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나 혼자 10만 대군 084화
24장 숫자의 폭력(4)
어두컴컴한 심연이 움직였다.
마치 파도처럼 일렁거리며 LA의 길거리를 꽉 채우는 심연.
그것을 찍고 있는 카메라의 화면이 확대되자, 검은 심연으로만 보였던 그것들이 사람의 형상을 한 ‘그림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영상에서는 그 어떤 잡음도 섞이지 않고, 그저 콘크리트 바닥을 밟고 지나가는 그림자들의 발소리만이 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영상에 녹색 괴인의 형상들이 잡히기 시작할 때부터, 그림자들의 태도가 일변했다.
기괴하게 생긴 괴인들에게 달려가는 그림자들.
그 모습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사냥감을 노리는 굶주린 짐승?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녹색 괴인에게로 달려든 그림자 군단이, 녹색 괴인들을 집어삼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콰직! 꽈직! 쿵! 콰강!
바닥이 깨지는 소리부터 시작해 녹색 괴인들의 몸이 찢어지는 모습들이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찍혔다.
그런 그림자들의 뒤에서부터 한 남자가 나타났다.
온몸에는 검은 아지랑이를 휘감고, 두 눈에는 붉은 안광을 내뿜고 있는 SS급 헌터 ‘김우현’.
카메라의 끝에서부터 나타난 김우현이 그림자들의 사이로 들어가 괴인들을 찢기 시작한다.
왼손에 들고 있는 검으로 괴인들을 베어 넘기고.
오른손에 들고 있는 방망이로는 괴인들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이 카메라 렌즈에 확대되어 적나라하게 찍혔다.
김우현이 마지막 남은 괴인의 몸을 반으로 갈라 버리는 것과 함께 영상은 끝이 났다.
“아저씨, 대체 무엇……?”
길드사무소에 앉아 있던 김서윤과 이로하 그리고 이은별과 하리남.
얼마 전 김서윤이 길드사무실에서 같이 사용하자고 들고 온 13인치 태블릿으로 재생된 김우현 영상을 본 그들은 모두 멍하니 있었다.
김서윤은 영상이 끝남과 동시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와, 진짜 이 영상 찍은 사람 누구지? 엄청 소름 돋게 잘 찍었는데?”
“음, 내 생각에는 그냥 잘 찍었다기보다는 우리 길드장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잘 찍힌 것처럼 보이는 것 같은데……?”
“아, 그런가? 누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하리남과 이로하는 바로 전에 PC 태블릿에서 재생된 영상을 보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서윤은 태블릿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 이미 이런저런 댓글이 난무하고 있는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빡빡빡아재링: 와, 김우현. 한국 구하더니 이제 LA에 표창식 받으러 가서 LA를 구해 버리네 ㅋㅋㅋㅋㅋㅋ 근데 솔직히 김우현 아직 SS급인 거 좀 이해 안 간다. 저 정도면 SSS급 아니냐???
└1시간에3번씩: 이거 진짜다. 내가 볼 때 김우현 이미 시스템에서는 SSS급 나왔는데, 전처럼 그냥 귀찮아 가지고 SSS급 신청 안 하는거 아니냐?
└벼랑끝에몰린기슈식: 이거 맞다 11111111111
└기분좋아: 2222222222222222
그림자왕은위대하다: 이야, 우리 갓갓 그림자 왕. 벌써 세계 영웅 스택을 이렇게 하나 만들어 버리네. 근데 진짜 능력은 사기 중의 사기인 듯. 혼자서 거의 군대를 만들어서 돌아다닐 정도네 ㅋㅋㅋㅋ
└마히루히라이: 내가 볼 때 김우현은 SSS급이 맞다. 왜냐면 국제 헌터 협회 소속, SSS급 헌터인 마프로스도 LA에 일어난 9개 구역 중 2개 처리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그림자 왕은 혼자서 5개 구역 싹싹 정리해 버렸잖어~
└겟올라잇: 게다가 거기다 추가로 스택 쌓는 게 뭔 줄 앎? 다른 헌터들 괴인 조지느라 여념이 없을 동안 김우현은 5개 구역 싹싹 정리하면서 인명 구조도 했다더라 ㅋㅋㅋㅋㅋㅋㅋ 본질적인 클라쓰에 차이.
