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나 혼자 10만 대군 120화
36장 선빵 필승(1)
고풍스러운 도서관.
넓은 방 한가운데에 깔려 있는 붉은 카펫을 주임으로 진열된 책장들 사이에서 로우레테는 눈앞의 푸른 빛의 균열을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겨우 완성했다.”
“오? 빠르잖아? 달 시계를 빌려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전부 만들어내다니.”
그리고 그런 로우레테의 뒤에서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짝짝 박수를 치며 다가온 로만.
로우레테는 도서관 한가운데에 복잡하게 그려진 마법진 중 한 곳에 올려진 달 시계와 태양 시계를 집어 들곤 로만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걸 받으러 온 거겠지?”
“맞아.”
로우레테의 말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가 내민 달 시계와 태양 시계를 받아들더니, 달 시계는 그대로 자신의 품 안에 집어넣고, 태양 시계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확인했다.
“이야, 파편이라고는 해도 꽤 괜찮은데? 솔직히 말하면 그냥 외형만 비슷한 깡통일 줄 알았는데.”
그는 태양 시계도 품속에 넣고는 열려 있는 차원의 균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래서 바로 시작할 거야?”
“뭘?”
“네가 말했던 거 말이야. 엘리고르의 휘하에 있는 군단장들을 죽인다고 했지?”
로만의 말에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의 뜻을 내비쳤고, 로만은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뭐, 내가 신경 쓰는 게 웃기기는 한데, 괜찮을까?”
“……? 뭐가?”
“네 계약자 말이야. 네가 말한 대로 ‘형체가 없는 자’의 파편을 가지고 있기는 해도, 결국 ‘파편’이잖아? 엘리고르가 없다고 해도 군단장들을 이길 수는 있을까?”
로만의 물음에 로우레테는 로만을 지나쳐 그 뒤에 있는 의자에 앉고는 입을 열었다.
“이길 수 있어.”
“정말?”
“내가 본 바로는, 그 녀석도 상위 군단장들에게 꿀리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어.”
“뭐? 고작 ‘파편’이 그 정도까지 할 수 있다고?”
“너도 조금 전에 말했잖아? 그 녀석이 누구의 파편을 가졌는지를.”
“그건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좀…….”
로만이 여전히 못미덥다는 듯한 느낌으로 말을 흐리자 로우레테는 그를 한 번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야, 게다가 딱히 걱정해 줄 필요도 없고.”
“……그래도 말이지.”
그가 저도 모르게 말꼬리를 늘이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아마 지금 그 녀석이 군단장들을 잡으러 간다고 해도 엘리고르 아래에 있는 5군단장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거야.”
“……? 뭐? 5군단장?”
“그래.”
“정말로……?”
그녀는 몇 번이고 되묻는 로만에게 슬쩍 인상을 쓴 뒤, 벗어놓았던 자신의 고깔모자를 쓰며 입을 열었다.
“받을 거 받았으면 가보는 게 어때?”
그녀의 말에 살짝 날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달은 로만은 슬쩍 어색한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아니, 뭐 안 그래도 내 계승자에게 시계를 돌려줘야 해서 가보기는 해야 하는데, 사실 오늘 네게 온 건 이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거든.”
로만은 자신이 받았던 달 시계를 흔들며 말하자, 로우레테는 여전히 날 선 목소리로 되물었다.
“뭔데.”
“너한테 좋은 이야기지, 그리고 네 계약자한테도 말이야.”
“……?”
“지금 엘리고르의 휘하에 있는 녀석들이 3지구를 지옥으로 ‘테라포밍’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3지구를……?”
“그래, 사실 나도 처음에는 그 녀석들이 왜 다 죽어버린 행성을 테라포밍 하고 있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 네가 저번에 달 시계를 빌리러 왔을 때 했던 말을 생각해 보니까 대충 이해가 되더라고.”
로만은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은빛 머리를 만지작거렸고, 로우레테는 슬쩍 시선을 내리고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을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을 봤을 때는 그럴 확률이 농후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엘리고르의 휘하에 있는 60개의 군단은 2지구에 완전히 퍼져 있는 상태라는 거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몸을 돌렸다.
“아무튼, 내 말은 지금이 엘리고르의 힘을 약화시킬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거지. 그럼, 잘해봐.”
파앗!
그 말을 끝으로 은색 빛이 터져 나오며 로만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로우레테는 그가 있던 곳을 보며 조용히 고민했다.
‘확실히 군단장들이 테라포밍을 준비하기 위해 전부 떨어져 있다면 상황이 나쁘지 않다.’
원래라면 이 차원이동 장치를 이용해 녀석들을 공격하는 타이밍은 단 두 번 정도였다.
두 번의 공격 이후에는 엘리고르도 나름대로 자신의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떻게든 방어선을 만들 테니까.
‘하지만 군단장들이 전부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면…….’
로우레테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 *
고풍스러운 도서관 내의 풍경을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횃불 안쪽에 있는 공간이라고?”
로우레테가 ‘차원 이동장치’ 만들겠다고 횃불에서 나오지 않은 지 2주.
