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나 혼자 10만 대군 105화
31장 에피메테우스의 횃불(1)
SS급 일반 던전 ‘횃불의 초대’
던전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어두운 대공동 안에 밝혀져 있는 횃불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던전을 밝게 비추었다.
그와 동시에 횃불의 초대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보여주었다.
끼-끼기기긱.
기사의 갑주를 입고 있는, 온몸이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골렘.
그림자 왕을 따라 ‘횃불의 초대’ 던전 클리어에 따라온 이연화는 눈앞에 수두룩하게 보이는 골렘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골렘의 숫자가 더더욱 늘어난다.
하얀 골렘들이 어두운 대공동의 저편에서 일제히 척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걸어와, 마치 중세시대의 병사들과 같이 자신들이 쥐고 있는 무기를 이용해 창을 앞으로 세우고 방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척! 척!
순식간에 만들어진 하얀 방진.
골렘들의 날카로운 창이 앞으로 튀어나오고, 별다른 잡음 없이 그저 두 번의 소음만으로 만들어진 방진은 그 절제미가 돋보일 정도로 멋졌다.
그리고.
쿵! 쿵! 쿵! 쿵!
골렘들이 방진을 형성한 채 그 무거운 몸을 움직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
이연화를 포함해 그녀와 같은 파티에 소속되어 있는 고구려 길드원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B급과 A급의 차이가 심하고 A급과 S급의 차이는 더 심했다.
그리고 S급과 SS급의 차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차이가 났다.
마치 S급 헌터와 SS급 헌터의 차이가 심한 것처럼.
‘우리는 저기에 있는 골렘 중 1마리라도 상대할 수 있을까?’
고구려 길드원들의 머릿속에 일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가 바스러졌다.
A급 3명, S급 2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현 파티는 분명 한국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전력을 가진 파티였다.
아니, 오히려 5명밖에 안 되는 파티에 S급이 2명이나 있다는 것은 오히려 과 전력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나 그런데도 그들은 저 멀리서 방진을 짜고 다가오는 골렘들에게 위축되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분명 자신들의 앞은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군단들이 막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묘하게 불안해지기 시작한 마음은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골렘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져 오고 슬슬 골렘들의 창이 그림자 군단과 닿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이연화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빨리 끝내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요.”
이연화의 옆에 있던 여자, SS급 헌터이자 ‘탐식’이라는 이명이 있는 김서윤.
그런 그녀가 무척이나 느긋하게, 마치 별일도 아닌 것을 처리하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리고 그런 김서윤의 말에 저 앞에 그림자들과 함께 있던 김우현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목을 이리저리 움직여 몸을 풀었다.
곧 그가 행동하는 것을 기점으로 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갈하게 전열을 갖춰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백색의 골렘들과는 다르게 전열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듯 그저 앞으로 돌진하기만 하는 그림자 군단.
솔직히 이게 전쟁이라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결과를 연출했을 정도로, 그림자들의 돌격은 무모하고 또 위험해 보였다.
쾅! 콰직! 빠가가각!
하나 그런 이연화의 걱정과는 다르게 전투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 돌격했던 그림자들은 골렘의 방진을 뚫지 못하고 소멸했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도, 골렘의 방진을 뚫어내긴 했지만 그럼에도 완벽하게 뚫지는 못했다.
하나…….
“와…….”
이연화의 옆에 있던 고구려 길드원 ‘이윤’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린다.
던전의 대공동을 꽉 채울 정도로 두꺼운 방진은 끝도 없이 계속해서 돌격하는 그림자들에 의해 와해되어 이제는 백병전으로 넘어갔다.
꽈지직! 쾅! 꽈르르륵
골렘이 찌그러지고 부서지고 무너져내린다.
백색의 갑주가 긁히고 흙에 더럽혀진다.
공동을 꽉 채울 정도로 많았던 골렘의 숫자는 방진이 와해된 그 시점부터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그에 반해 그림자들은 달랐다.
100명을 죽이면 200명이, 200명이 죽으면 400명이.
계속해서 숫자가 늘어간다.
그림자들이 골렘의 몸을 무시고, 구울들이 골렘의 접합부에 자신의 손톱을 박아 넣는다.
골렘이 어떻게든 무기를 휘둘러 언데드들을 떼어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데드들은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 움직일만한 힘이 있다면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끝없이.
계속해서.
그렇게 싸움을 지속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빨리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굉장한 위용을 뿜고 있던 골렘들은 언데드와 그림자의 군단에 의해 처참하게 박살 나 동굴의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싸움은 무척이나 일방적인 상태로 계속되었다.
하얀 골렘들이 나타나면 그림자들이 압도적인 숫자로 찍어눌러 방진을 와해시키고 골렘들을 부순다.
하얀 골렘과는 다른 형태의, 조금 더 강한 골렘이 나왔을 때도 그 전술은 변하지 않았다,
중간 보스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거대한 골렘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
그 어느 적이 나오더라도 그림자 왕은, 아니, 이 횃불이 밝혀진 동굴을 이동하고 있는 그림자의 군단은 절대 막히지 않았다.
솔직히 이토록 너무나도 쉽게 던전을 클리어해 나가니 ‘정말 이게 SS급 던전이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이연화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골렘이 나올 때마다 느껴지는 위압감이나 압도적인 존재감은 진짜였다.
그렇게 던전을 공략하기 시작한 지 2시간째.
“……벌써, 보스 존이라고?”
