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나 혼자 10만 대군 117화
35장 사전 준비(1)
잿빛 세계에 있는 검은 성안.
이형의 괴물들이 잔뜩 들어 차 있던 이전과는 다르게, 그곳에는 검은 옥좌에 앉은 엘리고르와 그 앞에 부복해 있는 제1군단장인 알리오스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흐응, 그래서 잘하고 있어?”
정적이 가득한 침묵 속에서 엘리고르가 입을 열자 알리오스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현재 60개 군단이 세계 곳곳에 퍼져 이 땅 위에 몬스터들이 살 수 있는 정착지를 건설하고 있…….”
“알리오스, 내가 듣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엘리고스의 말에 알리오스는 하고 있던 말을 멈칫하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척을 하고 있습니다.”
“걸릴 확률은?”
“아마 다른 악마들이 직접 군단장들이 머물고 있는 지역에 가지 않는 이상 딱히 위험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알리오스의 말에 엘리고스는 무척이나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그거 잘됐네, 그리고 내가 말했던 건?”
“중위 마물 소환석이라면 8군단장인 ‘이르킬’이 만들어내고 있는 중입니다.”
“어느 정도?”
“약 지금부터 5시간 전을 기점으로 이미 1만 개 정도가 만들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좋아. 잘하고 있어.”
알리오스의 말에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듯 입을 연 엘리고르는 얼마 전 이 세계에 마지막으로 존재했던 생명체인 드래곤의 뼈로 만든 팔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엘리고르가 자신의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바로 자신의 아래에 있는 사령술사의 재주 덕분이었다.
충분한 마력과 마법진을 합쳐 몬스터를 중위 소환석에 봉인해 놓고, 저편에 있는 엘리샤에게 가져다 주면 엘리샤는 그저 소환석을 푸는 것만으로도 수만에 달하는 악마를 불러낼 수 있는 것이었다.
‘뭐, 그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사실을 모르겠지만.’
엘리고르는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이미 저 세계에 몇 번이고 들락거리면서 계획은 무척이나 착실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내가 거두어 갈 외신의 파편들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그렇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드래곤의 뼈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그녀의 귓가로 알리오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고르 님,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데?”
“……아무래도 이 세계에 아직 생존해 있는 종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엘리고르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분명 3일 전만 해도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 분명 그때 네가 말하지 않았었나? 분명 3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꽈드드득!
엘리고르의 손에 붙잡혀 있던 드래곤의 뼈가 그대로 박살 났다.
가공할 만한 파괴력,
“멸종했다고.”
팔걸이로 존재하고 있던 드래곤의 뼈가 엘리고르의 손에 산산조각이 남과 동시에 알리오스의 몸이 일순간 부들 떨렸지만, 그는 침착함을 유지한 뒤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후, 됐어. 다만, 다음에도 내게 그런 불확실한 정보를 말한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알리오스의 말에 찡그린 인상을 푼 그녀는 이내 말했다.
“그래서, 그 생존해 있다는 종족은 어디지? ‘엘프’? 그것도 아니면 ‘드래곤’인가?”
“아무래도 ‘엘프’나 ‘드래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뭐? 엘프랑 드래곤이 아니라고? 그럼 이 생명이 한 포기도 자라나지 않는 땅에서 살아 있는 녀석들이 어떤 녀석들인데?”
그녀의 물음에 알리오스는 입을 열었다.
“인간들입니다.”
“……인간?”
“그렇습니다.”
“……? 인간들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거야?”
엘리고르의 물음에 알리오스는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인간들이 살아 있는 곳에는 ‘성녀’와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있는 듯합니다.”
“……성녀랑 그랜드 소드 마스터?”
“예,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60군단장으로는 조금 벅차겠지만, 그 근처에 있는 군단장들에게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그 인간들은 곧바로…….”
“아니,”
알리오스의 말을 끊으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냥 놔둬.”
“그냥…… 말씀이십니까?”
“그래.”
엘리고르는 조금 전의 뚱한 표정을 지워 버리고는 얼굴에 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이곳에 머무를 핑계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괜찮은 핑곗거리가 생겼잖아? 굳이 우리가 나서서 그 핑곗거리를 없앨 필요는 없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왕좌에 등을 기댄 뒤 이어서 말했다.
“아니, 오히려 녀석들이 조금씩 공격해 온다고 해도 필요 이상의 반격은 하지 마, 오히려 최대한 길게 살려 놓으라고 전해.”
‘내가 목표를 전부 이룰 때까지 말이야.’
엘리고르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가에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 * *
조용한 분위기의 길드 사무소,
내가 로우레테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은별을 비롯해 에단과 이로하, 하리남까지 왔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로우레테와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는지, 곧 훈련실이나 던전에 가버렸고, 나는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다.”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을 끝마치고는 목이 결리는지 큭큼 하며 기침 소리를 내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게 진짜야?”
“……그걸 말이라고 묻는 거냐?”
순간 인상을 확 찌푸린 그녀를 보며 허겁지겁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나는 이내 그녀에게 들었던 내용을 정리해 나갔다.
확실히 그런 거라면 그녀가 지금까지 해줬던 말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당장 ‘엘리고르’가 ‘크세즈베트’에게 당하지 않는 이유까지도.
