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나 혼자 10만 대군 119화
35장 사전 준비(3)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후카이 이로하는 자신의 손에 올려져 있는 호박색의 구슬을 바라보았다.
안에서 희미한 노란색을 내뿜는 구슬.
‘분명 아까…….’
그녀는 아까 전 ‘아마테라스 신전’에서 김우현에게 이 구슬을 받았을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진다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그녀의 앞에 나타났던 한 인영.
너무나도 강렬한 빛 때문에 그 모습조차 제대로 못 봤지만 그럼에도 이로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네가 다시 모든 걸 잃을 자신이 있으면, 다시 찾아오라니…….”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인영이 했던 말을 떠올린 그녀는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이로하에게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물어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눈앞을 환한 빛으로 가득 채우고 있던 인영은 사라지고, 그녀의 눈앞에는 호박색의 구슬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혹시나 싶어 사방으로 그림자를 퍼트리고 있는 김우현에게 물었지만 아무래도 그 인영은 자신에게만 보인 듯 김우현은 전혀 모른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 뒤에 이로하는 자신이 겪었던 상황을 김우현에게 설명했고, 김우현은 한국에 도착하는 대로 바로 현자에게 물어보겠다고 말했지만.
‘……신경 쓰여.’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제대로 된 형체조차 보지 못한 인영에게 들었던 ‘네가 다시 모든 걸 잃을 자신이 있으면, 다시 찾아오라’라는 말이 후카이 이로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모든 것을 잃을 자신?
그것을 생각한 순간 그녀는 반년 전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능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눈을 감았고, 아마테라스의 아만 아야토의 능력에 의지해서 살았던 그때의 자신.
‘설마 각성을 하면…….’
지금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다시 억누르지 못하게 되는 걸까?
한번 안 좋은 생각이 들자, 동시다발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꼈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한 번 절레 젓는 것으로 안 좋은 생각을 털어냈다.
* * *
어두운 공간 안.
바닥에는 복잡한 수식이 그려져 있는 마법진이 웅웅 거리는 소리를 내며 공명하고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알리샤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이 엄청난 양의 마정석은 어디서 가져오는 거지?”
그녀의 물음에 전구의 빛이 미처 닿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엘리고르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말했잖아? 나름대로 방법이 있다고.”
“…….”
엘리고르는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알리샤를 보며 슥 웃은 뒤 이내 뒤에 있는 사무용 의자에 앉아 입을 열었다.
“그보다 마법진의 진척도는 어때? 이제 공명하는 것 보니 어느 정도 대부분은 그려진 것 같은데.”
엘리고르의 말에 알리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 네가 보여준 마법진과 완전히 똑같이 그리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형태는 잡혔어.”
“그래? 생각보다 빠르네?”
“그보다, 이 마법진도 전에 네가 보여줬던 마법진과 같은 종류의 마법진이야?”
알리샤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다만 다른 점은 저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녀석들을 이곳에 풀어 놓을 거야.”
“조금 더 강한 녀석들?”
“그래, 아! 물론 걱정하지 마. 딱히 네가 마력을 조금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순간 인상이 굳어지는 알리샤를 보고 말한 엘리고르는 느긋하게 자신의 다리를 꼬며 말했고, 알리샤는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분의 봉인을 푸는 것은 언제 시작할 생각이지?”
“내가 말했잖아? 아직은 아니라고.”
“…….”
엘리고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땅에 그득하게 그려져 있는 마법진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너무 급하게만 생각하지 마. 일 하나를 하더라도 확실하게 해야 하는 법인 거 몰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고 마법진을 그리던 알리샤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묘한 한숨을 내쉰 뒤 마법진을 계속해서 그려 나갔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너와 나의 목적은 같으니까.”
‘그래, 우선 당장은 말이야.’
엘리고르는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알리샤를 보며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내고는 생각했다.
‘이번에 소환되는 녀석들만 있으면 이 지구에 있는 파편들의 질과 이 지구의 능력자들의 질도 대략적으로 파악되겠지.’
지난번 하위 마물을 이용해 이 지구에 있는 녀석들의 능력을 대략 평가할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좀 더 확실히 해야지.’
엘리고르는 내심 머릿속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계획을 상상하며 웃음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틀림없이 성공할 거라고 확신하며 알리샤가 그려 나가는 마법진을 그저 미소 지으며 바라봤다.
* * *
“비록 파편이기는 하지만 잘 가져왔군.”
로우레테는 내가 내민 ‘태양의 시계’를 보며 무척이나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시계’는 어디에다 쓰려고 찾아오라고 한 거야?”
“당연한 걸 묻지 마라.”
그녀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태양의 시계를 자신의 로브 속으로 집어넣은 뒤 입을 열었다.