SS급 던전을 공략하는 속도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빠른 던전 공략 속도에 이연화와 그 옆에 있던 고구려 길드원들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지만, 곧 그들은 보스 존 안쪽에 보이는 골렘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오면서 본 골렘들과는 달리 무척이나 거대한 크기를 가진 골렘은 공동의 천장이 닿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와 동시에 횃불이 켜진 사방에서 대공동을 꽉 채울 만큼 엄청난 숫자의 골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상대해 온 골렘들을 전부 모아놓았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엄청난 숫자. 기가 질린 것도 잠시.
“아저씨, 저도 도울까요? 어차피 골렘들이 그림자를 못 넘어오는 것 같은데.”
옆에서 들려오는 김서윤의 말에 이연화와 그 길드원들은 그녀를 바라봤다.
김서윤의 말을 듣고 슬쩍 고민하던 김우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도움 좀 받아서 빨리 끝내볼까?”
“예쓰!”
김우현의 동의와 함께 여태까지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분명 살구빛을 가지고 있던 그녀의 피부는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그녀의 눈이 호박색에서 찬란한 빛을 내뿜는 황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상어의 그것처럼 변하기 시작하는 이빨과 그녀의 머리에 나기 시작하는 뿔들.
그리고.
팡!!!
조금 전까지 김서윤이 있던 곳에서 공기가 터져 나갔다.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강력한 풍압에 고구려 길드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들은 앞서 일어난 일을 인지할 수 있었다.
“뭐야……?”
이연화의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그 앞에는 완전히 박살 난 골렘을 손에 쥐고 있는 김서윤이 보였다.
* * *
완전히 잿빛으로 변해 버린 세상.
회색빛으로 쩍쩍 갈라져 있는 대지는 잿빛의 세상에 황량함을 더해주었고, 말라 비틀어져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나뭇가지는 이 땅에 생명이 꺼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잿빛으로 가득한 세상에, 거대한 용이 있었다.
일반적인 용이 아닌 세계를 수호한다고 알려진 고룡이,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잿빛 세상에 몸을 뉘고 있었다.
본신의 몇 배는 될 정도로 거대한 날개는 이미 날카로운 무엇인가에 잘려 나가 날갯죽지만이 남아 있었고, 온몸에는 끔찍할 정도로 많은 자상이 한데 어우러져 잿빛의 땅을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세상 속에서,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한 손에는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칠 정도로 지독한 사기를 내뿜는 칼을 쥐고 있는 여자는 이내 눈 고룡과 눈을 맞추곤 입을 열었다.
“봐,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말했지?”
[…….]
“그러길래 내 말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 응?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칼을 쥐고 있는 여자, 엘리고르의 말에 생기를 잃어가는 녹안이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이 세계를 지키는 수호자. ‘악마’와 타협할 수 없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터.]
중후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엘리고르는 고룡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인 뒤 입을 열었다.
“뭐, 그렇긴 하지. 그래서 전부 죽었잖아? 네 동족도.”
드래곤은 엘리고르의 말에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일이 잘 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악마’.]
“왜? 내가 보기에는 더없이 잘 풀릴 것 같은데. 너는 설마 이 세계의 수호자를 자칭하면서 다른 세계 상황도 모르는 거야?”
[알고 있다.]
“정말?”
[전부 멸망의 길을 걷고 있더군.]
수호자의 말에 일순 진한 미소를 띤 엘리고르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잘 알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건 무슨 의미야? 응? 그냥 이참에 죽을 거 조금이라도 불안감을 심어주고 싶어서 그런 거야?”
엘리고르의 말에 수호자는 감정의 고저 없이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니다. 나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었을 뿐이지.]
“흐응…… 그래?”
[이미 어느 정도 준비는 끝났다. 만약 너희가 이 이상 다른 세계의 멸망에 간섭하기 시작한다면 분명, ‘그분’들이 미리 안배해 놓은 것이 너희를 좀 먹기 시작할 거다.]
“그렇구나, 뭐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근데 걱정하지 마.”
콰직!
엘리고르는 망설임 없이 사기가 가득한 칼을 집어 들어 용의 이마에 꽂아 넣었다.
비명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녹안의 눈동자가 그 생명을 완전히 잃고 회색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뿐,
엘리고르는 눈앞의 고룡이 완전히 죽는 것을 바라본 뒤 입을 열었다.
“이걸로 ‘3지구’는 끝이고, 이제 나는 할 일을 다 했으니 귀환하기만 하면 되는데…….”
엘리고르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대로 가기에는 너무 아쉬운데’
엘리고르는 얼마 전 ‘2지구’에서 보았던 능력자들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지금 정신이 깨어 있으면 안 되는 동료가 깨어나 있는 것이 신기해서 이 세계가 나름대로 정리되었을 무렵 동료를 만나러 갔다 온 것이었지만, 엘리고르는 그곳에서 뜻밖의 흥미로운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외신의 능력을 받은 자들.
“아아~ 만약 내가 담당하는 세계였으면 승격은 따놓은 건데.”
게다가 한두 명도 아니고 외신의 능력을 받은 자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대충 느껴지는 것만 해도 5명.
거기에 아마 아직 개화하지 않은 능력을 가진 녀석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쯧.”
한참이나 고민하던 엘리고르는 이내 씩 웃으면서 생각했다.
“몰래 빼먹어 버릴까?”
원칙상으로 ‘악마’들은 자신이 맡은 구역 외의 구역들은 건드리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뭐, 걸리지만 않으면야…….”
엘리고르의 눈이 히죽 하고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