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나 혼자 10만 대군 099화
29장 포식자 릭(3)
꽝!
내 발톱에 저 멀리 날려진 릭의 몸이 폐허가 된 건물들 사이로 처박힌다.
쾅! 쾅! 콰직!!
몇 개나 되는 폐가를 뚫고 계속해서 날아가던 릭은 어느 순간에 몸의 중심을 잡고 바닥에 내려섰지만.
꽈직-
“끄악!?”
이어지는 내 공격에 릭의 몸이 일순 바닥으로 내리꽂히고.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꽝!
연타가 시작된다.
지반이 무너질 정도의 강력한 연타에 릭의 몸이 실시간으로 여기저기 꺾이고 부서지고 터져 나간다.
틀밖에 남아 있지 않던 폐가가 지반으로부터 몰려오는 충격을 견뎌내지 못해 무너져 내리고, 내 주먹이 릭이 있는 곳을 가격할 때마다 지반이 충격을 버티지 못해 쩍쩍 갈라져 나간다.
콰드드득……!
10초도 지나지 않은 짧은 공격에 주변의 환경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릴 정도로 강한 연타.
그 안에서, 릭의 모습이 보였다.
온몸이 곤죽이 된 채 이게 ‘인간’이었던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 나 있는 시체.
하나, 그 시체는 움직였다.
붉은 오오라와 함께 순식간에 재생되기 시작하는 몸.
부서진 팔다리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곤죽이 되었던 머리통이 제 자리를 찾는다.
그와 함께 사방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내 몸을 노리고 날아왔고, 나는 곧바로 그림자를 이용해 날아오는 파편들을 막아냈다.
이후 릭을 향해 다시 한번 주먹을 내리치려 했지만.
“크, 크에…… 윽…… 엑.”
릭은 무척이나 거친 숨을 내쉬며 내 반대편에 서 있었다.
온몸의 옷은 이미 조금 전의 공격으로 전부 찢겨 나갔는지 완전히 넝마가 되어 있었다. 릭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네 녀석…… 대체…… 어떻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힘을……!”
몇 번이고 가래 긁는 목소리로 나를 불러 재끼는 릭.
확실히 릭이 조금 전 내게 보여주었던 능력은 내가 원래 알고 있던 능력이 아니었다.
회귀 전에 보았던 녀석은 능력은 그저 헌터를 죽여, 대상의 신체 능력 일부를 빼앗아 오는 것뿐이었으니까.
“레이나의 능력인 ‘빛’을 사용한다라…….”
게다가 조금 전에 보았던 말도 안 될 정도의 ‘초 재생’이나 내 그림자를 뚫고 날아왔던 ‘무언가’까지 포함해서 생각해 보면, 아마 릭은 먹어치운 헌터의 신체 능력뿐만이 아니라 그 ‘능력’까지 빼앗을 수 있는 것 같았다.
“허…… 진짜 말도 안 되잖아?”
말도 안 될 정도로 사기적인 능력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웃던 중, 붉은 오오라를 사방에 뿜어내고 있던 릭은 이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인정해. 너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괴물이다.”
“그래서?”
내 물음에 릭은 대답했다.
“내가 이기지 못 한다, 이 말이지. 그런데…….”
릭은 굳었던 입가를 느슨하게 하고 말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뭐?”
“너도 봤으면 알고 있겠지? 내가 그동안 먹어치운 헌터들의 능력을 사용한다는 건.”
“……그래서?”
대답을 받아주니, 금세 자신만만한 미소를 되찾고 입을 여는 릭.
“내가 가지고 있는 재생 관련 능력만 해도 총 9가지가 넘는다. ‘초재생’부터 시작해서 ‘재생’, ‘가속재생’, ‘불사자’, ‘리버스’, ‘자가수복’, ‘회복’, ‘임모탈’, ‘언데드’까지! 그 이외에도 이 능력과 연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들도 많아.”
“그래서?”
“너는 날 ‘이길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나를 죽일 수는 없다는 소리지.”
완전히 회복한 듯 자신만만만 미소를 보여주는 릭을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게 끝이야?”
“뭐?”
“말하고 싶은 건 그게 끝이냐고.”
내 말과 동시에 슬쩍 인상을 굳히는 릭.
애초부터 포커페이스라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는지, 상황에 따라 바로바로 표정을 바꾸는 릭의 모습은 지금의 내게 있어 광대와도 비슷해 보였다.
확실히 릭의 말도 이해는 갔다.
게다가 직접 눈으로 보기까지 했다.
완전히 곤죽이 되어버렸던 릭의 신체가 순식간에 재생되는 모습을.
“네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말과 동시에 내 주변으로 검은색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몸에 푸른 피를 묻힌 검은 그림자들이 내 옆에 자리를 잡는다.
무너진 지반 너머로 묵빛의 뼈를 내보인 스켈레톤이 따닥거리며 릭에게 다가온다.
무너진 폐가 사이를 타고 넘은 구울들이 푸른 피를 토해내며 비명을 내지른다.
갑옷이 찌그러진 듀라한이 자신의 칼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파란 피를 땅바닥에 적시며 걸어온다.
슬쩍 시선을 돌려 그림자들이 걸어온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산이 있었다.
죽인 변이체들로 세워진, 런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변이체의 산이.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잔뜩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릭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고작 그딴 소리를 들었다고 너를 죽이는 걸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내 말과 함께 그림자로 이루어진 군단이 각각의 무기를 들어 올린다.
듀라한은 자신의 검을 들어 올리고, 구울들은 위협적인 비명을 내지르며 발톱을 뽑아낸다.
스켈레톤들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 릭에게 겨누고, 좀비들은 기이한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이빨을 꺼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릭의 사방에 위치한 그림자들이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제각각 푸른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검을 릭에게 겨눈다.
