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나 혼자 10만 대군 080화
23장 어벤져(4)
“그래서 지금 여동생이 잡혀 있다고?”
“네…….”
다짜고짜 사인을 요구한 에단에게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사인해 준 나는 곧 에단의 과거를 들을 수 있었다.
에단에게 처음 시스템이 개화했던 일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여동생이 ‘블랙윙’ 길드에 인질로 잡혀, 국제 협회에 찍혀 있는 ‘블랙윙’ 길드원들 대신 그들의 마정석을 환전해 주고 있다는 것까지.
“아니, 그보다…… 내가 ‘어벤져’인 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묻자 에단은 순간 묘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봤거든요.”
“봤다고?”
“네, 어제 새벽에 저기서요.”
에단은 다시 검지를 올려 빌라를 가리켰고, 나는 그제야 아까 전 에단이 했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 빌라 위가 어제 내가 서 있던 곳이라는 것 같았다.
좀 조심했어야 했는데,
아니, 오히려 어벤져인 것을 밝혀져서 에단의 환심을 산 것을 생각하면…… 뜻밖의 괜찮은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없애주실 거죠……?”
“뭐?”
내가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에단이 물어왔다.
방금 사인을 받았던 작은 공책을 꾹 쥔 에단은 이내 결심한 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없애주실 건가요?”
“뭐……?”
“그, ‘다크윙’ 길드요……. 그 녀석들 진짜 나쁜 놈이거든요? 막 사람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슬럼가 사람들한테 마약도 강매도 하고……. 진짜 나쁜 놈들이에요!”
에단은 그렇게 말하곤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조바심이 넘치는 듯한 느낌으로 내게 말했다.
“어벤져는 나쁜 길드를 박살 내는 히어로잖아요?”
나는 에단의 말을 듣고는 이내 벽에 등을 기대곤 짧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과연 저 녀석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확실히 에단이 조금 전까지 내게 해주었던 말은 상당히 일관성 있는 이야기이긴 했다.
내가 어벤져인 것을 알게 된 사실부터 지금 자신의 상황까지, 에단의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의심은 해보는 것이 좋았다.
답을 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에단에게 입을 열었다.
“혹시 너 말고 내가 어벤져로 변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어?”
“아, 아뇨! 아마 없을 거예요. 애초에 지금 이 자리는 폐공장이랑 슬럼가 사이라 사람들이 잘 오는 곳은 아니거든요. 아마 없을 거예요.”
에단의 말을 들은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고민했다.
그렇게 질문 뒤에 이어지는 기나긴 침묵에서 나는 나름대로 결론을 냈다.
에단을 믿기로.
사실 원래 예정에는 마커 길드 외에 다른 길드를 박살 낼 생각은 없었다.
이유는 바로 마커 길드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폭발.
분명 누군가가 관계되어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뭐, 결국 정보는 얻을 수 있는 대로 얻었다.
마커 길드의 헌터들은 화재로 사망한 것이 되었으니, 쓸데없는 의심을 피할 수 있어서 좋았고.
뭐, 미래의 가능성과 충성스러움이 탑재된 에단을 고려하면 역시 지금은 어느 정도 수고를 들이는 게 이득이었다.
생각을 마친 나는 이내 에단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틀.”
“네?”
“네가 여기 생활을 정리하는 데 주는 시간이야.”
“……네?”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에단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어벤져’는 쓰레기 길드를 심판하는 심판자지.”
그렇게 말한 나는 곧 에단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내 말이 끝나자 한순간 내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듯 인상을 굳힌 에단이, 이내 얼굴을 활짝 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나는 에단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의 어깨를 몇 번 툭툭 치는 것으로 대답하고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대로 골목길을 빠져나가려다 다시 에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어벤져라는 사실은…… 알지?”
“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에단.
분명 체구는 상당히 큰 것 같은데 아직 정신은 살짝 미숙한 것 같았다.
무엇인가 대단한 사명이라도 맡은 듯 강인한 눈빛으로 고개를 쓱 끄덕이는 에단을 모습을 본 나는 이내 피식 웃으며 골목을 걸어 나왔다.
……솔직히 오글거린다.
좀 많이 오글거리지만, 아무래도 역시 한창의 청소년에게는 이런 게 먹히는 것 같았다.
“그보다…….”
아무래도 돌아가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이 조금 많아질 것 같았다.
* * *
그날 밤, 나는 월터의 초대를 받아 LA 중심가에 있는 어느 한 레스토랑에 같이 가게 되었다.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네, 맛있네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월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포크로 들고 있던 스테이크 조각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고기를 씹자 환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부드러운 식감이 내 입을 자극하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머슐랭 별 3개는 아무 레스토랑이나 받는 게 아니구나.
마치 고기가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스테이크 조각을 삼켰을 때, 외인으로 입가심하던 월터가 드디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듯 흠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래서 LA는 어떠십니까?”
