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나 혼자 10만 대군 109화
32장 군단의 악마(2)
“엘리고르, 당연히 알고 있는 이름이기는 하지.”
로우레테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이내 묘한 불신이 담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내 생각에 네가 당장 이 정도의 정보를 들을 수 있을 만큼의 마정석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만.”
고깔모자의 끝을 만지작거리며 말하는 로우레테.
나는 말 없이 능력을 사용해 휴게실 한쪽에 배치되어 있던 캐비닛을 몽땅 그녀의 앞으로 가져온 뒤, 그대로 캐비닛의 문을 열고서 말했다.
“이 정도의 마정석이면 엘리고르에 대해 알 수 있습니까?”
그림자가 가져온 5개의 캐비닛 안에는 S급 괴수의 마정석과 S급 몬스터의 마정석이 꽉 들어차 있었다.
S급 괴수의 마정석은 그 부피가 원체 크기 때문에 캐비닛 하나를 잡아먹었고, S급 몬스터의 마정석은 괴수의 마정석보다는 크기가 작았지만, 그럼에도 그 크기가 거대해 캐비닛 하나에 5개가 넘게 들어가지 않았다.
“호오, 이건 또…….”
로우레테가 마정석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 캐비닛에 모아놓은 S급 마정석들은 로우레테에게 줄 것이 아니라 ‘그림자 영체’를 늘리기 위해 모아놓은 마정석들이었다.
포식자 릭을 죽이기 위해 강제로 영체 합일을 한 결과, 지금 내 목록에 남아있는 영체는 ‘사령 술사 리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새롭게 영체를 모아야만 했기에 국제 헌터 협회와 영국을 도와준 것을 대가로 받았던 S급 마정석과 내 나름대로 구했던 S급 마정석이었다.
“나쁘지 않군.”
흡족하게 웃는 로우레테.
S급 마정석이 아깝기는 했지만, S급 마정석은 시간만 주어진다면 다시 구할 수 있다.
게다가 눈앞에 나타난 엘리고르의 힘을 본 이상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엘리고르’에 대해서는 말해줄 만하군. 정보를 들을 건가?”
그녀의 물음에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캐비닛 안에 있던 마정석들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끝으로 캐비닛에 쌓여 있던 마정석들은 전부 사라져 버렸다.
“자 그럼 어디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지? 그녀가 누구인지? 아니면 전승? 그것도 아니면 그녀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되도록 전부 듣고 싶습니다.”
내 말에 로우레테가 고개를 끄덕이곤 슬쩍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맨 처음, 그녀가 누구인지부터 말해주도록 하지.”
* * *
베트남 호치민 외곽,
낡은 건물들이 이리저리 지어져 있는 달동네를 가로지르는 여성이 있었다.
쿵! 쾅!
사방에서 터져 나가는 물건들과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공격을 능력으로 쳐 낸 여성 알리샤는 능력을 이용해 달동네의 건물을 제집처럼 넘어다녔지만…….
“큭!?”
그녀가 미처 다음 담을 넘기도 전에 등에 직격한 공격은 그녀의 신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끄으으…….”
알리샤는 등 뒤에 느껴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곧바로 몸을 일으키려 노력했지만 이미 도망자의 신분으로 몇 달째.
제대로 잠조차 자지 못한 그녀의 몸은 더 이상은 한계라는 듯 그녀의 뜻에 따르지 않았다.
“후, 드디어 잡았네, 이 쥐새끼.”
곧 있어 알리샤의 뒤로 4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슷…… 핑!
“쯧!”
알리샤는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능력을 이용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견제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앞서 다가오는 남자에 의해 알리샤의 공격은 무력화되었다.
“3달 동안 제대로 쉴 수도 없이 추격에 쫓겼는데, 아직도 이 정도의 파괴력으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니,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군.”
알리샤의 공격을 무효화시킨 남자이자 국제 헌터 협회에서 이제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은 SSS급 헌터인 ‘에스퍼’ 샨토니아는 알리샤를 보며 슬쩍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이내 그는 굳혔던 표정을 풀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순순히 잡히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별 저항 없이 순수하게 잡혀준다면 우리도 별다른 해를 끼치지는 않도록 하지.”
“그걸, 어떻게 믿지?”
알리샤의 물음에 샨토니아는 피식 웃고 마저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컥!?”
쾅!
“……!?”
알리샤에게 이야기를 건네던 그의 몸이 달동네 저 너머로 처박히기 전까지는.
“무…… 무슨! 크악!?”
“끅!?”
알리샤의 주변에서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던 남자들이 죽어나간다.
누구는 심장이 뚫려 죽고.
누구는 머리가 터져 죽어나간다.
“무…… 슨?”
콰직! 꾸드득 꾸직!
알리샤는 멍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앞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하게 서 있던 협회 소속의 헌터들은 이미 볼품없는 시체가 되어 있었다.
SSS급 헌터마저도 이미 달동네 너머로 날아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보이는 것은 하얀 백발을 가진 여성.
“당…… 신은?”
알리샤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고, 그녀, 엘리고르는 몸 상태가 엉망진창인 알리샤를 보며 씩 웃더니 입을 열었다.
“너였지?”
“무…… 슨?”
“얼마 전에 크세즈베트의 봉인을 풀려고 했던 건.”
엘리고르의 입이 열리자, 순간 알리샤의 눈동자에 경계심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엘리고르는 그런 알리샤의 태세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체 손을 휘저었다.
쩌저적.
엘리고르가 손을 휘두르자마자 그녀의 손 밖에서 빠져나간 보랏빛의 마력이 엘리고르와 알리샤를 휘감기 시작했고, 알리샤는 미처 능력을 사용하기도 전에 보랏빛 마력에 휩싸였다.
