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나 혼자 10만 대군 074화
22장 신천길드(2)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로데오 거리.
괴수에 가까운 모양새를 한 괴인을 보며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중에도 몇몇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멀찍이 떨어져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저거 이광천 아니야?”
“이광천?”
“고구려 길드의 길드장, 이광천?”
“이광천 팔 봐봐……! 완전 심각한데?”
“대체 뭐야?”
“저 옆에 있는 건 누구야……?”
“김서윤 아니야?”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이광천은 자신의 팔을 부여잡으며, 눈앞에 멈춰진 괴인의 손과 그 손을 막아낸 김서윤을 바라봤다.
‘씨커’ 길드 소속, S급 헌터 ‘탐식’ 김서윤.
그녀는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피부와 뿔,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눈앞의 괴인과 자신을 바라보는 이광천에게 한 번씩 눈길을 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왜 이렇게 일진이 사납지?”
중얼거리는 김서윤, 그녀는 오늘따라 일진이 더럽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오후, 갑작스럽게 나타난 카르마 길드의 지남영이 기자들을 데리고 와 자신감 넘치는 헛소리를 한 것부터 지금 일어난 상황까지.
하지만 그렇게 한숨을 내쉬는 와중에도 김서윤은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분명 SS급 헌터 아니었나?’
김서윤은 팔이 박살 나 있는 이광천을 본 뒤 괴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팔이 기형적으로 긴, 피부가 검은 괴인들.
안면이 있어야 하는 곳에, 거대한 눈이 자리 잡은 괴인들을 보며 김서윤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SS급 헌터가 당할 정도로 강한 괴인들? 대체 뭐야?’
위험하다고 외치는 이광천의 목소리와 동시에 손톱을 휘두르는 괴인들을 보며 김서윤은 몸을 움직였다.
팡!
공기 터지는 소리가 로데오 거리를 메우고 동시에 몸을 움직였던 괴인의 머리가 뒤로 크게 밀려났다.
팡! 팡! 팡!
괴인이 다음 움직임을 보이기도 전에 김서윤은 연속해서 괴인의 머리에 잽을 날렸다.
절권도를 마스터하고, 최근 ‘시스테마’라는 새로운 격투 기술을 연마하며 무술 선생에게 배웠던 경쾌한 직선타는 그 짧은 사이 괴인의 머리에 13방의 공격을 꽂을 수 있게 해주었고.
‘……어?’
괴인은 김서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 죽어버렸다.
‘뭐야? 왜 이렇게 약해?’
김서윤은 순간 시선을 돌려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이광천을 쳐다봤다.
‘……???’
SS급 헌터 이광천의 팔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거리, 그저 가게에서 틀어놓은 최신 R&B 음악만이 들려올 즈음, 괴인들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서윤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4명의 괴인.
그들은 카메라에 제대로 잡히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김서윤에게 다가가 공격을 시도했지만, 애꿎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팡!
그리고 그 와중에도 경쾌한 타격음이 다시 한번 로데오 거리를 울렸다.
순식간에 괴인들 사이에서 몸을 뺀 김서윤은 곧바로 자리를 잡고, 괴인의 눈알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주먹을 맞고 뒤로 넘어간 괴인의 뒤로 팔을 크게 휘두르려는 괴인의 모습이 보였다.
쾅!
처음으로 울려 퍼진 둔탁한 소리, 하나 그 소리는 김서윤의 몸에서 난 소리가 아닌, 괴인의 몸에서 난 소리였다.
팔을 휘두르기도 전에 괴인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간 김서윤은 자신의 어깨를 이용해 괴인의 명치를 후려쳤고, 곧바로 김서윤의 뒤에 자리 잡은 괴인의 얼굴에 주먹을 먹였다.
팡!
경쾌한 타격음.
괴인의 몸이 경직된 것을 확인한 김서윤은 곧바로 팔꿈치를 들어 품속으로 파고든 괴인의 머리를 후려친 뒤, 곧바로 자세를 잡는 뒤편의 괴인을 타격했다
팡! 팡! 팡! 쾅!