운을 띄우는 간단한 물음에 나는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름 괜찮더라고요. 음식들이 제 스타일이라서 꽤 좋은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오늘 아침 에단을 만나러 가기 전 룸서비스로 시켜 먹었던 햄버거는 굉장히 맛있었다.
뭐 그 이후에 에단을 만난 뒤 대충 보이는 프랜차이즈점에 가서 먹었던 4조각짜리 피자도 상당히 맛있었고.
의견을 말하자 월터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사소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나는 월터의 질문에 대답하며 음식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접시에 있는 스테이크 조각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을 때, 월터가 내게 불현듯 제안해 왔다.
“괜찮다면 향후 김우현 헌터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만약 할 수 있다면, 저희 쪽에서 지원을 해드리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지원이요?”
“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월터.
뭐, 이런 이야기가 나올 걸 대충 예상하기는 했다.
당연히 지금 말하는 월터의 지원을 해주겠다는 말은 ‘지원’이라는 말을 붙이고 있기는 했지만, 결코 자원봉사가 아니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국제 협회’ 쪽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가령 김우현 헌터가 길드장으로 있는 ‘씨커’ 길드원들에 대한 지원도 가능하고, 다른 걸로는…….”
나는 조곤조곤 이야기 시작하는 월터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지금 월터가 내게 말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바로 내 ‘라인’을 타라는 것이었다.
‘국제 헌터 협회’는 겉으로 보았을 때는 거대한 하나의 협회로 묶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국제 헌터 협회’도 결국 이름만 하나일 뿐, 상위 위원 3명을 기점으로 각각 그 라인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월터는 지금 내게 권유를 하는 것이었다.
‘최대한의 지원을 해줄 테니 나랑 손을 잡자’라고.
뭐 왜 굳이 SSS급 헌터도 아니고 아직은 SS급 헌터인 나를, 상위 위원인 월터가 직접 수고를 들여 영입하려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기는 했다.
월터는 국제 헌터 협회의 최정상에 서 있는 3명의 상위 위원 중 가장 힘이 약했다.
우선 가지고 있는 SSS급 헌터들의 연줄이 다른 상위 위원보다는 떨어졌다.
다른 상위 위원들과는 다르게 맨 아래부터 시작해 위로 올라와 상위 위원이 된 특이한 케이스다 보니 가지고 있는 힘이 차이가 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월터는 아마 내게서 SSS급 헌터가 될 ‘가능성’을 본 것이겠지.
내가 생각을 끝내자 마침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낸 것인지 와인잔 안에 있는 물로 목을 가다듬은 월터는 이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월터의 물음.
나는 생각한 답변을 돌려주었다.
“음, 혹시 조금 생각해 봐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순간 월터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지만, 이내 그는 항상 짓고 있던 미소를 짓고,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대답은 언제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음, 제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 찾아가거나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부담가지지 마시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판단을 유보하자 월터는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대답에 호응했다.
능숙하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정리하는 월터를 보며, 저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잠시 후 디저트로 나온 귤 아이스크림을 보며 월터와 나는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 * *
콰직! 꽝!
머리가 사라져 버린 헌터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더러운 소파를 붉게 물들였다.
나는 시선을 돌려 눈앞의 흑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 어벤져……!”
에단이 특이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지구 반대편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내 생각을 지우고 눈앞에 있는 흑인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에단의 여동생은 어디 있지?”
“네, 그, 켁! 크에에엑!”
꾸드득!
나는 길게 끌지 않고 녀석의 목을 쥐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묻지. ‘에단’의 여동생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에, 에단……? 끄아아아아악!”
목에서 나는 뼈 소리가 점차 기괴해진다.
내 손에 붙잡혀 발버둥 치는 흑인이 보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물었다.
“묻는 말에만 답해라.”
“’에테르…….! 에테르 길드에 오늘 넘겨 줬……!”
“뭐?”
에테르 길드?
“큭…… 켁, 시, 실험 때문에……!”
“실험이라고?”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남자에게 물었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내 손목을 긁으며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이것밖에 모릅니다. 사, 살려주십…… 꺽?”
우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목이 꺾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남자의 시체를 구석으로 던져 버렸다.
볼품없이 바닥에 처박히는 시체를 보며 나는 이내 주변을 돌아봤다.
완전히 개판인 길드 내부.
아니, 애초에 여기는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그냥 쓰레기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더러웠다.
여기까지 올라온 동안 눈에 보인 헌터들 옆에는 여지없이 마약으로 보이는 물담배들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많은 양의 쓰레기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길드장실까지 올라오면 에단의 여동생을 가둔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올라왔건만.
“에테르 길드는 또 어디야?”
에단의 여동생은 오늘 에테르 길드에 넘겨주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완전히 박살이 나 있는 블랙윙 길드를 빠져나와 한 번의 점프로 인적이 드문 빌라의 옥상까지 올라갔다.
나는 곧 각성을 풀고 스마트폰을 통해 ‘에테르’ 길드를 검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에테르 길드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나는 상당히 묘한 글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