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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108화 (108/202)

# 108

나 혼자 10만 대군 108화

32장 군단의 악마(1)

“큭!?”

꽝!

엄청난 반동.

자신을 엘리고르라 소개한 여자가 눈앞에 다가온 순간 발동한 각성 스킬와 동화 덕분에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윽…….”

그녀의 주먹을 막아낸 내 왼팔은 욱신거렸고,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일격.

이미 저 멀리 떨어져 나를 보며 느긋하게 웃는 엘리고르를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빨라짐을 느꼈다.

강하다.

지금 상대하면 이길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지만 드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들뿐이었다.

단 한 번, 그녀의 공격을 받은 것뿐이지만 그 한 번의 공격은 나에게 무척이나 많은 정보를 가져다 주고 있었다.

“그래도 외신의 능력을 받은 녀석이라 그런지 간단하게는 안 죽는구나?”

“뭐…… 라고?”

외신?

그건 또 뭐야?

“응? 뭘 그렇게 어리둥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어? 설마 잘 모르는 거야? 아니면 ‘이곳’에서 외신을 칭하는 단어가 다르다던가……? 뭐, 사실 알든 모르든 능력을 사용하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기는 한데…….”

눈앞에 나타나 신나게 떠드는 엘리고르.

나는 그 와중에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 당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친다면 도망갈 수 있을까?

아니, 아까 보여줬던 속도는 순간적인 가속도라고 해도 따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뭐, 그렇게 도망가려고 궁리하지 않아도 돼. 오늘은 그냥 단순하게 인사 같은 느낌? 응, 그런 느낌으로 온 거니까.”

“인사라고……?”

“응, 인사.”

그녀는 웃음을 유지한 채, 자신의 백발을 손가락으로 꼬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실은 말이야…… 원래라면 네가 지금보다 아주 조금만 약했어도 바로 먹어치웠을 텐데…… 이 이상 내가 힘을 드러내면 크세즈베트가 알아차리니까, 그게 좀 아쉽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크세즈베트.

그 이름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세계를 멸망시켰고, 회귀한 이후에도 어째서인지 나와 함께 회귀해 어떻게든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악마.

“뭐, 아무튼 요는 걱정하지 말라는 거지. 솔직히 너를 먹어치우고 영혼을 거둬가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허락’을 안 받아서 불가능하니까.”

“…….”

“뭐, 그래도 사실 이 세계에 있는 외신의 파편들이 정말 먹음직스러워서 나도 내 나름대로 몰래 빼 먹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기는 해.”

키득키득.

마치 장난을 치는 것처럼 웃으며 이야기하는 엘리고르의 모습에 나는 짐짓 얼굴을 굳혔다.

그녀는 내 표정을 감상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다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뭐?”

“몰래 현신하는 데 마력을 많이 써서 이 이상 있으면 걸릴 게 분명하거든.”

키득

“그럼, 나머지 인사는 다음에 만나서 하도록 할게~”

구우우웅-

엘리고르의 말을 끝으로 사방에 모여들기 시작하는 보랏빛 마력에, 나는 긴장하며 핸디드를 손에 쥐었다.

곧 보랏빛 마력이 공명함과 동시에 엘리고르의 모습은 마법진에 둘러싸여 사라졌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정말로 엘리고르가 사라졌다는 것을 느낀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축축한 늪지의 감각이 바지에 스며들었지만 지금 나로서 그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대체 그 녀석은 뭐지……?”

자신을 악마라고 소개한 것부터 시작해서 그녀가 내 앞에서 떠들고 간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떠돌았다.

군단의 악마.

외신.

파편.

크세즈베트.

“……아무래도 정말 밤낮 가리지 않고 마정석을 모아야 할 것 같은데.”

원래라면 에피메테우스의 횃불로 얻을 정보는 각성 아이템이 있는 곳 정도로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후.”

새로 출현한 적.

그것도 아마 크세즈베트와 동급이거나 혹은 조금 더 위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적.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잿가루만 휘날리고 있는 잿빛의 세계에는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어두운 성이 생겨나 있었다.

고풍스러운 자태를 가진 것도 아니고 특수한 장식이나 조형미를 내뿜는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성.

말 그대로 성이라는 단어의 충실하게 꾸며진 검은 성안에는 이형의 괴물들이 있었다.

