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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87화 (87/202)

# 87

나 혼자 10만 대군 087화

25장 각성(3)

꽝! 꽝! 꽝! 꽝!

사방에서 지면이 터져나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던 도로는 어느새 레이나와 릭의 싸움으로 인해 완전히 박살이 나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저기 움푹 팬 지반들과 망가져 있는 차들 그리고 완전히 부서진 이 차선 도로 사이에서.

쿠구구구궁……!

공격을 주고받던 레이나와 릭이 나타났다.

릭은 오른손으로 레이나가 들고 있는 검을 막고 있었고, 레이나의 빛나는 오른손은 릭의 왼손을 붙잡고 있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수십 번이 넘는 공방.

하나 그 한순간의 공방으로 인해 릭과 레이나의 차이는 극명하게 갈렸다.

당장 릭의 주먹을 막는 것도 버거운 듯, 슬슬 주먹이 밀리고 있는 레이나와 반대로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주먹을 밀어내고 있는 릭.

그리고 그런 대치 상황을, 설치해 놓은 ‘눈’을 통해 보고 있던 알리샤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피로한 듯 눈을 감았다 뜨고 생각했다.

‘이쪽은 대충 정리된 것 같고…….’

언제나 ‘결사단’이 모였던 그 어두운 공간 안에서 알리샤는 자신의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조작한 뒤 입을 열었다.

“마프로스.”

-네, 듣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대기 중입니다.

이어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마프로스의 대답에 알리샤는 고개를 끄덕일 무렵 마프로스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그보다 괜찮습니까?

“뭐가?”

-릭한테는 그냥 그림자 왕을 ‘암살’하는 것으로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근데 이렇게 변이체까지 데리고 와서 일을 벌이는 걸 알면 나중에 릭이 지랄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렇긴 하겠지.”

알리샤는 마프로스의 말에 답하곤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릭이 이성적이었으면 그런 거짓말도 안 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릭은 이성보다는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니까”

-뭐, 그거야 예전부터 그러긴 했죠. 도대체 그 새끼가 뭐라고 그런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는지 참……

마프로스의 한탄 어린 말도 잠시, 알리샤는 말했다.

“명심해, 목표는 그림자 왕과 그 녀석의 휘하에 있는 길드원들이야.”

-알겠습니다……근데, 길드원들은 대체 왜 죽이려고 하는 겁니까? 뭐, 개인적으로 알아보니 다들 그냥저냥 특이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딱히 저희가 처리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은 그렇지만 혹시라는 게 있으니 그냥 그림자 왕을 정리할 때 전부 정리하는 게 좋을 거야.”

알리샤의 말에 마프로스는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뭐, 알겠습니다.”

마프로스는 그렇게 대답하곤 이내 자신의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을 빼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말이야…….’

마프로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 풍경을 바라봤다.

희뿌연 안개로 감싸져 있는 설악산, 거기에다 날씨도 해가 뜬 날이 아닌, 칙칙하고 음울한 날씨라 안개가 낀 설악산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지만, 마프로스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이 안개는 데리고 온 ‘변이체’들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 만든 것이니까.

‘굳이 변이체들을 사용해서까지 그 부하들을 죽여야 할 이유가 있나?’

마프로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명령에 따라 주변에 은신해 있는 총 30명의 변이체, 그중 2명은 변이체 중에서도 몇 없는 SS급 변이체였다.

‘전력 과잉인데…….’

마프로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설악산 초입에 모여 있는 그림자 왕 김우현과 그의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도합 5명.

저 멀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녀석들을 보며 한동안 생각하던 마프로스는 이내 고개를 절레 저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뭐, 이렇게 생각해 봤자 바뀌는 건 없을 테고…… 나야, 내가 원하는 것만 받으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마프로스는 이내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허공에 대고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던전 안으로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헌터들을 처리해라.”

분명 마프로스는 안개가 가득해 흐릿한 허공에 말을 내뱉었을 뿐이었지만, 마프로스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의 사방에서 기다렸다는 듯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변이체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변이체들이 도약하는 것을 바라보며 마프로스는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의 몸을 안개로 바꾸기 시작했다.

* * *

키잉!

길드원이 들어간 ‘도플갱어의 늪’으로 따라 들어간 변이체들을 막기 위해 각성을 사용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살벌한 금속음에 나는 몸을 틀었다.

-카가가가각!

이윽고 등 뒤에서 튀어나온 그림자와 맞부딪혀 들리는 쇠 긁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린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한 남자가 검을 쥔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냐!”

내 물음.

하나 돌아온 건 남자의 대답이 아닌, 갑자기 이 일대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안개였다.

분명 5m 앞에 있었던 던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진득한 안개에 인상을 찌푸릴 무렵.

-챙! 챙! 카가가각!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내 뒤에 휘둘러졌다.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해진 공격.

다행히도 그 공격은 등 뒤의 그림자에게 막혔지만, 그런데도 순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던 공격에 나는 저도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했고, 곧 이 안개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프로스……!”

국제 협회의 SSS급 헌터 마프로스.

이 진득한 안개와 그 안개 속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일격을 날리는 헌터는 전 세계를 찾아봐도 얼마 없었다.

안개가 펼쳐지기 직전 던전으로 들어가던 변이체를 보며 확신한 나는 그렇게 물었고, 별안간 대답이 없던 그에게서 마침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호오, 솔직히 알아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들켰군요.”

“너도 결사단이냐?”

“그 말에 대답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말에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마프로스를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대답을 회피했다고 해도 마프로스와 변이체가 같이 나타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닐 테고, 그렇다면 곧 마프로스가 ‘결사단’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마프로스가?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의문이 차올랐지만, 이내 슬쩍 고개를 저어 잡념을 없앤 나는 진득한 안개로 뒤덮인 사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내가 생각해야 할 건 마프로스가 ‘어째서 결사단과 이어져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마프로스를 이겨야 할까?’라는 생각뿐이었다.

