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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90화 (90/202)

# 90

나 혼자 10만 대군 090화

26장 조건(2)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월터에게 떡밥을 던지기로 마음먹은 그다음 날, 나는 T. 월터에게 조금 묘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저희 쪽에서도 마프로스를 의심하고 있기는 했는데, 만약 김우현 헌터가 말한 대로 정말 마프로스가 그 ‘변이체’를 만든 조직과 관련이 있다면…….

월터는 그렇게 말꼬리를 흐렸지만, 이내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무튼, 김우현 헌터가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저희 쪽에서 은밀하게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만약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실 때는 제가 협회를 통해 전해드린 그 스마트폰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 뒤 짧은 인사 이후에 끊어진 스마트폰을 바라본 나는, 이내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처음 월터에게 떡밥을 던지기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월터는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하루만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었다.

그다음 날 나는 사무실로 찾아온 한국 지부 강형찬 부장에게 검은색의 스마트폰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제 통화를 하려고 했던 T. 월터로부터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슈비츠의 실종에 마프로스가 관련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라”

검은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나는 월터에게 들었던 말을 되뇌었다.

월터에게 들었던 묘한 정보는 바로 그것이었다.

국제 헌터 협회에 소속된 3명의 SSS급 헌터 중 한 명인 슈비츠가 실종되었고, 그의 실종에 마프로스가 관련되어 있다는 정보.

“만약 정말 마프로스가 슈비츠의 실종과 관련이 있다면…….”

아마 슈비츠는 지금쯤 릭에게 흡수당했거나, ‘변이체’가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보다…….”

나는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월터를 떠올리며 다리를 떨었다.

T. 월터는 결사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걸까?

뭐, 생각해 보면 마프로스와 월터는 애초부터 친하지도 않다.

게다가 알고 있듯이 국제 헌터 협회는 그냥 이름만 하나일 뿐이지, 그 안은 마치 대형길드처럼 라인이 나누어져 있는 상태였다.

만약 월터가 결사단과 전혀 상관이 없다면 나로서는 편하게 여기저기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겠지만, 아직 월터가 결사단에 관련되어 있는지 그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것도 말 안 했지만.”

나는 스크랩 된 뉴스를 바라봤다.

‘LA에서 발견된 S급 개방 던전 ‘그림자 요새’ ‘임페리얼 트루’가 이번 달 말 공략 시작.’

S급 개방 던전 ‘그림자 요새’

‘검은 돌’을 드랍하는 4번째 던전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월터가 결사단이 아닌 게 확실했다면, 몰래 LA에 잠입해 개방형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월터에게 개방형 던전의 최초 클리어권을 요구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았겠지만…….

역시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어차피 내 정보야 이미 전부 까발려져 있는 상태지만, 적들에게 또다시 쓸데없는 정보를 줄 필요는 없었다.

나는 노트북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좀만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뭐, 던전이 빨리빨리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겠지.

사실 타이밍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지금까지는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 어찌 됐든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상대들이었지만, 결사단에 있을 포식자 ‘릭’은 지금 가지고 있는 힘만으로는 확실히 벅찬 상대였다.

게다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회귀 전의 릭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만약 릭이 SSS급 헌터를 흡수했다면 릭은 아마 회귀 전에 상대했던 것보다도 더욱더 강해져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적어도 회귀 전의 그는, SSS급 헌터는 단 한 명도 포식하지 못했으니까.

하나 SSS급 헌터를 포식하지 못했더라도 릭이 보여주었던 강함은 상식 이외의 것이 분명했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더불어, 사기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그야말로 엄청났으니까.

뭐, 하지만 나도 놀고 있던 건 아니니까.

게다가 지금 LA에 나타난 개방형 던전을 클리어한다면, 적어도 나는 지금 이상으로 강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이내 멍하니 의자에 앉아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길드원들 얼굴 좀 보고…….”

본격적으로 LA에 갈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 *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헌터 대형 병원.

그중에서도 S급 이상의 헌터들만을 위해 준비해 놓은 사치스러운 VIP 병실 안에서 김서윤이 있었다.

하나 그녀의 모습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변해 있었다.

분명 검은 흑발이었던 머리는 묘하게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검은 눈동자는 영롱한 호박석을 박아 넣은 듯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분명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왼쪽 이마에 나 있는 뿔은, 그녀가 달라졌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었다.

“제발…… 제발……!”

김서윤은 누워 있는 상태에서 손가락만을 움직여 스마트폰의 검색 페이지에 보이는 검색창을 바라보았다.

검색창에는 ‘애틋하게 뜨겁게’가 쓰여 있었다.

“제발…… 최신편, 제발……!”

김서윤은 묘하게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표정으로 검색창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곧 페이지를 불러오느라 하얀빛으로 빛나는 스마트폰에 기대하는 김서윤의 얼굴을 비쳤다.

그리고.

“아…….”

곧 페이지가 나왔을 때, 김서윤은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애틋하게 뜨겁게’의 최신편이 업로드되지 않은 것을 보며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렇게 탄식을 내뱉던 중,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병실의 문이 열리며 김우현이 들어왔다.

“어? 아저씨?”

“잘 쉬고 있냐?”

김우현의 물음에 김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여기 우리집보다 좋은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누워 있는 침대를 툭툭 건드리는 김서윤을 보며, 김우현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입을 열었다.