군단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네가 죽을 때까지…….”
도약한다.
순식간에 굳어져 있는 릭의 앞으로 도약한 나는 망설임 없이 릭의 머리를 붙잡고…….
“몇 번이고 개 박살을 내줄 테니까.”
콰직!
릭의 머리에 니킥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그림자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 * *
“극…… 그르륵, 그으윽.”
릭의 입에서 피 가래가 끓는 소리가 들려온다.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릭의 모습을 보며 나는 비아냥이 섞은 말을 그에게 내뱉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고작 30분밖에 못 버틴 거야? 응?”
처음에는 어떻게든 내게서 도망치려는 릭을 몇 번이고 쫓아가 찢고 죽였다.
핸디드로 온몸의 살을 꿰뚫어서 죽이고, 그림자 손으로 온몸을 납작하게 찌부러뜨리기도 했다.
순수하게 타격만으로 온몸의 뼈를 다져 버리기도 했고, 손수 릭의 몸을 재생되지 않을 정도로 찢어버리기도 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릭은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신체 능력으로 그림자를 뿌리치며 도망치던 릭은 그림자에게 붙잡혀 몰매를 당하기 시작했다.
그것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림자의 하위 호환인 듀라한이 릭을 찔러 죽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다음에는 듀라한의 하위 호환인 구울이, 그다음에는 구울의 하위 호환인 스켈레톤이, 마지막으로는 언데드 먹이사슬 최하위라고 알려진 좀비가, 릭의 몸을 박살 냈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제대로 재생조차 하지 못하고 피가래를 토해내는 릭을 보며, 나는 쥐고 있던 핸디드를 그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끄…… 윽……?!”
순간 눈을 크게 뜨는 릭.
“끄아아아아아악!”
이어서 비명을 지른 것도 잠시, 그의 동공이 풀리고, 부르르 떨던 몸이 멈춤과 동시에 그는 더 이상 재생하지 않았다.
“쯧.”
어떻게 보면 회귀 전과 비슷한 형태로 죽음을 맞이한 릭의 시체를 보며 짧게 혀를 찬 나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런던의 풍경을 바라봤다.
곳곳에 타오르는 화마는 아직도 꺼지지 않은 채, 거센 불길을 일으키고 있고 잿가루가 사방에 흩날린다.
변이체의 산에서 흘러나온 푸른색의 피가 부서진 콘크리트 사이로 흘러 들어가고, 건물들의 잔해가 변이체의 시체를 토사와 함께 일부분 먹어치운 것이 눈에 보였다.
완벽하게 박살 나버린 런던.
릭의 시체를 바라봤다.
아무리 사기적인 능력이라고 해도 결국 한계는 있다는 것을 알려주듯 릭은 차가운 시체가 되어 더 이상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그림자 구울들에게 릭의 시체를 먹어치우라는 명령을 내리곤 이내 시선을 돌려 눈에 보이는 왕궁을 바라봤다.
완전히 폐허라고 해도 될 정도로 박살 난 다른 곳들에 비해 왕궁은 상당히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릭을 죽였지만, 아직 이 사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예전 LA에 갔을 때 과학자에게 들었던 정보.
“아직 한 명 더 남았다.”
아마 그 과학자에게 들었던 내용이 확실하다면, 아직 이 런던에는 내게 죽음을 맞이한 릭 말고도 결사단 멤버가 한 명 더 있었다.
나는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 * *
왕궁까지 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체 합일은 내 능력을 평소의 몇 배 이상으로 끌어 올려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그저 몇 번의 도약만으로 저 멀리 보이던 왕궁의 바로 앞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시계탑이 무너진 것을 빼고는 그나마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왕궁의 주변으로 간 나는 곧바로 그림자를 사방으로 퍼뜨려 혹시라도 숨어 있는 결사단의 인원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
벌써 도망쳤나?
릭을 제외하고도 남아 있을 나머지 한 명의 결사단은 이미 몸을 숨겼는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면 애초에 릭 옆에 있던 게 그냥 결사단의 끄나풀이었다거나?
그런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해도 확인할 건 철저하게 확인해 봐야만 했다.
나는 순식간에 영역을 넓게 퍼뜨렸다.
그리고 그 심연 같은 영역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그림자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나는 그림자를 왕궁을 넘어 런던 전체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사실 녀석이 이미 왕궁을 넘어 런던의 거리로 도망쳤다면, 그 녀석의 얼굴을 모르는 나로서는 잡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멸망했다고 해도 될 정도로 폐허가 돼버린 런던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싶기도 했다.
게다가 이왕이면 여기서 뿌리를 뽑는 게 내게는 훨씬 더 이득인 이야기였으니까.
그렇게 사방으로 그림자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도중,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 왕궁을 타고 올라갔던 그림자 쪽에서 신호가 왔다.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내게 손짓하는 그림자의 모습.
나는 그런 그림자의 모습을 보고 곧바로 가볍게 땅을 박차 그림자가 올라갔던 왕궁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으…… 윽.”
“……이자벨라 씨?”
집무실 책상 아래에 기대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는 이자벨라를 볼 수 있었다.
“그…… 림자 왕?”
힘겹게 눈을 뜨며 입을 여는 이자벨라를 본 나는 급하게 그녀의 상처 부위를 지혈하고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까!?”
급하게 손으로 지혈해 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상처가 큰 탓에 제대로 지혈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런던이 이렇게 된 것을 보며 이자벨라가 진작 빠져나갔거나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자벨라는 무척이나 힘겨워 보이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생명줄을 잡고 있었다.
내 말에 반응한 이자벨라는 고개를 돌리면서도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