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나 혼자 10만 대군 113화
33장 침공(3)
하리남의 외형이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가 항상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있는 갑옷은 그가 몸에서 내뿜는 검은 오오라로 인해 검게 변질되기 시작했고, 김우현에게 선물 받은 방패와 검 또한 검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후우…….”
하리남의 눈이 반전했다.
검은색의 홍채는 빛이 들어오지 못할 것 같은 하얀색으로 바뀌어 나갔고, 반대로 흰자위는 빛마저 흡수할 정도로 어두워졌다.
그런 반전된 눈가의 오른쪽으로 마치 소의 것과 같은 뿔이 길쭉하게 자라난다.
“저게…… 뭐야?”
하리남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하리남의 모습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묵빛의 벽이 서서히 하리남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엄청난 속도로 검은빛을 빨아들이는 하리남.
그의 뒤에 서 있던 이들은 한순간 그들을 지켜주는 방어막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하게 쳐다봤지만, 하리남이 검은색을 전부 빨아들이는 와중에도 하리남의 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선명하게 빛을 내며 몬스터들을 막아내는 벽은 그의 벽 뒤에 있는 시민들의 안심을 이끌어내었다.
“후읍!!!”
능력을 펼치고 나서는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하리남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순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하리남의 오른손.
“헉……!”
하리남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칼을 보고 그의 뒤에 있던 남자는 저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저건 대체 무슨?!’
그의 오른손에 잡혀 있는 칼은 엄청난 크기로 늘어나 있었다.
과연 혼자서 저 검을 잡고 있는 게 맞을까 의심이 될 정도로 기형적으로 거대해진 칼날.
하나 하리남은 들고 있는 검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듯, 무척이나 가볍고 정확하게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
오른쪽에서.
아아아아악!
왼쪽으로.
단순한 한 번의 움직임.
하나 그 단순한 한 번의 움직임으로 벌어진 일은 ‘단순히’의 궤를 단숨에 넘어섰다.
““…….””
시민들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탄식을 내뱉지도 않았고
반대로 탄성을 내뱉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눈앞에 벌어진 현상을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보고 있었다.
-키에, 에, 에엑……!
몬스터들의 허리가 잘려 나갔다.
인간들에 대한 맹목적인 적의와 포식 행위로 가득 채워진 몬스터의 눈빛이 죽어나간다.
한7 마리가 아니었다.
열 마리도 아니었다.
백 마리도 아니었다.
하리남의 벽 근처에 있는 적어도 수천은 되어 보이는 몬스터가, 하리남이 휘두른 단 한 번의 일격에 의해 몰살당했다.
완전한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 안에서, 하리남의 방패가…….
달그락…… 쾅!
바닥을 찍었다.
* * *
치바 현 외곽, 건물을 부수고 있던 몬스터들이 급작스러운 불길에 휩싸인다.
누구는 발에서부터.
누구는 손에서부터.
또 다른 누구는 머리에서부터.
수천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갑작스레 붙은 불길에 의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것으로 끝나는 영상.
-방구석김씨: ㅁㅊ 능력 개사기 아니냐? 그냥 눈으로 좇으면 불이 붙어버리는데요?
└아리랑: 호옹…… 개사기다, 진짜. 저 능력 실화냐? 후카이 이로하 능력 진짜 가지고 싶네.
└이러기싫어: 진짜 저번부터 가끔가다 씨커 길드 전투 영상 같은 거 뿌려지면서 보면 느끼는 건데, 진짜 이로하 능력은 사기 중에 사기인 듯, 눈으로 본 걸 발화하는 능력은 판타지 소설에도 안 나오지 않냐 zzzz
└이로하쨔응: ㅇㅇ 인정하는 부분. 근데 보니까 이로하, 저 능력도 좀 단점 있는 것 같더라. 보니까 좀 등급이 높은 몬스터들은 내성 같은 게 있어서 힘들다던데, 솔까말 이로하 전투 영상은 거의 없어서 확인하기가 힘들다.
