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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97화 (97/202)

# 97

나 혼자 10만 대군 097화

29장 포식자 릭(1)

푸른 빛이 명동의 거리를 비추기 시작한다.

명동을 태우는 붉은 화마가 푸른 빛으로 바뀌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려왔던 괴수들의 괴성과 헌터들의 비명이 멈춘다.

마치 태동을 하듯 꿈틀거리는 하이브의 알도.

헌터들과 싸우던 몬스터들도.

방금 알에서 나와 파괴만을 일삼기 위해 움직이려 했던 S급 괴수도.

모두 하늘 위에 떠 있는 푸른 달에 시선을 빼앗긴다.

“이건……?”

그리고 그중에는 조금 전까지 괴수와 몬스터를 정리하고 다녔던 김서윤도 있었다.

시리도록 푸른 달.

‘은별 언니……?’

푸른 달 하면 떠오르는 이름을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김서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떠오른 달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이은별의 ‘달’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이은별의 달이 세상을 은은하게 비추는 느낌이었다면, 지금 떠 있는 달은 세상을 은은하게 비추는 것을 넘어 푸르게 빛나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밝았다.

“어?”

그리고.

시리도록 푸른빛을 내뿜던 달의 색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푸른빛이 사그라들고, 마치 색이 변질하듯 지상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보름달의 끝부분부터 서서히 침식한 보랏빛은 이내 푸른 달을 전부 먹어치워 버리고.

마침내 요사스러운 보랏빛으로 지상을 가득 채웠다.

김서윤은 사람을 홀리는 것만 같은 보랏빛의 달을 피해 조금 전까지 이은별이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라색의 오오라를 사방에 흩뿌리는 이은별이 보였다.

김서윤이 이은별을 바라보는 것에 맞춰, 그녀의 눈이 뜨였다.

자수정을 박아 놓은 듯 보랏빛으로 물든 그녀의 눈이 김서윤을, 아니, 그 뒤에 있는 하이브의 알을 바라보고…….

이내 그녀의 입이 열렸다.

“스타 폴.”

조용하지만, 귓가에 꽂히는 확실한 소리에 김서윤의 몸이 움찔한 것도 잠시.

김서윤은 곧바로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주변을 보고, 시선을 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세상…… 에.”

그리고 눈에 전부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보라색의 유성우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 있지 않아 수많은 유성 중 하나가 S급 괴수의 머리에 꽂혀 들어갔을 때, 소음을 넘은 무엇인가가 김서윤의 귓가를 관통했다.

* * *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분명 시선을 달리하면 보이던 런던의 건물들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변이체들로 빽빽한 바닥은 이미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끝없는 검은 물결과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변이체들뿐.

찢고 벤다.

타격하고 찍어누른다.

그 일련의 전투들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흡!”

오른팔이 날아간 회색빛 변이체가 조금 전보다도 더 빨라진 속도로 내게 발을 날린다.

공격을 막으려던 그림자들이 역으로 소멸해 버릴 정도로 강력한 발차기에 나는 곧바로 몸을 옆으로 비틀며 공격을 피해냈지만, 변이체는 곧바로 비정상적인 움직임으로 허리를 틀어…….

쾅!

내 허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등 뒤에 찌릿한 고통이 몰려오고, 그와 내 몸속에 있는 그림자들이 솟아나 변이체의 팔을 잡아채려 했지만, 마치 학습이라도 한 듯 그림자에 잡히기 전에 서둘러 몸을 뒤로 빼는 변이체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여태껏 보았던 변이체들과는 그 속도나 공격력이 지나치게 높은 변이체.

……SSS급 헌터 슈비츠로 만든 변이체인가?

얼마 전 T. 월터에게 들었던 SSS급 헌터 슈비츠의 실종 소식 그리고 그 실종에 관련된 마프로스.

내가 듣고 보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맞춰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회색빛 변이체의 정체를 유추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간단했다.

……그보다.

원래도 변이체들이 기이할 정도로 신체 능력이 높은 것은 알고 있지만, 나와 일전을 벌이고 있는 변이체는 기이할 정도로 그 신체 능력이 높았다.

