있는 칠보산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헌터들이 미리 배정받은 위치로 서둘러 이동하는 것을 본 나는 이내 칠보산 어귀에서부터 보이는 균열을 보며 능력을 사용했다.
검은 영역이 한순간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그림자들이 내가 ‘동화’를 사용함에 따라 제각각 붉은 안광을 흩뿌린다.
균열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의 공간이 찢어지듯 열리고 딱 보기에도 무척이나 거대한 균열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전부 중첩하기 시작했다.
그림자를 흡수하는 각성.
내 몸으로 영역 안에서 빠져나오던 그림자들이 뭉치고 어두운 아우라가 물결친다.
영체 합일.
평범한 사람의 몸의 절반이 마치 스켈레톤의 그것처럼 바뀌어 나간다.
그냥 SS급 보스 몬스터인 드래곤으로 합일을 시도할까 했지만, 각성을 전부 모으지 못해 드래곤에게 있는 마법을 전부 사용하지 못하는 이상 드래곤으로 변신하는 건 그저 SS급 괴수에게 맨살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능력을 전부 사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균열의 너머에서 괴수의 괴성이 들려온다.
-께에에에에에에엑!!
사이렌 소리를 그대로 묻어버리고 귓가를 찢어발기는 듯한 고성이 칠보산에 울려 퍼진다.
몸이 딱딱하게 굳을 정도로 위협적인 하울링.
그와 함께 산의 높이만큼 벌어진 균열에서 딱 봐도 엄청난 몸집을 가지고 있는 SS급 괴수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새의 그것과 같이 생긴 날카로운 부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를 따라 괴수의 몸체가 서서히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헌터들이 혹시나 해서 만들어놓은 벙커는 그저 밟는 그것만으로도 터뜨려 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몸이 세상에 드러나고, 그 뒤를 따라 괴수의 팔에 붙어 있는 거대한 날개가 보인다.
“……처음 보는 녀석이잖아?”
그렇게 빠져나오는 괴수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물론 회귀 전에도 SS급 괴수를 그리 많이 본 적은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번 북한 SS급 괴수 사태에 나와야 하는 괴수는 내 눈앞에 있는 괴수가 아니었다.
끼에에에에에엑!!!
내가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괴수는 균열을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고, 나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몸을 움직였다.
사실 어떤 SS급 괴수가 나오던 별 상관은 없었다.
그 어떤 괴수든 간에 그 괴수가 SS급이라면 내가 이기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
이미 거의 다 빠져나온 SS급 괴수를 한번 바라본 나는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차 괴수에게 몸을 날렸다.
* * *
“……허.”
임시 헌터 본부 한쪽에 만들어진 러시아 쪽 막사 안.
라디야는 눈앞의 영상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허탈한 음성을 내고 말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모니터 앞에는 불과 1~2㎞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가 무척이나 생생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균열을 통해 빠져나오는 SS급 괴수와 그 뒤를 따라서 균열을 찢고 흘러나오는 S급 괴수.
S급 괴수와 SS급 괴수의 크기는 언뜻 비슷해 보였지만, S급 괴수와 SS급 괴수의 차이는 고작 덩치로 나뉘는 것이 아니었다.
‘마력…….’
마력.
SS급 괴수는 S급 괴수와는 다르게 마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S급 괴수와 SS급 괴수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마력.
그 차이는 무척이나 명확했다.
S급 괴수는 덩치는 거대하지만, 실질적으로 S급 이상의 헌터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충분히 좋은 무기만 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힐 수 있지만, SS급 괴수는 아니었다.
SS급 괴수는 마력을 이용해 자신의 주변에 베리어를 만든다.
그리고 그 베리어는 SS급 헌터로서도 쉽게 깰 수 없는, 무척이나 강력한 베리어였다.