-신화수의재림: 근데 요즘 씨커 길드 행적 보면 진짜 신기한 게 씨커 길드에 있는 길드원들은 뭔가 좀 일반 헌터들이랑은 많이 다르지 않냐? 그냥 헌터인데 뭔가 다름 ㅋㅋㅋㅋ
└앙기로티: 리얼이다, 뭔가 씨커 길드는 다름, 뭔가가 다름, 그냥 다른 길드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임, 예를 들면, 뭔가 굉장히 노블레스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느낌.
└기분상했다: 쉼표 빌런 뭐냐 ㅋㅋㅋㅋ 글 갑자기 꽉 막힌 기분 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겟올라잇: 근데 이거 리얼이긴 하다. 당장 씨커 길드에 SSS급 헌터 한 명에 나머지는 전부 SS급 헌터잖아 ㅋㅋㅋㅋㅋ 게다가 이번에 영상 봤냐? 하리남 다크 나이트랑 이은별? 그냥 미쳤더라, 내가 볼 때 씨커 길드 헌터들 SSS급으로 전부 올라갈 것 같음 ㅋㅋㅋ
└라임몬스터: ㄹㅇ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그, 예전에 김우현이 미국에서 뽑아 왔었던 그 에단인가? 걔는 아직 능력 개화 안 해서 모르겠다. 근데 걔도 김우현이 뽑아 왔으니까 능력 계발 중일 것 같더라 ㅋㅋㅋ
└린뎡하는부분: 그거 인정.
엄청난 양의 댓글을 휠을 내리며 한번 확인한 나는 이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중얼거렸다.
“……걱정할 필요 없었네.”
몬스터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의 침공이 일어난 지도 3일째.
걱정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해외에 나가 있던 길드원들은 3일 전에 일어났던 침공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한국으로 귀환했다.
아니, 오히려 해외에 나가 있던 하리남과 이은별 그리고 이로하는 오히려 도시를 습격했던 몬스터를 처리하는 주역이 되어 세간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하리남의 변화였다.
“솔직히 각성을 바로 할 거라곤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하리남은 그런 내 예상을 깨버리고 각성 아이템을 찾자마자 바로 각성해 대만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아니, 위기에서 구해낸 정도가 아니었다.
“……거의 뭐, 영웅급이지.”
나는 마우스를 조작해 유튜브 창을 최소화하고 그다음에 떠올라 있는 뉴스를 바라봤다.
[하리남 대만의 영웅 등극!]
[대만 정부 측 하리남을 기리는 ‘하리남’ 동상을 만들겠다]
[씨커 길드 이은별, 국제 헌터 협회에 러브콜을 받다!?]
[씨커 길드 다음 적성 분기 때 SSS급 4명으로 늘어나나??]
[그림자 왕, 이번에도 한국에 일어난 침공 사태를 지키는 주역]
…….
[고구려 길드에 SS급 헌터가 생기다! SS급 헌터 홍염 ‘이연화!’]
[‘하이브 사태’, ‘변이체 사태’ 이제는 ‘몬스터 사태’까지? 시민들의 불안감 갈수록 상승해……]
[시스템을 개화하는 헌터들, 전년 대비 100% 상승!]
정작 당장 사회에 필요한 뉴스는 아래에 있고, 뉴스의 헤드라인은 온통 씨커 길드가 독점한 상태였다.
나는 뉴스의 헤드라인을 쭉 훑어본 뒤 자연스레 몸을 뒤로 뉘었다.
끼익 소리를 내는 의자.
“후…….”
분명 상황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지만, 길드원이 순조롭게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니 저도 모르게 안정감이 들었다.
지금은 하나의 힘이라도 더 있는 게 중요한 시점이니까.
“그보다…….”
나는 시선을 돌려 집무실 책상에 놓여 있는 횃불을 바라봤다.
침공이 일어난 그 날, 나는 곧바로 횃불을 사용해 로우레테를 불러내곤 내가 보았던 몬스터에 관해 물었었다.