그 정도 시간이 지나 다시 모습을 드러낸 로우레테는 나를 데리고 횃불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애초에 여기 아무나 막 들어와도 되는 곳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너는 내 계약자이기에 여기 들어올 수 있는 거지, 다른 이들은 이곳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
나는 주변들 둘러봤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는 샹들리에 아래에는 고딕한 느낌의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고, 그 아래에 깔린 레드카펫을 중심으로 늘어선 수많은 책장은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빽빽했다.
“이거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푸른빛을 내뿜는, ‘균열’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게 그 차원 이동장치야?”
“그래.”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너는 이 균열 안으로 들어가서 엘리고르 휘하에 있는 군단장을 죽이면 된다.”
“……뭐? 설마 지금부터?”
“무슨 문제라도 있나?”
무척이나 평온한 로우레테의 물음에 나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이며 푸른 균열을 바라봤다.
사실 미룬다고 해서 딱히 어떤 준비를 추가로 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로우레테가 눈앞에 보이는 차원 이동장치를 만들겠다고 횃불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동안 나도 막연히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그녀에게 어느 정도 설명을 듣기도 했다.
지금 엘리고르 휘하에 있는 군단장들은 ‘테라포밍’을 이유로 모여 있지 않다는 것도 들었고, 군단장을 습격하려면 지금이 적기라는 사실도 들었다.
“아니, 뭐 별문제는 없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가 처음 잡으러 갈 녀석은 엘리고르의 휘하 중에서도 제일 약한 60군단장이니까.”
“근데 이런 식으로 군단장을 쓰러뜨리면 엘리고르가 눈치채는 건 시간 문제 아니야?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강한 녀석을 죽이는 게…….”
내 물음에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네가 군단장을 죽여도 엘리고르는 군단장이 죽었는지 알지 못할 거다.”
“……왜?”
“엘리고르와 직접적으로 마력이 연결된 군단장은 제1군단장부터 제10군단장까지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고깔모자의 챙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확실히 60군단장을 비롯해 그 휘하에 마물들을 몰살시킬 수만 있다면 60군단장의 죽음은 네가 충분히 군단장들을 죽이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을 거다.”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어깨를 으쓱인 뒤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 녀석들은 통신체계가 형편없거든.”
“……흠.”
그런 거라면…….
나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나를 보며 간단히 브리핑을 해주었고 나는 그녀의 말에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요점은 60군단장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거지?”
“그렇다. 아마 네가 가도 간단하게 상대가 가능하겠지. 대충 군단장들의 체계가 대충 이런 느낌이구나 정도로 보면 될 거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고, 그녀는 파란 균열 앞에 선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아마 이 균열을 통과하게 되면 바로 전방에 60군단장이 있는 거처가 나올 테니 길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테고, 이왕이면 빠르게 처리하고 빠르게 돌아오는 편이 좋다.”
“알았어.”
“그리고, 군단장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는 박쥐 녀석은 무조건 놓치지 말고 잡아라. 아니, 그냥 처음 공격할 때 잡는 게 좋을 거다. 그 녀석이 그 군단장들의 유일한 통신체계니까.”
나는 로우레테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균열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겨 균열의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서 있던 풍경이 바뀌어 나간다.
조금 전까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했던 주변의 분위기는 어디로 간 것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언젠가 보았던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잿빛의 도시.
땅을 말라비틀어져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지반이 쩍쩍 갈라져 그곳에는 더 이상 새로운 생명이 잉태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런 망가진 땅 위에 남은 것은 단 하나도 없는, 말 그대로 잿빛의 세계.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회색빛의 재들은 황량한 바람에 따라 여기저기 흩날리고 있었다.
“……이건.”
이런 풍경을, 나는 본 적이 있었다.
“…….”
내가 회귀하기 전.
크세즈베트를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했던 세계와 회귀 전의 세계와 무척이나 유사한 세계를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쯧.”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리고는 시선을 돌렸다.
이런 데서 쓸데없이 감상에 빠져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아무것도 없이 황망하기 짝이 없다 보니 찾는 건 쉽게 찾을 수 있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황망한 대지 가운데에 있는 괴물들을 찾을 수 있었다.
멀리서 본 것만으로도 그 수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우글거리며 모여 있는 괴물들은, 다들 제각각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괴물들의 한가운데에 딱 봐도, 저 안에서 가장 강해 보이는 녀석이 있었다.
다른 괴물들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덩치는 단연 돋보였고, 그런 대형 괴물의 위에 돌아다니고 있는 박쥐를 보며 나는 고민을 끝내며 능력을 발동했다.
탁한 회색빛으로 가득 차 있는 땅이 검은색으로 물들고 그 안에서 그림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동화.”
그림자들의 이마에 뿔이 솟아오르고, 붉은 안광이 일렁거렸다.
“영체 합일.”
그림자만 나오던 그 어두운 영역 속에서, 괴이한 소리를 내며 어둠으로 감싸인 언데드 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좀비부터 시작해 듀라한까지.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
하나 내 주변에는 이미 저 괴물을 상대할 정도의 ‘군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군단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