경쾌한 타격 뒤, 날아오는 라이트 훅에 괴인들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괴인이 김서윤의 머리를 후려치려다 되레 당하는 것을 끝으로 5명의 괴인은 김서윤에게 제압당했다.
……정확히 말하면 모두 머리가 터져 죽었다.
“후,”
김서윤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가 터져 죽은 괴인들을 둘러본 뒤, 이광천을 바라봤다.
멍한 표정을 넘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의 이광천의 표정에 김서윤은 생각했다.
‘……SS급 헌터라고 해서 다 똑같은 헌터는 아닌 건가? 아니, 뭐 확실히 SS급 중에서도 차이는 있겠지만, 역시 좀 이상한데.’
가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R&B 음악이 끝나가는 것을 들으며 김서윤은 묘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 * *
“후…….”
노트북을 들여다보느라 뻑뻑해진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뜬 나는 이제 완전히 어두워진 저녁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트북 모니터에는 텍스트본과 엑셀 파일이 보였고,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켜져 있는 '살생부'를 열었다.
길드들의 이름 옆에 'X'표가 가득 쳐진 살생부,
“이걸로 동부 쪽은 끝인가.”
얼마 전, 악마가 손을 대고 있었던 마지막 길드인 '초홍련' 길드를 박살 낸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중국에 남은 길드는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대만과 러시아에 있는 길드들과 서부 쪽에 있는 길드들뿐.
어차피 러시아 쪽과 대만 쪽에 박살 내야 하는 길드가 몇 개 없는 터라 이제 실질적으로 남은 것들은 서부에 있는 길드들이 끝이었고, 그 길드들을 전부 박살 내고 나면.
“‘괴인’과 ‘결사단’이라…….”
나는 멍하니 중얼거리며 최근 길드들을 박살 내며 얻었던 정보들을 생각했다.
독일의 경매장에서 봤던 ‘괴인’들과 이사벨라에게 ‘결사단’의 존재.
중국의 길드들에서 정보를 닥치는 대로 모았으며, 중간에 차오롱에게 목숨을 잃어 그 내용을 전부 듣지는 못했지만, 과학자에게 들었던 단어인 ‘변이체’.
그리고 그 초홍련에서 나왔던 몇 장의 보고서는, 내가 유럽의 경매장에서 보았던 ‘괴인’이 악마와 관련 있다는 확신을 실어 주었다.
뭐, 이미 예상했던 사실이기는 했지만, 그저 예상하는 것과 증거가 있는 것의 차이는 명백하니까.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악마가 손댄 SSS급 헌터들.
사실 이게 제일 골치가 아팠다.
악마가 손을 댄 길드들의 목록은 이미 내 손 안에 들어와 있었고, ‘결사단’에 대한 정보는 몰라도 ‘괴인’에 대한 정보는 서서히 모이고 있었다.
하지만 SSS급 헌터들은 다르다.
당장 차오롱 같은 경우도 ‘초홍단’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그 녀석이 악마의 꾐에 넘어갔는지 몰랐을 테니까.
“인재 영입도 좀 서두를 필요가 있겠어.”
나는 짧게 중얼거렸다.
우선은 영입하려고 생각한 헌터들을 한 번 돌아서 악마가 손을 대지 않았으면 빠르게 영입하고, 만약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가거나 했다면…… 죽여야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열린 파일들을 저장한 뒤 노트북을 닫았고, 이내 켜 있는 TV를 끄기 위해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곧 리모콘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누르려던 나는, 곧이어 나오는 속보에 저도 모르게 들고 있던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시각 20시 45분에 재건 중인 강남 일대에 정체불명의 괴인들이 나타나 건축물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뭐?”
괴인?
앵커는 급하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곧바로 미리 준비된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제 막 기초 공사를 다 끝낸 건물들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있는 괴인들의 모습은 영상이 흔들리고 주변이 어두워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단 한 가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영상에 괴인의 얼굴.
