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나 혼자 10만 대군 125화
37장 악마를 가두는 법(2)
길드원들이 빠져나가서 조용해진 휴게실 안.
“……엘리고르를 가둘 방법이 있다고?”
나는 로우레테가 해주는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래, 고작 2~3일 정도기는 하겠지만 내 이론대로라면 엘리고르를 다른 차원에 잠시 가둬둘 수 있다.”
“……이론상이라고?”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론상이다. 애초에 악마를 가둔다는 발상을 하는 녀석들이 없었으니까.”
로우레테는 고깔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리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게다가 애초에 ‘악마’를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잠시 다른 차원에 가둬 둘 수 있다는 것뿐이다. 그 기간도 고작 2~3일 정도일 뿐이지.”
“…….”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악마’를 가둬놓는 건 사실 다른 녀석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짓이다. 그냥 예정된 시간을 뒤로 조금이나마 미루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로우레테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엘리고르를 2~3일에 가둘 수 있다면, 그 2~3일 동안 네가 10군단장 내외에 있는 녀석들을 죽여도 절대 엘리고르가 간섭하지 못한다는 소리지.”
“……!”
확실히 로우레테의 말이 맞다.
그녀에게 들은 바로 10군단장부터는 아무리 조심스럽게 접근해 녀석들을 죽인다고 해도, 그들은 엘리고르와 마력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몰래 죽일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엘리고르가 군단장들이 죽는 것을 알고 있어도 군단장들이 있는 곳에 올 수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말 그대로 내게 주어진 2~3일의 시간 동안 엘리고르한테 습격받을 걱정을 하지 않고 군단장들을 죽일 수 있었다.
“……근데.”
“……?”
“그건 좀 뒤의 이야기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로우레테는 말했다.
“물론 네가 서열 10위 내에 있는 녀석들을 죽이는 것은 지금보다는 뒤의 일이겠지만 엘리고르를 가두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지금부터?”
“그래, 고작 2~3일 정도기는 하지만 악마를 가두는 데 쓰이는 봉인구를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지……. 뭐,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가성비가 심히 좋지 않기는 하다.”
“……그래?”
“그렇다. 그래서 다른 외신들이 악마를 가둘 방법을 알고 있어도 쓰지 않는 거겠지. 소멸시키는 것도 아니고 고작 2~3일을 봉인하는 것뿐인데 준비해야 할 건 더럽게 많으니까.”
“그래서, 준비해야 할 건 뭔데?”
“우선 제3지구에 있는 드래곤 하트.”
“……뭐?”
“그 뒤에는 제5지구에 있는 해태의 내단.”
“……해, 뭐라고?”
“또 이제 멸망해 가고 있는 제1지구의 아모로니 석판도 필요하고, 또 지금 있는 3지구에서 얻을 수 있는 야마타노오로치의 목도 필요하다. 그리고 또…….”
그 뒤로 한참이나 필요한 것을 읊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말없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파편으로 나타나지 않은 구역에 있는 대오삼위라는 물건이 필요하다.”
“……뭐 대충 알아듣기는 했는데, 왜 외신들이 악마를 가둘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쓰지 않았는지 알 것 같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로우레테가 말하는 걸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부분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고작 그것만으로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악마를 가두는 아이템을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 그 물건들은 어떻게 모아야 해? 지금 네 말을 들어보니까 아무래도 이 지구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도 있는 것 같은데?”
내 물음에 로우레테는 새삼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차원 이동 장치’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그 아이템을 얻는 동안 군단장들을 죽이는 건 잠시 뒤로 미루겠다고 한 거야?”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는 말했다.
“그래, 원래 처음에는 엘리고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로우레테는 고깔모자를 뒤로 눌러쓰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위 군단장을 그렇게 빨리 처리할 수 있다면, 언제든 처리할 수 있는 하위 군단장들을 처리하며 걸릴 확률을 늘리는 것보다는 엘리고르를 묶어놓고 상위 군단장을 죽이는 게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우레테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가 이전에 상대했던 군단장들을 솔직히 말해서 내게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근데, 이미 나는 55군단장까지 죽였는데?”
“그렇다고 해도 걸릴 확률은 미미하다, 혹여 걸린다고 해도 군단장을 죽인 녀석이 너라는 것을 추측하기는 어렵겠지.”
“……그래?”
“당연하다. 그 녀석은 네가 균열을 이용해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만약 네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려면 네가 군단장을 죽이고 난 직후에나 아니면 최대 하루 이내로 그 구역으로 가야 그나마 너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겠지.”
네가 싸우면서 남긴 능력의 잔재가 남아 있을 테니까.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하며 입을 닫았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하는 거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러고 싶지만, 조금만 기다려라. 아직 제대로 균열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보다.”
그녀는 자신이 앉아 있던 소파의 팔걸이 옆에 있던 붉은색 봉투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건 뭐지?”
“아, 그거?”
나는 로우레테의 손에 잡혀 있는 음식을 보며 말했다.
