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나 혼자 10만 대군 107화
31장 에피메테우스의 횃불(3)
길드 사무실이 횃불의 불빛 덕분에 환하게 빛남과 동시에 횃불 안에 타고 있던 불이 한쪽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능력을 사용해 한쪽으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을 막으려 했지만, 실행하기 전에 뿜어진 불길은 일렁거림을 멈추며 형체를 갖추어갔다.
횃불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불꽃.
그 불꽃을 먹어치우며 점점 사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불길은 이내 완전히 멈추었다.
횃불 안에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꺼지고 형태를 잡아가던 불꽃은 어느새 사람의 형태가 되었다.
화륵!
그리고 그 순간 불이 꺼지며 불꽃의 안에 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불러낸 건 그대인가?”
이제 중학생 정도 되었을까 할 정도로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소녀는 마치 마녀들이 쓰고 다닐 것 같은 검은 고깔모자를 고쳐 쓰며 입을 열고 있었다.
“그래, 우선 불러낸 건 나인데…….”
분명 ‘에피메테오스의 횃불’의 아이템 설명에서는 ‘시간의 굴레에 밀어 넣어 지식을 탐구한 현자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고 한 것 같았는데…….
도저히 눈앞에 보이는 소녀의 외모는 아이템의 설명과는 부합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횃불 안에서 튀어나온 그녀의 모습은 현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마녀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어려 보이는 외모와 새침해 보이는 눈매.
머리에 쓴 검은 고깔모자와 마치 마법사들이나 입을 것 같은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소녀.
“반갑다. 나는 스스로 시간의 굴레에 들어가 ‘지식’을 탐구한 현자 ‘로우레테’라고 한다.”
“아, 예.”
“……뭐냐? 그 탐탁지 않은 눈빛은.”
아차.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눈빛을 하게 된 것 같았다.
하긴,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니까.
“아닙니다. 음…… 솔직히 이렇게 젊은 사람이 튀어나올 줄은 몰라서.”
“흥, 나는 젊은 게 아니다. 그저 고정된 시간 속에서 끝없이 지식을 탐구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뿐이지.”
……뭐, 대충 그런 느낌의 반응이 되돌아올 것 같기는 했다.
자신을 로우레테라고 소개한 그녀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지식은 무엇이냐?”
“음,”
……그러고 보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각성 아이템을 얻는 법을 알려주세요?
아니, 그건 아니지.
능력을 각성시킬 수 있는 법을 알려주세요……?
그건 어떻게 보면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내가 모르는 건 각성 아이템이 나오는 위치지, 어떻게 ‘각성’을 할 수 있냐가 아니니까.
“빨리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가 준 마정석을 최대한 끌어다 써봤자, 내 현계 시간은 5분이 한계다.”
“네? 뭐라구요?”
“못 들었나? 5분이 한계라고.”
……마정석 한 포댓자루를 가져다 바쳤는데?
물론 B급이나 C급 마정석들만 무더기로 들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5분은 너무 가성비가…….
아니, 지금 이렇게 생각할 때가 아니지.
짧게 고민한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크루아 크루아흐가 어둠의 일족에게 내려준 ‘푸른 달의 정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은데…… 이런 것도 가능합니까?”
내 물음에 로우레테는 자신의 고깔모자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푸른 달의 정기’가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하면 그건 알려줄 수가 없는 문제다. 왜냐하면 이미 ‘푸른 달의 정기’ 가 뿌려진 세계는 이미 완전히 ‘파편’화 되어서 없어졌거든. 하지만…….”
로우레테는 고깔모자에서 손을 뗀 뒤에 입을 열었다.
“‘푸른 달의 정기’를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려줄 수 있지.”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
“그래, 게다가 덤으로 이 세계에 생긴 ‘파편’ 중 ‘푸른 달의 정기’를 가진 몬스터가 어디에 있는지까지는 알려줄 수 있다.”
나는 순간 그녀가 말한 파편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말하는 ‘파편’이라는 게 뭡니까?”
“지금 너희 세계에 중구난방으로 떨어진 이물질이 있지 않나? 이 세계에는 원래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 말이야.”
로우레테의 설명에,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던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원래 이 정도 마정석이라면 이만큼 말해주는 게 손해지만 첫 소환이기도 하니 말해주도록 하지.”
그녀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푸른 달의 정기’를 받은 이는 북쪽 숲을 수호하던 다크 엘프 명궁 ‘아이트라인’이다. 그 다크 엘프가 가진 파편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군.”
그것을 끝으로 말을 줄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응? 그게 끝이에요?”
“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아니, 분명 던전의 위치까지 확실하게 말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로서는 확실하게 말해주고 싶지만, 애초에 이곳의 지명을 제대로 모르는 터라 확실하게 말해줄 수가 없다.”
화륵!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온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로우레테가 말했다.
“그래도 한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주지. 아마 그 ‘파편’의 안쪽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속일 것이다.”
화르르륵!
그 말을 끝으로 온몸이 불에 휘감긴 그녀는, 몇 번의 화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횃불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책상 위에 올려진 에피메테우스의 횃불을 멍하니 집어 들었다.
“……다시 소환해야 하나?”
다시 소환할 수는 있다.
이 길드 사무소에 모아놓은 마정석은 이것뿐만이 아니니까.
