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나 혼자 10만 대군 071화
21장 결사단(2)
세계가 악마의 손에 멸망하기 직전, 거의 망해 버린 중국에 홀로 남아 악마를 막아내려 한 헌터가 있었다.
SSS급 헌터 ‘신창’ 차오롱, 그것이 바로 헌터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SSS급 헌터라는 이명에 비해 그의 능력은 그렇게 남다를 것이 없었는데, 그의 능력은 ‘신체 제어’라는,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활용도가 높은 능력.
하지만 그 능력은 다른 SSS급 헌터들에 비해서 좋은 능력이라고는 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미래에 SSS급 헌터의 반열에 든 녀석 중에서도 차오롱의 능력은 무척이나 마이너한 능력 중 하나였으니까.
그럼에도 차오롱이 SSS급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재능이 일반적인 헌터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신이 내린 재능,
회귀 전 그가 처음으로 SSS급 헌터가 되었을 때, 한 매거진에서 ‘차오롱의 능력은 ‘신체 제어’가 아니라 ‘재능’이라는 패시브 능력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재능은 뛰어났다.
“이 녀석이 과거에 분명…….”
홍콩의 소형 길드 소속이었던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차오롱에 대한 정보를 작성한 뒤, 한숨을 내쉬며 기지개를 켰다.
현재 시각 오후 7시.
완전히 어두워져 버린 사무실에서 나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많았던 악마의 트리거들도, 지난 1달이 동안 주작홍과 관련된 길드들을 박살 낸 결과, 이제 중국 쪽에서 처리해야 할 길드는 단 한 개밖에 남지 않았다.
뭐, 다른 곳에는 아직 처리할 길드가 많이 남아 있었지만, 주작홍 길드가 활동했던 동아시아보다는 그 숫자가 적었다.
저도 모르게 허리를 편 뒤, 등을 의자에 붙이며 나는 퇴근하기 전 김윤원에게 받았던 종이를 들어 올렸다.
“국제 협회 초대장이라…….”
내용은, 한국에 큰 피해를 야기할 수도 있었던 잇따른 사건들을, 협회와 협력하여 잘 막아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와 표창을 수여하고 싶다는 명목이었다.
뭐, 중국 길드를 털던 중, ‘실험’과 관련된 ‘길드’가 LA 쪽에도 있는 것 같아 한 번 가려고는 했다.
“게다가 LA에는…….”
영입 대상인 헌터도 한 명 있었다.
“필라스 레이나.”
지금이야 아직 무능력자거나 이제야 시스템의 가호를 받아 헌터가 됐겠지만, 그녀는 회귀 전, 나와 함께 최후의 최후까지 남아 악마를 막았던 SSS급 헌터 중 한 명이었다.
게다가 나와는 극상성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로는 능력의 시너지는 잘 맞는 편이었지.
그런 생각을 하며 초대장을 한 번 읽어내린 나는, 이내 초대장을 내려놓았다.
이번에 중국을 끝내고 러시아까지 싹 정리하고 나면 LA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서 덤으로 레이나도 영입하고, 주작홍과 관련된 길드도 박살 내면 되겠지.
그 뒤에는 이사벨라의 부탁을 명목으로 유럽에 건너가 유럽에 있는 관련 길드들도 박살 내면 우선 당장 ‘보고서’로 확인한 악마의 트리거는 전부 깨부술 수 있었다.
하나 그 이외에도 아직 남은 것은 있었다.
주작홍 길드에서 언급한 ‘실험’이란 게 무엇인지, 아직도 그 실체를 제대로 잡지 못했고, 유럽에 나타났던 ‘괴인’도 마찬가지였다.
……뭐, 사실 요즘에는 이 ‘실험’이라는 게 경매장에서 본 그 ‘괴인’과 연관되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남은 길드를 파괴하면서 차차 알아내면 될 일이었다.
게다가.
“오는 게 뭐든 전부 박살 내면 그만이지.”
나는 피식 웃으며, 텍스트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처음 회귀했을 때, 시간이 지나 회귀 전의 기억을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적어 놨던 글들.