“먹을 거야. 초콜릿 파이라고…….어, 기호식품이라고 보면 돼. 간식 같은 거지.”
“……초콜릿 파이?”
“몰라?”
“모른다. 애초에 이런 먹거리가 내 서고에 있을 리 없지 않나?”
“……그런가? 아니, 그보다 그게 왜 거기에 있지?”
서윤이가 두고 간 건가?
요즘 들어 군것질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은데,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려 소파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보자, 아니나 다를까 이미 봉지만 남겨져 있는 초콜릿 파이가 쓰레기통에 가득했다.
아무래도 가져와서 먹다가 깜박하고 하나를 안 챙겨 간 것 같았다.
“…….”
“…….”
말없이 초콜릿 파이를 바라보고 있는 로우레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먹고 싶어?”
“……솔직히 조금 궁금하기는 하군.”
그녀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초콜릿 파이의 봉투를 바라봤다.
“그럼 먹어봐.”
“그래도 되나?”
“뭐, 별로 상관없지.”
과자 하나 정도인데.
내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으쓱이자 그녀는 이내 초콜릿 봉투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로 먹으면 되는 건가?”
“……아니, 거기 그 뾰족한 부분 있지? 거기를 잡고 찢으면 내용물이 나오니 그걸 먹으면 돼.”
……순간 당황했다.
뭐, 하지만 어찌 보면 모를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애초에 로우레테는 이 세계에서 한번도 살아보지 않았을 테고, 저런 포장 방식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내 말대로 초콜릿 파이의 포장지를 뜯었고, 곧 안에서 나온 검은 내용물을 보곤 짧게 감상을 내뱉었다.
“……맛없어 보이는군.”
“그래?”
“이런 걸 간식으로 먹는다고?”
그녀는 초콜릿 파이를 든 채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상을 내뱉었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선 먹어봐. 맛은 괜찮으니까.”
초콜릿 파이는 나도 꽤 좋아했다.
군대에서 가장 가성비 좋고 싸게 먹을 수 있는 게 초콜릿 파이였으니까.
내 말에 그녀는 슬쩍 나를 바라보고는 뭔가 내키지 않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초콜릿 파이를 입안에 집어넣었고.
“……!!!”
그녀는 초콜릿 파이를 입에 넣는 순간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마, 맛있어!”
탄성을 내질렀다.
* * *
어두운 던전 안의 대공동.
한참 전부터 쌓여 있던 몬스터들의 시체는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부패해 가며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부패되어 가는 몬스터의 시체들 사이에서 크세즈베트는 조용히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
“네년, 분명히 말했을 텐데? 다시는 곳으로 넘어오지 말라고 말이야.”
크세즈베트의 말에 부패된 시체 사이로 걸어 나온 엘리고르는 느긋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대꾸했다.
“왜 그렇게 까칠해?”
“……그걸 말이라고 하나?”
크세즈베트의 눈빛에 살기가 담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느긋한 표정으로 위협했다.
“진짜로 모르겠는걸? 도대체 왜 네가 그렇게 일일이 열을 내고 있는지 말이야~”
“……진짜로 계속 모른다고 잡아뗄 생각은 아니겠지?”
크세즈베트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고르를 바라봤고, 그녀는 오히려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니, 정말로 잘 모르겠는걸?”
“네 녀석의 같잖은 피조물들이 내 차원에 넘어오는 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아 그거?”
크세즈베트의 말에 엘리고르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이 2지구에 소환되었던 게 내 휘하에 있는 군단장들의 몬스터인 건 인정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녀석들은 내가 부른 게 아니거든.”
“그걸 나한테 믿으라는 거냐?”
“믿으라고는 하지 않았어. 나는 그냥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거라고?”
엘리고르의 말에 크세즈베트의 표정이 악귀처럼 변했지만 그럼에도 엘리고르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나는 소환하지 않았어, 내 몬스터들은 이 2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이 소환한 거라고? 너도 알고 있잖아? 내 마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하나 엘리고르의 말에도 불구하고 크세즈베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엘리고르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런 크세즈베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침착함을 잃어. 그러면 그럴수록 너는 내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드는 거니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을 짓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크세즈베트에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저번에 내가 말했던 거 있잖아? 네가 조금만 내게 양보해 주면 내가 외신의 파…….”
“꺼져라, 엘리고르. 그 얼굴을 땅바닥에 짓이겨 버리기 전에.”
“어머, 무서워라.”
크세즈베트의 살기 어린 말에 그녀는 짐짓 놀랐다는 듯 과장되게 반응하며 노골적으로 그를 조롱했고, 이내 미련 없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뭐, 아직 내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가 보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 말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엘리고르.
크세즈베트는 엘리고르가 보라빛의 마력을 내뿜으며 사라지자마자 괴성을 내지르며 옆에 있는 시체의 산을 발로 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부패하고 있던 몬스터들의 시체가 사방으로 날아가고 그 가운데에 서 있던 크세즈베트는 섬뜩한 표정을 지우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네 생각대로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엘리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