검은 아지랑이의 반사 속도를 월등히 뛰어넘는 속도로 순식간에 파고 들어와 공격을 가하는 변이체.

미리 방어하고 있더라도 공격을 맞은 순간 느껴지는 욱신거리는 고통은 그리 좋은 게 아니었다.

능력을 포기한 대신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지게 된 변이체를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핸디드를 다시 쥐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한 건 초반에 녀석이 공격을 가했을 때, 빈틈을 봐 오른팔을 잘라낼 수 있었다는 것 정도였지만, 오른팔을 잘라냈음에도 불구하고 변이체는 무척이나 빠른 사방에서 내게 공격을 가했다.

저 녀석을 어떻게 잡지?

핸디드의 부가 능력으로도 녀석을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아까처럼 녀석을 잡아두고 공격해야 할 텐데, 저 변이체는 학습 능력이라도 있는 것인지, 오른팔이 잘린 뒤로는 힘을 담아 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간을 보듯 짧게 잽을 치는 정도로 공격을 하고 물러나 버리니 잡을 수가 없었다.

슬쩍 변이체에게 시선을 돌려 주변 상황을 바라보니, 전투는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쪽에서는 변이체가 몰매를 맞고 곤죽이 되고 있으며, 또 다른 곳에서는 오히려 그림자들이 소멸당하고 있었다.

고착화된 상황.

“쯧.”

다시금 달려드는 괴인의 공격을 몇 번이고 피해내며 공격할 기회를 찾던 중.

꽝!

등 뒤에서 느껴지는 충격과 동시에 나는 변이체들을 뚫고 허공을 날았다.

순식간에 뒤바뀌는 시야.

폐가와 변이체들의 사이를 빠르게 스쳐 날아가 마침내 변이체가 있던 중간 부분에 처박혔다.

나는 땅바닥에 처박힌 순간, 느껴지는 살기에 본능적으로 그림자를 이용해 몸을 뒤로 내뺐고…….

콰드드득!

내 몸이 있던 곳으로 떨어져 내린 주먹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오, 잘 피하는데?”

느긋하고 평온한 목소리.

자세를 잡으며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봤다.

“포식자 릭.”

“오, 날 알아?……아, 아니지 참, 나 최근에 좀 유명인사가 됐었지?”

마치 장난을 치듯 키득키득 웃는 포식자 릭.

회귀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그의 모습.

“근데 그거 알아? 나도 너를 좀 만나고 싶었거든?”

“왜?”

“왜냐고? 그거야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릭은 피식거리던 웃음을 줄이고는 입을 열었다.

“중국 연구소를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찾아낸 것부터 시작해서, 중국을 지키고 있던 ‘괴물’을 죽이고, 그다음에는 LA에서 따로 준비하던 것들도 죄다 박살 냈잖아? 그리고 그 뒤에는 ‘안개’도 죽였고.”

괴물? 안개?

……차오롱과 마프로스를 말하는 건가?

“그리고 지금 와서는 누구보다 빨리 이곳으로 날아와서 또 계획을 방해하려고 안달 중이지, 응?”

쿵!

릭의 말과 동시에 그의 옆에 착지한 회색빛의 변이체를 보며 나는 인상을 굳혔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듯 피식피식 미소를 짓던 릭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근데 어쩌나? 어떻게든 훼방을 놓으려고 온 것 같은데, 이번에는 네가 죽게 생겼네?”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것 같냐?”

“그럼~ 혹시 몰라서 보고 있었지. 이 녀석도 처리 못 해서 쩔쩔매는 게 눈에 보이던데……. 내가 잘못 본 건가?”

릭은 그렇게 말하고는 키득거린 뒤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게다가 너무 쓸쓸해하지 마. 어차피 네가 지금 여기서 죽더라도 아마 네 길드원들도 다 네 뒤를 따라가고 있을 테니까. 아, 오히려 먼저 가서 기다릴 수도 있겠는데?”

키득키득 웃음을 멈추지 않는 릭.

“뭐?”

“사실 네가 이곳으로 오는 걸 늦추려고 한국에 자그마한 선물을 하나 준비했거든, ‘하이브 사태’라고 알아?”

