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나 혼자 10만 대군 081화
24장 숫자의 폭력(1)
‘국제 헌터 협회’에서도 단 3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SSS급 헌터 안개 마프로스.
그는 LA 중심가에 있는 초호화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하루를 묵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호텔 방.
마프로스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소파 위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계획 실행은 지금부터 2주 뒤라는 건가요……? 잠깐, 3주 뒤면 크리스마스군요?”
-맞아.
스마트폰에서 들려온 알리샤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프로스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그보다, ‘그림자 왕’은 그냥 저대로 놔둬도 되는 건가요? 제가 볼 때는 빨리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굳이 지금 그림자 왕을 죽여서 쓸데없는 일을 벌일 필요는 없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안개’는 조용히 있다가 3주 뒤에 그 일만 잘 처리하면 돼.
알리샤의 말에 순간 묘한 표정을 짓던 마프로스는 이내 자신의 외눈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알리샤의 이야기를 받았다.
“뭐, 마커 길드에 있던 녀석이 쓸데없는 짓을 하기 전에 막기는 했지만, 만약 그림자왕이 ‘민간인 변이체’를 알게 된다면 어쩔 생각입니까?”
마프로스의 물음에 한동안 말이 없던 알리샤.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곧 스마트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그림자 왕이 ‘민간인 변이체’를 알게 된다면 굳이 안개, 네가 나서지 않더라도 그림자 왕은 죽게 될 거야.
“……?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거기에 ‘2군’을 붙여놨으니까.
“2군?”
마프로스는 이내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띄우려다 이내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설마 그 SS급 헌터들 말하는 건가요?”
-응.
“설마 10명 전부?”
-맞아.
“그 녀석들은 또 어떻게 회유한 겁니까? 다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녀석들인데.”
-만약 이번 일을 잘 끝내면 ‘변이체 세포’를 이식해주기로 했어. 자기들보다도 약했던 ‘괴물’이 변이체 세포를 이식받고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지는 것을 직접 옆에서 본 녀석들이니까.
“확실히 SS급 헌터 10명이면…….”
마프로스는 2군 소속의 SS급 헌터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의 선택을 받지 못해 2군에 있는 헌터들이지만 적어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은 진짜였다.
특히 그중 몇 명의 능력은 어떻게 생각하면 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인 것들이 많았다.
“근데 그렇게 아무렇게나 ‘변이체 세포’를 이식해도 됩니까? 그건 분명히 그분이 지시한 대로만…….”
-괜찮아. 내가 이식해 주려는 건 우리가 받은 세포가 아니니까…… 아무튼.
알리샤는 음, 하고 목을 가다듬은 뒤, 마저 입을 열었다.
-만약 그림자 왕이 민간인 변이체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더라도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림자 왕이 길드를 습격하는 순간, 2군 녀석들이 죽이기 위해 달려들 테니까.
알리샤는 마프로스에게 계획 전까지는 최대한 몸을 사리라는 소리를 몇 번이고 반복했고, 마프로스는 그 후에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 * *
“이곳이 길드 건물이라고?”
에테르 길드의 건물 위치는 그저 검색하는 것만으로 찾을 수 있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눈앞에 보이는 에테르 길드의 건물을 보며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길드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공장’과도 같은 생김새를 가진 건물.
중국에도 이런 느낌의 길드 사무소가 있기는 했지만, 이건 건물의 규모가 앞서 보았던 중국 길드보다 훨씬 거대했다.
‘설마 여기도 그 중국 길드와 마찬가지로 인신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녀석들인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LA 외곽에서 그런 간 큰일을 벌일 만한 길드가 있을까?
“…….”
아니, 뭐 생각해 보면 당장 할렘가 주변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마약을 강매하고 있다는 에단의 말을 들어보면 시내 쪽은 몰라도 외곽은 치안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까 그런 기사가 올라와 있겠지.”
