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나 혼자 10만 대군 065화
19장 트리거 분쇄(2)
와장창! 쨍!
길드 건물의 외벽에 발이 닿자마자 주변의 유리창이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깨지고, 내 몸에서 그림자들이 흘러나와 외벽에 붙어 있는 내 몸의 중심을 맞춘다.
그와 동시에 나는 발을 움직여 건물 외벽을 타기 시작했다.
내 발이 건물에 닿을 때마다 유리창이 깨져 나가고, 등 뒤에 솟아 나온 그림자 손들이 벽과 유리를 부수며 내 균형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었다.
창! 창! 창! 창!
건물 외벽에 크레이터에 가까운 흔적을 남기며 순식간에 건물의 최상층에 도달한 나는 그대로 유리를 뚫고 주작홍의 길드 건물에 침투했다.
쿵!
중후하게 울리는 소리에 바닥의 벽에 금이 가고, 나는 곧바로 그림자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최상층의 방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만들어진 그림자들이 내 의지에 따라 쓸 만한 ‘정보’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흩어지기 시작하고, 나도 마찬가지로 정보를 찾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마가 관여했다고 생각되는 정보라고 생각할 만한 건 있는 대로 쓸어 담아야 했다.
회귀 전에도 주작홍 길드와 선을 대고 있던 길드를 몇 개정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고작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 녀석이 준비해 놓은 것들을 모조리 부숴 버리려면 정보가 필요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정보가,
슬쩍 시선을 돌려 까마득할 정도의 아래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내 영역에서 빠져나온 그림자들이 주변이 있던 괴수와 몬스터들을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밖은 아직도 붉은 화마와 잿빛 연기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괴수들과 몬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을 사냥하고 있는 그림자까지.
그림자들과 마찬가지로 층을 내려가며 혹시라도 정보가 될만한 것을 찾기 위해 몸을 움직이던 도중, 한 그림자가 내게 종이 다발을 들고 왔다.
“…….”
그림자에게서 한 뭉치 정도 되는 종이 다발을 받아 든 나는 이내 곧 그것이 주작홍 길드의 명령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원하는 정보는 쓰여 있지 않았지만, 나는 아쉬운 대로 그림자가 가져온 명령서를 미리 가져온 가방에 넣어놓고, 계속해서 건물 내부를 탐색해 나갔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원하던 정보가 담겨 있을 만한 물건을 찾았다.
“…….”
규륜이 사용한 사무실에서 발견한 보고서, 하나 유감스럽게도 보고서는 내가 원하는 종류의 것들은 쓰여 있지 않았다.
발견한 보고서는 극히 사적인, 주작홍 길드 내부에 관한 보고서인 것 같았다.
보고서를 조금 읽어보니 아무래도 이 보고서는 규륜과 척을 지고 있는 반대세력에 관한 보고서인 것 같았다.
왠지 모를 아쉬운 맘에 보고서에서 눈을 돌리려 했던 나는 곧 보고서 끄트머리에 있는 글자를 바라봤다.
‘지하 10층을 사무실 하나로 개조할 것.’
지하……?
그 짧은 문장 하나로, 나는 왠지 모르게 단서를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단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하로 내려가야 하는데, 지금 주작홍 길드의 1층에는 ‘알’이 만들어져 있어 지하로 내려가려면 알을 파괴해야 했다.
하지만 알을 파괴한 뒤에는 필연적으로 이 건물이 붕괴할 테고…….
그렇게 되면 지금 당장 지하에 있는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머릿속에 떠오른 심플한 생각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창밖으로 뛰어나갔다.
허공에 몸을 던짐과 동시에 유리가 깨지고 내 몸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할 정도의 높이에서 뛰어내리며 나는 발에 검은 그림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순간 발에 검은 아지랑이가 달라붙고, 곧 그림자가 내 다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내 다리가 마치 팽창하듯 부풀어 오르고, 검은 아지랑이가 허공을 수놓는다.