“그래서, 몸 상태는 어때?”

내 물음에 김서윤은 일순 고민하는 듯 슬쩍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뭐, 처음 여기 실려 오고 나서는 온몸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좀 괜찮아요. 다만…….”

김서윤은 슬쩍 자신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려 길게 자라있는 뿔을 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각성의 부작용인지, 뭔가 모습이 바뀌어서…….”

김서윤의 한숨 어린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플갱어의 늪’에서 길드원들이 변이체에게 전멸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김서윤의 각성 때문이었다.

김서윤의 각성, 그 모습을 실제로 본 것은 아니지만, 이은별과 이로하의 말로 유추해 봤을 때, 그 모습은 회귀 전의 김서윤에게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도 회귀 전의 김서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회색빛의 머리칼과 호박을 박아 넣은 듯한 눈빛 그리고 이마에 자라있는 뿔.

김서윤은 아직도 어색하다는 듯 이마에 솟아 올라있는 뿔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지금은 좀 익숙해지긴 했는데 역시 이 뿔은 좀…….”

“뭐, 확실히…….”

그냥 평범한 살색 피부를 가지고 있는 김서윤의 이마에 뿔이 솟아나 있으니, 묘하게 튀어 보이기는 했다.

내 긍정을 끝으로 갑작스레 조용해진 병실, 하지만 곧 김서윤이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어제 아저씨가 이야기해 준 것 있잖아요?”

“무슨 이야기?”

“저한테 물어봤었잖아요? 어떤 식으로 각성했는지, 뭐 그런 거요.”

“아, 확실히…… 물어보기는 했지.”

내 끄덕거림에 김서윤은 입을 열었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 역시 지금 제 능력이 각성한 이유는 아무래도 아저씨가 그때 저한테 준 그 붉은 마정석 때문인 것 같아요.”

……하이브의 핵?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감이라고 해야 하나?”

“……뭐야, 그게?”

내가 김이 샌다는 듯한 느낌으로 말하자, 김서윤은 뭔가 생각해 내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사실 그 붉은 보석을 먹었을 때는 막상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데……. 아, 솔직히 설명은 잘 못 하겠는데, 그 붉은 마정석 때문인 것 같다니까요!?”

김서윤의 묘하게 필사적인 외침에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짧게 생각했다.

하이브의 핵이 ‘김서윤’의 탐식을 각성시켰다?

……뭐 어떤 면에서는 마정석을 먹음으로써 능력을 끌어올리는 ‘탐식’이라는 능력을 생각해 보면, ‘하이브의 핵’과 연관 지을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했다.

게다가 회귀 전의 김서윤은 적어도 내 기억에 이런 모습을 한 적은 없었다.

김서윤이 처음 데뷔하고, 결국 국제 협회의 말도 안 되는 명령 때문에 몬스터들과 싸움을 벌일 때도 김서윤은 처음 그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이런저런 퍼즐을 맞춰보자 묘하게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김서윤의 주장.

“뭐, 그래. 대충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

“……그거 그냥 말하는 거죠?”

“아니, 진짜로”

내 말에 김서윤은 수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누워 무언가 찡얼거리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저씨 혹시 은별 언니한테 가본 적 있어요?”

“은별이? 뭐, 여기에 오기 전에 안부 좀 물으러 다녀오기는 했지.”

“음, 저기…… 은별 언니, 괜찮아요?”

김서윤의 물음에 나는 조금 전 보고 온 이은별을 떠올렸다.

마력 고갈 현상과 동시에 옆구리에 심한 자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한 이은별은 회복 전문 헌터들의 도움으로 꽤 안정을 되찾았지만.

“확실히, 괜찮기는 한데…….”

이은별의 얼굴에는 상당히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그녀를 처음 영입했을 때와 같은 모습.

“그, 언니가 요즘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구요.”

“뭐 때문에?”

내 물음에 김서윤은 슬쩍 머뭇거리는 듯했지만, 이내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 언니가 가지고 있는 능력 때문에요.”

“능력……?”

그리고 그 뒤로 나는 김서윤에게 최근의 이은별에 대해서 내가 몰랐던 꽤 여러 가지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어느 기점으로 자신의 능력에 묘한 열등감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 일이 있기 전 그녀가 매일 밤까지 남아 능력 개발에 몰두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김서윤이 이은별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묘하게 느껴졌던 무력감과 허무함까지.

“아무튼, 최근 은별 언니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요.”

나는 김서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에 빠졌다.

* * *

늦은 저녁 시간.

나는 LA 남북부 외각에 위치한 S급 개방 던전 ‘그림자 요새’ 앞에 서 있었다.

“어우, 피곤해.”

처음에는 어떻게 들키지 않고 LA에 올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LA로 가는 비행기에 몰래 탑승하는 길을 선택했다.

LA에 가는 비행기에 몰래 탑승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냥 비행기가 출발하는 곳에서 기다렸다가 그 위에 달라붙기만 하면 됐으니까.

……뭐 그렇다고 해서 이곳으로 오는 하루에 가까운 시간 동안 불편하지는 않았다.

“…….”

비행기 위에 그림자로 만들었던 공간은 생각보다 아늑했으니까.

나는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림자 요새’의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빨리 끝내자.”

짧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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