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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98화 (98/202)

# 98

나 혼자 10만 대군 098화

29장 포식자 릭(2)

빛조차 새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던전 안에는 무척이나 넓은 크기의 공동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동 안에는 시체의 산이 있었다.

공동에 쌓인 몬스터의 산.

다 제각각 다른 형태를 가지고, 제각각 다른 상처를 가지고,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죽어 있는 시체들이 넓은 공동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어떤 시체는 썩어서 부패하고,

어떤 시체는 방금 죽은 듯 생생한 피를 내뿜고 있는, 그 한가운데에는 한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

주작홍 길드의 길드장이자 SSS급 헌터.

한때 중국인들에게는 ‘뇌신’이라는 이명으로 불렸던 남자.

장영.

그가 이 끝 없는 시체의 산의 한가운데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눈을 감고 있던 그의 눈이 조심스레 뜨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장영의 두 눈만큼은 형형한 빛을 내뿜고 있던 장영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제야 끝이 난 건가.”

장영에 입에서 나온 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던전 안에 울려 퍼졌다.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칙칙하고 어두운 목소리를 낸 장영은 이내 묘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길었군.”

장영, 아니, ‘악마’는 조금 전을 기점으로 자신에게 완전히 먹혀 사라진 장영의 정신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혀를 핥았다.

‘생각보다 정신력이 강했다.’

악마는 자신의 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장영의 모습을 떠올렸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육체를 지키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들었던 장영의 모습.

하지만 결국 장영은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을 실패하고, 결국 자신에게 정신을 먹힌 채 육체의 소유권을 내주게 되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된다.’

장영을 자신이 봉인된 던전으로 불러와 봉인을 어느 정도 약화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서, 장영의 몸을 빼앗는 것까지.

모든 일은 무척이나 깔끔하게 성공했다.

게다가.

‘이제 슬슬 봉인을 풀려고 하는군’

악마는 느끼고 있었다.

이 던전의 봉인이,

정확히는 ‘본신’에 걸려 있는 봉인이 강제로 해제되고 있는 것을.

장영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또 막지 못했군.”

장영은 몇 달 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과 함께 과거로 회귀해.

자신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그림자 왕.”

악마는 머릿속에 떠올린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악마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숫자가 내려가기 시작하는 석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이긴 것 같군.”

악마는 미소를 지었다.

* * *

LA에 위치한 국제 헌터 협회 지하의 통제실에서 T. 월터는 프로젝터 화면에 가득 들어차 있는 영상들을 보며 짧게 신음을 흘렸다.

‘상황이 좋지 않다.’

지금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LA를 비롯해 총 5개 지역에서 일어난 하이브 사태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하이브 사태도 재앙이었지만, 지금 전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하이브 사태는 재앙을 넘어선 그 무언가였다.

간간이 나오던 A급들이 알에서 쏟아져 나오고, 한번 나오면 재앙이라고 불리는 S급들마저도 가끔이기는 하지만, 알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후…….”

무서운 한숨이 월터의 입가를 타고 새어나감과 동시에 월터는 말했다.

“지금 상황은?”

“현재 LA를 포함한 5곳에서 하이브 사태가 일어나고 있지만,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아직까지 제대로 연락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LA의 남부 지역에 나타난 ‘알’은 협회 소속의 SSS급 헌터 ‘브루노’가 완전히 파괴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미 알에서 빠져나온 몬스터는 전부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보고서를 들고 있던 남자는 이내 흠흠 하며 목소리를 정돈하곤 계속해서 말했다.

“그 외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하이브 사태는 러시아의 SSS급 헌터 ‘블리자드’ 코프스키가 알이 있는 곳을 포함한 도시 하나를 통째로 얼려 버려서 사태를 막았다고 합니다.”

“……도시를 통째로 얼렸다고? 시민들은……?”

T. 월터의 말에 남자는 머뭇거리는 듯했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러시아 정부 쪽에서는 시민의 생존보다 ‘알’의 빠른 처리를 우선으로 한 것 같습니다.”

남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월터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시민들의 생존과는 상관없이 통째로 얼려서 박살 냈다는 건가?”

“우선 대피 시간에 충분히 시간을 할애해서 사상자의 숫자를 최소화 했다고 러시아 지부 측의 보고서를 받기는 했습니다.”

“쯧…….”

월터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러시아 정부 측에서 저지른 일이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맞을 수도 있었다.

피해가 퍼지기 전에 곧바로 조금의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피해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 맞을 수도 있었다.

월터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남자는 이내 월터의 눈치를 보며 계속해서 보고서에 있는 것들을 월터에게 전해주었다.

그러던 도중.

“긴급 소식입니다!”

월터의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 에밀리는 월터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은 채 월터에게로 다가왔다.

“긴급 소식이라고?”

“네! 태평양 시각 오후 1시 32분 부로 한국에 터졌던 하이브 사태가 완전히 진압되었다고 합니다.”

“뭐……?”

월터는 에밀리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의문을 흘렸지만, 그는 곧 한국에 있는 한 명의 남자를 떠올렸다.

‘그림자 왕.’

그의 이명을 떠오르자 월터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그가 ‘괴인 사태’에서 보여주었던 일련의 영상들이 떠올랐다.

변이체들보다 더욱더 압도적인 숫자로 녹색의 변이체들을 모조리 몰살시켜버리는 장면,

몇 번이나 돌려보아도 검은 물살이 변이체들을 몰살시키는 장면은 지금 다시 본다고 해도 전율을 일으킬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 그림자 왕이라면 가능할 수도…….”

월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에밀리는 그런 월터를 보며 의문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림자 왕…… 말입니까?”