안면이 있어야 할 곳,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눈’이 너무나도 확실히 보였다.
무척이나 짧은 영상이 끝나고 곧바로 앵커가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강남 일대 3㎞에 긴급 대피령이 내려지고 현재 ‘협회’ 소속의 헌터들과 ‘카르마’ 길드의 길드장인 SS급 헌터 ‘지남영’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으로 출동 중입니다. 그 이외에도…….
TV에서 흘러나오는 네임 카드와 앵커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들고 있던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쟤들은 또 왜 여기에서 나타난 거야?”
아무래도 지금 당장 강남에 가야 할 것 같았다.
* * *
“끄아아악!”
지남영은 조금 전까지 자신의 옆에 있던 S급 헌터가 괴인의 손에 무참히 뜯겨 나가는 것을 보며 망설임 없이 능력을 사용했다.
퓩!
헌터의 몸을 찢어 죽였던 괴인이 지남영의 손짓 한 번에 심장에 손가락만 한 구멍이 뚫렸다.
두 쪽으로 분리된 헌터를 아무렇게나 내던진 괴인은 곧바로 지남영에게 달려들기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퓩! 퓩퓩! 퓩!
지남영의 능력에 의해 괴인은 결국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었다.
“헉…… 허억…….”
쓰러진 괴인을 보며 지남영은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펴고 있던 엄지와 검지를 접었다.
지남영의 능력인 ‘에어로 불릿’은 S급 괴수나 던전의 보스 몬스터도 어렵지 않게 뚫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능력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이런…… 씨발!”
지남영은 떨리는 손을 감춘 채, 시선을 돌려 시체들을 바라봤다.
바로 방금까지만 해도 지남영의 브리핑을 받았던 길드 내의 헌터들.
그들은 모두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눕히고 있었다.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지남영은 완전히 부서져 버린 자신의 무기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저녁을 기점으로 갑자기 업계에 뿌려진 뉴스.
바로 고구려 길드의 ‘이광천’이 알 수 없는 ‘괴인’에게 암살당할 뻔했다는 것이었다.
이광천 본인은 방심해서 괴인들에게 당했다고 인터뷰 중 말했지만, 결국 이광천은 로데오 거리를 지나고 있던 S급 헌터 ‘김서윤’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부지했다.
그리고 그 뉴스가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뉴스가 떴다.
바로 재건축 중인 강남 일대에 나타난 ‘괴인’들이 재건축 중인 강남을 박살 내고 있다는 소식.
거기서 지남영은 오늘 있었던 일을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SS급 이광천을 암살하려고 했던 괴인들.
S급 헌터인 ‘김서윤’이 처리하기는 했지만, 고구려 길드장이자 SS급 헌터인 이광천이 당했다는 사실 덕분에 무척이나 크게 부풀려진 사건을 보고 지남영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미지 실추를 메우고, 오히려 카르마 길드의 입지를 잡아줄 ‘첫 스타트’를 끊을 기회.
그렇기에 그들은 밤중에 길드원들을 소집해 괴인들이 있는 강남에 진입했고, 고작 괴인 한 마리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지남영은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괴인을 보며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고작 괴인 한 마리를 죽이는 데 능력을 거의 사용하고 무기까지 부서진 지남영으로선 괴인에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시발……! 이게 말이 돼?’
지남영은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는 괴인을 보며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이게 S급 헌터인 김서윤이 처리했던 괴인이라고?’
괴인이 한걸음 걸을 때마다, 지남영의 마음 안쪽에서는 공포심이 부풀었다.
“오…… 오지 마……!”
어떻게든 쥐어 짜내듯 입을 열고, 이미 능력을 사용할 수 없음에도 검지와 엄지를 총 모양으로 만든 지남영은 이를 악물었지만.
아까와 같이, 반응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눈앞에 나타난 괴인을 보며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