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나 혼자 10만 대군 112화
33장 침공(2)
LA 외곽 지역.
A급 헌터 ‘리첼’은 눈앞에 보이는 이형의 괴물을 상대하고 있었다.
팔다리가 깡 마리고 몸통에는 사람의 뼈와 같은 갈비뼈가 툭 튀어나온 몬스터는 자신의 몸통에 튀어나와 있는 갈비뼈를 쏘아 보내며 공격을 가했다.
리첼은 곧바로 몸을 움직여 몬스터가 쏘아 보낸 뼈를 피해 곧바로 녀석의 머리통에 창을 찔러 넣었다.
깨에에엑!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축 늘어뜨린 몬스터.
그녀는 이미 시체가 된 몬스터를 저 멀리 던져 버리고 곧바로 다른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창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리첼의 창에는 몬스터의 피가 묻어 나왔지만 그런데도 몬스터의 숫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변이체보다 전투력은 낮지만……전체적으로 숫자가 너무 많아……!’
리첼은 창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LA의 외곽의 다리를 넘나들며 달려오는 괴물들은 변이체보다 그 전투력도 낮았고 민첩함이나 근력도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너무 숫자가 많았다.
‘분명 이쪽도 가용할 수 있는 헌터들은 전부 불렀을 텐데……!’
리첼은 시선을 돌려 고속도로에 진을 치고 있는 다른 헌터들을 바라봤다.
총 5개의 다리 중 리첼이 있는 구역을 포함한 4곳은 어떻게든 몰려오는 몬스터를 막아내고 있었으나, 중간에 있는 다리는 금방이라도 몬스터들에게 뚫릴 듯 위태위태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리첼은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지만 곧 앞에 달려오는 몬스터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끄아아아악!”
마침내 리첼이 우려하던 중간 다리에서 헌터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리첼은 몬스터의 목에 창대를 꽂으며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는 이미 다리 위에 세워놓은 방파제가 뚫린 체 안쪽으로 침입해 헌터를 공격하고 있는 몬스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멀리서 보면 검은 쥐 떼가 모여서 들어가는 것처럼 기가 질릴 정도로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일제히 방파제의 안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몬스터가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연속해서 들리는 헌터들의 비명을 들으며 리첼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
그저 어둡기만 하던 LA의 밤하늘에 지상을 환하게 비추는 보라색 달이 떠올랐다.
영롱한 색을 흩뿌리는 보라색 달.
“뭐야!?”
리첼의 옆에서 몬스터의 몸을 찢어발기던 남자가 놀라 소리쳤고, 그와 함께…….
쾅!
조금 전까지 몬스터가 무리를 지어 들어갔던 방파제가 터져 나가며, 몬스터들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마치 폭죽처럼 온몸이 터져 날아가는 몬스터들의 앞으로, 하나의 인영이 빠져나왔다.
보라색 오오라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오른손에는 파란 보석이 박힌 스태프를 들고 있는 여자.
자수정 빛을 빛내며 달려오는 몬스터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 이은별의 모습을 보고 리첼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은……!”
리첼은 그녀를 알고 있었다.
불과 몇 주 전 하이브 사태가 일어났을 때 한국에서 일어난 하이브 사태를 혼자서 종식시켰던 헌터.
자신을 구해주었던 그림자 왕이 길드장으로 속해 있는 씨커 길드의 길드원이자, 그 이명으로는 ‘스타 폴’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헌터.
그녀가 도대체 왜 여기에 있지? 라는 의문이 사고의 끝에 걸렸지만 이내 그녀의 의문은 얼마 가지 못해 전혀 다른 감정으로 탈바꿈되었다.
이은별의 몸 주변에서 보라색 오오라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보라색의 달 아래에서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이 다리에 떨어져 내린다면 이 다리 전체를 넘어, 이 구역 자체가 붕괴할 정도로 거대한 운석이, 보라색 빛을 내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압도적인 광경.
이성이 없는 것 같은 몬스터 조차도 떨어져 내리고 있는 운석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고, 그것은 몬스터를 막고 있는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저게 떨어지면 이 구역 전체가 초토화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우우우우우웅!
그렇게 정적이 가득한 그 다리에서 거대한 달을 가릴 정도로 다가왔을 때, 불현듯 운석이 멈추었다.
“……?”
운석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리 한가운데에 서 있던 이은별에게서 보라색 오오라가 다시 한번 터져 나옴과 동시에 이 구역 전체를 박살 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던 운석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하나였던 운석이 두 개로.
그다음은 내 개.
그다음은 여덟 개.
계속.
계속, 계속, 계속…….
운석이 분해된다.
분해되고, 분해되고, 분해되서…….
“……헉.”
불과 1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거대한 운석은, 쪼개지고 쪼개져 이 구역 전체를 감쌀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돌조각으로 변했다.
하나하나가 은은하게 보라색의 오오라를 머금고 떠 있는 돌조각들은 더 이상 돌조각으로 보이지 않았고, 마치 게임이나 그림에서 보던 은하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떨어져라.”
이은별의 입에서 흘러나온 무미건조한 음성에…….
삐───
은하계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던 그것들이, 지상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어?”
하리남은 어느 순간 바뀐 배경에 저도 모르게 어벙한 소리를 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마가 덮친 타이웨이에서 시민들을 지키며 싸우고 있던 하리남은 갑작스레 바뀐 풍경에 어색함을 느꼈다.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도 모를 새하얀 공간 안.
“반갑다.”
그 공간 안에서, 하리남은 그 공간 안에서 앉아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온몸을 낡은 갑옷으로 뒤덮고 있는 한 남자를.