“지금 네가 가져온 ‘태양의 시계’와 지금 이 지구에는 없지만 내가 빌려 올 수 있는 ‘달 시계’를 이용하면, 불안정하지만 너는 ‘이계’로 갈 수 있게 된다.”
“……이계라고?”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전에 말해줬었지? 지금 이 차원에는 총 5개의 지구가 있다고.”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말은 들은 적이 있지.”
“내가 만들려는 건 그 지구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차원 이동 장치다.”
“차원 이동 장치?”
“그래, 내가 말했던 것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 차원 이동 장치가 있어야만 실현 가능한 것들이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파에 앉아 나를 보며 말했다.
“예를 들면 너를 엘리고르의 군단장들이 있는 3지구에 보내 엘리고르가 이쪽 세계에 와 있을 때, 오히려 너는 그쪽으로 가 그녀의 ‘휘하’에 있는 군단장들을 죽일 수도 있고, 아직 파편화되지 않은 던전 안으로 너를 들여 보낼 수도 있을 거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이내 말했다.
“아무튼, 태양의 시계를 얻었으니까 ‘차원 이동 장치’를 만드는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지.”
나는 로우레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진짜 차원 이동 장치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로우레테의 말대로 ‘엘리고르’의 휘하에 있는 군단장들을 미리 죽이는 것도 가능할 테고, 진짜 아직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각성 던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강해질 수 있었다.
“차원 이동 장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야?”
“글쎄, 나도 그저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는 내용이라 정확히 만드는 데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 예상이라면 2주 내로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 정도면 무난하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그녀는 뭔가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난한 게 아니라 빠른 거다. 내가 아니라면 그 정도의 물건을 고작 1~2주 안에 만들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은근히 감정이 상했다는 투로 말하는 로우레테를 슬쩍 달래준 뒤, 후카이 이로하에게 들었던 내용을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그래, 나도 자세히 들은 건 아니었지만 말이야.”
내 말에 그녀는 고민하는 듯 자신의 고깔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군.”
“잘 모르겠다고?”
내 되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물론 그녀의 능력이 어느 외신에게서 나온 것인지 정도는 알 수 있지만, 나도 그렇게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것도 그런가……?”
“‘그것도 그런가’가 아니라, 애초에 ‘후카이 이로하’라는 파편에게 주는 ‘시련’이나 ‘고난’을 내가 알 수 있는 방도는 없지 않나? 애초에 그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니까.”
“확실히 그렇기는 하네.”
내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그녀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횃불에 손을 가져갔고…….
화륵!
순식간에 사라져 횃불 안으로 들어갔다.
로우레테가 들어가 버린 횃불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서 일어나던 중.
위이이이잉!
진동이 울렸다.
내 스마트폰인가?
“아닌데……?”
스마트폰을 꺼내 본 나는 곧 울리고 있는 게 내 스마트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동의 근원지를 찾았다.
나는 곧 내가 쓰던 책상 쪽에서 진동음이 느껴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책상의 서랍장을 열자 그곳에는 검은색을 베이스로 한 스마트폰이 안쪽에서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불현듯 저번에 T. 월터가 준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기 귀찮아서 여기다가 넣어두었던 사실을 생각해 냈다.
스마트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드래그하자, 그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김우현 헌터?
스마트폰에서 들리는 T. 월터의 목소리에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네.”
-아,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아 네, 지금 가능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말에 뭔가 안심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 월터는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나도 그에 답하며 인사치레를 한 뒤 곧 월터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게 연락을 드린 이유는 저희가 쫓고 있는 결사단의 마지막 멤버 때문입니다.
“그녀를 잡았습니까?”
내 물음에 월터는 정말로 아쉬운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녀를 뒤쫓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를 잡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녀를 쫓고 있던 저희 협회 측의 SSS급 헌터에게서 조금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믿기지 않는 소식이요?”
-예.
월터는 그렇게 대답하더니 이내 말했다.
-그 SSS급 헌터의 말에 따르면, 분명 결사단의 마지막 맴버를 궁지로 모는 것까지는 성공해서 이제 그녀를 잡는 일만 남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여자가 결사단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SSS급 헌터의 능력을 뛰어넘는 여자요?”
-예, 갑자기 그곳에 나타난 여자는 자신을 날려 버리고 거기에 있던 다른 헌터들까지 모두 죽인 뒤에 그녀를 데리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SSS급 헌터를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여자?
월터의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회귀 전에 내가 알고 있던 SSS급 헌터들의 목록을 쭈욱 떠올렸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같은 SSS급 헌터를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능력을 가진 녀석은 없었는데?
하나 내 고민은 얼마 가지 않았다.
-우선 지금까지 혼수상태였다가 어제 막 깨어난 저희 측 헌터에게 들은 인상착의로는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보라색 피부에, 백발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