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나 혼자 10만 대군 126화
38장 SS급 대형괴수가 놓고 간 것(1)
무척이나 넓은 황토색 대지.
척박해 보였지만 곳곳에 자란 나무와 식물들은 이곳이 ‘생명’이 깃들 수 있는 땅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런 대지를 비추는 태양은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대지 가운데에 갈색의 비늘로 자신의 몸을 두른 ‘황룡’이 있었다.
거대한 크기.
대충 보기만 해도 10m 정도는 가볍게 넘길 것 같은 거대한 황룡은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강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하나 고작 그것뿐.
[네 녀석은 대체 누구라는 말이냐……!]
압도적인 것을 넘어 광오함을 담고 있는 듯한 황룡의 몸은 끔찍하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강철보다도 단단한 황룡의 비늘은 이미 무언가에 거침없이 찢어지고, 거기에서 떨어진 붉은 피로 황토색의 대지에 자그마한 웅덩이를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무척이나 길고 강해 보였던 황룡의 꼬리는 그 위엄을 잃고, 무엇인가에 짓이겨져 있었다.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황룡을 올려다보며 나는 말했다.
“알아서 뭐 하려고?”
[뭐……?!]
“어차피 넌 여기서 죽을 텐데.”
[드래곤을 무시하는 거냐!]
크아아아아아아!!!
내 말에 분노한 듯 자신의 입을 벌려 크게 하울링을 내뱉은 황룡의 주위로 엄청난 수의 마법진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마치 최후의 일격이라도 준비하는 듯 이 주변 지역 일대의 마력을 모조리 빨아들이며, 계속해서 마법진의 개수를 늘려가는 드래곤.
하지만 그런 드래곤의 행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푸욱!
[……!? 크아악!!]
핸디드에서 튀어나온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움직이며 황룡의 몸을 난도질했기 때문이다.
황룡의 뼈를 뚫고 그 안을 헤집는 그림자.
그림자에게 공격당하자, 사방에서 전개되던 마법진이 점점 사라져 간다.
“그러니까 누가 공격에만 몰빵하래? 아무리 열 받아도 ‘방어 마법’은 계속 전개해 두고 있었어야지.”
[인간……! 하찮은 인간 주제에에에!!!]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잠시.
나를 잡아먹을 듯 그 아가리를 벌리며 괴성을 지르던 드래곤은 핸디드에 온몸이 꿰뚫려 죽었다.
완전히 침묵한 황룡.
시체 안에서 내 몸통만 한 거대한 크기의 ‘드래곤 하트’를 찾은 나는, 그것을 확인할 새도 없이 곧바로 저 멀리에 위치한 푸른색의 균열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후.”
“1시간 53분…… 조금만 더 있었다간 균열이 닫힐 뻔했다.”
푸른 균열을 넘자마자 들려오는 로우레테의 목소리.
나는 내 몸뚱이만 한 드래곤 하트를 고풍스러운 서고 한쪽에 놔두고는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뭐 이렇게 강해?”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나. 네가 잡아야 하는 용은 다른 용들과는 전혀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그렇긴 한데…… 차이가 너무 심하지 않아?”
내가 균열 앞에 앉아서 묻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초콜릿 파이의 봉지를 까며 물었다.
“네가 말했던 드래곤은 헤츨링급인가? 그것도 아니면 테그논? 모르페?”
“뭐?”
“드래곤의 등급을 말하는 거다.”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하며 초코릿 파이를 입으로 가져가 베어 물었다.
고깔모자 아래에 있는 그녀의 볼이 귀엽게 움직이며 초코릿 파이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확실히, 드래곤의 등급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옛날 판타지 소설 같은 데서 보면 에이션트 드래곤이나 헤츨링 같은 게 있기는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으려니, 작은 입으로 초코릿 파이를 전부 먹어치운 로우레테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일일이 등급을 설명하면 귀찮아지니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너는 드래곤의 등급 중에서 꽤 상위 등급의 드래곤을 잡은 거다. 당연히 강할 수밖에 없지. 그게 고작 파편이라도 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가지고 온 드래곤 하트를 확인했다.
여기저기 훑어보는 도중 균열은 시간이 다 되었는지, 기동을 멈추었고, 나는 그런 균열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남은 재료는 몇 개야?”
“아직 꽤 남았다.”
“아직도?”
“내가 전에 한번 말해주지 않았나?”
“뭐, 그렇기는 하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다시 테이블 쪽으로 돌아가며 입을 열었다.
“너무 그렇게 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어차피 균열의 가동 시간은 2시간이고, 그동안 처리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어차피 지금 당장 악마를 가둘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든다고 해서 바로 쓰지는 않을 거다.”
“응? 왜?”
“당연히 네가 각성을 해야 하지 않나.”
로우레테는 뭘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상자 속에서 초콜릿 파이를 꺼내 들었다.
“각성? 아니, 그럼 애초에 내가 먼저 각성하고 재료를 찾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아?”
“그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찌직-
초콜릿 파이의 봉투를 찢으며 로우레테는 실눈으로 나를 노려봤고,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해 테이블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의자에 앉아 말했다.
“그럼 왜?”
“네 각성 아이템이 있는 파편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파편의 입구에 열 좌표가 필요한데 그걸 구하지 못했어.”
“……좌표라고?”
“뭐,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라. 아마 네가 재료를 다 모을 때 즈음이면 각성 던전의 좌표도 적당히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초콜릿 파이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한입을 먹을 때마다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는 표정.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행복해 보인다?”
내 말에 일순 몸이 굳은 로우레테는 나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확실히 이 초콜릿 파이는 무척이나 맛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말을 들으며 상자 안에 있는 초콜릿 파이에 손을 가져갔고 그 순간…….