나는 문득 아까 에테르 길드를 검색하다가 봤던 기사를 떠올렸다.
딱히 확실한 정보는 아닌 듯 무척이나 짧은, 그냥 찌라시라고 부를 수 있을 몇 줄짜리 기사이긴 했지만, 에단의 여동생이 이곳으로 잡혀갔다는 것을 들은 나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기사였다.
에테르 길드가 몰래 길거리의 노숙자들을 잡아 인신매매하고 있다는 기사.
다만 신문사도 그렇게 메이져 신문사인 것 같지는 않고, 조회 수도 20밖에 되지 않아 기사 자체는 별로 뜨지 못한 것 같지만…….
확실히 의심해 볼 수 있는 기사였다.
쾅!
결정한 뒤 곧바로 빌라에서 도약한 나는 곧바로 에테르 길드의 본관으로 뛰어들었다.
쾅! 꽈직!
내가 몸을 부딪치자마자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는 문짝.
나는 망설임 없이 본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 뭐야! 끅!?”
나를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무기에 손을 가져다 댄 헌터의 머리를 깨부순 나는, 삽시간에 주변에서 나타나는 헌터들을 보며 행동을 개시했다.
콰직! 꽝! 콱!
문을 열고 나온 헌터의 목을 잡아채 부러뜨린 뒤, 무기를 꺼내는 헌터에게 던져 버리고, 곧바로 땅을 박차 다른 층에서 내려오는 헌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한 명을 상대하는데 2초 혹은 그 이하.
그 결과 고작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내가 있던 곳으로 몰려오던 헌터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널려 있는 헌터의 시체를 보며 헌터들이 올라온 지하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하로 내려가자 보이는 철문.
딱 봐도 무척이나 두꺼워 보이는 문은, 나로서도 장비 없이 순수한 힘으로 부수기에 부담스러울 정도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지만.
쾅! 후두두둑……!
그렇기에 나는 철문 대신 철문 옆에 있는 벽을 부수는 길을 선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벽을 부숴 버리자 드러나는 내부 보며 미소를 지은 나는, 부서진 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쯧…….”
사방에 들어차 있는, 사람이 한 명 정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원형관 그리고 그런 원형관 사이사이에 있는 책상과 알 수 없는 실험 용기들.
회의실 끝에 달린 거대한 스크린에는 알아볼 수 없는 복잡한 수식이 쓰여 있었다.
그야말로 대형 연구실과 같은 이곳의 풍경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안에 있던 과학자들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 뭐야!”
“……저 변이체는 또 누가 관리했어!? 돌연변이야!?”
“아니, 아니다! 저건 변이체가 아니야!”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는 연구실을 나는 주먹을 쥐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할까?
전부 죽이고 한 명만 남겨놓고 정보를 뽑을까? 그게 아니면 몇 명 정도만 죽이고 적당히 살려놓은 뒤에 정보를 뽑을까?
“미, 미친!”
“오, 오지 마!”
하지만 결국 확실한 건, 적어도 지금 여기에 있는 녀석 중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는 녀석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 * *
LA 동쪽 외각에 위치한 중형 길드 ‘리온 크로스’ 길드 지하에서는 도합 10명의 헌터가 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 재미없어.”
“좀 닥쳐. 도대체 몇 번이나 똑같은 말을 하는 거야?”
“아가리 찢어버리고 싶다, 진짜.”
“다 닥쳐라, 진짜 죽여 버리기 전에.”
쉴 새 없이 오가는 욕설. 그런 그들을 보며 한숨을 내쉰 여자는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발 좀 다들 조용히 좀 해! 지금 사고 치면 세포 이식은 없는 거 몰라?”
일순간 조용해지는 분위기. 여자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어차피 여기 있는 애들 다들 도긴개긴인 거 알잖아? 다들 어떻게 변이체 세포 이식해서 SSS급 한번 돼보려고 모인 건데 서로 으르렁거려야겠어?”