덤으로 지금 길드원을 따라 던전 안에 들어간 변이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는 것까지.

그렇게 사방을 경계하고 있자 또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제가 만약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딱히 당신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카직!

“……!?”

보이지도 않은 회색빛의 칼날이 내 앞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공격.

분명 방금까지의 칼날은 모두 내 그림자에게 막혔지만, 지금 나를 노리고 들어온 칼날은 그림자를 뚫고 내 얼굴 앞까지 도달해 있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당신은 지금 여기서 죽을 거니까요.”

* * *

음울한 분위기의 늪지대.

쾅!

던전 밖에서 김우현과 마프로스의 싸움이 시작될 무렵, 던전 안에서도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체…… 이것들은 또! 어디서 나타난 거야!”

김서윤은 눈앞의 변이체를 보며 이를 악물고는 슬쩍 눈을 굴려 완전히 개판이 난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앞에는 자신의 주먹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힘 싸움을 하는 변이체가 보였다. 사방으로는 스켈레톤과 도플갱어가 있었다.

이 던전의 몬스터인 도플갱어는 스켈레톤과 변이체의 모습까지 따라 해 지금 던전 내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꽝! 쾅쾅! 펑!

김서윤의 주먹이 괴인의 몸을 빠르게 연타한다.

변이체의 몸에서 북 터지는 소리가 났지만, 변이체는 그런 김서윤의 주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손톱을 김서윤에게 휘둘렀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변이체의 일격을 거의 감으로만 피한 김서윤은 이내 이를 악물며 몸을 뒤로 뺐다.

몸을 뒤로 빼자 변이체와 싸움이 시작되고 사방으로 흩어졌던 길드원들이 보였다.

‘은별 언니가 혼자 있고, 리남 오빠랑 이로하 언니가 같이…….’

이은별은 이미 각성 상태에 돌입했는지 온몸이 푸른 오라로 감싸진 상태에서 사방에 마법을 뿌리고 있었다.

이로하는 자신의 능력을 개방해 주변의 몬스터들을 불태우고 있었다.

언뜻 보면 무척이나 훌륭하게 주변의 적을 정리하는 모습으로 보였지만 김서윤은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괴인들은 하나도 죽이지 못했어……!’

이 도플갱어의 늪 안에 있는 몬스터는 확실히 줄어들고 있었지만, 괴인들은 처리하지 못했다.

꿍!

“윽!?”

우지끈-!

김서윤이 앞으로 튀어나온 괴인의 주먹을 막고 튕겨 날아가 늪에 무성히 나 있는 나무에 처박힌다.

그 뒤, 제대로 자세를 잡기 전 다시 한번 가해지는 괴인의 일격.

김서윤은 급하게 손을 들어 괴인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팔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느낌과 동시에 느껴지는 고통스러운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고, 그와 동시에.

“꺽!?”

저 멀리서, 허공에 붕 떠 날아가는 이은별의 모습이 보였다.

“은별 언니!?”

순간 저도 모르게 이은별에게로 달려가려 했던 김서윤은 이내 눈앞에 다가오는 괴인을 보며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고 몸을 뒤로 뺐다.

차가운 늪지대에 처박히는 이은별의 몸을 보고 이를 악문 김서윤은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아저씨는 뭘 하는 거야!?’

상황이 악화하자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

씨커 길드의 길드장이자, 한국에서는 ‘영웅’으로 취급받고 있는 헌터.

그림자 왕 김우현,

그는 분명히 밖에 있을 터였다.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어떻게든 자리에서 이동한 하리남이 절대 방어로 이은별과 이로하를 지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저것도 얼마 버티지 못해……!’

김서윤은 점점 표정이 굳어가고 있는 하리남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 뒤, 점점 악화되는 상황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도움은 바랄 수 없어.’

지금 이곳에 김우현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왜인지 김서윤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김서윤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능력과 엇비슷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살짝 상회하고 있는 것 같은 눈앞의 변이체.

다른 변이체들은 전에 상대했던 것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 김서윤이 상대하고 있는 변이체는 달랐다.

손톱을 휘두르는 것을 눈으로 따라갈 수 없어, 감각에만 의존해 공격을 피해야 할 정도로 빠른 속도에, 공격을 몇 번 막았을 뿐인데도 욱신거리는 양팔.

‘너무 강해……!’

끝없이 공격해 오는 변이체의 공격을 몇 번이나 피하며 김서윤은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조금 더 노력했으면……!’

마정석을 먹음에 따라 강해지는 육체, 그로 인해 저도 모르게 생긴 여유와 오만.

솔직히 1주 전만 해도 김서윤은 어째서 이은별이 그렇게까지 노력하는지 별로 이해할 수 없었다.

촤아아악!

“끄악……!”

“이런……끅!?”

처음과는 다르게 거의 감에 의존해 변이체의 공격을 피하기만 할 뿐인 전투는, 하리남의 절대 방어가 깨지는 순간 기울었다.

서 있던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하리남과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춘 김서윤은 결국 괴인에게 공격을 허용했고,

그 한 번의 실수로 몸 한가운데에 커대한 자상이 생긴 김서윤은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손톱을 들어 올리는 괴인의 모습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 무척이나 느긋하고, 또 느릿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며 김서윤은 후회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으면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내가 아저씨에게 의지하지 않았으면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었을까?

그런 의문이 김서윤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괴인의 느릿한 손톱이 김서윤의 눈앞에 도달했을 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김서윤의 머릿속에 들렸다.

[먹어치워라───]

‘무슨……?’

[먹어치워라, ‘탐식’]

그리고, 김서윤의 시야가 반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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