길이 없으면…….
마침내 내 다리가 지상에 닿고.
“만들면 되는 거지!”
곧 깨질 듯한 소음이 지상에 울려 퍼졌다.
* * *
-오늘 오후 2시 30분경, 한국의 SS급 헌터 김우현이 베이징에 일어난 하이브 사태를 진압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하이브 사태를 진압하는 와중에도 길드 건물에 남은 사람들이 있을까 구조 활동을 벌이며…….
밤 9시가 약간 넘은 시각, 눈앞에 방송되고 있는 뉴스를 본 나는 이내 시선을 돌려 켜져 있는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SS급 헌터 김우현! 그의 행보는 어디까지인가?]
[그야말로 ‘영웅’. 중국 시민들 구하기 위해 구조 활동 벌이다!’]
[그는 정말로 SS급인가? 아니다, 최소 SSS급일 것]
[영웅의 희생정신, 다른 헌터들도 본받을 필요 있다]
[국제 협회, 계속해서 일어나는 하이브 사태 우려, 대책 마련 강구 중]
[‘주작홍’의 길드장 ‘장영’은 어디에 있나? SSS급 헌터의 실종!!]
눈앞에 떠 있는 수많은 인터넷 기사들은 나에 대한 찬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유튜X에 최신 영상에는 멀리서 찍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분석하는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내 얼마 없는 일대기를 나열하며 그림자 왕이 지금까지 해왔던 업적들을 나열하는 영상들도 있었다.
뭐, 애초에 내가 주작홍 길드 내부에 들어간 이유는 혹시라도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들어갔던 것뿐이지만 언론은 그런 내 행동을 시민을 구하기 위한 행동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보다.
나는 책상 옆에 놔두었던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아까 전, 결국 나는 주작홍 길드 건물의 지하에서 원하던 정보가 담긴 다량의 보고서를 찾을 수 있었다.
‘주작홍’길드가 지금까지 저질러 왔던 더러운 일들이 한데 모여 있는 보고서.
지금 당장 이 보고서가 세상에 알려지고 이 보고서에 있는 일이 단 하나라도 사실 검증이 되는 순간 주작홍 길드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뭐, 길드장이 사라지고 길드 건물이 박살 난 지금 시점에서는 그냥 그 정도가 아니라 그냥 길드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은 없을 테지만.
눈앞에 빽빽하게 쓰여 있는 보고서를 보고 있던 도중, 나는 문득 눈앞에 새롭게 떠오르는 뉴스를 쳐다보았다.
[주작홍 길드마스터이자 SSS급 헌터인 ‘장영’ 그는 대체 어디에?]
라는 사이드 문구가 아나운서의 밑에 또 있었고, 그에 따라 아나운서가 장영의 실종 소식을 다시 한번 구두로 알렸다.
확실히 그 부분도 의문점이기는 했다.
아마 장영이 실종된 것도 악마가 한 저지른 짓 중 하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무리 악마라도 규륜의 몸을 사용해서는 절대로 SSS급 헌터인 장영을 이길 수 없었다.
아무리 그 어떤 아이템이나 위대한 아티팩트를 사용한다고 해서 SS급과 SSS급의 격차를 좁히기는 힘들 테니까.
심지어 그게 내가 상대했던 ‘규륜’의 몸이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
뭐 결국에는 악마가 모종의 수를 써서 장영을 어떻게 한 것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 장영의 실종은 오히려 나한테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아직 나라도 SSS급인 장영을 이기기는 힘드니까.
뭐 이다음의 ‘검은 돌’을 흡수한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이내 시선을 돌려 다시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한 장씩 넘기며 주작홍 길드가 해왔던 더러운 일들을 눈에 담는다.
“참……가지가지 했네.”
규륜이 지시해 행한 것으로 보이는 이 보고서에는 보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일부터 글만 읽어도 위험하겠다 싶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횡령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반대세력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상대 동맹 길드를 터뜨려 버리거나 아니면 가족을 인질로 삼아 반대 세력을 처리한다거나 하는 더러운 내용이 이 보고서 안에는 전부 들어 있었다.
