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나 혼자 10만 대군 072화
21장 결사단(3)
SSS급 헌터 학살자 예만, 그는 인도 동부의 ‘수랏’에서 일어난 하이브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단 혼자서.
수랏에 도착한 그는 신전에 터를 잡은 거대한 하이브 알과 그 주변에서 득실거리는 괴수와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수백을 넘어 수천, 수천을 넘어서 수만에 다다르는 괴수와 몬스터들 앞에서, 그는 무척이나 느긋한 미소를 띄우고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손도끼를 양손에 하나씩 쥔 채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예만의 신영이 앞으로 튀어나가고.
콰직! 꽈직 꾸드득!
손도끼가 한번 움직일 때마다 한 마리의 괴수가 명을 달리한다.
괴수들은 뒤늦게 예만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를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들었지만, 괴수와 몬스터들은 예만의 몸에 단 하나의 상처도 내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가 생기고 있기는 했다.
다리에.
몸에.
팔에.
머리에.
괴수의 뼛조각과 몬스터의 눈먼 투사체, 그리고 자잘한 무기에 맞아 그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만의 몸에 났던 상처는 그가 손도끼를 휘둘러 괴수와 몬스터를 죽일 때마다 놀라운 속도로 아물어가고, 상처가 회복됨에 따라 예만의 도끼질은 더더욱 빨라졌다.
처음에는 손도끼를 휘두르는 움직임이 보일 정도로 묵직한 일격을 괴수에게 흩뿌렸다면, 지금의 예만은 앞으로 달려 나가며 괴수와 몬스터를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죽여 버릴 정도로 빠른 속도를 내고 있었다.
바로 그의 능력인 ‘학살자’ 덕분에.
그의 능력은 다른 헌터들의 능력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괴수를 죽일 때마다 계속해서 강해지는 그의 능력, 어쩌면 그것은 ‘능력’이라기보다는 ‘특성’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예만의 손도끼가 눈앞에 있는 괴수를 찍어 내리는 것을 끝으로, 그의 몸이 일순간 숙어지고는 높게 뛰어올랐다.
SSS급 헌터라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신체가 그의 몸을 한순간에 상공으로 띄우고.
곧 그는 두 개의 손도끼를 머리끝으로 모아 ‘수랏’의 신전에 터를 잡은 하이브의 알을 내리쳤다.
꽈아아아앙!!!!
마치 번개가 내리치는 것 같은 소리가 수랏 일대에 울려 펴지고, 눈앞의 거대한 알이 터져 나가는 것을 보며 예만이 웃음을 지었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늦어버렸네. 좀만 더 빨리 올걸.”
“……?”
뒤편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예만은 몸을 돌렸고, 그곳에 서 있는 한 명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으로 죽어나가는 고깃덩이를 보고 있는, 머리를 샤기로 올린 남자.
그의 양팔에는 검은 붕대가 감겨 있었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눈은 이내 죽어 있는 고깃덩이를 넘어 두 개의 손도끼를 들고 있는 예만에게로 향했다.
“넌 뭐야?”
예만의 물음에 남자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 글쎄? 뭐라고 말해줄까? 내가 좀 자칭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여는 남자를 보며 예만은 피식 웃고 손도끼를 들어 올렸다.
“지랄하고 있네, 그냥 편하게 말하지그래? 뒤지고 싶다고.”
“뭔 소리야? 나는 뒤지고 싶다고 말한 적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SSS급 헌터가 당장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사람을 죽이려고 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아?”
남자의 소리에 예만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고는.
“걱정 마라,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 여기는 적어도 내 모습을 찍을 수 있는 게 없거든……!”
예만은 손도끼를 내리쳤다.
쾅!
“그리고, 나는 참을성이 없어!”
예만의 찢어질 듯한 미소와 붉게 충혈된 두 눈이 먼지가 잔뜩 일어난 정면을 바라봤다.
* * *
“마, 말도 안 되는……!"
"뭐가 말이 안 돼?"
쾅! 콰드득
내 대답과 함께 차오롱의 몸이 내 주먹에 맞아 저만치 튕겨 나갔다.
이윽고 부서진 지하실을 구른 차오롱은 이미 부러져 버린 자신의 창을 바로 잡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이미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떨리는 다리로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차오롱을 바라봤다.
말끔했던 말총머리는 이미 풀어 헤쳐져 산발이 되어 있었고, 장포는 본인의 피와 콘크리트 가루로 범벅이 되어 완전히 더러워져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뭐가 말이 안 돼? 네가 나한테 지는 게?”
“큭!”
변조기를 통해 흘러간 기분 나쁜 음성이 지하실 안에 퍼져나간다.
인상을 찌푸리는 차오롱.
확실히 차오롱은 강했다.
악마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차오롱이 처음에 내게 보여주었던 힘은 확실히 규격 외라고 할만했다.
내 그림자를 한 번에 뚫어내는 찌르기, 그럼에도 차오롱은 나를 뛰어넘지 못했다.
아직 ‘검은 돌’을 전부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확실히 회귀 전의 이 시점보다는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으니까.
회귀 전, 악마와 뒹굴면서 숙련된 전투 센스.
회귀 전의 정보를 통해 얻은 아이템들.
그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회귀 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를 현저하게 벌려주고 있었고, 곧 그것이 눈앞에 있는 ‘차오롱’의 재능을 뛰어넘게 해주었다.
“쯧.”
핏발 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차오롱의 모습에 나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오만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그 눈빛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쉽네.