“아니, 쓸데없는 소비를 할 필요는 없지.”
하나 나는 곧 그 생각을 지워 버리고 책상에 횃불을 놔두었다.
어차피 지금 길드 사무소에 있는 마정석으로 소환해 봤자, 또 이런 식으로 어정쩡한 정보밖에 얻을 수 없었다.
게다가 고작 B급과 C급 마정석을 모아놓은 것이지만, 자그마치 한 자루나 되는 마정석들 바쳤는데도 불구하고 소환 시간이 고작 5분밖에 안 되었다.
게다가 또 정보를 얻는데 추가로 들어가는 마정석을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조만간 좀 바빠질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한동안 마정석을 뼈 빠지게 긁어모아야 할 것 같았다.
아이템 설명에 쓰여 있는 게 허세는 아닌 듯, 횃불에서 소환된 소녀는 내가 모르는 것들을 무척이나 많이 알고 있는듯한 모양새였으니까.
“후.”
이렇게 보니 얻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얻은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크 엘프 아이트라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속.‘
고작 두 가지 키워드였지만, 이 두 개만으로도 특정 던전을 특정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전 켜두었던 노트북으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야산에는 B급 개방형 던전인 ‘어두운 자들의 풀숲’이 있었다.
크에에엑!
창을 든 리자드맨이 그림자의 공격에 머리가 터져 죽어나가고, 여기저기서 일방적으로 리자드맨이 학살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 있고, 그들 사이에는 보스 몬스터도 끼어 있었지만, 그런 건 그림자들에게 아무런 디메리트도 되지 못했다.
그저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지고 있을 뿐인 이 장소에서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우선 서울 근처에서 그 녀석이 말한 곳 중 장소가 비슷한 곳은 이곳밖에는 없는데.”
로우레테를 소환한 그다음 날,
나는 그녀가 말해준 두 가지 키워드를 기반으로 정보를 찾았고, 결국 어느 정도 그녀가 말한 키워드와 부합되는 곳을 찾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속’은 딱 여기인데.”
이곳의 풍경은 그녀가 말했던 풍경과 무척이나 부합했다.
높은 거목이 자라 하늘을 가리는 늪지대. 이외에도 이런저런 나무나 수풀들이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다크 엘프도…… 그게 아이트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있고.”
다크 엘프도 있다.
물론 이 던전의 메인 몬스터는 ‘리자드맨’이었지만, 중간중간 다크 엘프들이 튀어나와 리자드맨을 사냥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리자드맨의 보스가 그림자들에게 사정없이 사지가 뜯겨 나가는 중에도 다크 엘프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거겠지.
“…….”
이것도 그런 건가?
죽음의 거리처럼 특정한 아이템을 넣어야만 이 던전 안에 숨겨진 다른 던전이 등장하는 그런 느낌?
키에에에에에엑!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리자드킹의 비명을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리자드 맨 무리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이 던전을 조금 더 수색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 * *
“컥……! 너는 대체……??”
내 앞에서 들고 있던 활을 힘없이 떨어뜨리며 죽는 다크 엘프.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목걸이에 있는 푸른 보석을 주워 들었다.
“좋아.”
정답이었다.
처음 수색을 시작하고 1시간 정도는 그냥 이러는 것보다는 좀 더 자세히 들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나 사전에 찾아본 결과 로우레테가 말했던 곳과 정확히 일치하는 곳은 이곳밖에 없었기 때문에, ‘혹시?’ 하는 생각으로 늪지대를 수색했고, 그 결과 나는 어두운 나무 속에 숨겨져 있던 다크 엘프의 요새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림자 요새’에서 본 것과 비슷한 모양의 요새를.
털썩.
칼이 뽑힌 다크 엘프 아이트라인의 시체가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푸른 달의 정기’를 얻는 데 성공한 나는 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어제 처음 등장한 로우레테의 모습과 동시에 그녀가 알려준 정보를 들었을 때는, 진짜 이 말을 믿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렇게 결과가 나온 이상. 그녀에게 쏟아부은 마정석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머, 참 예쁜 색이네?”
“……!?”
갑작스럽게 귓가에서 들린 목소리에,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턱-
가볍게 막히는 주먹.
어떻게?
당장 각성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전력으로 휘두른 주먹을 무척이나 편한 표정으로 막아낸 여성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
나는 그녀의 말에 답하는 것 대신 곧바로 그녀의 손에 잡혀 있던 내 손을 회수해 몸을 뒤로 빼냈고,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넌 누구지?”
다크 엘프?
보랏빛 피부를 가진 그녀의 외모는 어찌 보면 다크 엘프와 비슷하게 생긴 것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다크 엘프의 피부보다도 더 진한 색을 띤 피부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
무엇보다 회색빛의 눈동자는 그녀가 다크 엘프가 아닌 다른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된 듯 꽉 조여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나는 눈앞의 여성을 노려봤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나로서는 오히려 네 소개를 먼저 듣고 싶지만, 네가 원한다면 내 소개부터 해줄게.”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백발을 한차례 뒤로 넘기며.
“나는 군단의 악마…….”
“……!?”
한순간에 눈앞까지 다가온 여성은.
“엘리고르야.”
자신을 악마라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