로우레테는 짐짓 묘하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3일 뒤에 다시 부르라는 말과 함께 횃불 안으로 들어갔었다.
……그녀를 불렀을 때 썼던 마정석은 모조리 가지고서.
“쩝…….”
뭐, 그녀를 이곳으로 부르는 데 필요한 비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그 마정석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정석을 포댓자루로 모으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질이 좋은 마정석을 모으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차라리 미국처럼 S급 던전이 주마다 3~4개 정도 있었다면 아마 S급 마정석을 금방금방 수급할 수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S급 개방형 던전은 이제 한 개였다.
“뭐, 별수 없지.”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놓여 있는 횃불에 다가가 망설임 없이 명령어를 발동했다.
“소환.”
명령어를 외치자마자 밝게 빛나는 횃불과 동시에 그 자리에 나타나는 로우레테를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3일 뒤에 소환했는데.”
그렇게 말하자 로우레테는 나를 슬쩍 보고는 익숙한 듯 소파에 앉아 입을 열었다.
“흠, 잘했다. 나도 이제 막 생각의 정리가 끝난 참이니까.”
“생각의 정리?”
“그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자신의 고깔모자를 한 번 만지작거리며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우선, 3일 전의 대답부터 하도록 하지. 네가 말해주었던 몬스터는 아마 엘리고르가 지휘하는 군단에 소속되어 있는 몬스터 중 하나인 ‘카룸’이라고 불리는 이형종이다.”
“엘리고르가 지휘하는 군단에 소속되어 있는 몬스터라고?”
내가 확인하듯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곧바로 말했다.
“분명 네가 엘리고르는 이곳에서 힘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어?”
“맞다.”
“근데 어떻게…… 엘리고르가 자신의 부하들을 이 세계에 풀어놓을 수 있었던 거지?”
내 물음에 로우레테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엘리고르가 이 세계에 자신의 몬스터를 풀어놓을 방법은 총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제약’을 무시하고 자신이 직접 마력을 사용해 몬스터를 불러내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세계의 사람’과 ‘마법진’을 이용하는 것이지.”
“이 세계의 사람과 마법진을 이용한다고?”
“그래.”
그 뒤로 이어진 그녀의 설명을 듣고 나는 정리하듯 입을 열었다.
“자신의 마력을 사용하면 ‘제약’에 걸려 불가능하니까. 이 세계에서 ‘마법진’과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녀석을 찾아서 자신의 부하들을 이곳으로 불러온다, 이 말이야?”
“……뭐, 대충 맞다.”
“아니, 그게 가능해?”
“불가능할 건 없지.”
나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소환되었던 ‘카름’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엄청난 숫자를 소환하는데 뭔가 제약 같은 게 있지 않아? 예를 들면 엄청난 양의 마력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제약 같은 거 말이야.”
판타지 소설에서도 그런 제약 하나 두 개 정도는 있잖아?
내 말에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네 말대로 네가 말한 정도의 몬스터를 소환하려면 제약이 걸린다. 하지만 이번에 소환된 몬스터는 엘리고르의 군단 내에서도 하위 몬스터라고 불리는 ‘카름’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소환이 가능했던 것이겠지.”
“그렇다면 앞으로도 그 정도의 몬스터는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소환이 가능하단 말이야?”
내 말에 그녀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입을 열었다.
“아마 그건 아니겠지. 마법진이 마력이 적게 들어가는 건 맞지만 네가 말한 정도의 물량을 소환하려고 하면 몸에 부담이 갈 테니까. 그렇게 마음대로 소환할 수 있지는 않을 거다.”
“후…….”
나는 저도 모르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물론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된 것이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그보다.”
한동안 그녀의 앞에서 지끈거리던 머리를 붙잡고 있던 나는 이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들었고, 로우레테는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뭐 하나 물어보지.”
“……뭘?”
“넌 나와 계약할 생각이 있나?”
“……뭐라고?”
로우레테의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