그리고.
‘여기는……?’
알리샤는 자신이 처음 보는 곳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이어 알리샤는 자신의 시야 안에 있는 엘리고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알리샤가 자신을 쳐다봄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자, 여기는 시끄럽지 않으니까 다시 한번 물어볼게.”
“…….”
“너지? 얼마 전에 크세즈베트의 봉인을 풀려고 했던 건.”
엘리고르의 말에 알리샤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내 그녀는 엘리고르가 이전에 보여줬던 모습들을 깨닫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좋아, 나도 크세즈베트의 마력이 흘러나올 때 한 번 본 것뿐이라 확실하지가 않았는데, 아무래도 잘 찾은 모양이네.”
엘리고르는 그렇게 말하며 기분이 좋은 듯 배시시 미소를 만들어냈다.
알리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그녀는 엘리고르가 한 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그분을 소환하는 걸 도와…… 준다고?”
“맞아.”
“……어째서?”
알리샤의 눈에 깃들어있는 불신.
“그야 당연히 ‘동료’니까.”
“……동료…… 라고?”
“그래, 동료. 나도 크세즈베트와 같은 악마거든. 물론 자세한 건 말해주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불가능하지만,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편해.”
엘리고르는 알리샤의 앞에 다가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나는 멍청한 동료가 일을 망치고 있어서 도와주러 온 거고.”
이윽고 손가락을 돌려 알리샤를 가르쳤다.
“너는 크세즈베트의 봉인을 풀어주고 그 녀석이 내걸었던 조건을 받기만 하면 되는 거야.”
엘리고르의 말에 순간 알리샤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이내 그녀는 입을 열었다.
“어째서 굳이 나를 통해서 그분의 봉인을 풀려고 하는 거지?”
알리샤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엘리고르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여기서 활동하지 못하거든. 만약 내가 이곳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녀석의 봉인을 풀어줬을걸?”
엘리고르의 말에 눈빛이 훈들리기 시작하는 알리샤를 보며 그녀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 * *
“……그러니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크세즈베트랑 동급의 악마다. 이 소리야?”
내 물음에 로우레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 이어나갔다.
“그래, 게다가 적으로 둔다면 어느 면에서는 가장 성가신 게 바로 엘리고르다. 내가 아까 설명했듯이 그녀의 이명은 군단의 악마, 그녀의 아래에는 총 60개나 되는 군단이 있고 그녀는 그 군단들을 자신의 손발처럼 자유자재로 다루지.”
“후…….”
로우레테의 설명을 들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짐작은 했지만 크세즈베트 보다 더한 놈이 나타났다.
도대체 ‘어째서?’라고 생각해 보지만 나오는 답은 하나다.
“쯧.”
바로 악마.
그 악마가 바꾸어 버린 미래가 이런 식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겠지.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상황은 전혀 설명이 되지 않았다.
한동안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혹시 그 군단장의 강함은 어느 정도야?”
“……뭔가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반말을 사용하는 것 같다만 그건 넘어가고……. 굳기 강함을 비교하기에는 그 비교 대상이 없다.”
비교 대상?
“혹시 나를 비교 대상으로 한다면?”
“너를?”
그녀는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이내 고민하는 듯 자신의 꼬갈모자의 챙을 만지작 거리다 입을 열었다.
“뭐, 너의 전투 기록이 전혀 없으니 이건 답하는 게 매우 애매한 문제지만, 객관적으로 지금 시스템의 정보로 네 능력을 평가해서 비교해 보면, 5군단장부터 60군단장까지는 전부 이길 수 있겠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이내 또 고민하는 듯하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만 내가 말하는건 각 군단장이 개인으로 싸웠을 때를 말하는 거다. 그들이 휘하에 이끄는 이형의 괴물이나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네 능력만으로는 아마 힘들 것 같군.”
‘기본적으로 군단장이 휘하에 데리고 있는 군대는 1만이 넘어가니까’라고 덧붙이는 로우레테의 말을 들으며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산 넘어 산이네.”
아직 크세즈베트를 잡을 준비도 미처 하지 못했는데, 덤으로 출현한 악마 덕분에 나는 골치가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부여잡고 있자 로우레테가 말했다.
“그래서.”
“……?”
“이건 내 개인적인 궁금증이니까 대답하지 않아도 좋지만, 어째서 엘리고르에 대해 물어본 거지?”
그녀의 물음에 순간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던 나는 그냥 푸른 달의 정기를 얻으러 갔다 겪었던 일들을 그녀에게 그대로 말해주었다.
“……엘리고르가 이곳에 있었다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너도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으니 나도 한 가지 정보를 추가로 주도록 하지. 만약 그 엘리고르가 당장 이곳으로 쳐들어오지 않을까 싶어서 걱정하고 있는 거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어째서?”
“그녀는 지금 이 세계를 담당하고 있는 악마인 크세즈베트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자신의 힘을 그대로 발현할 수 없다.”
“뭐? 하지만 저번에 만났을 때는…….”
“엘리고르가 어느 정도의 힘을 내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일정 이상의 힘을 내보이면 ‘크세즈베트’에 의해서 제재를 받을 테니 섣부르게 힘을 내보일 수는 없을 거다.”
“……크세즈베트에게?”
내가 정말 모르겠다는 투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이걸 말해줄까 말까 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입을 열었다.
“같은 악마이기는 하지만 그 녀석들은 어떻게 보면 서로 ‘적’이기 때문이다.”
“……적이라고?”
나는 이어서 흘러나오는 로우레테의 이야기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