딱!
“……!?”
로우레테의 손이 무척이나 빠르게 움직여 초콜릿 파이로 가고 있던 내손을 저지했다.
“나도 하나만 먹자!”
“안 된다. 이제 2개밖에 안 남았다.”
“아니, 내가 사준 거거든?”
“……정말 먹을 생각이냐?”
초콜릿 파이를 오물거리다 말고 나를 바라보는 로우레테.
그깟 초콜릿 파이가 뭐라고 무척이나 애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지…….
그녀를 본 나는 피식 웃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을 거두었다.
그제야 다시 초콜릿 파이를 우물거리는 로우레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는 건가?”
“그래. 오늘 할 일은 끝났으니까.”
“내일도 가져와라.”
“초콜릿 파이?”
고개를 끄덕이는 로우레테.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로우레테가 만들어준 탈출 마법진 앞에 섰고, 곧 횃불이 있던 곳인 휴게실로 나올 수 있었다.
“아저씨!”
그리고 내가 휴게실로 빠져나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다가 큰 소리로 나를 부르는 김서윤과 모여 있는 길드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뭐, 뭐야?”
“어디 있었어요?”
“내가 말했잖아? 이 횃불 안에 있겠다고.”
“아, 그랬지…… 가, 아니라 긴급 상황이라는데요?”
“뭐? 긴급 상황? 또 저번처럼 도시에서 괴물들이 나타나 깽판을……?”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 휴게실 안에 모여 있는 길드원들을 보며 그 가정을 지워 버렸다.
만약 그런 난리가 일어나고 있었다면 길드원들이 여기에 모여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헌터 협회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연락?”
“네, 엄청나게 긴급 상황이라면서요.”
긴급 상황? 헌터 협회에서?
김서윤의 말에 한동안 생각하던 나는 이내 헌터 협회에서 말하는 긴급 상황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북한에서 빠져나온 SS급 대형괴수 사건.
이제 슬슬 그 사건이 일어날 시기라고 생각했다.
SS급 대형괴수 사건은 일본에서 일어난 SS급 대형 던전 사건과 그리 시기 자체에서 차이가 나지 않았으니까.
“근데 협회 쪽에서 긴급 상황이라고 할 정도면 뭔가 걸리는 게 있는 거겠지?”
하리남이 슬쩍 생각하듯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이은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리남의 말에 동조하고는 이내 말했다.
“길드장님, 아무튼 헌터 협회에서 저희 길드를 호출했는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은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호출은 했으니까 가봐야겠지. 언제까지 가야 하는데?”
“음…… 지금 출발하면 조금 상황이 늦을 것 같은데요? 대충 20분 정도?”
이로하가 시계를 보며 말했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조금 늦겠지만 가보자.”
어차피 SS급 괴수를 잡기는 해야 했다.
……내 영체 합일의 한 칸은 그 녀석이 채워야 할 테니까.
나는 길드원들과 몸을 움직였다.
* * *
여의도에 위치한 헌터 협회 한국 지부.
인사부의 강형찬 부장에서, 어느새 상당한 권력을 쥔 이사로 승진한 그의 호출에 따라 협회 지하의 대회장에는 무척이나 많은 길드가 모여 있었다.
한국에 기존 대형길드라고 점쳐지는 신천과 고구려, 무천 길드도 있었고, 이제 막 새로운 대형길드의 반열에 들고 있는 ‘카르마’ 길드를 비롯한 다른 중형 길드들도 대회장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헌터들로 북적거리는 대회장 안.
그 앞에 있는 단상에서 강형찬 부장은 주변을 한 번 바라봤다.
‘씨커 길드는 오지 않은 건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당장 한국의 길드들을 전부 불러들였지만, 이건 현재 한국에 있는 헌터들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SS급 대형괴수라니.’
이 세상에 던전과 이변, 헌터들이 생기고 나서 단 한 번밖에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던 SS급 대형괴수.
미국에서 나타난 SS급 괴수는 SSS급 능력자 5명의 합공으로 물리치는 데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미국은 ‘대도시’ 하나를 통째로 포기했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당장 국제 협회에 지원을 요청하기는 했지만……’
상황이 당장 빠듯했다.
‘……우선 지금 당장은 브리핑을 하고 그 뒤에 씨커 길드에 따로 연락해서 물어봐야겠어’
그렇게 대회장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강형찬 부장은 간단하게 생각을 마치고 현재 상황을 헌터들에게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굳어가는 헌터들의 얼굴.
“국제 헌터 협회에는 도움을 요청했습니까?”
강형찬의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들어오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제 18시에 이변을 확인한 뒤 저희는 곧바로 국제 헌터 협회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강형찬의 말이 끝나자 다른 헌터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SS급 대형괴수는 북한에서 출현 예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왜 저희 쪽에서 지원을 나가야 합니까?”
“예?”
“어차피 북한에서 대형괴수가 출현하는 거면 대형 괴수의 이동 루트를 보고 결정하면 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중국이나 러시아는 어떻게 된 겁니까?”
“그쪽에서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은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모든 나라에서 힘을 합쳐야…….”
“그리고 만약 협회에서 파악한 것처럼 정말 SS급 대형괴수가 나온다면 오히려 일반적인 지원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건…….”
강형찬은 헌터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하는군.’
지금 그들은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세상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대도시 하나를 박살 내고, SSS급 헌터 5명이 붙어서 경우 토벌한 괴수를 상대하기는 싫겠지.’
부정적으로 움직이는 여론에도 강형찬은 일일이 대답해 주었지만, 그의 대답이 부정적인 여론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끼이이익!
대회장의 문이 열리고,
“조금 늦었습니다.”
그림자 왕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