“뭐…….”
당장 한국에서는 향후 1년간 일어날 일들이 없었다.
원래라면 고구려 길드와 신천 길드의 영역 싸움이 심해져 나중에는 뒤에서 소속 헌터들끼리 죽이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겠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좀 묘한 건…….”
나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스크롤을 내려 요즘 떠오르는 뉴스를 바라봤다.
[중형 길드에서 대형 길드로 진입하는 카르마 길드!]
[카르마 길드장 ‘지남영’ S급 헌터에서 최근 벽을 뚫고 SS급 헌터로!]
[지남영 ‘고구려, 신천 길드는 어차피 이길 수 있었다.’ 오만한 발언!]
“얘는 또 뭐야?”
SS급 헌터 지남영.
고구려 길드와 신천 길드가 박살 나며 중형 길드와 소형 길드가 너나 할 것 없이 위로 달려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나온 그 녀석은, 회귀 전에는 보지 못했던 녀석이었다.
“…….”
나비 효과인가?
‘나비의 사소한 날갯짓이 나중에는 허리케인을 만든다’라는 이론에 따라 회귀 전에는 전혀 듣도 보도 못했던 헌터가 한국에 나타난 것일까?
뭐, SSS급은 아니지만, 솔직히 당장 SS급만 돼도 지금 활동하는 헌터 중에서는 상위 0.001% 속하는 것이니 대단하다.
이것도 설마 악마가 준비한 것 중 하나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조만간 찾아가게 될지도 모르지.
‘그림자 왕’으로서가 아니라 ‘어벤져’로서.
회귀 전에는 본 적이 없었던 녀석이 갑작스레 SS급 헌터가 되었다며 나타난 것은 어색했지만, 오늘은 우선 생각해 두었던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가볼까.”
오늘, 악마가 중국에 심어놓았던 마지막 트리거를 박살 내려면 지금쯤 출발해야 했다.
나는 생각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끄아악!”
중국 옌타이시에 위치한 중형 길드 ‘초홍단’의 지하,
내게 필사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헌터들의 머리통을 깨버린 뒤, 눈에 보이는 풍경을 보며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엇을 실험하려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널브러진 헌터들을 제외하고서라도 초홍단 길드의 지하는 기분 나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사람의 장기로 추정되는 것들을 형형색색의 용액이 든 유리관에 넣어놓은 실험실의 풍경.
유리관이 통상적인 숫자라면 괜찮았겠지만, 이 넓은 지하실 안에는 그런 유리관이 수백 개는 넘게 존재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쓸 정도로 불쾌한 분위기를 내뿜는 지하실을 한번 둘러본 나는 이내 눈앞에서 덜덜 떨고 있는 과학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무슨 실험을 했지?”
“으, 으으, 저는…… 잘…….”
변조기를 타고 흐르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
그에 따라 가운을 입은 과학자의 몸이 덜덜 떨렸지만, 나는 과학자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움켜쥐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여기서 무슨 실험을 했지?”
내 물음에 몇 번이고 입을 더듬거리던 과학자의 입이 열렸다.
“벼…… 변이체 실험…….”
“뭐? 변이체?”
“그, 그렇…… 컥!?”
과학자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쾅! 쾅! 쾅!
그리고 나도 제대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
순식간에 풍경이 바뀐다.
오른손에 쥐고 있었던 과학자의 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뒤늦게 찌르르 울리는 듯한 충격이 온몸을 타고 돌기 시작한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장소는 분명 조금 전까지 있었던 초홍단의 지하실이 맞았지만, 내가 날아온 루트로 추정되는 곳에 있던 유리관들은 전부 깨져 버렸고, 내 몸통을 두르고 있던 그림자는 무척이나 깔끔하게 소멸해 있었다.
시스템 창을 열어 그림자의 숫자를 확인하자, 각성으로 채워져 있던 그림자가 한 번에 500 가까이 빠져나갔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재빠르게 박혀 있던 벽에서 일어나 자세를 바로잡았다.