그를 영입했다면 분명 ‘좋은 전력’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악마의 꾐에 넘어간 녀석을 다시 이쪽으로 데려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데려오고 싶지도 않고.
게다가 그의 성격을 고려해 봤을 때, 아마 그에게서는 별 정보를 얻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내가 선택지를 하…….”
“닥쳐라.”
신경질적으로 부러진 창대를 잡는 차오롱.
혹시나 해서 대화의 여지를 만들어 보려 했지만, 역시였다.
어쩔 수 없나.
나를 바라보고 있는 차오롱을 보며 나는 가감 없이 몸을 움직여 그가 반항하기도 전에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이미 내게 몇 번이고 얻어맞은 덕분인지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쉽게 목을 내어주는 차오롱,
내가 팔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차오롱의 몸이 축 처져 들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차오롱의 몸을 벽에 내리찍었다.
콰직-
그것으로 끝이었다.
차오롱은 머리가 벽에 꽂히자마자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온몸을 축 늘어뜨렸다.
“아주 하나부터 열까지 판을 안 벌인 데가 없구만?”
나는 차오롱이 완전히 죽어버린 것을 확인한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럽에서 만들어진 알 수 없는 단체 결사단부터 시작해서,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차오롱까지.
아무래도 인재 영입을 조금 더 서둘러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인재도 ‘판별’해야 할 테니까.
* * *
“넌…… 대체……!”
핏발 선 두 눈,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눈앞의 남자를 보며 입을 여는 예만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오른팔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아예 보이지 않았고, 그가 들고 있던 손도끼는 이미 완전히 박살 나 무기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야, 역시 괜히 SSS급이 아니구만? 솔직히 처음 상대해 보는 건데 좀 힘들었어.”
그리고 그런 예만의 앞에서 씩 웃고 있는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남자의 ‘힘들었다’라는 말과는 달리 남자의 모습은 처음 예만의 앞에 나타났을 때와 별 차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굳이 달라진 점을 꼽자면 남자의 손에 감겨 있던 검은 붕대가 풀려 있는 것 정도일까.
“너는 대체…… 누구냐!”
예만은 피 가래가 끓어 오르는 목소리로 남자에게 말했지만, 그는 예만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글쎄, 뭐라고 말해줄까.”
아까와 똑같은 남자의 대답.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래, 너한테는 이렇게 말해주면 되겠네.”
남자는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예만의 머리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순간 예만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남자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하나 이미 온몸에 죽음에 가까울 정도의 상처를 입은 예만은 머리 위에 올려진 남자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뭐, 나를 알고 있는 녀석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말이야.”
이윽고 남자의 손에서 검붉은 빛의 오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예만의 몸이 바뀌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를 알고 있는 녀석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더라고.”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상태에서도 돋보였던 그의 근육은, 남자의 손에서 검붉은빛이 뿜어짐과 동시에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했다.
점점 홀쭉하게 변해가는 예만을 보며 남자가 중얼거렸다.
“‘포식자’라고 말이야.”
* * *
김서윤은 최근 기분이 좋았다.
‘무엇 때문에?’라고 묻는다면, 그냥 최근에 있었던 일 중에서 김서윤의 기분 그래프를 하강하게 만들 만한 일이 없었다.
김우현이 독일까지 날아가 김서윤을 위해 사다 준 S급 마정석은 요즘 들어 다시 느껴지던 공허함을 한계치까지 총족시켜 주었고, S급 마정석을 먹어치우자, 안 그래도 쉬웠던 던전 공략은 더더욱 쉬워졌다.
‘마정석 하나를 먹는다고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해진 능력.
게다가 덤으로 최근 팬카페에 올라오는 글인 ‘애틋하게 뜨겁게’도 그녀의 기분을 유지시켜 주는 것 중 하나였다.
그 이외에도, 이전과는 달리 5일밖에 출석하지 않지만, 학교에 갈 때마다 쏟아지는 경외 어린 시선과 능력의 특성 덕분에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된 김서윤의 기분은 솔직히 말해 최고조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래, 김서윤의 눈앞에 나타난 녀석만 없었다면.
“누구라고?”
“다시 한번 인사드리죠, 저는 카르마의 길드장이자 이번에 SS급 헌터가 된 ‘지남영’이라고 합니다.”
지남영이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져 나온다.
눈이 번쩍거리는 느낌에 김서윤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지남영은 이내 고개를 들고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 카르마 길드는 정식으로 S급 헌터 ‘탐식’ 김서윤의 영입을 원합니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터지는 카메라 세례.
김서윤은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오늘도 무난하게 던전을 클리어하고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던전을 빠져 나왔더니, 몰려 있는 기자들이 터뜨리는 플래시 세례도 짜증 났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더 짜증 났다.
무척이나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이제는 무슨 종이까지 꺼내서 읽고 있는 남자를, 김서윤은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200평에 달하는 전용 자택과 50평에 달하는 개인 사무실을 지급하겠습니다.”
와……!
지남영의 발언에 사방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며 다시 한번 플래시 세례가 터진다.
“지금 ‘시커’ 길드에서는 등급에 걸맞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저희 길드에 오신다ㅁ…….”
“꺼져”
지남영의 말을 끊고 김서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순간, 터지던 플래시 세례가 멈추고 적막해진 던전 앞에서, 지남영은 마치 무엇인가를 잘못 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짜증 나니까 꺼지라고, 뒤지기 싫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