└중2병무새: SSS급 헌터 마프로스, SS급 헌터 김우현에게 의문의 1패…… 아니, 2패인가? ㅋㅋㅋㅋㅋ
-의심론자: 자, 여러분. 지금 이 영상에 혹하지 마시고 우리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림자 왕 김우현이 가는 곳에만 이런 일이 생길까요? 우리는 잘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흠터레스팅: 역시 또 관심종자 등판했죠?
└아이라뷰: 병먹금 모르냐, 병먹금? (병신에겐 먹이 금지)
└병신을보면짖는개: 멍! 월월! 월! 으르르르릉! 멍! 월월! 월! 으르르르릉! 멍! 월월! 월! 으르르르릉!멍! 월월! 월! 으르르르릉! 멍! 월월! 월! 으르르르릉!
└아로나민씨: 어그로 오지게 끌어버리네. 답글 1,200개 실화냐 ㅋㅋ
최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실시간 인기 댓글을 보던 김서윤은 뭔가 미묘한 표정으로 태블릿을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뭔가, 뭔가 굉장히 아저씨보다 뒤떨어진 듯한 기분이 드는데…….”
김서윤의 말에 일순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확실히, 길드장님이 조금…… 우리랑 다르긴 하죠?”
이로하의 묘한 수긍에 하리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형님이 좀 다르긴 하죠. 뭐, 그렇다고 해도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 맴버도 절대 평범한 맴버는 아니지만…….”
하리남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실 여기에 있는 4명도 절대로 ‘평범한’ 축에 속하는 헌터는 아니었다.
최근에 S급으로 올라온 하리남을 포함한 모든 헌터가 S급 이상의 등급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김서윤 같은 경우는 SS급으로 올라갈 것 같기도 했다.
이은별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수련을 반복하며 그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능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된 후카이 이로하는 그와 동시에 본격적인 능력 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리남도 지속해서 꾸준한 성장을 한 덕에 김우현이 빌려주고 간 S급 무기만 있다면, A급 던전을 아무런 피해 없이 혼자서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한국의 다른 길드, 아니,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이곳에 모인 헌터들 같이 희귀한 케이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평범’이라는 틀을 벗어나 있었지만.
“뭐, 그건 그렇긴 한데…… 에이! 아무튼, 내 말은 뭔가 아저씨랑 우리랑 비교된다는 거지!”
김서윤은 저도 모르게 묘한 짜증을 내며 입을 열었고, 이은별은 손에 들고 있던 생수를 입에 가져다 대려다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김서윤의 말에 동의했다.
“뭔가, 뒷모습이라도 보이나? 싶으면 저 멀리 가 있기는 하지……. 길드장님은.”
“음, 저야 뭐. 애초에 형님이랑 만났을 때부터 비교가 불가능했던 상황이라…….”
하리남의 말을 끝으로 조용해진 사무실, 하지만 곧 김서윤은 뒤로 풀썩 누우며 뭔가를 찡얼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13인치 태블릿을 들었다.
“이렇게 된 거, 내가 재미있는 거 하나 보여줄게!”
“……? 재미있는 거?”
“기다려 봐!”
그러더니 김서윤은 태블릿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김서윤은 곧 유튜브에서 어느 영상을 하나 재생했다.
“이거! 어제 유튜브 찾다가 본 헌터 실험실이라는 건데 웃기더라!”
하지만 그녀의 말과는 달리 유튜브를 통해 재생되는 영상은 ‘헌터 실험실’이 아니었다.
김서윤이 태블릿을 돌리며 화면 부분을 터치한 덕분에 유튜브 영상은 다른 것으로 넘어갔고,
-널, 사랑할 거야!
-날 버리지 마요!
“……???”
“……?”
“쿨럭! 켈록!”
“으잉!? 이게 왜 나와!”