방금 일격은 누구지?
갑작스레 차오른 긴장감, 나는 부서진 유리를 밟으며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마치 옛날에나 입을 것 같은 장포를 입고, 꽁지머리를 튼 남자.
하지만 그런 옷과는 다르게, 그의 오른쪽 눈썹 끝에는 3개의 피어싱이 되어 있었고, 눈 아래에는 진한 회로 문신이 있었다.
언밸런스한 느낌의 남자.
“놀랍군. S급 괴수도 맞으면 관통상을 피하지 못하는 일격을 방어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맞았는데, 멀쩡하게 버텨내다니.”
남자가 조금이지만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나는 눈앞에 보이는 남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차오롱?”
“……?”
내 말에 일순 남자는 눈썹을 찡그리며, 나를 바라봤다.
마치 탐색을 하는듯한 눈빛. 하지만 남자는 곧 자신의 창을 돌려 잡고는 입을 열었다.
“네 녀석, 어떻게 내 이름을 알지?”
“미친…….”
차오롱의 대답에 나는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사고가 가속하고 순식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급썰물을 타고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왜 차오롱이 여기에?
악마의 짓인가?
애초에 조금 전 보여준 강함은 대체 뭐지?
수많은 사고가 머릿속에 존재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어떻게 나를 알고 있지?”
차오롱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차오롱은 SSS급 헌터다. 능력은 SSS급 헌터치고 그럭저럭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재능까지 그럭저럭인 것은 아니었다.
무술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천재라고 부를 수 있을 실력을 지닌 것이 바로 차오롱이었다.
하지만 방금 보여준 강함은 ‘이 시간대’의 차오롱이 가지고 있을 만한 강함이 아니었다.
“쯧, 말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차오롱의 창대가 유연하게 흔들리며 자세를 잡는다.
게다가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공격으로 내 심장 부위를 타격한 것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저 강함에는 신체 능력뿐만이 아니라 ‘능력’의 발전도 포함된 것 같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아무래도 ‘악마’는 모종의 거래를 통해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차오롱을 꼬셔서 그를 영입하고, 지금의 수준까지 만들어놓은 듯했다.
그 이외에는 말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홍콩 지역에 위치한 소형 길드에서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썩어가다가, 어느 시점에 능력을 개화해 2년 만에 SSS급 헌터로 올라서는 그를 영입하는 것은 말 그대로 ‘미래’를 아는 사람만이 가능했다.
“말할 생각이 없다면 됐다. ‘포식자’도 엔간하면 너를 살려서 데려오라 했으니, 적당히 제압한 뒤 묻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창격이 다시 한번 나를 공격했다.
쾅! 콰가가가각!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키이이이이잉!!
여러 번이 아니라 수십 번.
창을 찔러오는 횟수를 세지도 못할 만큼 무수한 창격이 내 몸을 찌르고, 내 몸에 있는 그림자들이 소멸해 나간다.
조금 전 켜놓은 시스템 창을 통해 그림자들이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호오, 역시 대단하군. 그 정도의 창격을 맞고도 아직 형태를 유지하다니.”
창격이 끝나고, 나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다시 자세를 잡는 차오롱.
오연하게 입을 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큭.”
“……? 뭐가 웃기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는 차오롱.
확실히 지금의 차오롱은 강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차오롱은 회귀 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함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큭큭거리는 웃음을 멈추지 않자, 다시 한번 짓쳐들어오며 창을 찔러오는 차오롱.
하지만.
“……!?”
차오롱의 창은 이미 땅속에서 흘러나온 그림자 손에 의해 잡혀 있었다.
차오롱의 창이 그림자에게 속박당하고, 차오롱이 몸을 뺄 시간도 없이 그림자들이 올라와 그의 몸을 속박한다.
순식간에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된 차오롱.
방금까지의 오연한 표정은 어디에 가져다 버렸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차오롱을 보며 나는 씩 웃었다.
차오롱이 강해졌다고 해서 나보다 강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내 주먹이 차오롱의 안면을 때려 부술 듯 내리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