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나 혼자 10만 대군 122화
36장 선빵 필승(3)
한국 헌터 협회가 위치한 여의도 근방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허공에 생긴 마법진에서 빠져나온 가고일을 닮은 괴물들.
그들은 마법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마치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여의도를 습격하고, 인간들을 공격했다.
“흐읍!”
짧은 기합성과 함께 한국 헌터 협회 소속인 이성진이 자신의 검을 크게 횡으로 휘둘러 눈앞에 다가온 몬스터를 베어내자 가고일을 닮은 괴물은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 온몸이 바스러져 죽음을 맞이했다.
캉!
하나 곧바로 옆에서 들어오는 공격에 이성진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몸을 뒤로 뺏다.
“이런 젠장……!”
이성진은 자신의 능력인 ‘절단’을 활용해 공격을 가한 괴물을 베어내곤 눈알을 굴려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여기저기 뒤집힌 차량과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는 헌터들,
“이러다 진짜 세계 멸망하는 거 아니야?”
이성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악마를 바라봤다.
분명 죽인 숫자만 해도 일백은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악마의 숫자는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처음 악마들이 출현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많아진 것 같았다.
푸른 하늘을 빽빽하게 채워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숫자.
이성진은 저도 모르게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
“꺄아아악!”
공중에 떠 있던 괴물들이 일제히 이성진과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여드는 엄청난 숫자에 이성진의 맥이 탁 풀렸다.
‘저걸 어떻게 막아……?’
못 막는다.
막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이 이성진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검을 든 손의 힘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낄 때쯤.
팡!
마치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넌……?”
“이야기는 나중에!”
이성진은 눈앞에 나타난 이를 알고 있었다.
아직 앳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협회 헌터들이 입고 있는 장비를 입고 있는 소년.
“에단?”
‘씨커’ 길드에서 김우현이 뽑은 다섯 번째 길드원.
‘어떻게 여기에? ……아니, 애초에 어떻게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난 거야?’
에단이 자신의 옷깃을 잡는 것을 보는 순간 이성진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김우현이 처음 헌터 협회에 기초 훈련을 비롯한 실전 훈련을 위해 에단을 맡겼을 때, 그는 협회에 있는 모두에게 왠지 모를 기대를 받고 있었다.
실제로 에단이 처음 협회에 온 그 날 여러 헌터가 에단에게 선물을 주거나, 이런저런 팁을 알려주는 등 에단의 곁에 붙어서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행동하기도 했다.
하나 그것도 처음일 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헌터 협회의 헌터들은 에단에게서 관심을 지웠다.
그의 성장이 너무나도 더뎠기 때문에.
그는 김우현이 뽑은 다른 길드원처럼 성장이 빠르지 못했다.
능력 개화도 마찬가지였다.
헌터 등급도 제대로 올라가지 않는 마당에 그의 능력 개화는 씨커 길드에 입단한 다른 길드원들보다 현저히 느렸다.
에단은 능력 개화를 아예 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그런 에단을 본 협회의 헌터들은 김우현이 드디어 첫 실수를 했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성진’도 딱히 부정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의 성장 속도는 지옥이었으니까.
1달이 지나고, 2달이 지나도 에단은 파티에서 겉절이 역할을 할 뿐이었다.
칼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고블린의 허술한 일격을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는 허접한 실력.
후웅!
“꺄앗!”
이성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의 시야가 변했다.
하늘에서 다가오고 있는 악마들은 똑같지만, 위치가 달랐다.
“누나도 빨리!”
“……!?”
“무슨!?”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성진은, 조금 전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동료 헌터가 있는 곳으로 와 있었다.
에단과 함께.
‘이게 대체 뭐야!?’
이성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에단은 동료 헌터의 옷깃을 잡았고…….
후웅!
“……어?”
이성진은 어느 빌라의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조금 전에 보였던 동료 헌터와 함께.
“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난색을 표했지만 에단은 이성진과 그녀를 한 번 돌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
그와 함께 에단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이성진은 저도 모르게 에단이 서 있던 빌라 옥상의 끄트머리에 붙었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지상을 향해 강하하는 엄청난 숫자의 괴물들과 그 아래를 종횡무진으로 돌아다니며 헌터들을 구하는 에단의 모습을…….
그것을 본 순간 이성진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에단이 자신의 능력을 개화했다는 것을.
‘가속인가? 아니, 아니야. 가속이 아니다……. 저건…… 텔레포트?’
에단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사라졌다가.
또 나타난다.
그리고…….
“뭐, 뭐야!?”
“여, 여기 어디야!?”
조금 전까지 지상에 있던 3명의 헌터들은 에단에 의해 이 빌라의 옥상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말없이 사라지는 에단.
그 모습을 보며 이성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텔레포트를 저렇게 빠르게 쓴다고?’