통상적으로 헌터들이 몬스터라 부르는 것들도 있었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이형의 모습을 가진 괴물들도 있었다.

괴물이라 부르기에는 무척이나 어여쁜 자태를 가진 이들도 있었고, 인간과 비슷하나 그렇지 않은 자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런 자들의 끝에…….

엘리고르가 앉아 있었다.

“쯧.”

어두운 성의 내부와 자신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그들을 본 엘리고르는 짧게 혀를 차며 어두운 왕좌에 몸을 눕히고는 입을 열었다.

“이 세계의 영혼들은 완전히 거두는 것이 끝났어?”

엘리고르의 물음에 그녀의 바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언데드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2일 전을 기점으로 이 ‘3지구’는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1군단장 알리오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엇인가가 탐탁치 않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빨리 멸망시켰나?’

엘리고르는 2지구에 갔다 온 뒤로 3지구를 빨리 멸망시킨 것이 내심 아쉬웠다.

‘조금만 늦게 멸망시킬걸…….’

지금의 자신에게는 ‘명분’이 필요했다.

3지구를 멸망시켜서 바로 귀환하지 않고 조금 더 이곳에 있을 수 있는 ‘명분’이.

‘진짜…… 진짜 진짜 원래는 몰래 빼 먹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바로 귀환할 예정이었는데.’

파편의 실물을 보니 그런 모습은 싹 날아가 버렸다.

엘리고르는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고작 파편인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힘을 부릴 수 있을 정도라니…….’

2지구에 있는 외신의 파편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엘리고르는 마음이 조급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파편의 영혼을 거두기만 하면, 이곳에서 더 위로 올라가는 것도 꿈이 아니야.’

엘리고르는 자신의 위에 있는 존재를 생각했다.

세계에 멸망을 가져오는 악마들의 정상에 서 있는 이들.

엘리고르는 한참이나 생각했다.

침묵.

그리고 또 침묵.

엘리고르가 입을 닫은 그 시점으로 어두운 외성에는 무거운 침묵밖에는 돌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이 돌던 중, 마침내 엘리고르의 입이 열렸다.

“알리오스.”

“예.”

“지금부터 1군단장부터 60군단장까지 최하위 마물들을 준비시켜. 숫자는…… 그래, 총합해서 대충 2만 정도?”

“2만…… 입니까?”

“그래, 어차피 마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니까. ‘마력’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고기 방패들로 준비해.”

“혹시 어느 곳에 사용하실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용처에 따라 그에 맞는 마물들을 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처라…….”

알리오스의 말에 잠시 침묵하던 엘리고르는 대답했다.

“대충 2지구의 전력을 보는 정도로 사용할 거야.”

“알겠습니다.”

엘리고르의 대답에 알리오스는 고개를 숙였고, 그녀는 이내 고개를 숙인 엘리고르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마물들의 사이를 걸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준비해. 나는 잠깐 다녀올 곳이 있으니까.”

그 말과 동시에 보랏빛 마력을 뿜어내며 마법진을 만들어내는 엘리고르를 보며 이형의 괴물들은 고개를 숙였다.

* * *

3일 뒤, 길드 사무소의 2층 휴게실.

“흡.”

“호오”

횃불에서 소환되어 있는 로우레테는 눈 앞에서 능력을 펼치고 있는 하리남을 보고 탄성을 내지르더니 입을 열었다.

“이건 또 굉장히 특이한 외신의 능력이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한 차례 하리남의 능력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이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 능력의 출처와 너희들이 소위 말하는 각성 아이템의 위치를 알고 싶은 건가?”

“뭐, 출처도 알려주시면 좋겠지만, 그 정보는 어느 정도의 마정석이 듭니까?”

“적어도 이곳에 있는 마정석으로는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각성 아이템의 위치를 듣는 건요?”

“그 정도라면야…… 여기에 있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군.”

역시, 이 정도의 마정석으로 출처까지 듣는 건 불가능하나?

나는 조금 전까지 마정석이 가득 차 있던 포댓자루들을 보며 슬쩍 고개를 저었다.

로우레테를 소환하는 데 소비한 마정석만 2포대, 그리고 각성 아이템의 정보를 듣는 것으로 소비해야 할 마정석이 5개포대였다.