하리남과 이로하는 태블릿에 재생된 ‘애틋하게 뜨겁게 드라마 CD 3분 홍보’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김서윤은 곧바로 유튜브를 돌렸다.
“켈록! 쿨럭…… 켈록켈록……!”
“언니, 괜찮아요?”
물을 마시다 사례가 들린 이은별을 보며 김서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이은별은 계속해서 기침하면서도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그때, 하리남이 입을 열었다.
“와, 근데 진짜 저희 형님이랑 목소리가 똑같은데?”
“응?”
“……?”
“아니, 오빠 이거 알아요?”
김서윤의 물음, 하리남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 * *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앉아 잠을 자는 에단과 그의 여동생 사라를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 뒤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바깥풍경.
“어우…….”
뻑뻑한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뜬 나는 이내 멍하니 도착까지 남은 시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괴수 출현 사태가 끝난 지도 3일이 지났고, 나는 그동안 LA에서 여러 가지 정보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괴인들을 전부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리 에테르 길드에서 과학자에게 들었던 정보를 이용해, 에단의 여동생인 사라를 구할 수 있었던 나는, 결국 성공적으로 에단을 영입할 수 있었다.
뭐, 원래라면 아마 사라를 구하지 않았어도 에단을 영입하는 데 별 무리는 없었겠지만…….
나는 슬쩍 옆에 누워 있는 에단과 사라를 바라봤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자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생각에 빠져들었다.
두 번째로는 결국 탈출한 괴인들의 길드에서 얻을 수 있었던 정보들이었다.
물론 당장 눈앞에 있는 일을 처리하느라 보고서를 전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 보고서에 추가로 단서가 될 만한 게 적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세 번째는 ‘국제 헌터 협회’에서 얻은 이득에 관한 것이었는데, 지난 3일 동안 나는 지금 이 사건을 빌미로 월터에게 꽤 많은 지원을 약속받았다.
뭐 그렇다고 해봤자 내가 지원받을 일보다는 길드원들이 지원받을 일들이 훨씬 많겠지만.
그 뒤로 내 표창식 때에도 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도 급급했던 헌터 협회의 인사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며 무척이나 호의를 베푸는 일도 있었고,
LA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수속 절차를 밟고 있을 때, ‘리첼’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 팬한테 고백 아닌 고백 같은 하트 모양 러브레터를 받기도 했다.
뭐, 선물이랑 편지야 받아보기는 했지만, 또 그렇게…….
“뜨뜻미지근한……?”
그래, 묘하게 뜨뜻미지근한 분위기로 내게 편지를 건넸던 사람은 처음이기에 솔직히 뭔가 좀 부담스러웠다.
뭐, 그게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두운 풍경을 한 번 바라본 나는 곧 생각을 이어 나갔다.
사실 원래라면 에단과 사라를 한국에 데려다 놓고 곧바로 영국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영국에 가는 것은 조금 보류해야 할 것 같았다.
“우선은…….”
길드원들을 좀 성장시켜야 할 것 같았다.
원래라면 사실 길드원들의 성장에는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김서윤과 이은별, 이로하와 하리남까지. 지금 당장 씨커 길드에 있는 길드원들은 전부 알아서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괴인 사태가 벌어졌을 때 봤던 헌터 킬러들.
한 명, 한 명이 SS급 헌터인 그들의 힘은 실제로 그리 가볍게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에 총 9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괴인 사태는 아무리 물량을 많이 뽑아낼 수 있다고 해도, 결국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일은 한 번에 막을 수는 없다는 한계를 느끼게 했다.
그렇기에 슬슬 진짜로 시간을 투자해 길드원들을 성장시킬 시간이 된 것 같았다.
게다가 타이밍 좋게도, 아마 한국시각으로 지금으로부터 5일 뒤 길드원들의 훈련을 도와줄 만한 던전이 나오기도 했다.
“도플갱어의 늪”
한국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S급 대형 던전’ 원래라면 길드원들에게 이 던전을 ‘쉽게’ 클리어할 방법을 알려주고 영국으로 떠나려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던전을 철저하게 이용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