텔레포트 능력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많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에단과 같은 능력을 가진 헌터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에단처럼 저렇게 여러 번 연속으로 텔레포트를 쓸 수 있는 헌터는 보지 못했다.
이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S급 텔레포트 능력자가 단거리로 텔레포트를 한다고 해도 단거리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 햇수는 최대 4번, 그마저도 텔레포트를 하고 나면 숨이 헐떡거린다.
근데 에단은?
이성진이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는 도중에도 또 한 번 에단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3명의 헌터들을 데리고.
“허…….”
그리고 그렇게 몇 차례 에단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을 때,
이미 악마들이 하강한 지상에 ‘헌터’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 * *
아무것도 없는 무색의 공간.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도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 공간 안에서 후카이 이로하는 자신에 귀에 들린 목소리가 했던 말을 멍하니 중얼거렸다.
“모든 걸 잃을 각오…….”
[그래, 다시 한번 묻도록 하지. 모든 걸 잃을 각오는 생겼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남자의 물음에 후카이 이로하는 침묵을 지켰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후카이 이로하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고 지나갔다.
잃을 각오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직 각오가 없다고 해야 할까.
이로하는 그 어는 것도 정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아직도 선택하지 못한 건가?]
굵은 목소리가 다시 한번 이로하의 귀에 스며들었다.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은 뭘 말하는 건가요?”
[그건 내가 아니라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목소리의 말에 후카이 이로하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곧 이로하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안 해도 은별 언니랑 서윤이가 전부 정리할 텐데……거기에다가 길드장님도 있고…….’
안이한 생각.
어차피 자신이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 이 상황은 넘길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 맞다.
여기서 굳이 내가 이 ‘일상’을 포기하지 않아도, 이 사태는 지나간다.
그래, 그뿐이다.
각성은 조금 더 ‘준비’를 하고 나서 하면 된다.
아니, 애초에 각성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이 일상을 망가뜨리면서까지?
“…….”
그러다 문득.
후카이 이로하는 ‘각성’에 대가가 걸리자마자 생각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자신에게 문득 역겨움을 느꼈다.
분명 김서윤이 각성할 때만 해도 이로하는 그녀를 부러워했다.
그 뒤를 따라 이은별이 각성할 때도 그녀는 이은별을 부러워했고, 하리남이 각성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소외감과 조급함을 느꼈다.
나만 아직 각성하지 못했다는 소외감.
나도 빨리 저렇게 되고 싶다는 조급함.
[빨리 ‘대답’해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목소리의 재촉에 이로하의 생각이 한껏 복잡해졌다.
일상을 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위한 자기합리화와 여태껏 원하고 있던 능력의 각성이 이로하의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편을 갈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능력을 얻을 수는 없나요?”
[뭐?]
“저는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로하는 자신이 생각한 제3의 답을 내놓았다.
지금 영위하고 있는 이 일상을, ‘이로하’는 두 번 다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볼 수 있는 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로하는 힘을 원했다.
씨커 길드의 다른 길드원들과 ‘격’이 맞는 힘을.
[……내가 물은 것은 그것이 아닐 텐데?]
“제가 낼 수 있는 답변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이로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은 듯 확신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한테는 제 일상도, 그리고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이 ‘능력’도 소중하니까요.”
[…….]
이로하가 말하자 목소리는 침음하는 듯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조금 뒤, 목소리는 만족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후후후…… 좋다.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지?]
“네.”
[통과다.]
“……네?”
이로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왜? 싫으냐?]
엄중했던 목소리가 마치 동네 할아버지의 목소리처럼 장난기가 가득하게 바뀌고, 이로하가 제대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할 무렵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네게 묻고자 했던 건 ‘진심’이다. 너는 내가 낸 질문에 상관없이 ‘진심’을 말해야만 이 시험에 통과할 수 있지. 왜냐하면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능력은 오로지 ‘진심’만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곤 이내 목소리를 다듬는 듯 큼큼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마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럼, 이제부터 이 말을 잘 기억해라, 내 눈을 가지고 있는 필멸자야. 너는 ‘진실을 보고, 진실을 심판하는 자’의 권능을 가지고 있으니. 내 눈을 본격적으로 개화하는 지금부터 너는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된다.]
“네……?”
[그 대신 너는 청염의 권능을 얻으니, 그 권능으로 내 눈이 세상에 강림했다는 것을 알려라.]
그 말을 끝으로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이로하의 몸이 마치 공간에서 튕겨 나가듯 멀어졌다.
“아……!”
그리고 이로하는, 이전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이쪽으로 날아오는 김서윤과 앞까지 다가온 괴물.
분명 목소리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제법 될 텐데도 불구하고, 세계는 그 목소리와 대화하기 직전의 그 상황 그대로였다.
괴물의 창이 자신의 눈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이로하는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