“……? 한국의 하이브 사태를 완전히 진압했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건 맞는데…… 하이브 사태를 진압한 것은 그림자 왕이 아닙니다.”

“……뭐라고?”

월터는 에밀리의 말에 저도 모르게 반문했고, 에밀리는 그런 월터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림자 왕은 하이브 사태가 터지기 한참 전에 아마 이사벨라의 개인적인 연락을 받고 영국으로 향했고, 지금 한국의 하이브 사태를 진압한 것은 그림자 왕이 아닌, 그가 길드장으로 소속되어 있는 씨커 길드의 길드원입니다.”

“……길드원이라고?”

월터의 반문과 동시에 통제실 한쪽 구석에 검은 화면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통제실 마이크가 울리기 시작했다.

-태평양 기준 시각 오후 1시 32분 부로 한국에 일어났던 하이브 사태가 완전히 진압되었다고 한국지부 측에서 보고서를 보내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영상이 시작되었다.

“보라색 달……?”

영상은 화마에 빠진 한국의 수도와 그 위에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 보라색 달을 비추고 있었다.

그 이외에 소리는 찍히지도 않았고, 영상의 흔들림 또한 없는 터라 슬쩍 본다면 그냥 잘 만든 배경화면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보라색의 달빛이 은은히 비추는 장면, 그 아래 서울을 집어삼키고 있는 화마와 잿빛 연기는, 영상이 그저 배경화면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무척이나 멀리서 찍힌 듯한 영상의 모습에 월터가 이상함을 느낀 것도 잠시.

“뭐…… 야 저게……?”

월터의 앞에 서 있던 남자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유성우……?”

달에서, 엄청난 양의 유성우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보라색 빛을 반짝이며 지상으로 떨어진 유성우는 멀리서 보는 이들에게는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유성우 중 하나가 지상에 꽂히는 순간 월터와 에밀리 그리고 보고서를 전달하던 남자까지도 그저 말없이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영상에는 하얀색의 빛 밖에는 찍히지 않았다.

* * *

콰직!

회색빛 피부를 가진 변이체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쾅쾅쾅쾅쾅!

그 이후에 이어지는 연타에 변이체의 몸이 마치 바람에 날려지는 연처럼 이리저리 휘날린다.

온몸의 뼈가 부서진 듯 나풀거리는 변이체의 몸을 남자의 등 뒤에서 튀어나온 그림자 손이 잡아채 땅으로 내려찍는다.

쾅! 쿠와아앙! 콰지지지지직!

지반이 무너져 내린다.

한 번 무너져 내릴 땐 주변 콘크리트가 말려 들어가고.

두 번 무너져 내릴 땐 주변의 지반이 마른 모래처럼 갈라진다.

그리고 세 번.

그림자의 손이 자신의 주먹을 완전히 부서진 크레이터의 한가운데에 박아 넣는 것을 끝으로, 남자를 곤경에 빠트리던 회색빛 변이체는 부서진 크레이터 한가운데에 박제된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검은 아지랑이를 사방에 휘날리는 그림자 왕의 모습을 보며 릭은 저도 모르게 등 뒤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괴물’

눈앞에 보이는 남자는 괴물이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불든 그림자 왕의 피부, 그의 왼손은 마치 스켈레톤의 손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고, 그와 반대로 오른팔은 마치 늑대의 발톱처럼 수북한 검은 털이 자라 있었다.

온몸에는 검은색의 아지랑이가 바람에 휘날리듯 거세게 요동치고, 그의 양쪽 눈에서는 각각 붉은 안광과 보랏빛의 안광이 빛났다.

그런 그림자 왕이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잖아? 내 명줄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네 명줄을 걱정하라고.”

김우현의 노골적인 비웃음이 릭에게 들렸고, 릭은 그런 그림자 왕을 바라본 뒤 이내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정말로 대단해. 솔직히 네가 그 정도까지 힘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어. 근데 말이야.”

릭은 씩 웃으며 말했다.

“너만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한데?”

그와 동시에 릭의 양손에서 붉은빛 오오라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분이 알려주신 대로 ‘각성’을 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원래 릭의 능력인 포식자는 자신과 같은 ‘헌터’를 먹어치우고 그 힘을 일정 부분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각성을 하고 난 뒤에 내 능력은 더욱더 강해졌다.’

원래라면 그저 헌터의 능력을 먹어치우는 것으로 ‘신체 능력’을 빼앗아 올 수 있었던 릭의 능력은, 각성함에 따라 ‘신체 능력’뿐만이 아니라 그 ‘능력’까지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일순간 릭의 손에서 하얀빛이 쥐어졌다.

찬란하게 빛나는 하얀색의 빛.

“그건……?”

그림자 왕의 표정이 슬쩍 굳는 것을 바라보며 릭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감이 오지? 그렇지만 놀라기는 이른데? 지금까지 내가 먹어치운 헌터들의 능력을 합치면…….”

릭이 쥐고 있던 빛이 날카로운 창의 모습으로 변했다.

차가운 빛 레이나의 능력인 ‘빛’과 저격왕 슈타이너의 능력인 ‘관통’이.

그리고 먹어 치웠던 수많은 헌터의 능력 중 하나인 ‘가속’과 ‘유도’가 섞인다.

“이런 것도 할 수 있거…….!”

하얀 창이 팽창하고 그 찰나의 시간에 릭의 손에서 창이 떠나간다.

아니, 떠나가려 했다.

“……!!”

릭의 창이 손을 떠나가기도 전에, 이미 그림자 왕은 릭의 앞에서 날카로운 발톱이 벼려진 왼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지랄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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