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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64화 (64/202)

# 64

나 혼자 10만 대군 064화

19장 트리거 분쇄(1)

“컥! 켁!”

핏발 선 진룡의 눈빛이 나를 향한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부릅뜨며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던 진룡은 이내 몇 피 끓는 소리를 내며 두 눈을 감았다.

“쯧.”

SSS급 헌터에 가장 가깝다고 추앙받던 ‘진룡’.

그는 마침내 내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진룡의 몸을 속박하고 있던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지고 그에 따라 힘을 잃은 진룡의 몸이 차가운 바닥에 내쳐진다.

나는 말 없이 진룡을 바라보다 그의 입천장에 박혀 있는 검을 빼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번 찔러보라며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던 진룡의 모습을 생각하며 나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진룡은 말도 안 될 정도의 강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뿐이지만 S급 괴수의 가죽을 잘라 버릴 정도로 예리하다는 이 검도 그저 진룡의 살을 베어내는 정도밖에 그 성능을 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피부 안쪽은 다르지.”

아무리 강화라는 능력이 사기라고 하더라도 몸 전체를 골고루 강화해 주는 것은 아니었고, 결국 진룡은 자신의 약점인 입안에 구멍이 뚫려 죽음을 맞이했다.

“후…….”

머리가 뚫린 진룡의 시체와 목이 잘려 싸늘한 주검이 되어가고 있는 규륜의 시체를 한 번씩 쳐다본다.

답답하다.

그 단어가 저도 모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나는 이곳에 와서 얻은 정보를 멍하니 나열했다.

규륜은 사실 나와 함께 회귀한 악마였다.

단 한 줄로 서술할 수 있는 간단한 문장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뭐, 다행이라고 할만한 건 이 이후에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폭탄 같은 놈을 지금이라도 찾아내 죽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덤으로 지금이든 미래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진룡을 죽인 것도 나름대로 좋은 일이었다.

여기서 더 성장해서 나름대로 이름을 알게 되면 죽이기 껄끄러워질 테니까.

……우선은 돌아가자.

나는 짧게 생각을 정리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천년만년 고뇌해 봤자 기막힌 생각이 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미 일은 벌어지고 있었고, 아마 지금쯤이면 슬슬 공안이나 주작홍의 헌터들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것이다.

생각을 끝낸 나는 아직 풀리지 않은 각성 상태를 이용해 날개를 만들어냈다.

시스템 창을 열어서 그림자의 숫자를 확인해 보니 이 정도라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여분으로 가져온 마정석까지 합치면 오히려 충분할 정도였다.

펄럭!

내 몸보다도 큰 두 개의 날개가 검은 아지랑이를 사방에 분출하며 내 몸을 띄웠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 창에 또 있는 그림자의 숫자가 느릿하게 감소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나는 곧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그다음 날.

오전 8시를 넘긴 시간을 가르치고 있는 시계를 본 뒤 시선을 돌려 켜져 있는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TV에서는 ‘긴급속보!’ 라는 말과 함께 급하게 무엇인가를 준비한 듯한 느낌의 아나운서가 나와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 5시, 중국에 위치한 총 5개의 지역에서 하이브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하이브 사태가 일어난 곳은 각각 ‘홍콩’, ‘베이징’, ‘선양’, ‘칭다오’, ‘시안’으로 홍콩에서의 하이브 사태는 중국 ‘대형길드 회의’로 모여 있던 헌터들에 의해 조기 진압에 성공했지만 다른 4개 시의 하이브 사태는 아직까지…… 아, 자료 영상이 도착했습니다.

‘자료 영상을 보고 가시죠’라는 짧은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곧 영상 하나가 TV에서 재생되었다.

영상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화질이 좋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아차리기 힘들 법했지만, 그 영상 속에 찍힌 거리는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이 없었다.

능력을 사용하는 헌터들이 흔들리는 영상에 담기고 괴수들이 건물을 파괴하며 진군하는 모습이 담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들과 괴수의 울음소리, 그리고 영상을 찍는 사람의 비명 섞인 울음소리는 그곳의 상황을 무척이나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이윽고 짧은 비명과 함께 영상이 끝나고 아나운서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오전 8시를 기점으로 국제 협회와 독일 그리고 러시아의 SSS급 헌터가 하이브 사태에 진압에 나설 예정이지만, 이미 조기 진압에 실패한 홍콩 외의 4개 도시는 북한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계속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아나운서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 역시도, 회귀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물론 중국에서 하이브 사태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이렇게 대형 사건급으로 터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하이브 사태가 터지는 장소도 달랐다.

그것 이외에도 하이브 사태를 막을 수 있을 만한 헌터가 전부 ‘대형 길드 회의’ 때문에 홍콩에 모여 있는 것만 생각해 봐도 지금 이 큰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도 쉽게 할 수 있었다.

“크세즈베트.”

100% 그 녀석이 관련되어 있겠지.

순간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복잡해지려는 생각을 억지로 끊은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노트북에서 텍스트본을 킨 나는 그동안 혹시라도 잊어버릴까 싶어 써놓았던 미래의 서사들을 한 번씩 훑어본 뒤, 눈을 감았다.

이미 미래는 달라졌다.

그냥 달라진 것도 아니고, 그 악마새끼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개판 5분 전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 개새끼…….”

저도 모르게 조롱하는 목소리로 나를 비웃던 그 녀석의 얼굴이 떠올라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그쪽이 그렇게 물불 안 가리고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일직선으로 달려 나간다면…….