거기에 덤으로 무슨 실험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험’에 관한 내용도 가끔가다 보고서에 보였다.
뭐, 대충이 ‘실험’에 관해서는 감이 오는 내용이 있었다.
“하이브 사태와 관련된 실험인가.”
뭐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악마 녀석이 하이브 사태를 모종의 방법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터뜨릴 방법을 찾아냈다.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충 보고서를 읽으며 어림짐작으로 스토리를 맞춘 지 얼마나 되었을까.
스프링 공책보다 두꺼운 보고서에는 더러운 부패와 모략, 그리고 비인륜적인 실험들에 관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솔직히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규륜이, 아니, 악마가 이 수많은 일을 고작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이 일을 벌여 놓았다는 것이었다.
“쯧.”
나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찬 뒤, 노트북을 켜 보고서 안에 있는 내용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작성하는 건 보고서 중간중간에 나와 있는, 주작홍 길드와 관련되어 있는 ‘길드’들의 목록.
양이 양인지라 2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보고서에 나온 길드들을 죄다 작성하고 나니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더러운 일로 주작홍과 관련된 길드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많았다.
어림잡아서 최소 300개 길드 이상.
그중에서도 이름을 들어봤던 길드는 어림잡아 50개가 넘었고, 각 국가의 헌터 업계에서 거의 최고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길드도 8개 이상 있었다.
판을 벌여도 엄청나게 많이 벌려 놨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전부 처리 못 할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니었다.
악마가 이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기 위한 트리거를 이렇게 잔뜩 준비해 놨다면, 그 트리거를 몇 개가 되었든 전부 부숴 버리면 될 일이었다.
나는 엑셀 파일을 저장하기 위해 단축키를 눌렀고, 곧 파일을 저장하기 위해 이름을 알려달라는 알림창을 보며 이 엑셀 파일의 이름을 고민하다 이내 자판을 두드려 파일의 이름을 적었다.
[살생부(殺生簿)]
나는 파일을 저장했다.
* * *
대만 타이웨이에 위치한 중형 길드 ‘양첸’은 중형 길드였지만 길드장의 재력으로 인해 길드의 크기와 지위에 맞지 않게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길드였다.
다만 그 권력이 되는 주요 자금의 대부분이 바로 규륜이 행하는 비인륜적인 실험을 몰래 도와주며 그 뒤에서 받아 챙긴 검은 돈이라는 게 그들의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리고 더 문제가 되는 건 양첸 길드 건물의 지하에서는 아직도 규륜이 지시한 어떤 실험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 잠긴 한 고층 건물에서, 나는 양첸의 길드 건물을 바라보았다.
새벽 시간이라 건물 안의 불은 전부 꺼져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그건 길드 건물 외부의 모습일 뿐, 실제로 양첸 길드의 지하는 이 시간까지도 규륜이 지시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각성.”
시동어와 함께 검은색의 아지랑이가 내 몸을 타고 오른다.
이제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각성 상태.
하지만 나는 곧바로 각성 상태를 활용해 검은 그림자로 내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검은 그림자가 내 몸을 타고 올라 내 몸을 감싸 안고 그저 몸을 가리기에 급급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그림자는 확실한 형태를 가지고 내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인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나는 어둠 속 가로등 빛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봤다.
마치 괴수의 팔다리처럼 두꺼운 팔다리, 검은색의 아지랑이로 뒤덮은 몸통 얼굴 부분은 있어야 하는 눈코입 대신 검은색의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직 ‘검은 돌’을 전부 흡수하지 못해 스킬의 자체적인 페널티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을 가린 그림자들이 불안정하게 떨리는 중이었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내 정체를 숨기기에는 충분했다.
쾅!
나는 곧바로 움직여 길드 양첸 길드의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