“아니, 시발. 쟤가 먼저 지랄했다니까?”
“진짜 살 발라내 버리고 싶다.”
“닥쳐, 이 새끼야. 자국에서 성폭행하다가 걸려서 도망친 주제에”
“뭐? 말 다 했냐? 하는 거라곤 마약밖에 없는 흑인 니그로 새끼가.”
“병신들 잘 논다.”
“뭐? 눈깔도 없는 동양인 찐따 새끼가 아가리는 크네? 나불거릴 줄도 알고.”
불과 5초 만에 말싸움을 시작한 그들을 보며 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좆같은 새끼들…….’
그녀라고 해서 성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지금 여기에 모인 헌터 중에서 제일 성질이 고약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국 서부에 있는 시골 마을에 살고 있던 시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인 전력이 있으니까.
SS급 헌터 마귀 렌.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분위기가 과열되고 있는 2군 맴버들을 바라봤다.
SS급 헌터인데도 불구하고 자국에서 악질적인 일을 벌였던 헌터들이 대부분 이곳에 모여 있었다.
‘변이체 세포만 아니었어도…….’
그녀는 최대한의 부동심을 유지했다.
자신이 한번 화나면 앞뒤 안 가리고 일을 벌이는 분노조절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그렇게 렌이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정리하고 있던 사이.
삐──────
스마트폰에서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벨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조용해지는 2군, 렌은 곧바로 눈앞에 있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고 울리는 벨 소리와 함께 스마트폰 메인에 떠 있는 문자를 읽어나갔다.
‘LA 동남부 지역에 있는 에테르 길드 지하에 침입자. 2군 전원 출동 바람.’
스마트폰을 본 렌의 입가가 쓱 올라갔다.
* * *
“큭, 큭큭큭…….”
나는 웃고 있는 과학자를 보며 슬쩍 시선을 돌려 주변 상황을 살폈다.
원형관 속에 알 수 없는 용액과 함께 담겨 있던 변이체들이 원형관 안에서 움직임을 보였고, 과학자는 그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품을 토해내며 입을 열었다.
“우리를 건드리다니! 실수한 거다, 어벤져……! 네 녀석이 과연 변이체들을 막아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하나? 응!? 큭…… 켁, 케엑……!”
피를 한 움큼 뱉어내는 과학자를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이딴 녀석들을 막지 못할 거라 생각하나?”
내 말에 과학자는 키득키득 웃더니 피거품을 토해내며 말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녀석들만이라면 막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LA 곳곳에서 나타나는 변이체를 과연 너 혼자 전부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LA 곳곳이라고?”
“그래! 내가 아까 누른 버튼은 LA 곳곳에 있는 변이체들을 전부 폭주시키는 버튼이다! ‘결사단’ 녀석들이 혹시나 뒤통수를 치지 않을까 싶어서 만들어놓은 거지만…….”
과학자는 큭큭거리며 말했다.
“아무튼, 네가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을 거다……!”
그 말을 남기고 죽은 과학자의 시체를 본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과학자의 시체를 저 멀리 던져 버린 후, 원형 관을 깨부수고 튀어나오려는 변이체들을 바라봤다.
과학자들을 제압해 정보를 뱉게 하던 도중, 갑작스레 튀어나와 네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거라며 변이체들을 폭주시켜 버린 과학자.
엿이라도 먹으라는 심정이었겠지.
……확실히 내가 LA 곳곳에 출현하는 변이체들을 혼자서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 내가 만약 ‘어벤져’였다면 불가능 했겠지만.
나는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변이체들을 보며 씩 웃음을 지었다.
‘그림자 왕’이라면 가능하다.
능력을 사용하자 형광등을 반사해 밝게 빛나고 있던 바닥이, 빛조차도 먹어 치울 것 같은 어둠으로 뒤덮이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형체를 가진 그림자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숫자의 폭력이 재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