“이쪽에서도 그렇게 해줘야지.”

원래 지금까지는 될 수 있으면 미래를 크게 바꾸는 행동 같은 건 자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왜냐하면 미래는 내가 알던 대로 흘러가야만 내게 유용할 테니까.

하지만 악마 놈이 그렇게 개판을 치고 나 버리니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미래를 멸망으로 이끌기 위해 만들어 놓은 트리거들?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쳐부숴 주지.”

나는 결심했다.

그 악마 새끼가 주작홍 길드에서 무슨 개판을 쳤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 녀석이 규륜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악마에게 한 방 먹었다.

그건 인정한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한 방 먹여주지.”

내 방식대로 말이야.

나는 전화번호부에서 찾은 전화번호를 그대로 꾹 눌렀다.

* * *

후카이 이로하는 평소보다 일찍 길드 사무소에 도착했다.

이유는 바로 어제 김우현이 잠시 쓸 일이 있다며 하루만 빌려 가겠다고 하던 ‘왕가에서 제작한 통역 팔찌’를 다시 받기 위해서였다.

‘불편해.’

바로 어제, 김우현이 팔찌를 빌려 간 뒤로 이로하는 그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굉장한 불편함을 느꼈다.

당장 스마트폰이 죄다 한국어였기에 이제야 길드원들과 친해져 나누던 메시지에도 대답하지 못했고, 그것은 TV나 인터넷도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몰라 평소 돌아다니던 사이트에 돌아다니지 못했다.

그렇기에 새삼스럽게 이로하는 김우현이 자신에게 주었던 팔찌의 위대함을 재확인하면서 조금이라도 일찍 팔찌를 돌려받기 위해 평소보다 빨리 사무소에 출근했다.

그리고 일찍 출근한 사무소에서 후카이 이로하는 자신이 원하던 ‘팔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

팔찌만 찾을 수 있었다.

팔찌를 빌려 갔던 김우현은 어디로 간 걸까? 하는 의문도 잠시, 그녀는 곧 사무실에 들어오는 김윤원과 이야기를 하며 그 사실을 망각했고, 곧 나머지 길드원들이 도착하며 그에 관련된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러고 보니까 아저씨는 왜 없지?”

“……?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김윤원 씨 혹시 길드장님이 무슨 말 하신 거 있나요?”

이은별의 물음에 김윤원은 생각나는 게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아뇨, 어제 별말씀 없으셨던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그제야 후카이 이로하는 잊고 있었던 김우현을 다시 떠올리며 길드원들에게 팔찌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곧 그 말을 들은 김서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아저씨한테 빌린 팔찌는 사무실에 있었는데 아저씨는 없었다는 거죠, 언니?”

“응.”

“형님이 그냥 어제 사용한 다음에 길드 사무실에 두고 가신 거 아닐까 싶은데.”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

길드원들의 쓸데없는 추리가 이어지는 도중, 김서윤은 이내 화제에 흥미를 잃은 듯 책상에 놓여 있는 리모컨을 들어 올렸다.

“에이 몰라, 곧 오겠죠. 아마 분명 혼자서 뭐 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서 TV의 버튼을 꾹 누른 김서윤,

“어?”

그리고 곧, 길드원들은 켜진 TV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한국의 SS급 헌터 그림자 왕 ‘김우현’이 중국 하이브 사태의 조기 진압을 위해 베이징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앞으로 30분 뒤 김우현 헌터가 베이징 내로 진입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저씨가 왜 갑자기 저기에 있어?”

김서윤의 멍한 한마디.

길드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멍한 뉴스 오른쪽 위에 떠 있는 김우현의 모습과 동시에 한참이나 김우현에 대해 입을 열고 있는 아나운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꽝!!!

방금 알에서 빠져나왔던 A급 괴수의 머리가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거대한 그림자 손에 의해 부서진다.

그와 동시에 무저갱과 같은 어둠이 그 세력을 불려가며 바닥을 잠식하고, 그 아래에서 그림자들이 올라온다.

그림자들의 눈가에 붉은 안광이 자리하고, 그 이마에 꽤 거대한 크기의 뿔이 자리하는 것을 끝으로, 그림자들이 괴수와 몬스터를 학살하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크기와 숫자를 바탕으로 헌터들과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했던 몬스터와 괴수들은 그림자들에게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압도적인 숫자의 차이.

그 어느 면에서도 괴수와 몬스터들은 그림자들을 이기지 못했다.

거의 전쟁터라고 해도 될 만큼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는 도시를 본 나는 짧게 생각했다.

확실히 북한에서 일어났던 하이브 사태보다는 무난하다는 생각을.

A급 괴수가 떼거리로 몰려왔던 북한 사태에 비하면 이 베이징에서 일어난 하이브 사태는 생각 외로 괴수와 몬스터의 질이 낮았다.

슬쩍 고개를 들어 주작홍 길드 건물 1층에 자리를 잡고 있는 거대한 알을 바라보았다.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저 알을 파괴해 버리고 이 하이브 사태를 끝내고 싶었지만, 아마 알을 파괴하게 될 경우 이미 지반이 무너진 주작홍 건물은 그대로 박살 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건물이 박살 나기 전에 우선 모을 수 있는 정보는 전부 모아야 했다.

“각성.”

입을 염과 동시에 그림자들이 내 몸에 검은색의 아지랑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시스템 창의 ‘각성’ 란에는 0이었던 그림자의 숫자들이 한순간에 채워지고, 나는 곧바로 길드 건물의 외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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