“누구십니까? 아니, 그보다 대체 여기는 어디……?”
하리남은 남자의 등장에 저도 모르게 경계하며 몸을 뒤로 뺏지만 남자는 그런 하리남의 모습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여기는 네 정신세계 안쪽이니까.”
“정신세계 안쪽이라구요?‘
“그래, 설명 안 해도 대충 감이 오지? 현실의 너는 지금 밖에서 사람을 지키고 있고, 너는 아주 찰나의 순간 정신만이 이 정신세계로 넘어온 거야.”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은 뿔’을 보여주었다.
“그건……!”
“그래,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쯤 되면 왜 네가 여기로 불려왔는지 알 수 있지?”
나는 뭐가 이렇고 저렇고 설명하는 건 딱 질색이거든, 이라고 중얼거린 남자의 앞에서 하리남은 말했다.
“그럼 설마 각성……!”
“각성? 음…… 각성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 ……아니, 각성이라고 부를 수 있기는 하지.”
“네?”
하리남의 물음에 남자는 일순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인상을 풀고서는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각성이라고 알고 있으면 될 것 같군.”
“아, 예…….”
그와 함께 감도는 묘한 침묵에 하리남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뭐…… 각성을 하기 위한 조건이나 시험 같은 걸 보는 겁니까?”
하리남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절래 저었다.
“아니, 그것도 아니야.”
“……그럼?”
“……? 뭐긴 뭐야, 네가 내 파편을 찾았으니 나는 네 한계를 해제해 주는 거지.”
“어…… 그럼 각성을 위한 시련 같은 건 없는 겁니까?”
하리남의 물음에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입을 열었다.
“원래라면 있겠지.”
“……원래라면…… 이요?’
“그래, 원래라면.”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듯한 느낌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지더니 이내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꼴을 보니 복장이 뒤집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
“네?”
“네가 상대하고 있는 그 녀석들 때문에 말이지.”
“제가 상대하고 있는…… 아, 그 몬스터들?”
“그래, 그 몬스터를 다루는 개자식들이 내가 태어난 고향이자 내가 신으로 모져지고 있던 곳을 완전히 멸망시켜 버렸거든.”
“멸망이라구요?”
“그래, 멸망.”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무척이나 짜증이 난 듯 자신의 머리를 몇 번이나 긁적였지만 이내 말했다.
“대충 알아듣겠지?”
남자의 말에 하리남은 조금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원래라면 시련을 주려고 했지만, 눈앞에 자신의 세상을 멸망시켰던 녀석이 부리던 몬스터가 튀어나와서 우선 힘을 줄 테니까 저 몬스터를 전부 죽여라……가 맞습니까?”
“그래, 잘 알아듣는군.”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듯 미소에 고개까지 끄덕여 가며 동의하는 남자를 보며 하리남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이렇게 각성해도 되는 건가?’
하리남은 문득 조금 전 시민들을 지키며 싸웠던 때를 생각했다.
확실히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이었고 김서윤이 각성할 때나 이은별이 각성할 때처럼 극한까지 몰려 있던 상황이기도 했다.
몬스터는 약했지만, 지켜야 할 사람의 숫자는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떠나서,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여주는 모습이 생각보다 가벼워 하리남은 오히려 ‘이거 진짜 믿어도 되는 건가?’ 싶은 묘한 의심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도중.
“……!”
남자의 기세가 변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하하 웃고 있던 얼굴은 굳어졌고, 그 눈에는 검은색의 안광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시작되는 변화에 하리남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남자의 모습이 변해간다.
분명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은 어느새 털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남자의 손에 쥐여 있던 검은 뿔은 그의 머리 위로 올라가 귀 위에 자리 잡았다.
분명 일반적인 성인 남자의 손으로 보였던 그의 손은 어느새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부풀어 올라 일반인의 2~3배는 되어 보일 듯한 크기로 변했고, 그 거대한 손에 어디서 튀어나온 지 모를 방패가 잡혔다.
거대한 방패가.
그와 함께 ‘그’였던 수인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저 세계에서는 내 힘을 계승할 수 있는 녀석이 없어서 두 손 놓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억!?”
수인이 말함과 함께 하리남의 몸이 절로 굽혀졌다.
“기억해라, 내 능력을 계승한 애송아.”
“네, 넵!”
저도 모르게 나오는 대답.
수인은 입을 열며 자신의 방패를 크게 들어 올렸다.
“네가 가지고 있는 내 능력은 그저 일방적으로 방어하는 능력이 아니라는 걸.”
그와 동시에 수인의 방패가 내리쳐졌다.
* * *
-키엑! 키에에엑!
“히익……!”
남자는 앞에 보이는 몬스터 떼를 보며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대만의 거리를 완전히 뒤덮고 있는 몬스터의 숫자.
하나 끔찍할 정도로 잔악하게 생긴 몬스터들은 하얀 벽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남자, 하리남이 펼친 능력 덕분에.
하리남이 펼친 능력의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시민은 하리남의 능력 아래에서 끝없는 몬스터의 괴성을 들으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죽기 싫어…….’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말도 안 될 정도의 숫자를 혼자서 막고 있는 남자의 등은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헉헉거리는 숨소리는 지금 그가 이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아내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었고, 점점 희미해지는 하얀 벽은 그의 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아, 아아…….”
남자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렇게 탄식을 내뱉는 순간.
“어…… 어어?”
옆에 있던 여성에게서 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남자는 순간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
남자는 보았다.
“……!”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은 묵빛의 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