“그러니까 간단하게 지금 상황을 정리해서 이야기하면 결국 내가 크세즈베트를 처치하고 엘리고르를 죽여도 그다음에 ‘사탄’이라는 악마가 나온다는 이야기네?”
“그렇다.”
“그리고 그 사탄을 죽이면?”
“그럼 더 이상의 적은 없다. 이 ‘파편’들은 이미 생겨난 거니 없어지진 않더라도 더 이상 지성체를 멸망시키려는 흑막은 완전히 처리하는 셈이지.”
로우레테의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들은 말은 내가 품은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고, 내가 회귀 전에도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지구가 5개라.”
로우레테가 2시간 동안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정말 간단하게 요약하면 대충 이런 상황이었다.
지금 이차원에는 총 5개의 지구가 있고, 악마들은 각각 구역을 나누어 5개의 지구를 멸망 시키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악마가 무엇을 얻는지는 로우레테도 막연하게 추론하고 있는 듯해서 결국 확실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로우레테의 생각으로는 악마가 우리들의 영혼을 자신보다 위에 있는 존재에게 바치고 더 높은 ‘격’을 얻는 것 같다고 했다.
뭐, 한마디로 말하면 악마들은 우리를 제물로 삼아 더 높은 등급의 무력과 권력을 탐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지금 이 세계에 엘리고르가 나타나는 건 사실 ‘크세즈베트’의 것이었던 밥그릇을 빼앗으려고 이곳에 나타난 거고.
“…….”
확실히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혹시나 크세즈베트가 동료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사라졌지만…….
결국 내게 있어서 상황은 똑같았다.
엘리고르나 크세즈베트나 결국 처리해야 할 대상이니까.
……그리고 우리를 제물로 받고 악마들에게 힘을 부여해 준다는 악마들의 지휘관인 ‘사탄’까지도.
“……아무튼 네 말은 결국 엘리고르나 크세즈베트를 처리라면 이 세계의 생명체를 몰살시키기 위해 다른 악마가 온다, 이거지?”
내 물음에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다. 만약 크세즈베트와 엘리고르가 모두 소멸된다고 해도, 나머지 다른 악마들이 이 세계를 멸망시키러 올 거다. 그리고 그 악마들이 모두 소멸당하고 나면 아마 대악마인 ‘사탄’이 오겠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자신의 고깔모자를 비스듬하게 쓰고는 입을 열었다.
“결국, 결론적으로 네가 이 세계를 진심으로 지키고 싶다면 너는 ‘사탄’을 무조건 상대해야 한다.”
“…….”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뭔가가 허탈해져 자리에 앉았다.
……회귀 전에는 크세즈베트랑 그렇게 피똥 싸가면서 싸웠는데 알고 보니 그런 녀석이 최소 5명은 있는 것 같았고, 그런 악마들의 위로도 다른 악마가 한 명 있었다.
“후.”
이게 무슨 기분이지?
이게 보스 몬스터인 줄 알고 열심히 팼는데, 보스를 거의 죽이고 나니, ‘사실 그 보스는 우리 중에서 최약체였다!’ 하고 튀어나오는 다른 보스들을 보는 기분 같았다.
“이것 참.”
점점 스케일이 커진다.
처음에는 크세즈베트로 시작해서, 그다음은 엘리고르 그다음은 다른 악마들에게다 그 위에는 ‘사탄’이라니.
“그 사탄까지 전부 클리어하고 나면 또 다른 녀석들이 나오거나 하냐?”
헛웃음을 지으며 묻자 로우레테는 슬쩍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뭐, 그건 알고 있는데…… 그럼 크세즈베트 죽이고, 또 엘리고르까지 죽이고, 또 다른 악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또 던전을 기다리고, 남은 힘을 갈고 닦고…….”
……분명 릭을 잡아 족쳤을 때만 해도 크세즈베트만 잡으면 느긋하게 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한숨을 내쉬자 로우레테는 말했다.
“아니, 네가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만약 네가 계약한다면, 나는 이제부터 너를 키우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덤으로 ‘악마’들을 죽이는 것까지.”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네가 줄 수 있는 건 정보뿐이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뭐?”
“정말 ‘정보’뿐 이라고 생각하냐는 거다.”
내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아직 출현하지 않은 ‘각성 아이템’이 있는 던전으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
“고작 그것만 있을 것 같나?”
로우레테는 그렇게 말하곤 입을 열었다.
“내가 엘리고르의 실질적인 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군단장’들이 있는 곳으로 갈 방법을 알고 있다면?”
“내가 크세즈베트가 봉인을 깨고 나오기 이전에 죽일 방법을 알고 있다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네 힘을 조금이라도 더 강화할 수 있는 비밀을 알고 있다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고,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크세즈베트가 봉인을 깨고 나오기 이전에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하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가능하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고깔모자를 벗고는 입을 열었다.
“나와 계약하는 그 순간부터 너는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 네가 해야 하는 건 끊임없이 강해지는 것과 강해져서 악마를 죽이는 것, 그리고 종래에는 ‘사탄’을 죽이는 것.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나는 그녀의 말을 끝으로 곧바로 입을 열었다.
“계약할게.”
“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