뭐?

“게다가 그냥 하이브 사태도 아니지, 지금까지의 하이브 사태에서 나온 몬스터나 괴수들은 죄다 B급이나 C급이었잖아? 근데 내가 이번에 한국이랑 LA…… 그리고 또 어디였더라?”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입을 여는 릭.

“아무튼, 이곳저곳에 뿌려둔 하이브 마정석은 그 질이 다르거든, 아마 기본적으로 나오는 몬스터가 B급 A급을 넘어서 S급도 가끔 등장하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한국은 이미 박살이 나고 있지 않을까?”

“하…….”

릭의 말을 듣고 나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만약 릭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지금 한국은 개판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물론 각성한 김서윤이 한국에 있지만, 그 하이브 사태에서 끝없이 몰려나오는 괴수를 상대하기에는 그 상성이 좋지 않았다.

김서윤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강함이니까.

“어우, 심각한 거 봐.”

릭을 바라보자 그는 짐짓 과장된 몸짓으로 무섭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이내 곧 자신의 양팔에 있던 검은 붕대를 풀며 말했다.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해 봤자 네가 여기서 날 이길 확률은 제로야, 제로. 0%. 알겠어? 왜냐하면…….”

릭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곧 내 앞에 나타난다.

“내가 쟤보다 3배는 강하거든.”

콰아아아아아아아!

휘둘러진 주먹이 배를 강타함과 동시에 엄청난 폭음이 일어나고, 주변의 지반이 무너져 내리며 사방에 흙과 재가 섞여 하늘로 비산한다.

그야말로 경악할 정도의 공격이었다.

단 한 번의 주먹질로 주변에 있던 것들이 일제히 날아가 버리고, 부서져 버릴 정도의 풍압.

흙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릭의 모습이 보인다.

“어우, 야. 너무 쉬운 거 아니야? 뭐, 한방에 그렇게 만신창이가 돼?”

릭은 내 모습을 보며 이죽거렸다.

뭐, 실제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 몸에 둘려 있던 그림자와 아지랑이들은 완전히 제힘을 잃은 체 소멸하고 있었다.

“할 말은 그게 끝이야?”

“뭐?”

“너는 어떻게 볼 때마다 그러냐. 항상 그러더라고, 아가리만 나불나불거리면서.”

“…….”

내 말과 함께 인상을 구기는 릭.

“명줄을 늘리고 싶으면 허세는 부리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네가 왜 내 명줄 걱정을 해?”

이제 슬슬 사용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사실, 원래라면 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릭을 상대할 수 있기를 내심 바랐다.

회귀 전에도 이 스킬을 사용하고 난 뒤에는, 항상 그 부작용으로 거의 한 달에 달하는 시간 동안 끔찍한 고통과 무력감을 느껴야 했으니까.

“영체 합일.”

[스킬 단계가 부족해 둘 이상의 영체 합일이 불가능합니다!]

[주의! 강제로 합일을 시도하면 합일을 시도한 ‘그림자 영체’는 소멸하게 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강제!!

[영체 합일 대상이 선택되었습니다. ‘A급 괴수 은수랑’]

[스킬 정보가 새로 업데이트됩니다.]

[특성 정보가 새로 업데이트됩니다.]

메시지가 뜬다.

※강제!!

[영체 합일 대상이 선택되었습니다. ‘A급 괴수 하테’]

[스킬 정보가 새로 업데이트됩니다.]

[특성 정보가 새로 업데이트됩니다.]

메시지가 뜬다.

※강제!!

[영체 합일 대상이 선택되었습니다. ‘S급 괴수 갈리티안’]

[스킬 정보가 새로 업데이트됩니다.]

[특성 정보가 새로 업데이트됩니다.]

눈앞에, 시야를 가득 메울 듯 많은 메시지가…….

“오히려.”

땅을 박찬다.

시야가 점멸한다.

일순 하얗게 변하는 시야가 돌아오며,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 멀리 있던 릭의 얼굴이 눈앞에 보인다.

눈을 크게 뜨는 릭.

“네 명줄을 걱정해야지.”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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