그야말로 뜨악할 정도로 많은 마정석이 한순간에 소비됐지만, 그래도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다 마정석을 투자하는 게 더 싸게 먹힌다.

“그래서, 정보를 들은건가?”

“듣겠습니다.”

내 동의와 함께 마정석들이 한 번에 불길에 타오르더니 사라져 버렸고, 로우레테는 무척이나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휴게실 책상에 펼쳐져 있는 지도로 가서 입을 열었다.

“‘절대 방어’라고 했나? 뭐……그 외신의 능력과는 전혀 맞지 않는 능력명 같지만…… 아무튼 그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있는 곳은…….”

그녀는 이내 한 곳을 찍었다.

“느껴지는 파편의 흔적을 봤을 때는 이곳이로군.”

로우레테의 손가락은 대만의 타이웨이를 찍고 있었다.

“뭐, 너희가 제멋대로 이름을 붙이는 터라 여기서 그 파편이 무슨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군. 저번처럼 특성을 말해주자면 아마 그곳은 거대한 콜로세움일 것이고, 그 각성 아이템은 ‘투우랑’이라는 녀석이 가지고 있을 거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횃불 근처로 몸을 움직이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 그 파편, 아니, 너희들의 말로 ‘던전’이라는 곳만 찾고 나면 투우랑을 찾는 건 쉬울 거다.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눈에 띄거든.”

그 말을 끝으로 정보는 전부 말해주었다는 듯이 횃불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로우레테.

“……뭔가 좀 이상한데요?”

그 모습을 본 김서윤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상하다고?”

“아니, 뭔가 이상하다? 그런 느낌은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하나……음…….”

김서윤이 옆에서 멍하니 고민하고 있자 이은별이 입을 열었다.

“혹시, 너무 편하게 정보를 얻어서 의심된다? 같은 거야?”

“아, 그거다. 약간 그런 기분 드는데요? 분명 1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고생을 해서 단 하나도 못 찾았는데, 이렇게 마정석을 지불하는 걸로 아이템이 있는 장소를 알아버리니까…….”

김서윤은 복잡 미묘한 눈빛으로 횃불을 바라봤다.

“아서라, 우리가 지금 투자한 마정석만 얼마인 줄 알아?”

“……아, 또 그걸 생각해 보면.”

물론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하리남의 아이템 소재지를 찾는데 들인 마정석 자루만 7자루였다.

확실히 어느 정도의 대가는 지불했다는 거지.

“뭐, 아무튼 좋은게 좋은거니까요.”

김서윤은 그렇게 말하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조금 전까지 능력을 전개하고 있던 하리남은 이내 자신의 능력을 거둬들이며 입을 열었다.

“형님, 저 그럼 대만에 가면 되는겁니까?”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뚱 하던 하리남은 열의가 넘쳐 보였다.

뭐, 김서윤과 이은별의 변화를 옆에서 지켜본 하리남이다 보니 기대감이 역력한 표정을 짓는 것도 이해가 가기는 했다.

나는 하리남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지금 당장은 무리야. 어차피 대만 협회에 연락해야 하니까. 우선 그전까지는 평소 하던 대로 해. 어차피 조만간 대만에 갈 테니까.”

“네!”

하리남은 내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에단과 이로하가 있는 지하 훈련실로 걸음을 옮겼다.

김서윤과 이은별도 각자 할 일을 위해 내려가자, 나는 다시 책상 위에 있는 횃불을 집어 들었다.

“소환.”

명령어를 외치자마자 다시 환하게 타오르는 에피메테우스의 횃불.

횃불 속에서 빠져나온 로우레테는 날 보며 입을 열었다.

“흠, 이왕이면 물어볼 건 한 번에 물어보지 않겠나? 이렇게 몇 번이고 소환되는 것도 귀찮은데.”

“사람들이 있을 때는 물어보기가 좀…….”

“……뭐, 됐다. 제물로 바칠 마정석은 아직 남아 있나? 보아하니 아까 있던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많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뭘 물어보려고 나를 소환했지?”

그녀의 물음에 나는 소파에 앉아 입을 열었다.

“엘리고르, 에 대해서 아십니까?”

내 물음에 로우레테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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