고작 그것뿐만이라면 SSS급 헌터 한두 명이라도 어떻게 해볼 만하지만, 문제는 SS급 괴수가 자신의 마력을 베리어로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미국에 나타난 SS급 괴수는 대도시를 통째로 멸망시키고, 그 당시에 가장 강했던 SSS급 헌터가 5명이나 붙고 나서야 겨우 토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례가 있기에 라디야와 모티터링을 하고 있는 러시아 협회 사무원들은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막사 앞에 깔린 수많은 모니터에서는 제각각의 장면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니터 중 대부분은 수많은 헌터가 협동해 무척이나 거대한 S급 괴수를 막기 위해 능력을 쏟아부으며 노력하는 모습이 모니터로 전송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딱 2개의 모니터는 다른 모니터와 다른 것을 재생하고 있었다.
한가운데 위치한 두 개의 모니터.
분명 그곳에서도 비치는 것은 비슷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괴수와 헌터들이 보인다.
다만 문제는…….
“……이사님?”
“……왜.”
“원래 SS급 괴수가 S급 괴수보다 더 약합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허탈한 듯, 말하는 라디야.
분명 치열한 전투가 펼쳐질 거라고 보았던 SS급 괴수와 씨커 길드원들의 대결의 무게 추는 이미 너무 기울어져 있었다.
“이건…… 너무 오버 밸런스 아니야?”
바로 씨커 길드 쪽으로.
“……와!”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사무원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라디야는 눈을 돌려 그림자 왕을 찍고 있는 영상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SS급 괴수가 자신보다 1.5배는 더 큰 것 같은 그림자 거인의 손에 머리를 잡혀 그 몸을 사방으로 비틀고 있었다.
괴수의 머리를 잡고 있는 그림자 거인의 손이 괴수의 머리를 땅에 찍었다.
쿵……!
한 번.
쿵……!!!
두 번.
쿵……! 쿵……!!!
세 번, 네 번.
분명 몇㎞나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상 속의 괴수의 머리를 아래로 내리찍을 때마다 발을 울리는 진동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겉으로만 봐서는 SS급 괴수가 불쌍해질 지경으로 괴수를 복날 개 패듯 쥐어패고 있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린 그녀는.
쿵……! 쿵……! 쿵……! 쿵……!!!
수 없이 떨어지는 유성우에 폭격을 당해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SS급 괴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쉼 없이 떨어지는 유성우.
괴수가 질러대는 비명과 유성우의 폭격으로 인한 후폭풍이 막사로까지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라디야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유성우를 한 차례 맞은 괴수가 복수를 다짐하듯 크게 괴성을 내뱉으며 그 무엇도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팔을 내리쳤지만, 괴수의 팔은 눈앞에 나타난 검은 벽을 뚫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 벽을 뚫고 나온 탐식의 발차기에 괴수의 팔이 크게 튕겨져 나간다.
곧이어 괴수가 튕겨져 나간 팔을 회수하는 순간 그의 팔 끝에서 푸른 청염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곧 그 청염이 괴수의 팔을 태워 나간다.
괴로워하는 듯한 괴성과 함께 괴수의 몸이 푹 숙어지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탐식이 튀어 올라 괴수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후려친다.
꽝!!!
분명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과 동시에 괴수의 머리통이 위로 솟아올라 한순간 튕겨 올라간 그 순간에.
“헉…….”
“저게…… 뭐야?”
“미친…….”
모티터를 보고 있던 사무원들의 입에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괴수의 머리가 튕겨져 올라간 그곳에는 유성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유성우가 아니었다.
단 한 개의 ‘유성’이었다.
“미친……!”
괴수의 몸의 절반을 그대로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유성’이 괴수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쿠…… 쿠쿠쿠쿠쿠쿠……!!!
일순 화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흙먼지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고 막사를 포함한 물건들이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라디야는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며 눈앞에 벌어진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거대한 흙먼지가 걷히기 시작하고, 모니터에는 SS급 괴수가 비쳤다.
무척이나 큰 피해를 입었지만 아직은 몸을 가눌 수 있는 듯 거대한 팔을 휘두르는 괴수.
그런 괴수의 모습을 보던 리디야는 문득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잘못 건드린 거 아니야?’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
잘못 건드렸다.
정말, 지금 이건 잘못 건드렸다.
그런 생각이 리디야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쿵……! 쿠궁……! 쿵……!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모니터에 재생되고 있는 영상에서는 SS급 괴수가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만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